호랑이는 죽어서도 호랑이


글: 산사람(펀글)

한반도에 휘몰아 친 동족상쟁의 피바람이 남긴 상처가 조금씩 아물어 가던

1959년 4월의 어느 화창한 아침.


한만 국경 넘어 중국 땅의 백두산 북쪽 한 자락에서 북한군 제대병이었던

최 석도 포수가 그의 동료와 부지런히 산을 오르고 있었다.

그는 응참이라는 지역으로 사냥을 나선 길이었다.


그 전해에 북한 평양을 떠나 고향인 중국의 내두산 촌으로 돌아온 최 석도에게
삶의 한 방법으로 선택한 사냥꾼이라는 직업은 아직은 다소 낯선 직업이었다.

지금까지의 사냥 길에는 옆 동네인 수전에 사는 그의 사냥 스승인 김 포수가 항상 동행해
왔었으나 그 날 마침 그에게 볼일이 생겨 며칠 뒤에나 합류하기로 했었기 때문에 최 포수는
할 수없이 황아바이라는 동네 노인만 데리고 떠날 수밖에 없었다.


황 아바이는 포수가 아니라 사냥에 필요한 도구나 사냥한 엽물(獵物)을 나르는 짐꾼으로서
따라온 것이었다.


호랑이 사냥할때 최포수 살던집 - 지금은 헛간


응참은 남쪽만 터진 넓은 분지였다.

전 지역에 햇빛이 잘 들어 분지 곳곳에 곡식이 풍성하게 자라는

비옥한 땅이었다.


그 뿐 아니라 주변 숲에는 짐승들이 득시글거리는 훌륭한

엽장(獵場)이기도 했다.

이곳 엽장에 약간 짠맛이 나는 물이 담긴 호수가 있었다.

매년 이 맘 때쯤이면 소금기를 섭취하려는 사슴들이 몰려들었었다.

최 포수네 는 지금 그 곳으로 가고 있는 중이었다.


지름길인 능선을 타고 한참을 가서 목적지인 호수가 거의 보일 따름이었다.

최 포수는 문득 길 앞산에서 수 십 마리의 까마귀 떼가 숲 위를 소란스럽게 떠도는 것을
발견했다.


깊은 산속에서 까마귀 떼가 소란을 떠는 것은 심상치가 않은 일이었다.

최 포수는 이마에 손을 대고 까마귀 떼의 동태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 ?!”

최 포수는 까마귀 떼가 떠도는 모습이 예사롭지가 않은 것을 발견하고 바짝 긴장했다.


까마귀들이 떼를 지어 숲 위를 나는 것은 그 곳에 동물의 사체(死體)같은

먹이가 있다는 것이고 소란을 떠는 것은 먹이를 서로 많이 차지하기 위해서

다투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면 까마귀들은 나무위에서 땅으로, 또는 땅에서 나무위로 상하수직으로 움직인다.

그러나 이들 까마귀들은 이 나무위에서 저 나무위로 좌우 수평으로

움직였다.


이것은 나무 아래 땅에 있는 먹음직한 먹이를 맹수 같은 방해자가 가로채서

즐기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고 봐야했다.


최 포수의 육감이 예민하게 움직였다.

“ 뭐가 있군!”


그러나 잠시 궁리해본 최 포수는 일단 그 곳을 피하기로 하였다.

이번 사냥 길의 목표는 사슴이다.

내일 새벽부터 시작할 사슴 사냥을 위해서 체력을 비축해 두는 것이 현명한 처사라고
판단이 되어서였다.


두 사람은 까마귀 떼를 멀리 우회하여 길을 계속 걸어 예정 했던 호수

가까운 산 비탈에 자리 잡은 사냥 막에 도착했다.

짐을 풀고 나서 그간 비워 둔 움막을 대강 손 본 뒤 점심을 해먹었다.


점심을 먹고 나니 별로 할 일이 없었다.

최 포수가 담배를 피며 나른한 피로를 삭이고 있던 중에 숲속 물정 모르는

황아바이가 조르듯이 말을 꺼냈다.

“ 최 포수! 아까 까마귀 울던 곳에 한번 가보오! 재수가 좋으면 횡재를 할지도 모르지 않소?”


최 포수는 일단 거절했지만 황아바이는 끈질겼다.


한참을 졸리자 최 포수는 슬슬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까마귀 떼를 본 순간에 자신의 마음 한 구석 속에 강하게 솟구쳤던 호기심이
그간 억눌려 있었다가 황아바이의 부채질에 다시 걷잡을 수가 없이 요동질 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한참을 유혹과 싸우다가 최 포수는 마음을 굳혔다.

“ 뭔지 모르지만 내일 하루 쉬더라도 이놈을 잡자.”

그는 황아바이에게 물었다.

"우둥불을 놓을 줄 아오?”

“잘 모르오. 내 농사만 지어왔지 노숙은 처음이오.”


우둥불은 통나무로 피우는 모닥불을 일컫는 함경도 방언이다.

1920년 중국 화룡현 청산리 깊은 골짜기의 우둥불 곁에 둘러 앉아

총사령관 김좌진 장군을 위시한 여러 지휘관들과 함께 내일의 전투를 위한

비장한 각오를 다지던 20세의 연성대장 이범석은 이 역사적인

현장에서의 우둥불이 주던 분위기에 강렬한 인상을 받은 듯하다.

(그는 나중에 한국의 국방 장관과 국무총리를 지냈다.)

그는 나이 70이 넘어 출간한 자신의 회고록 제목을 우둥불이라고 지었었다.


이 책에서 그가 독립운동이나 수렵인 생활을 하면서 즐겼던

우둥불에 관한 낭만적인 회고가 여러 번 나온다.

자신이 단순하게 까마귀 울던 곳에 다녀오기만 해도 늦은 밤 시간이

될 것이다.

4월이라지만 북쪽 고산지대인 그 곳은 아직도 밤이면 살얼음이 얼 정도로 기온이 차가웠다.

