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향에서 부른 《귀향아리랑》

2007/12/11 흑룡강신문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나를 두고 떠나는 님 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 난다./


정겨운 이 노래가 아직까지도 한민족의 운명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것은 아마도 우리의 아픈 마음을 잘 헤아려주기 때문일 것이다.


2005년 3월의 봄기운은 칼바람에 몸서리치던 재한 중국동포들의 마음을 녹여주는 훈훈한 바람을 일으켰다. 그동안 가족과 친인들을 떠나 잘 살아보려고 고국 땅을 밟은 중국동포들이였지만 그처럼 환대를 받지는 못했다. 고향과 가족을 떠나 이 한 몸 희생하지만 불법체류라는 족쇄(신분) 때문에 오도가지도 못하는 처지에 있던 이들이 고국의 《해볕정책》에 봄날의 따스함을 다시 느껴보는 순간이기도 했다.

2005년 3월, 법무부에서 불법체류동포들에 대한《해볕정책》-《자진귀국프로그램》정책을 발표하자 바로 동포사회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과연 이 정책을 믿을 수가 있을까? 반신반의 하는 동포들이 모이는 장소마다 화제에 오른 이 정책은 동포들의 운명을 결정하고 정부의 정책을 검증하는 기회가 필요했다. 《자진귀국프로그램》을 내놓은 법무부나 이 정책을 믿어야 하는지를 가늠하는 동포들이나 모두 신경이 곤두서기는 마찬가지였다. 하다면 이걸 어떻게 믿어야 하며 법무부에서는 또 어떻게 믿음을 주어야 하는가? 전진하느냐 후퇴하느냐? 서로서로 신경전을 펼쳐야 하는 위기의 순간이지만 뾰족한 수가 보이지 않아 서로 고민에 빠져 있었다. 문제의 원인은 단 하나 믿음을 주는 것이다. 하다면 어떻게 그 많은 사람들을 믿게 할 수 있는가? 아마도 총대를 멜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 이것이 당시에 내린 동포관련 일들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의 이구동성이었다.

이처럼 결론이 내려지자 동포사회의 골간들이 가리봉동에 모여앉아 구체방안을 논의하기 시작했고 새로운 방안들이 나오고 계획이 세워졌다. 우선 합법체류 재한 유학생들이 먼저 앞장서고 다음에 합법체류자와 동포사회의 골간들이 앞장서서 이 정책을 홍보하기로 하고 5월 8일, 법무부의 《자진귀국프로그램》에 대한 홍보를 하는 문화행사를 가지기로 결정지었다.

하지만 정작 행사를 시작하려고 하니 대부분의 불법체류동포들은 자신의 신변안전을 보장받지 못할 가봐 망설이기 시작했다. 할 수 없이 우선 법무부에 임시 단속중지 요청을 하고 서울시청에도 행사지원 요청을 했다. 또 동포들이 많이 사는 지역에는 전단지와 포스트를 나누어 주고 연변연극단을 초청하여 동포들을 위하여 위문공연도 하기로 하였다. 이처럼 동포사회에 정부의 정책을 알리는 목소리가 커졌고 잇달아 행사에 대한 취지가 동포들의 마음에 새겨 들기 시작했다.


2005년 5월 8일, 행사의 순간이 돌아왔다. 전국 방방곳곳에서 모여온 중국동포들은 설레는 마음으로 서울 장충체육관으로 모여들었다. 당시 한 명숙 국무총리와 법무부의 직원들도 한자리에 모여《귀향아리랑》을 목청껏 불렀다. 어깨에 행운의 노란 띠를 휘두른 중국동포 봉사자와 법무부의 직원들이 엇갈아 홍보자료들을 나누어 주었고 두 눈이 휘둥그래진 중국동포들이 법무부직원의 정책소개에 귀를 기울였다. 한 것은 처음으로 실시하는 《자진귀국프로그램》이 과연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 자신의 두 귀로 확인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 명숙 총리의 축사에 이어 법무부의 《자진귀국프로그램》에 대한 소개는 한순간에 참석자들의 환성으로 터져 나왔다. 박수갈채는 끊이지 않았다...

