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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존 번호 : 147559 작성자 : 한국청년
이 시대의 진정한 애국자 전두환씨!
아! 전두환 전대통령 겸 예비역 육군원수님!! 전두환과 같은 애국자를 보았는가! 대를 이은 애국자의 집안!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전형인 현대명문출신이다.
전두환 집안은 애국자의 가문이다. 전두환의 부친 전상철 선생께서 만주로 건너가 독립운동을 하신 애국지사라는 것을 아는가! 전두환 장군 유소년기때, 전상철 선생께서는 만주로 건너가셔서 독립군으로 활동하며 일본군과 맞서서 싸우셨다. 전상철 선생이 활동하던 대한독립군은 박정희, 김학규, 지청천(해방후 이승만정부때 장관과 국회의원 지냄) 장군 등이 예하대장군으로 활동하던 애국군이었다.
전두환은 이런 애국자집안의 형제들 중에서도 뛰어나고 기억력이 좋고, 영민한 머리와 두뇌! 그것으로 자만하지 않고 모친 홀로 생계를 꾸리는 어려운 가정형편에도 불평불만하지 않고, 열심히 면학하고 공부하여 소학교와 중학교에서는 학교성적이 전체의 1~3등을 할정도로 열심히 학업에 전념하였다. 후에 민주화 지도자라 하는 김모 슨상님은 스스로 도요타 다이주. 다른 김모 슨상님은 가네무라 코유로 창씨개명하고 학교다녔으나
전두환은 독립운동가 애국지사의 아들답게 왜정 선생의 창씨개명 명령을 거절하고 당당하게 학교를 다녔다. 학교에서는 소년 전두환에게 불이익을 여러번 주며 징계하려 했으나 소년 전두환의 이 대담한 기상은 누구도 꺾을수 없었다.
전두환의 이 대담함과 위험을 감수한 용기! 애국지사 아들다운 풍모 덕에 지금껏 친일 창씨개명으로 허물잡힌 일이 없는것이다.
어린 나이에 벌써 어떤길이 애국하는 길인가를 스스로 깨닭은 조숙한 소년이었던 것이다.
전두환 장군은 인문 고등학교에 진학할수 있었으나 어려운 가세를 일으키고 나라를 되찾겠다는 구국의 신념으로 대구공업고등학교에 진학하였다. 대구공고 진학후에도 계속 학교성적 1~3등을 하다가 육군사관학교에 수석으로 입학하여 본격적인 애국자로써의 길을 걷게 된다.
그러한 전두환의 나라사랑 애국의 신념은 그의 군생활 막바지부터 나타난다.
1979년 대한민국의 경제와 군사력을 발전시키기 위해 핵무기 개발을 준비하시던 박정희 대통령이, 민족의 천년 번영을 말아먹은 반역자 흉물 김재규의 손에 암살당하자, 전두환은 수경사령관으로 이 김재규가 폭동하기 전에 신속하게 사단병력을 보내 김재규의 폭동을 진압하고 폭도들을 사로잡았으며, 이중에 몇몇 적괴들은 탈출에 성공하여 현재도 도피중에 있으나, 적괴의 수괴인 김재규 등을 국가와 국민과 정의의 이름으로 처단했다.
1980년의 5월에는 북한의 김용순과 오진우의 지령을 받은 공산당의 무리들이 광주폭동을 일으켜서 시청 도청 경찰서 군부대 소방서 보건소 학교 예비군대를 습격하여 약탈하고, 병장기를 탈취한 다음 시청공무원 도청공무원 경찰관 군인 소방관 보건의사 간호사 교사 예비군들을 구타하고, 살해하고, 시체를 난도질하고, 겁탈하고, 방화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전두환은 용단을 내려 폭도들을 진압했다. 진압하는 과정에서 애매하게 죽은 시민들에게는 사죄하지 않아도 되는 입장이었으나 사죄문과 위로금을 보내는 성의를 보였고, 폭도 전원을 사형에 처하자는 참모들의 의견보다는 살리기 좋아하는 그 자비로운마음으로, 폭동을 일으킨 A급 전범들만 처단하는 인자함과 자비를 베푸셨다.
전두환은 이외에도 아웅산 테러사건 처리, KAL기 폭파범 진압, 제2차 대한항공 폭파범 처단, 동해 무장공비 침투 진압, 철원 무장공비 진압, 제5땅굴 발견 및 봉쇄 등 북한 괴뢰군으로부터 국가와 국민을 지켜냈다.
이런 애국적인 행동의 댓가를 전두환씨가 국민에게, 국가에 요구한적이 있던가? 취임직후 자신의 자서전을 쓸 때, 아버지가 독립운동을 하러 만주로 건너갔다는 사실만을 간략하게 자기소개에 넣었을만큼 사심이나 욕심은 없는 사람이다.
일해 전두환!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면 애국과 용기의 대장부! 일해 전두환을 찾아 칭찬하고 격려하고 존경해주지 못할 바에는, 그를 더이상 모욕하지 말자. 일해의 애국심은 애써 외면하며 이순간에도 전두환씨를 매도하고 모욕하는, 슨상교광신도의 무리들, 노사모의 무리들, 북한적괴의 무리들은 지금이라도 당장 그 어리석은 경거망동을 삼가하고 중단함이 옳지않을까 싶다.
이런 일해를 기념하는 기념물 1개 정도는 필요하다고 본다. 일해공원은 꼭 건립 추진됨이 옳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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