그래서 저녁이 되면 먼저 준비 할 것이 우둥불이었다.

최 포수는 황아바이에게 세 개의 굵은 통나무를 삼각형으로 의지해서 세우고

그 통나무들 끝에 불을 붙여 아래로 타 내려가게 하는 독특한 우둥불 피우는 방법을
나뭇가지로 몇 번씩 실연 해보이며 알기 쉽게 일러주었다.


“ 내 없더라도 실수 없이 하오.”

“ 이젠 알만하오. 내 잘 해 볼 테니 최아바이나 잘 다녀 오기오.”

마음을 강하게 굳힌 최 포수는 내두산 촌 생산 대에서 지급받은 일본 군용

99식 소총을 둘러메고 까마귀 떼가 까악까악 울어대던 그 곳을 향하여

날렵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까마귀 떼에서 500미터쯤 떨어진 숲 언저리에 도착 한 것은 해가 상당히

기운 늦은 오후였다.



호랑이를 사냥한 응참부근 백엽수 숲



최 포수는 최대한 천천히 노리쇠를 움직여 소리 없이 7.7미리 실탄 한발을 약실에 장전하고
역시 느린 동작으로 안전장치를 풀었다.

야생동물들은 금속성 소리에 극히 민감하다.

최 포수의 장전 행동은 그 소리를 최 포수도 들을 수없는 고요 속에서

이루어 졌다.


장탄된 총을 앞에 총 자새로 든 최 포수는 그 곳에서부터 정숙 보행으로

들어갔다.

밟으면 소리가 나는 잔가지나 가랑잎을 피하고 나무들을 은폐물로 사용해

가며 조심스럽게 전진해 가면서 커지는 궁굼증을 억제치 못했다.

“ 뭘까?”

그것이 작은 동물이라면 표독스러운 담비거나 생긴 것만 험상궂게 생겼고 실제는
겁 많은 멍청이 범(시라소니의 현지명)이거나 굶주릴 대로 굶주린

승냥이 일지도 모르고 그 것이 큰 동물이라면 멧돼지 또는 곰일지도 몰랐다.


어쩐 일인지 그 것이 호랑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여하튼 아직 초보인 최 포수에게는 어느 것에도 확실한 심증이 가지 않았다.


어느덧 까마귀들이 아우성 소리가 지척에 들리는 지점까지 다가가는데 성공한
최 포수는 자세를 더욱 낮추고 전방을 주시했다.

수색의 시선이 한 지점에 이르자 최 포수는 일순 등골에 시리게 아린 얼음물이 스치는
공포를 느꼈다.


숲의 한 구석에 물동이만큼 커다랗고 누런 물체가 있었다!

“ 범이닷 !”

온몸을 조여 오는 듯한 두려움에 쫓기듯 최 포수는 반사적으로 몸을 움직여 커다란
홍송(紅松)뒤에 숨었다.

그 물체는 풀 속에 온몸을 잠그고 느긋하게 먹이를 지키고 있는 호랑이의 머리였다.


호랑이는 어제 밤에 잡은 돼지 한 마리를 잡아서 포식하고 감춰둔 남은

고기에 낌새를 채고 달려온 까마귀 떼가 덤비지 못하도록 감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까마귀 떼의 무서운 식욕은 호랑이의 다음 식사를 거덜 낼 수 있다는 것을 호랑이도 잘 알고
있었던 듯하다.

호랑이는 쓰러진 통나무를 뒤로하고 비스듬히 엎드린 채 가끔 머리만 움직여 시끄럽게 구는
까마귀 떼와 사방을 경계하듯이 들러 보았다.


최 포수가 생전 처음 보는 호랑이는 어마어마한 거구였다.

그러나 아무리 거구였었다 해도 호랑이가 머리를 움직이지 않았더라면

주변 잡목 숲에 녹아들 듯 기막히게 배합된 몸체의 얼룩 무늬 때문에

발견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최 포수는 터질 것 같은 긴장 속에서도 먼저 호랑이를 발견한 자신의 행운에 감사했다.


이제는 상황 파악이 끝난 만큼 액션이 남아 있었다.

그는 몸을 숨긴 홍송(紅松) 뒤에 천천히 앉았다.

서서쏴 자세보다 앉아 쏴 자세가 훨씬 사격의 정확도를 높이기 때문이다.

자세를 잡은 최 포수는 어느새 긴장으로 굳어진 안면에 흐르는 땀을

느껴야 했다.

땀을 닦고 잠시 호흡을 가다듬은 뒤 최 포수는 총을 역시 조용히 나무에 의탁하고
총구를 호랑이 쪽으로 향했다.


최 포수는 생사를 건 결행을 앞두자 난데없는 불안감이 가슴속에서 뛰쳐나와 조준에
집중하려 했던 신경을 흩뜨려 버렸다.

그는 사냥의 세계에 입문 한 뒤 호랑이에 대한 겁나는 이야기들을 수없이 들었었다.


“산속에서 갑자기 만나기만 해도 팔다리가 후들후들 떨려 서리 총이 있어도감히 쏘지 못하오.”

“사슴을 쫓다가 느닷없이 범을 만나서 죽어라고 도망쳤는데 -- 나중에

보니 바지에 된 똥을 다 쌌더군 !”


한 치가 어긋 나는 사격의 실수도 죽음과 연결되는 절대 절명의 순간이었다.

최 포수는 자신도 그들처럼 심한 공포감 때문에 심리적으로나 생리적으로 떨고 있지나
않을까하는 갑작스러운 두려움이 생겼던 것이다.

두려움의 심리상태에서 사격을 하는 것은 스스로 죽음을 초대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최 포수는 자신의 손과 팔을 확인해 봤다.

아무 떨림이 없었다.


사타구니 밑에도 손을 대봤다.

행여 오금이 저려 있나 를 본 것이다.

이상이 없었다.