이번 행사에 참석하기가 두려워했던 동포들의 마음은 봄눈 녹듯 사라져 가고 있었다. KBS를 비롯한 취재팀의 열기에 더욱 신난 동포들은 연변연극단의 노래와 가무에 빠져들기 시작했고 열악한 환경에서 웃음을 잊어가던 동포들에게는 웃음과 희망의 싹이 트기 시작했다. 이렇게 동포들의 마음을 움직여 가고 있을 때 흥겨운 노래 가락으로 흥분하던 동포들의 마음은 휘몰아치는 광풍속에 말려들었다. 바로 “엄마, 안녕”이란 연변연극단의 소품공연이었다. 한국과 중국에 떨어져 살다가 중국으로 들어간 어머니가 그동안 가정의 생계를 유지하느라 한쪽 팔을 잃은 남편을 버리고 한국으로 가려는 엄마의 소행을 탐탁치 않게 여기는 딸이 엄마를 나무람 하면서 아버지의 품에 안기는 장면이었다. 정말로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장면이었다. 장내에 있던 1만 여명의 동포들은 조용히 흐느끼기 시작했다. 남부럽지 않게 잘 살아보려고 떠나온 고국에서 힘들게 일하면서 가정을 위하여 돈 번다고 하지만 결국 서로의 원한만 품은 채 갈라져야 하는 처절한 모습에서 더는 가족과 자식들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마음이 앞서는 것만 같았다. 공연이 끝나자 행사장에서는 자진귀국을 희망하는 동포들이 자신의 입장을 밝히기 시작했다.


그 사이 불법체류를 하면서 한번 돌아가면 다시는 올 수 없다는 핑계로 부모의 운명도 지켜보지 못하고 저 멀리 하늘만 쳐다보면서 눈물을 흘렸던 이들, 자기의 자녀가 병원에서 뜬 눈으로 아버지를 그리다 숨진 이, 학교를 졸업하고 당당한 성인으로 면사포를 쓰고 시집가는 딸이 부모의 사랑의 손길도 받아보지 못하고 돌아서 눈물을 흘렸다는 이, 서로 서로가 자신의 눈물겨운 사연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삽시에 조용하던 장내는 눈물로 흐느끼더니 어느새 《귀향아리랑》 합창이 울려 퍼져 넓은 장충체육관을 슬픔의 도가니로 들끓게 하였다. 체육관을 가득 메운 동포들의 마음을 그대로 전해주기 시작했다.


돌아가노라, 돌아가노라/ 이 아들이 돌아가노라/

고향산천 부모처자 그리워서/ 영을 넘어 돌아가노라/

그 옛날 아리랑 고개던가/ 초록빛 푸른 얼 찾아가지고/

우리 모두 아리랑 노래 부르며/ 어머니 품으로 돌아가노라./

제1차 《자진귀국프로그램》이 가동되었다. 하나, 둘 짐을 싸들고 부모처자를 찾아 가족의 품으로 찾아가는 모습들이 공항의 여기저기서 나타났다. 이처럼 몇 년간 불법체류 하던 동포들이 떳떳이 자신의 보금자리를 찾아가자 현지에서는 집집마다 큰 경사가 났다. 온 집안이 환해지고 가족들의 얼굴은 밝기만 했다. 상봉의 시각은 정말로 그립고도 즐겁기만 했다. 고향을 찾아온 동포들은 가족들과 단란한 가정생활을 누리고 여행도 다니고 가족만찬도 하면서 즐겁게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재입국의 기회가 다시 차례질지 늘 걱정하고 있었다. 검증의 시각이 돌아오자 재외공관에는 사증을 신청하는 동포들이 줄지어 나타났고 동포들의 비자는 어김없이 발급되기 시작했다. 안도의 숨을 거두고 다시 고국을 찾은 동포들은 외국인등록증을 받아들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불법체류의 족쇄를 차버린 이들은《지옥》에서《천당》으로 들어간 기분이었다. 이때에야 정부의 정책을 믿지 않은 사람들이 후회하기 시작했다. 이미 《자진귀국프로그램》정책이 검증된 것이다. 이렇게 불법체류동포들이 이들을 부러워하고 있을 때 또 다시 제2차 《자진귀국프로그램》정책이 가동되었다. 이미 1차 《자진귀국프로그램》에서 확인한 동포들은 이번에는 더욱 믿음을 갖게 되었지만 그래도 《이번에는 절대 안 된다.》는 고집스런 사람들도 있었다. 잇달아 도처에서 오늘은 여기서, 내일은 저기서 단속반에 걸려 강제추방 당했다는 불길한 소식도 날아들었다. 공항에서도 눈물범벅이 되어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가 없었다. 하다면 어떻게 이런 사람들의 마음을 돌려세울 수가 있을까?


