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渤 海 人

● 남북한 사돈 될 뻔한 이야기

2004년 4월 둘째주 토요일 아침. 러시아 블라디보스톡 소재 현대호텔에서 필자의 아들과 같이 아침식사를 한 후 혼자서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누가 어깨를 탁 치면서 “원장 선생, 여기서 또 만났소”라고 한다.

돌아보니 이틀전 하바로브스크 국립철도종합대학이 주최한 「동북아 물류시스템 세미나」에서 만난 북한 철도 고위관리(차관급) 李OO이다. 이 사람은 북측 대표로 철도뿐만 아니라 서방세계에 대하여 놀랄 정도로 박식하여, 필자가 대학총장인 레온티예브(Leontiev)에게 일부러 소개를 부탁하여 총장실에서 같이 30분 정도 환담을 하기도 했다.

“아니, 당신이 여기에 어떻게 왔어?”라는 질문에 그는 “오늘 이른 아침 기차로 도착했다”면서 같이 행동하는 일행 2명과 함께 남조선 기업이 운영하는 현대호텔에서 큰맘 먹고 부페식 아침식사를 마치고 일행 2명은 지하층에 쇼핑하러 가고 자기는 저쪽 구석에서 우리 부자가 식사하는 것을 진작부터 지켜보고 있었다고 했다.

“방금 나간 젊은이는 누구요?”라고 묻길래, 우리 아들인데, 왜?”라고 답하니, 자기는 외동딸이 하나 있는데, 과년하여 결혼할 때가 되니 언제부터인지 젊은 청년만 보면 사위감으로 가늠해 보는 몹쓸 버릇이 생겼다면서 계면쩍어 했다.

“그 녀석 진짜로 잘 생겼네. 아버지는 꼭 산적같이 임꺽정이 닮았는데, 아버지와는 전혀 다르네”라는 그의 말에, 필자는 “나를 닮지 않고 외탁을 했다”라면서 “딸은 지금 평양에 있는가?”라고 질문하였고, 그는 “중국 심양에서 외화벌이 일꾼으로 일하고 있다”고 답했다.

필자는 “그렇다면 칠보산 관광호텔 아니면, 서탑거리에 있는 북한식당인데.... 내가 그쪽 사정을 잘 아는데 이氏 성을 가진 사람은 칠보산에는 없고, 평양식당과 대성식당, 모란봉식당에 각 한 명씩 있는데, 이중에서 누구일까?”라고 말했고, 이에 그는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OO식당 지배인 이금빈(가명)을 아느냐?”라고 물었다.

필자는 “어.... 그 녀석은 작년에 수양딸 삼았는데, 그렇다면 당신이 금빈이 아버지....?”, 그를 다시 보니 부녀간에 닮았다.

금빈이는 평양 외국어대학 출신으로 영어와 중국어ㆍ러시아어에 능통하고 인물도 빼어나서 필자도 OO식당을 갈 때마다 남북이 통일되면 이 녀석을 내 며느리로 삼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금빈이에게 아들 자랑을 자주하여 식당 접대원들은 필자가 나타나면, “지배인님, 남조선 시아버님 오셨어요!”라고 놀리곤 했다.

그날 아침, 필자는 휴대폰으로 심양의 금빈이에게 “서울에 아버진데, 네 진짜 아버지 바꿔줄게!”라면서 李박사(그는 러시아에서 공부한 공학박사다)에게 전화를 건네니, 그는 “네가 어째 이 사람을 아느냐?”며 나를 보길래, 얼른 자리를 비켜주니 족히 20분 가량을 통화한 것 같았다.

그날 오후, 귀국길에 공항에서 아들에게 오늘 일어난 일을 설명하면서, 같이 심양에 한 번 놀러 가자고 했더니, 녀석이 두말 않고 여름방학때 가보자고 했다.

그해 8월 우리 부자는 신의주 건너편인 단동을 구경하고, 필자와 심양市가 공동으로 건설한 소가툰의 “한ㆍ중 농업연수원”에 들려 특강을 해주고 다음날 점심때 OO식당을 찾아 가니 금빈이는 얼굴이 홍당무가 되어 벽 뒤쪽에 숨어버렸다. 겨우 불러내서 처녀ㆍ총각 인사를 시켰고, 식당은 웃음바다가 되었다.

식당을 나오면서 가져간 화장품 세트를 금빈이 손에 쥐어주면서 “우리 아들 첫인상이 어떻냐?”는 질문에, 금빈이는 평양의 아버지로부터 전해 들었다면서 “참 잘생겼네요. 그런데 한가지 흠은 김정일 지도자처럼 허리가 굵지 않고 가는 것은 평양 처녀들이 좋아하지 않지만 남조선에서는 허리가 가늘어야 한다면서요”라고 했고, 아들은 금빈이를 보고 “미스코리아 뺨치겠네요”라고 했다.

세월이 흘러 2년이 지난 2006년 7월 핸드폰으로 번호가 확인되지 않는 전화가 왔다. 금빈이 아버지였다.