마지막으로 가슴에 손을 넣어봤다.

심장 박동에도 아무 이상이 없었다.


최 포수는 북한군 철도 경비대 청진 초소장 근무 시절, 초소 뒤 참호 속에서 천지를
다 뒤집어 놓을 듯이 퍼부어지던 미 해군 함포의 불비를 간을 조리며 견디던 경험을
뒤돌아 보면서 마음을 한층 더 안정시켰다.

“ 그 불벼락에 비하면 이따위 호랑이는 아무 것도 아니다!”

자신을 회복한 최 포수는 다시 목표로 주의를 돌렸다.


그리고 총신에 눕혀져 있는 99식 소총의 가늠자를 바로 세우고 가늠쇠를

찾아 조준선에 정렬시켰다.

그러나 가늠자를 통해 호랑이를 보던 최 포수는 당황했다.

예상되는 탄도에 비록 성기기는 했지만 잡목과 잡초가

적지 않게 자리 잡고 있었다.


총알이 작은 가지나 작은 풀잎 하나만 스쳐도 탄도가 비틀어져서 엉뚱한

방향으로 날아 갈 가능성이 컸다.

일반인들은 고속으로 나는 총탄이 그런 것쯤은 간단히 관통해 버릴 수 있다고
짐작 해버리겠지만 군 생활 이래 사격을 많이 해봐서 그 사실을 잘 아는 최 포수는
곤혹스러울 밖에 없었다.

최 포수는 앉아 쏴 자세에서 상체를 악간 들고 무릎 쏴 자세로 사격 자세를 바꾸었다.

자세가 약간 불안정했지만 별도리가 없었다.


최 포수는 조용히 정신을 집중하고 가늠쇠를 호랑이의 앞다리 뒤로 이동했다.

이 가슴 부위에는 맹수들의 주요 급소들이 다 집중되어 있는 곳이었다.


네발짐승을 옆으로 봤다고 했을 때 앞다리 바로 뒤의 맨 윗 부분에

척추가 있다.

맞으면 안 죽어도 움직이지를 못한다.


그 아래 부분은 커다란 허파가 있다.


그리고 더 아래에 즉 다리 뒷 부분 맨 아래에 치명적인 급소인

심장이 있다.

어지간한 맹수는 세 곳 중 어디를 맞아도 목숨을 건질 수 없다.


거리는 100미터 정도.


최 포수 솜씨로 실수가 있을 수 없는 거리였다.

가늠자와 가늠쇠와 호랑이의 가슴을 있는 정렬이 끝난 조준선 사이에 아직도 서 너 줄기의
잡목이 염려스러운 신경이 쓰였지만 어떻게
해 볼 상황이 아니었다.


최 포수는 가늠쇠에 얹힌 호랑이의 가슴에 온 정신력을 집중시키면서 방아쇠에 봄바람이
스치게 하는 기분으로 손가락의 압력을 얹었다.


“ 콰-앙!”

총성은 밀림에 무겁게 드리워진 대기의 장막을 터뜨리고 찢어 놓고 나무와 나무 사이로
여운을 남기며 멀리멀리 사라져 갔다.

거의 동시에 간담이 서늘해지는 호랑이의 비명이 천지를 가르며 그 뒤를

따랐다.


“어-흥!”

그 포효는 아무리 담대한 사람이라도 모골이 송연 한만큼 진저리 쳐지는

무시무시한 공포를 가득 머금고 있었다.


뒤이어서 까마귀들이 사방으로 흩어지며 자지러지게 내 지르는 괴성의 합창으로
공포로 얼어붙은 대지위에 퍼부어졌다.


그 소리에 땅에 머리를 거꾸로 박고 숨어 버리고 싶은 충동을 가까스로

누르며 반사적으로 노리쇠를 번개처럼 움직여 제 2탄을 장탄했다.


철커덕 소리와 함께 제 2 탄이 약실에 장탄되고 오른 쪽으로 튀어 나간

제 일탄의 탄피가 땅에 부딪혀 달가락 소리가 들려 올 때까지도 최 포수의 시선은
흩어 지지 않고 그대로 조준선 정렬을 유지하고 있었다.

99식처럼 한발 한발을 노리쇠를 움직여서 장전하고 배출하는 수동총인 모신 나간트 소총을
사용했었던 북한군에서는 장전 중에도 조준점을 그대로 고정하는 것은 사격술의
기본 기술로서 반복 훈련 시켰었다.



호랑이를 쏜 일본군용 99식 소총

최 포수는 이 기술을 북한군에 있을 때 훈련 받았었고 근무 중에도 시간만 나면
이 사격술이 본능화 되게 단련했었다.

그런데도 최 포수는 조준선 위에서 호랑이가 사라지는 모습을 보지 못했었다.


“없어졌다!”

맞았다면 그 자리에서 날뛰거나 쓰러져야 했다.

최 포수는 실탄이 호랑이에게 맞아서 퍽하고 난 소리를 분명히 기억해냈다

최 포수는 당황한 시선으로 전방을 주시하며 호랑이를 찾았다.

숨을 한번 들이 쉴만한 짦은 시간에 최 포수는 시야의 가장자리 잡목 숲에 투영된
누런 광선 같은 것이 스쳐 감을 감지했다.

호랑이가 가격당한 곳에서 십여 미터 떨어진 잡초 사이에 정말 신기루 같은 누런 물체가
슬쩍 지나갔던 것이다


그 것은 정말 동물의 움직이라고 보기에 너무도 가벼웠고 조용했다.

주변 잡목들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호랑이 일 수밖에 없는 그 누런 물체에 없었다면 최포수는 그 것이 호랑이가 아닌
흙 먼지였거나 연기로 알았을 것이다.


그리고 지상에는 숨 막히는 적막이 찾아왔다.

최포수는 새로운 공포감이 찾아들기 시작했다.

“ 부상당한 호랑이는 멀리 우회해서 뒤로부터 포수를 공격한다.”

