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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달랐던 두 아이…의사, 발레리노로 키워 | |
한 뱃속에서 태어났지만 어쩜 이렇게 다를까. 두 아이를 기르고 있는 부모라면 한번쯤 생각해 보는 궁금증이다. 생김새도, 성격도, 취미도 달랐던 두 아이. 서로 다른 길을 선택한 연년생 형제. 하지만 각자의 분야에서 자신감과 열정으로 살아간다는 점이 닮았다. 지기 싫어하고 참을성 있던 첫째 정호(25)는 현재 의대를 졸업하고 인턴 과정에 있는 의사다. 호기심 많고 독창적인 성호(24)는 NYU(뉴욕대학)에서 석사과정을 밟고 있는 발레리노다. 의사와 발레리노로 키워낸 어머니 김윤자(49)씨의 평범하지만 특별했던 교육 비결을 들어봤다. 네 식구, 생소한 미국으로 유학가다 남편의 유학길을 따라 유치원에 다니던 정호와 5살난 성호를 데리고 김윤자씨는 미국으로 갔다. “영어요? 아이들은 알파벳도 모르는 상태였지만 가족은 함께 있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유학을 결정했지요.” 조기유학으로 많아진 기러기 아빠들에 대해서 그는 “아무리 자녀교육을 위한다지만 가족은 존재 자체에 큰 의미가 있다.”고 말한다. 작은 애 성호는 다 커서도 당시 힘들었던 심정을 털어놓곤 한다. 동양 사람이 거의 없는 낯선 이국땅에서 말도 통하지 않는 어려움이 너무 컸나 보다. 하지만, 2년 후 다시 한국을 찾았을 때 아이들은 다시 미국으로 가고 싶어했다. 결국 큰애 정호가 4학년, 둘째 성호가 3학년 때 다시 미국으로 갔다. 다양한 과외활동으로 익힌 재능 공부는 기본, 다양한 과외활동은 선택이었다. 수영, 승마, 테니스. 바이올린, 첼로, 피아노……. 많은 것들을 만나게 해주고 싶었다. 아이가 하고 싶어 하고 잘할 수 있는 것을 찾기 위해서였다. “언제든지 아이가 그만하고 싶다고 하면 그만했어요. 조건은 한번 그만두면 두 번 다시 할 수 없다는 것이었기 때문에 어리지만 아주 신중하게 고민하며 결정하더군요.” 교육비는 둘이 합쳐 한 달에 1000달러 정도 들었다. 하지만 다양한 경험으로 더불어 사는 인성과, 인내, 자신감을 얻었다. 덕분에 다른 문화권의 많은 친구들과도 잘 어울릴 수 있었다. 두 아이는 자신이 하고 싶어 하는 과외활동을 하기 위해 학과 공부를 열심히 했다. 학교 공부를 위해 도서관에서 관련 책을 빌리고, 예체능 활동을 하고 다시 집으로 와서 숙제를 하고 나면 늦은 밤이었지만, 아이들은 하고 싶은 것을 하느라 피곤한 줄을 몰랐다. 바이올린으로 미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쥬니어 콩쿨 현악부문에서 전미 2위와 피아노부문 스테이트 2위를 차지했던 정호는 바이올린과 피아노에 재능을 보였다. 성호는 공부나 여타 예체능에서도 특출 나지는 못했지만 또래 아이들뿐 아니라 사람들과 어울리고 주목 받는 걸 좋아했다. 전혀 조바심이 나서 비교해 본 적은 없다. 단지, 할 수 있을 때 배워서 두 아이 모두 그들 삶에 보탬이 된다면 하는 바람뿐이었다. 가장 좋은 약은 ‘칭찬’이라고 그는 말한다. 아이가 어떤 하나를 ‘잘한다’해서 그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하는 그 자체를 ‘인정’하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 것이 재능을 길러내는 비결이라고 말했다. 자신을 되돌아보게 했던 아이의 한마디 “아이들에게 공부하라고 종용하거나 강제로 무엇을 하게 한 적은 없는데, 어느 날 큰아이 정호가 시험을 치른 후, 1개를 틀렸는데 아이들에게 ‘아! 나 이제 엄마한테 죽었다’라고 했다는 얘길 들었어요. 깜짝 놀랐죠. 내가 혹시 아이에게 너무 욕심을 부린 게 아닌가 하고 제 자신을 되돌아보게 됐어요.” 아이는 그냥 불쑥 한 말이었다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지만, 그냥 넘길 수 없었다. 자식이 잘되길 바라는 마음이야 매 한가지이지만 그렇다고 ‘채근하는’ 부모는 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공부보다 사물에 대한 호기심이 많고 너무나 활동적인 성호가 걱정돼 6살 무렵, “나중에 너랑 사과장사라도 하려고 운전면허는 1종을 땄다.”고 말했다. 중학교 2학년이 된 성호는 어느 날 아주 고민스런 표정으로 “엄마, 내가 커서 사과장사는 할 수 있을까?”라고 말했다. 김씨는 대수롭지 않게 내뱉은 말 한마디가 아들의 가슴에 깊은 상처로 남아있는 걸 보고 마음이 아파 여러 번 아이에게 용서를 구했다. 중 3이었던 큰애 국어 실력은 초4년 수준 5년 유학생활 끝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정호와 성호는 각각 중학교 3학년, 2학년으로 편입했다. 