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三尺(1미터) 머리 위에는 확실히 신령이 있고 열 가구가 사는 마을에는 반드시 충직하고 믿을만한 사람이 있다.’ 악행을 저지르는 자들은 자신이 나쁜 일을 한다고 여기지 않고 몰래 속임수를 쓰면 신도 모르고 귀신도 모르며 사람들도 말하지 않을 거라고 여긴다. 하지만 사실 이런 속임수는 오래가지 못하며 결국에는 책임을 벗어날 수 없다.

명나라 때 문장가 귀유광(歸有光 1507-1571)은 정직하고 충실하며 효와 의리를 강조하던 사람이다. 그가 지은 《항척헌지(項脊軒志)》, 《선비사략(先妣事略)》 등의 유명한 문장은 일반 학자들의 귀에도 익숙하다.

그가 장흥현(長興縣) 현령으로 있을 때 겪었던 실화이다. 그는 평소 시와 문장에 심취해 사교적으로 남의 비위를 맞추는 데는 마음을 쓰지 않았다. 하지만 일부 바르지 못한 심보를 지닌 자들은 이런 충직한 사람이 오히려 속이기 싶다고 여겨 그를 안중에 두지 않았다.

마침 이곳에 한 토호(土豪 토착 호족)가 있었는데 자신의 며느리와 정을 통하고 있었다. 그러다 집안 하인에게 발각되자 다급한 나머지 칼을 휘둘러 남자 하인을 죽여 버렸다. 토호가 생각해보니 살인정황을 은폐할 방법이 없는지라 곧 엉뚱한 마음을 품었다.

그는 침실에 들어가, 자고 있던 여종을 이유 없이 죽여 버렸다. 그런 후 두 사람의 머리를 함께 들고는 관아에 가서 이들 두 사람이 간통하는 장면을 목격해 함께 죽였노라고 고하려 했다. 그는 이런 방법을 쓰면 자신의 죄를 은폐할 수 있으리라 여겼다.

하지만 그가 현성(縣城 현 소재지)에 들어가려 하던 날 갑자기 큰 비가 내려 성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바로 그날 밤 귀유광의 꿈에 성황신(城隍神)이 나타나 모모 토호가 두 사람을 살해한 정황을 알려주었다.

다음 날 오전 귀유광이 마침 관아에 앉아 있을 때 토호가 두 사람의 머리를 들고 들어왔다. 그가 미처 입을 떼기도 전에 귀유광이 “저 놈이다! 바로 저놈이 사람을 죽였다! 이리 붙잡아 오너라!” 라고 크게 외쳤다. 예기치 못한 상황에 깜짝 놀란 토호는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이야기를 듣고는 모두들 신기하게 여겼다. 이 일이 있은 후부터 더는 귀유광을 우습게 여기거나 속이려는 사람이 없었다. 귀유광 본인도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분명 신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에 신불(神佛)을 더 확고히 믿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