최 포수가 익히 들어왔던 호랑이의 습성이었다.


그는 머리를 시계 바늘처럼 돌리며 전방과 후방 그리고 좌우를 살폈다.

주변은 빽빽한 밀림이었다.

아까 총에 맞은 호랑이가 보여준 기막힌 도주 기술이면 접근 기술 역시

기막힐 수밖에 없었다.


그 호랑이라면 이런 지형에서 흔적도 없이 밀림 사이로 5-6미터 안에 까지 접근해서
단숨에습격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로 보였다.

5-6미터라면 단 한 번의 번개 같은 도약으로 최 포수를 끝장

낼 수 있는 짧디 짧은 거리이다.


이것은 최 포수가 호랑이의 공격을 발견 했을 때는 이미 늦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최 포수에게 아까와는 다른 다급한 공포가 염습 해왔다.

시각만아니라 청각까지 동원한 날카로운 경계 상태가 몇 분간이나

계속 되었으나 주변은 고요하기만 했다.


혀가 바짝바짝 타들어 가는 칼끝 같은 긴장 속에서 최 포수는 참을 수가

없이 답답한 고통을 느꼈다.

몸부림치는 고통을 털어 내다가 그는 호랑이가 사라지고 나서부터

약 일 분 넘게 숨을 참고 있었던 자신을 발견했다.

그제야 그는 나무 뒤에 숨은채 뒤로 물러앉으면서 전방을 보는 편한 자세로

깊이 숨을 내쉬었다.


그때였다 !

깊이 들이 쉰 숨이 가시기도 전에 그는 믿지 못할 광경을 보았다.

아까 누런 광선이 안개처럼 사라진 곳에 다시 한 번 거대한

물체가 거칠 것이 없이 당당하게 나타나는 것이었다.

두 번 볼 것도 없이 그 것은 진짜 호랑이였다.


최포수는 재빨리 나무 뒤에 바짝 붙어서 총구를 그 쪽으로 돌렸다.

호랑이는 다소 거칠게 들어오더니 아까 자기가 있던 장소에서 약간

뒤쪽 높은 곳에 서서 거만하게 사방을 둘러보았다.

총격에 비명을 지르고 도망쳤던 부상 호랑이의 기색 같은 것은

아무 곳에도 없었다.


정말 믿기 힘든 광경이었다.

호랑이가 금방 일격을 당했던 죽음의 장소로 다시 돌아오다니!

호랑이가 아무리 생각이 없는 동물이라지만 이런 비상식적인 짓은 그 들에게서도
상상 할 수가 없는 일이었다.


최 포수는 정신이 아찔해졌다.

총 맞은 놈이 도망가다가 죽어서 귀신이 되었고 그 귀신이 저승으로

가기 전 자기에게 총질을 한 놈에게 복수를 하러 온 것이 아닌 걸 까?

최 포수는 뒤죽박죽된 머리로 잠시 그런 바보 같은 생각해봤다.


그러다가 머리가 정리되었다.

“ 동료가 복수하러 왔구나 ”

동료가 왔다면 그 것은 아까 도망친 호랑이의 이성 친구 일 수밖에 없었다.


호랑이는 항상 혼자 생활하는 외톨이 짐승이다.

이 점에 있어서 백수의 왕이라는 타이틀을 호랑이와 함께 공유하고 있는

사자가 가족 단위의 떼[PRIDE]로 생활 하는 것과 대조를 이룬다.


하지만 호랑이의 교미 철에만 암수가 같이 생활한다.

최 포수는 앞의 호랑이를 총 맞은 호랑이의 짝으로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 지금은 교미 철이 아니지--”

호랑이의 교미 철은 추위가 최고조에 달하는 동지석달부터 정월에 걸쳐있다.

대지를 꽁꽁 얼려놓은 맹추위로 뜨겁디뜨거운 러브 콜로 녹이면서 암수가 어울려
산천초목도 벌벌 떠는 요란한 사랑을 해댄다.

그러나 지금은 4월이 아닌가 ?

느닷없이 죽음의 총구 앞에 나타난 호랑이의 이해 할 수 없는 때문에

그 정체에 대해서 잠시 혼란을 겪었으나 최 포수는 곧 현실 감각을 찾았다.?

다른 가능성은 희박했다.

사라진 놈이 다시 나타난 것이다.


“ 저놈이 누구건 상관없다. 먼저 잡고 보자!”

최 포수는 숲의 약간 높은 곳에 서서 사방을 경계하는 호랑이의 옆구리 급소 부위가 완전히
드러나기를
다리며 조준선 위의 호랑이를

계속 주시했다.


이 호랑이와의 대결이 끝난 뒤 그는 한 선배 포수로부터 알게 되었다.

호랑이는 총격을 당하게 되면 일단 놀라서 도주하지만 금방 죽을 중상을 입지 않았다면
방향을 돌려 다시 불자리[총격을 받은 장소]로 돌아온다는 것이었다.


호랑이가 그런 바보 같은 짓을 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했다.

많은 최 포수 주변 선배들은 제일 큰 이유로서 호랑이의 맹렬한 성깔과

우둔한 지능을 거론했다.


호랑이의 무서운 성질은 이미 잘 알려져 있는 바다.

총탄에 의한 고통스러운 부상은 호랑이에게 극도의 증오심을 유발하고

그 증오심은 예외 없이 사나운 복수의 반격으로 연결 된다는 것이 이 이유에 대한 기본적인
추리이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 해도 죽음의 벼락을 내뱉는 총구가 기다리는 사지로 스스로
걸어 들어 올만큼 바보스러운 호랑이의 지능은 일반인에게 좀체로 수긍이 가지 않는 대목이다.

보통 사람들에게 가인된 호랑이의 이미지는 용맹무쌍이라는 형용사의 함께 영민
교활이라는 형용사적 수식어가 항상 혼합되어 있다.