하지만, 학과 시간에 거의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했다. 학습지로 평가해 보니 큰애는 초등학교 4학년, 작은애는 3학년 수준이었다. 유학 갈 당시 국어 수준으로는 중학교 수업을 따라 갈 수 없어서 급히 국어 공부를 해야 했다. 다행히 2개월 후 두 아이는 거의 또래 수준으로 올라왔다. 공부뿐 아니라 많은 활동을 했던 정호는 계속 미국에서 공부하고 싶다고 다시 보내달라고 했다. 그때마다 아빠는 “한국 사람의 정체성을 잃어버리면 국제 미아일 수밖에 없다. 여기서 최선의 노력을 하고 완전한 정체성이 확립되었을 때 그때 다시 생각해 보자.”고 타일렀고, 아버지를 존경했던 아이는 정말 열심히 공부하며 한국 생활에 잘 적응해 갔다. 하지만 성호는 달랐다. 숙제가 많고 해야 할 활동도 많은 미국이 싫다며 한국이 좋다고 했다. 성호는 공부는 곧잘 따라갔지만 항상 창조적인 아이디어로 새로운 것을 찾고 있었다. “사실 전 의사가 되는 게 꿈이었어요” 정호는 오래 전부터 의사가 ‘꿈’이었다고 말했다. 공대 출신의 집안이라 공대를 가거나 MBA 과정을 해 봄이 어떻겠냐고 제안하자 한 말이었다. “정말 음악을 하고 싶다면 전문적인 직업이 있어야 한다. 음악을 메인으로 삼지 말고 의사가 되라.” 아이는 남편이 의사였던 피아노 선생님 말씀을 기억하고 있었다. 아들이 잘 해 낼 거라 믿었다. 자신이 선택한 길은 후회도 없고 가장 열심히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이는 원하는 서울대 의과 대학에 갈 수 없었다. 귀국 후 완전히 회복하지 못한 고1 내신 성적 때문이었다. 자퇴 후 검정고시를 치르라는 권유도 있었지만, 그는 그럴 수 없다고 했다. 정호는 아쉽게도 내신점수가 부족해 비록 원하는 대학을 가지는 못했지만 자신이 원하던 의사의 길을 선택했다. 지금도 새우잠만 자는 바쁜 인턴과정이지만, 웃음을 잃지 않는다. 병원을 평생 한번 찾을 수 있는 환자일 수도 있기에 더욱더 최선을 다해 도우려 한다고 말한다. “무용을 하면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성호가 중 3때, 학교 축제에서 브레이크 댄스를 추는 걸 멀리서 지켜봤다. 자유자재로 몸을 놀리고 유연한 동작도 쉽게 해내는 아들에게 그는 정식으로 무용을 배워볼 것을 제안했다. 어렸을 때 태권도와 수영 등 남달리 스포츠를 잘 소화해 내던 성호에게 어울릴 것 같았다. 무용학원에 보낸 한 달 뒤, 학원 선생님에게 전화가 왔다. “이렇게 열심히 하는 아이는 처음 본다”며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이야기였다. 다음날 학원에 몰래 찾아가 멀리서 아이의 동작을 지켜봤다. 아이는 정말 쉴새 없이 노력하고 있었다. 안쓰러울 정도로……. “엄마, 내가 무용은 형보다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연년생이었던 형보다 잘하고 싶은 마음에 스스로 동기 유발이 된 셈이다. 그 해 성호는 대전예고에 합격했다. 세종대 재학 중 미국 유학을 결심한 성호는 포인트 파크 대학을 졸업, 현재 뉴욕대학에서 석사과정을 밟고 있다. 그리고, 지난 7월 뉴욕서 열린 제 1회 전세계 중국무 무용대회에서 한국인으로는 유일하게 참가해 시니어부 동상을 수상했다. 우리를 인정해 준 어머니, 그리고 아버지 아이들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다. 부모 욕심으로 아이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다만 아이가 자신의 길을 갈 수 있도록 지켜봐 준 것뿐이다. 늘 그들의 생각을 공유하고 미래를 설계하는 가족 간의 대화는 가족의 가장 큰 행복이자 희망이었다. 어느새 개구쟁이 아이들이 건장한 청년이 됐다. 남편 차종환(49)씨는 “늙어가는 것은 전혀 서러울 수 없다. 나와 똑 같은 2세가 더 나은 인류의 미래를 위한 입자로 커가기 때문이다. 낙엽이 떨어져야 새순이 나오듯, 나의 아들들이 이렇게 멋지게 크고 있어 기쁘다.”고 말한다고. 김윤자 씨는 언제나 애들에게 해주는 말이 있다고 한다. “너희 둘은 엄마, 아빠의 소유물이 아니다. 소나무 숲이 시원스럽고 아름다워 그 밑에서 휴식하고 싶은 것은 모두 자기 자리에서 자기의 위치를 지키고 서 있기 때문이야. 공부나 과외활동이 다른 아이들보다 뒤떨어져도 괜찮다. 모든 나무가 다 크면 재미없잖니. 하지만 너희들은 자신의 자리에 바로 서야 해.” 어느덧 자신의 자리를 굳게 지키고 선 차정호, 성호씨. 그들이 더 빛나 보이는 건 그들만의 욕심 없는 소박함 속에서 피어난 꽃이기 때문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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