필자는 다시 한번 정부의 정책을 믿게 하고만 싶은 마음으로 강제추방당하는 이들을 찾아 공항으로 나가 보았고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한 이들도 만나보았다. 모두들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기를 원하는 마음이지만 아직도 그 믿음을 확신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하여 이미 있었던 1차의 예를 들어가면서 설득작업을 시작했고 더욱 많은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하여 신문에 《자진귀국프로그램정책 우리스스로 지켜야》라는 제목의 글을 실었다. 이 기사가 신문의 1면 톱기사로 실리자 중국에 있는 가족들과 한국에 있는 불법체류동포들 사이에 커다란 반응을 일으켰다. 모두들 동감이었다. 더욱이 강제추방 당했던 이들은 전화까지 걸어와서 자신의 처사를 후회하면서 많은 동포들이 자신과 같은 상황을 만들지 말 것을 당부하기도 했다. 이처럼 기사를 보고 한국에서 중국으로 중국에서 다시 한국으로 전화가 서로 오갔고 이미 1차의 혜택을 받은 재입국한 사람들이 또 확인까지 시켜주었기에 마음을 굳히는 이들이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어 인천공항, 심양공항, 연길공항, 공항마다 귀국하는 동포들의 행렬이 이어져 초만원을 이루었다.

이처럼 2차례의 《자진귀국프로그램》정책은 가족의 품을 그리던 동포들에게 희망과 새 생활의 시작으로 되게 하였다. 일부 가정들에서는 오래 떨어져 있다 보니 부부사이의 금이 가기 시작했지만 법무부의 《자진귀국프로그램》의 덕분에 위기에 몰리던 가정이 파탄의 위기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과연 정부의 정책은 많은 재한 불법체류동포들을 해방시켜주었고 가족을 위기에서 구해주었으며 가족의 소중함을 더욱 깨닿게 하였다.


이런 훌륭한 프로그램정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혜택을 받지 못하는 이들은 못내 부러워하기도 하고 후회하기도 한다. 이중에는 부득이 임금을 연체했거나 산재처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결단을 내리지 못한 이들도 많았다. 하지만 이들의 마음은 결국 강하지 못한데 있었고 정책을 믿지 못한데 있었다.


지난여름에 불법체류동포들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를 보면 제3차 《자진귀국프로그램》이 실시된다면 80%이상은 정책을 따르겠다고 대답했다. 그만큼 불법체류하고 있는 동포들의 마음도 바뀌고 있다는 것을 설명해주고 있다. 하다면 이제 제3차 《자진귀국프로그램》정책이 실현될 수가 있을까? 동포들의 눈과 귀, 마음은 여전히 법무부의 정책에 쏠리고 있다.


이미 법제 의식도 갖춘 동포들로서는 고향에 갔다 온 친구들의 이야기도 들었고 정부의 정책까지 두 번이나 확인했으니 이젠 확실하게 믿을 수 있다는 생각이다.

이제 또 다시 《귀향아리랑》이 서울의 상공에 울려 퍼질 그 날이 돌아 올 것인지 많은 불법체류동포들과 고향의 가족들은 그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목청껏 다시 불러보고 싶은 《귀향아리랑》 우리 모두 마음속으로 먼저 불러보면 어떨까?

/전 길운 특약기자 xinwen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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