이 사냥 뒤 오랜 세월 사냥 경험을 쌓은 최 포수는 스스로 의문에 대한

답을 작성 할 수 있었다.


세상에 두려울 것이 없어 살아온 백수의 왕 호랑이의 유전인자에 꽉 들어 차있는 교만심과
흉포성이 호랑이에게 제이의 피격을 두려워하지 않고 증오의 복수를 하러 겁 없이 불자리에 돌아 올 만큼의 만용성을 갖게 했다는 것은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라고 결론 내렸다.


이 결론은 잘 알려져 있지 않은 호랑이의 이상한 만용에 의해서도 강하게 뒷받침된다.

그 만용의 정도가 총구가 기다리는 불자리로 돌아오는 만용보다도 더 바보스러워 웃음이
나올 지경이다.


여기 그 사례가 있다.

한국의 산야를 더럽히는 밀렵꾼들의 올가미를 독자여러분은 잘 알고

있으리라.

노루 멧돼지 같은 대형 동물들은 물론이고 토끼나 너구리같은 작은 짐승들까지도 올가미가
주는 위협을 본능적으로 깨닫고 있다.


그래서 올가미에 걸렸다는 느낌이 오는 순간 맹렬히 몸부림치며 올가미를 벗겨내기 위해서
사력을 다한다.

이런 몸부림으로 비록 다리가 잘리거나 하는 불구가 되기도 하지만

많은 동물들이 올가미에서 벗어 나와 목숨을 구하기도 한다.


그러나 호랑이는 올가미에 걸리면 다른 동물처럼 살아나기 위해서 몸부림을 치기는커녕
정 반대로 올가미를 걸고 앞으로 그대로 걸어 나가 스스로 올가미를 목이 파여 질만큼
단단히 조이게 만든다.


그 우악스러운 짓은 마치 호랑이가 올가미를 보고 마치 “뭐야? 이 까짓 것이 감히 나에게 !”
하고 무시해 버리고 짓 밟아 버리겠다는 태도 같아 보인다.


숨을 쉴 수가 없이 목이 졸라지면 그때야 당황하지만 때는

이미 늦은 것이다.

만용의 대가로 백수의 왕은 인간에게 그 값 비싼 껍질을 인간에게

선사하게 된다.


백두 산 밑 이도백하[二道白何]에 살아있는 모 포수는 호랑이를

열 댓 마리나 잡은 명포수로 유명했다.

그러나 누구나 그 내막을 들여다보고 그가 잡은 호랑이의 거의 전부가

그가 설치한 교수대의 올가미를 걸고서도 스스로 죽음의 발걸음을 재촉하다가 결국
황천까지 가버린 놈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실소를 금치 못할 것이다.


이야기를 다시 극한적인 긴장이 누르고 있는 아까의 현장으로 가보자.

최 포수는 계속 호랑이를 조준하며 사격의 기회를 노렸다.


호랑이는 아까의 높은 위치에서 아래 쪽으로 두어 걸음 이동하여 피나무로 몸을 가린 채
최 포수 방향을 주시했다.



‘뭔가 눈치를 채고 있구나!’

최 포수는 가슴이 조여 오는 긴박감을 느끼며 계속 미동도 하지 않았으나 급한 마음이 들었다.


호랑이가 피나무 뒤에 숨었지만 나무가 굵지 않아서 상반신 가슴의 급소는 그대로 노출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 급소가 한 무더기의 억새풀에 가려져 있는 것이 문제였다.

좀 전과 비슷한 사격 상황이 된 것이다.


호랑이가 최 포수의 위치를 눈치 이상 이것저것 따질 형편이 아니었다.

그는 호랑이의 가슴을 가린 억새풀 중간을 겨냥하고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

“으- 헝! ”

두 소리는 이중창을 하듯 동시에 터져 울렸다.

첫 총성에 멀리 도주해버린 까마귀 소리가 없었던 관계로 두 소리는 더욱 큰소리가 되어
메아리를 달면서 숲속 사이로 멀리 퍼져 나갔다.


두 번째 비명은 확실히 아까와 다른 것이 있음을 최 포수는 감지했다.

두 번째 포효는 그냥 포효가 아니라 문자 그대로 비명이었다.


거기에는 아리디 아린 고통이 흠뻑 배여 있었다.

총성과 비명의 여운이 최 포수의 귀를 스쳐 떠나기도 전에 호랑이는

전과 같이 누런 광선이 되어 숲에 흡수되듯 사라져 버렸다.

최 포수가 번개같이 장전했던 총을 조준할 겨를도 없었다.

그리고 다시 정적이 찾아왔다.


최 포수는 계속 꼼짝도 안 하고 주변을 살폈다.

반 시간이 지나도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최 포수는 슬그머니 일어나서 다시 주변을 살펴봤다.

그래도 조용하기만 했다.


앞에 총 자세로 한참을 경계하던 최 포수는 조심조심 호랑이가 제2탄을

맞은 자리로 찾아갔다.

털이 사방으로 날려 있을 뿐 있어야 할 보여야 할 핏자국은 어디에도

없었다.


낙심한 최 포수는 다시 제 1탄이 날아간 곳을 살폈다.

포수는 호랑이가 등지고 누워있던 쓰러진 나무에서 총탄이 뚫고

들어간 흔적을 발견했다.

구멍 언저리에는 몇 가닥의 누런 털이 묻어있는 발견했다.

‘철[총탄]이 털을 찝었구나.’

호랑이 몸체를 관통한 실탄이 털을 몰고 나가 나무를 명중시켰다는 것이다.

그러나 구멍의 위치는 자신의 조준점보다는 훨씬 높았다.

이래 가지고서야 급소는 맞추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한 최 포수는

그 원인 규명에 나섰다.


의문은 금방 풀렸다.

아까 호랑이가 누워있던 바로 앞 대여섯 걸음 앞에 있는 손가락 굵기의

나무 하나가 칼로 잘린 듯이 꺾어져 있었다.