그는 지금 체코 프라하에 와 있다면서 “진짜로 우리 금빈이를 며느리 삼을 수 있는가?”라고 물었다. 필자는 “그때 우리들의 이야기는 통일된 이후의 희망사항으로 해본 소리가 아니냐”라고 답하면서 “만약 금빈이가 북한에 있지 않고, 당신이 좋다면 당장 며느리로 삼을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자기 부부는 딸이 우리 아들 찾아 떠나는 날, 딸의 행복을 위하여 먼 나라로 가겠다”고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이후 금빈이는 평양 고위층 자제와 강제결혼했고, 아버지는 딸의 혼사와 관계없이 얼마 후 행방불명 되었다.

또 다른 얘기 하나

● 당신은 조상님께 큰 죄를 지었소(?)

서울 노원구에 4성급 관광호텔을 운영하는 洪회장이라는 분이 있다.

이 사람은 한 때 정치에 꿈이 있어 꽤나 여의도에 투자를 한 모양이다. 근래들어 그 꿈을 포기하고 태릉쪽에 러브호텔을 몇 개 지어 소득이 짭잘하다고 부끄럼 없이 표현하고 있다.

또한 양평쪽에는 대규모 펜션을 한다고 하도 자랑을 하여 한번 찾아갔더니, 펜션 구역 한 편에 가족들 별장을 여러 개 지어 아들 3형제, 딸 3자매 등 6남매에게 각각 무상분양 했다고 했다. 보기에 자식농사는 제대로 지은 것 같았다.

그런데 황당하고 웃기는 것은 펜션 한가운데 규모가 상당한 거북이 모양의 2층 건물을 지어 머리와 양쪽발 4개와 꼬리부분에 큰방을 하나씩 6개와 거북이 배에 해당하는 중앙에는 대형 응접실을 만들었는데, 이곳에 전직 6자회담 대표(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남ㆍ북한)들을 불러 모아 허심탄회하게 부담 없이 남ㆍ북한 평화통일과 동북아 질서를 논하기 위한 목적으로 건설했다고 했다. 건물이름은 「三統」이라고 큰 간판을 달아 두었다.

당신께서는 남은 여생을 “渤海의 海東盛國”을 위하여 투자하겠다면서, 필자를 따라 극동러시아와 중국 동북3성 등을 제대로 둘러 볼 것이니 안내를 부탁한다고 했다. 또 압록강 중류에 있는 위화도에 「통일대학」을 건설한다고 이미 朝ㆍ中 양국으로부터 허가를 받았다고 서류를 보여주기도 하였다.

얼마후 자신의 관광호텔 직영 레스토랑 ‘연해주’에서 주변사람들과 같이 식사를 하면서 “내 팔자는 세계 각국에 씨앗을 뿌려 최소한 나라마다 한 명씩 만들어 100명의 자식을 둔 황제로 군림하는 것인데, 그만 정치에 미쳐 20여년을 허송하였다면서 지금부터 실천하겠다”고 했다.

그는 작년 이른봄 연해주에 출장가는 필자를 따라왔다. 씨앗사업의 첫 출정이란다.

도착 첫날 그는 극동러시아, 몽골, 중국 동북3성 등 요지마다 표시를 한 지도를 보여주었는데, 바로 표시 지점이 자신의 씨앗을 뿌릴 곳이라고 했다. 족히 100곳이 될 것 같았다. 그는 용모와 기혼, 연령과 관계없이 수태능력이 있는 여자면 되고, 가방줄이 짧더라도 머리(IQ)가 좋으면 된다고 했다. 아기를 낳으면 미화 1만달러를 준다는 계약서도 준비했다.

대화도중 불쑥 필자에게 “당신은 조상에게 큰 죄를 지었을 뿐만 아니라 인생을 헛살았소”라고 말했다. 그 이유는 “당신이 20여년 동안 러시아를 150여회 다닐 때 동네마다 씨앗을 뿌려두었으면, 최소한 2∼30명은 되었을 텐데, 지금쯤 그 얘들을 소집하여 블라디보스톡에 있는 아들한테 인계해주면 큰 조직이 될 것이고, 그 중에는 틀림없이 세상을 호령하는 인물이 나오지 않겠느냐”라는 논리였다. 그러면서 “향후 이 아이들을 앞세워 연해주 점령임무를 맡기면 될 것인데 아쉽다”라고 했다. 특히나 “러시아는 모계중심사회라서 돈만 주면 키우기도 쉬웠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부인이 알면 큰일 날일이지만, 조상님께서는 어느 쪽을 칭찬하겠느냐”고 물었다.

생뚱맞은 질문에 필자는 말문을 잊었다.

다음날 우수리 바쟐(흔히 중ㆍ소 국경시장이라고 함)에서 洪회장의 자식을 낳아주겠다는 참한 러시아 여인네를 찾아 그날밤 신방을 꾸미도록 조치해 주었다. 이후로는 혼자서 열심히 다니는 모양이다. 계산대로라면 洪회장이 90까지 살면 러시아의 큰 아들이 23세가 될 텐데, 세상사람들은 이처럼 황당하고 무모한 일에 욕을 할까, 칭찬을 할까 내 자신도 헷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