사격전 조준선을 가린 듬성듬성한 잡목들이 무척 신경을 쓰게 했는데 결국 이것들의 하나에
탄도가 위쪽으로 휘어 버리는 방해를 받아서 호랑이의

급소를 비껴 등을 스치게 만들었던 것이다.

아프게 털만 뜯긴 호랑이가 노기등등해서 돌아 왔을 법도 했다.


한발에 즉사시켜야 했을 호랑이에게 경상을 입혀 도주 시켰으니 난감했다.

최 포수는 혀끝을 찼다.

“에이 !”

그러나 단념은 일렀다.

비록 호랑이가 아무런 핏자국도 남기지 않았으나

두 번째 질러댄 고통 찬 비명은 뭔가 타격을 입혔음을 말해주는 것이었다.

‘추적하자!’

두 번이나 불질을 했던 최 포수의 가슴 속에서는 시작할 때의 공포심은

이미 개운하게 사라져버렸다.


겁을 먹고 전장에 투입된 신병들도 일단 전투가 시작되어 총성과 포성이 사방을 진동하면
자신들을 옥죄어 놓은 공포심을 스스로 깨어 부수고 전투에 몰입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라고 전쟁 심리학자들은 말한다.


공포심대신 인간의 극단적인 공격성이 일깨워지고 이 공격성이 병사들의

무아무중의 용감한 전투 행동을 부추긴다고 한다.

이 공격성은 광기라고도 표현 할만도 한데 전쟁을 경험한 최 포수는

이 시점에서 비슷한 경험을 했다.

총격이 불러일으킨 대담함은 최 포수를 숲속으로 몰고 들어가게 했다.


최 포수는 멜빵 안으로 오른 손 팔꿈치를 집어넣어 단단하게 총을 쥐고

호랑이가 사라진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100미터를 그야 말로 바늘 끝을 밟는 듯한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추적을 했건만
호랑이 발자국 주변에 아무런 핏자국도 보지 못했다.


최 포수는 더 전진했다.

불과 몇 십 미터 가기 전 호랑이의 전진 방향의 오른 쪽 억새풀들에 스치듯 묻어 있는
최초의 핏자국이 발견되었다.

이어 서 몇 걸음 앞에서 왼쪽의 억새풀에도 핏자국이 발견되었다.

이 왼쪽의 핏방울들도 오른쪽 핏 방울들과 평행을 이루어 가며

앞으로 계속 놓여갔다.

호랑이는 피가 가끔 거품을 품은 것이 궁금스럽게 눈에 띄었다.

‘관통 했구나!’


아직도 사냥 경험이 일천한 최 포수는 아무것도 모르고 신바람부터 냈다.

제까짓 천하 괴물이라도 양구멍에서 이렇게 많은 피를 쏟아냈다면야

얼마 못가서 출혈 과다로 죽어 자빠질 것이 뻔해 보였다.


최 포수는 더욱 조심하면서 발걸음을 디디었다.

최 포수는 대여섯 걸음 걷고 정지해서 주위를 살펴보고 또 전진하는

조심성을 되풀이 했다.

총을 맞은 뒤 수백 미터를 구보로 달리던 호랑이는 숨이 차서인가 조금씩 속도가
늦어지면서 보통 걸음으로 걷기 시작했다.

가다가 한곳에 서서 잠시 쉬기도 했는데 그 곳에는 다량의 피가

고여 있었다.

그러나 철로 모양으로 두 줄을 이어져 가며 팥알처럼 점점이 뿌려진 핏자국사이로 난
네발자국은 대조적으로 직선을 긋듯 일 열로 찍혀있었다.


고양이 족은 네발을 한 줄로 놓은 직선보행을 한다.

그러나 만약 심한 상처를 당하고 몸을 지탱 할 수 없으면 마치 취한 사람

의 발걸음처럼 갈짓 자(之)의 발자국이 좌우로 넓게 흩어진다.


최 포수는 거의 500여 미터를 추적하고도 그 발자국이 조금도 흩어지지

않는 것을 발겨하고 마음이 어두워 갔다.

‘ 피를 이렇게 쏟았다면 쓰러 질 때도 되었는데---“



그렇지만 이때 최 포수도 모르는 화기학의 전문 지식이 있었다.

그것은 그가 발사했던 군용탄의 실탄은 동피로 감싸여져서 관통력은 좋지만

살상력은 약하다.

그리고 관통력은 살상력과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현재 맹수 실탄은 그 실탄끝에 납이 약간 노출되어 있다.

그래서 그것을 연두탄이라 부른다.

동물의 신체에 부딪히는 순간 마치 버섯모양 연두탄이라 부른다.

동물의 신체에 부딪히는 순간 마치 버섯모양으로 연두탄의 앞이 크게 짜부러지면서
크게 확대된다.


그리고 그 버섯모양으로 변형되어 구경이 거의 두 배로 커진 실탄이

그대로 회전하면서 장기조직으로 부수며 파고들기 때문에 살상력이 무척

크다.

단지 관통력이 떨어지는데 급소를 파괴한 이상 더 이상의 관통력이 필요

없다.

군용탄은 관통은 하나 탄도를 따라 단지 작은 구멍을 낼뿐이다.


게다가 최 포수가 쓴 99식 총의 7.7미리 구경 탄은 호랑이 사냥에

너무 약하고 작은 탄이다.

말했듯이 호랑이는 실탄에 대단히 강하다.

경우에 따라 심장에 명중당하고도 5,60미터는 능히 달려 포수에게

반격하기도 한다.


그래서 적어도 구경은 9.3미리 이상에 총탄의 무게가 두 배는 되어야 하고

여기에 더해서 앞서 설명한 연두탄은 더 말할 나위 없는 필수품이다.

현대의 전문 맹수 사냥꾼들은 최 포수의 호랑이 사냥을 보고 그 겁 모르는

무모함에 크게 놀랄 것이다.


그러니 호랑이가 출혈을 하면서도 바로 쓰러지지 않고 계속 제 갈길을

간 것은 당연한 노릇이다.

최 포수는 그 사실을 모르고 기대에 부풀어 올랐던 것이다.


200여 미터를 더 가자 비집고 들어가기조차 힘든 빽빽한 밀림이 나왔다.

호랑이는 뱀처럼 그 사이를 휘 집고 들어가 자취를 감추었다.

위험한 호랑이가 숨어 들어간 그 속은 두발 가진 인간이 들어 갈 곳이

아니었다.

난감해진 최 포수는 추적을 단념하기로 하였다.

‘김 포수가 오면 다시 돌아오자.’


이미 해가 서쪽 하늘에 깊숙이 저물고 있었다.

어둠이 금방 닥칠 것 같았다.

그 곳 지역 지리에 어두운 최 포수로서 캄캄한 야간에 사냥 막으로

가는 길을 잘 찾아 갈 자신이 없었다.


최 포수는 발길을 바쁘게 움직였다.

정신없이 걸어 돌아 왔건만 사냥막이 보이는 곳에 도착 했을 때는

이미 사위가 캄캄했다.


황아바이가 걱정스럽게 기다리다가 반갑게 맞았다.

“무어를 잡았소?”

초 포수는 미완성으로 끝난 호랑이 사냥 전말을 간단히 알려주고

밥부터 청했다.

호랑이라는 말에 놀란 황아바이가 연신 던지는 물음을 귓등으로 넘기며

최 포수는 조밥을 두 그릇이나 비웠다.


그리고 다음날 새벽에 나갈 사냥을 위해 일찍 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 새벽, 최 포수는 북한에서 사온 소련제 야광 시계가

새벽 세시를 가리 킬 때 눈을 떴다.

그 전날 사냥으로 피곤 할 법도 했지만 산의 맑은 공기 덕분에

몸이 말짱했다.

최 포수는 옷을 걸쳐 입고 사냥 채비를 하였다.

냉수한잔으로 아침을 대신하고 나선 최 포수는 아직도 하늘에 금모래처럼

잔뜩 깔린 잔별 빛에 의지하여 호숫가 잠(사슴이 염분을 섭취하기 위해서 찾아오는 곳)을
찾아가 매복했다.


동이 뜰락 말락 할 때 사슴들이 나타났다.

이 사슴들은 북미산 엘크와 비슷한 말 사슴들이다.

그러나 희미한 그림자만 보고 쏜 실탄은 빗나갔고 사슴은 첨벙첨벙 물소리를 내며 도주하고
말았다.


빈손으로 돌아와 다시 부족했던 토끼잠을 자고 잃어나자 해가 하늘 높이 걸려있었고
황아바이가 해놓은 아침밥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침을 먹자 말자 어제 그 곳에 한번 가보라고 황아바이가 채근이다.

김 포수가 와서 같이 가야 한다고 말했지만 그는 막무가내였다.


호랑이가 가진 금전적 가치 때문에 그가 그토록 재촉했을 것이다.

그는 임금대신 사냥 수확의 일부를 받기로 하고 이번 사냥 길에

따라 왔었다.


최 포수는 귀찮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김포수가 그날 온다는 보장도 없고 거기다 아침에 뿔 달린 아까운 숫사슴까지 놓친
아쉬움은 결국 다시 그를 그 호랑이 사냥터로 다시 가게 만들었다.


그는 다시 점심을 먹고 어제 호랑이의 자취를 잃은 곳으로 되돌아갔다.

호랑이가 스며 들어간 밀림을 감히 들어갈 생각을 하지 못하고 그 곳을

거의 1KM나 멀리 돌면서 호랑이가 빠져 나갔는지를 살펴보았다.


과연 한 곳에서 잡목 더미를 빠져 나온 호랑이의 자취를 발견했다.

핏자국은 계속 이어졌다.

300미터쯤 가던 호랑이는 어느 나무 등걸을 바짝 붙어서 의지하여 한참을 쉰 흔적이
남겨 놓았다.

용맹무쌍한 호랑이도 출혈로 지쳤었던 것 같았다.

그 곳에는 상당량의 마른 피가 풀에 엉겨 붙어 있었다.


호랑이는 그 지점을 지나서 더 가다가 어제와 꼭 같이 우거진

잡목 숲속으로 몸을 감추었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진입도 출입도 불가능 한 곳이었다.

‘역시 김포수가 있어야겠구나.’

최 포수는 추적을 단념하였다.


최 포수가 마침내 나흘 뒤에 호숫가 잠에서 사슴 한 마리를 잡았다.

그리고 그날 기다리던 김 포수도 사냥 막으로 찾아왔다.


최 포수는 그에게 호랑이를 쐈다가 놓친 이야기를 아주 자세하게

들려주었다.

심각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다 들은 김 포수는 프로답게 초심내기 최 포수의 사냥을 강평했다.

“ 호랑이 쏘고 덤불 속까지 안 쫓은 것은 잘 했소. 추격당하는 것을 알아채면 호랑이는
숨어서 기다리거든----. 그나저나
사냥 끝나고 가는 길에 한번 더 찾아봅시다.” 


사흘 뒤 허탕 친 아침 사냥 뒤 짐을 챙긴 그들은 집으로 출발했다.

가는 길에 둘러서 최 포수가 마지막으로 호랑이 발자국 놓친 곳을

한 시간이나 수색해 보았으나 아무런 흔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자기 때문에 괜히 시간을 지체 하는 것 같아서 최 포수는 스스로 나서서

수색을 마감했다.

“다 잊고 빨리 가세나!”

최 포수는 아직도 미련을 안 버리는 김포수의 등을 밀며 길을 재촉했다.

호랑이 사냥은 이것으로 마감되는 것 같이 생각되었다.


호랑이를 잡으면 동료들 간에 성가가 올라가서

호랑이 포수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대접을 받는 분위기가 있었던 것이

그 당시의 포수 사회였다.


호랑이를 잡은 명포수의 칭호는 꿈으로 사라지고 오히려 호랑이에게

앞 뒤 생각 없이 총질한 초보라는 비웃음이 은근히 걱정 되는 후유증을

최 포수는 되새김질 하면서 세월은 갔다.


그 해 가을이 되었다.

머릿속에 들락 달락 하던 호랑이 생각에 진하게 끼어있던 아쉬움도 슬슬

희미해지기 시작 할 무렵이었다.

온산의 붉은 잎은 수확의 세월임을 인간들에게 재촉했다.

산과 들에 의지하고 사는 인간들 모두가 다가오는 겨울을 향해 바쁘게

움직였다.


어느 날 최 포수는 들일을 나갔다가 수전에서 온 김포수를 만났다.

“ 이보 ! 최 포수 잘 만났소. 해 줄 얘기가 있소!”

“ 뭐요?”

“ 범 말이요, 그이 발견 됐소!”

최 포수는 눈이 번쩍 뜨이게 놀랐다.

“ 언제?”

“ 며칠 됐소. 최 동무는 이제 범 잡은 명포수야!”


김 포수의 말에 의하면 같은 동네에 사는 약초 꾼들이 최 포수가 범을

놓친 곳에서 호랑이의 사체를 발견 했다는 것이었다.

“ 게 어째 내가 쏜 호랑이라고 할 수 있겠소? 까마귀가 뜯어 먹어도

벌써 다 뜯어 먹고 뼈만 남겼을 텐데! ”


김 포수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 그게 신통하다는 게요.

범은 가죽과 뼈만 남고 살만 곱게 삭았더란 말이오.

약초꾼들이 확실히 말했소.

썩지 않고 곱게 삭았더라 하오.

호랑이가 그대로 흩어지지 않고 모양을 유지했더란 말이오.

그래서 총알 구멍을 확인 할 수 있었다는 게요."


“ 삭았다고?”

최 포수는 잠시 아리송해졌다.


“거짓말이 아닌가?”


김 포수는 짜증을 냈다.

“범은 죽어도 범이더군! 그 시체는 까마귀는커녕 승냥이나 너구리, 심지어들쥐가 갉아
먹은 자국조차도 전혀 없더라는 게요!
죽어 있지만 감히 범에게 입을 대 볼 짐승이 없었단 말이오.

그래서 썩기 어려운 뼈와 가죽만 그대로 남고 살만 곱게 삭아 없어져서

여섯 달이나 지났는데도 범이 그대로 그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오!”


최 포수는 의아한 생각을 놓을 수가 없었다.

호랑이를 쏜 날 멧돼지 사체에 입을 못 대서 밀림이 떠나가도록

사나운 극성을 부리던 까마귀 떼를 생각하면 정말 믿기 어려운 일이었다.

하늘을 나는 까마귀만이 아니었다.

지상에는 까마귀보다 더한 약탈자들, 말하자면 작게는 너구리나

들쥐 크게는 승냥이나 곰들이 우글거렸다.

호랑이의 사체가 부패해가면서 군침 도는 냄새가 근처 수키로까지 퍼졌을 것이고
갖가지 이들 탐식자 들이 먹이를 호랑이 사체를 향해

달려 왔을 것이다.


그렇게 굶주린 배를 안고 정신없이 달려온 수많은 놈들이 비록

백수의 왕이라지만 생명이 빠져나간 사체를 보고선 단 한 마리의

예외도 없이 질겁을 하고 뺑소니를 쳤다는 것이 있을 수 있는 일일까?


최 포수는 김 포수에게 다시 물었다.

“이보! 김 포수 과연 그런 것이 가능할까?”

최 포수의 질문에 김 포수는 답답하다는 듯이 가슴을 치며 말했다.

“ 범이 한번 으르렁 대면 근처 삼십 리의 동물들이 종적을 감추는 것,

알지 않소? 그리구 범 오줌 냄새만 맡아도 사냥개들이

그냥 주저앉아서 벌벌 떠는 거 모르오?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오!”


밀림 사정에 정통한 사냥 30년 경력의 김 포수가 허튼 소리를

할 리가 없다.


이쯤 되자 최 포수는 부지불식간에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보니 이해하기 힘들었던 호랑이들의 비상식적인 만용들도

다 그런 이유가 있었다.


올가미에 목이 걸려도 “ 어디 해봐라!” 하고 그대로 밀어 버려 죽음을 스스로 불러
들이는 것이라던가, 총격을 받고 도주했다가도 분기 충천한 모습으로 총구 앞으로 다시
돌아오는 우둔한 짓이 이제야 이해가 가는 듯했다.


사체만 보고도 이렇게 벌벌 떠는 동물들을 경멸하며 살아온 호랑이가 비상식적인
만용을 부리는 안하무인의 절대자 의식을 가지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최 포수의 가슴속에 잔물결 같은 감정의 일렁임이 일어났다.

이 순간의 최 포수에게 호랑이를 잡은 명포수라고 불리건 말건 그 것은

관심거리가 아니었다.


문득 조용한 은퇴 생활을 하고 있는 한 늙은 선배 포수가 한 말이 떠올랐다.

정신이 올바른 포수는 자기와 사투를 벌리다가 죽은 맹수에게 본능적인

미안함과 슬픈 생각을 갖게 된다는 말이었다.


최 포수는 지금 그의 말대로 죽어서도 밀림의 왕자다운 늠름한 위엄을

잃지 않고 사라져간 호랑이를 향한 숙연한 슬픔이 함께한 감동의 물결을

쉽게 가라앉히기가 쉽지가 않았다.


최 포수는 자기 총에 죽은 호랑이를 진혼이라도 하듯 호랑이가 사라진 응참 쪽의 먼 하늘을
보며 김포수에게 대꾸했다.


“그래 맞소 --- 범은 죽어서도 범 이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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