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들로 본 생태변화]꿀벌들이 벌집을 떠나고 있다

2008 04/29 뉴스메이커 772호

미국·유럽서 ‘군집 붕괴’로 개체 수 감소…
“꿀벌이 사라지면 인류 4년 안에 멸망”


꿀벌 베리는 열심히 모은 꿀을 사람들이 아무런 보상 없이 그냥 가져간다며 소송을 걸어 법정에서 이긴다. 이로 인해 꿀은 넘쳐나고 꿀벌들은 더 이상 꽃을 찾아다니지 않는다. 꿀벌은 매일 똑같은 일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행복한 생활을 누린다. 올해 1월 개봉한 할리우드 애니메이션 ‘꿀벌대소동’의 줄거리다. 개그맨 유재석이 꿀벌 베리의 목소리를 내면서 관심을 모은 이 영화는 100만 명 이상의 관객들을 불러모았다.

영화 속에서 꿀벌 베리가 소송에서 이긴 후 인간들의 세상은 어떻게 변했을까. 꽃은 시들고, 나무들이 말라 죽었다. 베리를 도와주던 바네사의 꽃집에도 꽃이 시들어버렸다. 꿀벌들이 일을 하지 않아 생긴 결과다.

“우리나라도 이런 현상 일어날 수 있어”
‘꿀벌대소동’이 우리나라 극장에서 상영되고 있는 동안, 흥미로운 기사 하나가 외신을 통해 보도됐다. 꿀벌이 감소해 아이스크림 생산에 차질을 빚고 있다는 것이다. 꿀벌이 감소했는데 왜 아이스크림 생산이 차질을 빚을까.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기사였다.

CNN머니는 2월 17일 하겐다즈 사 등 굴지의 아이스크림 업체들이 꿀벌 수가 줄어들어 아이스크림 생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보도했다. 하겐다즈 사에 따르면 60개 맛을 내는 것의 40%를 꿀벌을 이용해 생산한다. 딸기, 피칸, 바나나 스플렛 같은 것이 대표적이다. 하겐다즈 사의 캐티 피엔 브랜드 담당이사는 “이런 맛이 고객들이 좋아하는 맛 중 하나”라고 말했다. 때문에 아이스크림 회사에서는 꿀벌을 보호하기 위해 대학에 연구비를 지원하고 있다.

어쩌면 맛있는 아이스크림의 종류가 사라진다고 투정하는 것은 한가한 소리일지 모른다. 꿀벌이 실종되고 있는 마당에 아이스크림 값이 올라간다든지, 꿀이 비싸질 것이라는 이야기도 배부른 소리가 될지 모른다.


현재 미국에서는 많은 꿀벌이 군집 붕괴 현상(CCD·Colony Collapse Disorder)으로 사라지고 있다. 벌집을 나간 꿀벌들이 집으로 돌아오지 않는 것이다. 벌들은 대체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지난해 3월 CNN은 최근 6개월간 일부 대규모 양봉업자들의 꿀벌이 50~90% 줄었다고 보도했다. 이 기사에서는 미국 의회 농업 소위원회와 가진 워싱턴DC 청문회에서 CCD에 대한 우려가 표명됐다고 나타나 있다. 미국 농무부 연구청은 2006년 후반 약 6개월 동안 25~40%의 꿀벌 개체 수가 감소했다고 발표했다. 이 정도면 ‘꿀벌 실종 사건’이라고 이름 붙일 만하다.

경기대 생명과학과 윤병수 교수(한국꿀벌질병연구소 소장)는 “2004년 맨 처음 미국에서 신고된 이 현상이 2006년 연구 결과 CCD로 이름 붙여졌으며, 2007년 유럽에도 이런 현상이 나타났다”고 말했다. 윤 교수는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신고됐지만 CCD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없다”면서도 “하지만 우리나라도 이런 현상이 생길 수 있어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꿀벌이 사라지는 순간, 지구에는 끔찍한 일이 벌어진다. ‘꿀벌대소동’에서처럼 꽃과 나무가 시들어버린다. 애니메이션 속의 세상에 그치지 않는다. 우리가 즐겨 먹는 과일과 곡식이 순식간에 없어진다. 아인슈타인은 “꿀벌이 사라진다면 인류는 4년 안에 멸망할 것”이라고 말했다.

꿀벌은 우리에게 꿀을 주는 것보다 더 소중한 일을 한다. 꽃의 수술에서 꿀벌은 꽃가루를 묻혀 암술에 옮겨줘 열매를 맺도록 해준다. 이른바 수분(受粉)이라고 하는 꽃가루받이 활동을 하는 것이다. 가루받이는 바람 또는 곤충에 의해 이루어진다. 지구 전체 작물의 3분의 1이 곤충의 수분 활동으로 열매를 생산하며, 그 중 80%가 꿀벌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연구 결과가 오래전 발표된 바 있다.

농촌진흥청 농업과학기술원 양봉연구실의 최용수 연구사는 “지구 전체 작물의 3분의 2는 수분(가루받이)이 필요없는 것이거나 바람으로 가루받이가 이뤄지는 풍매화”라면서 “여기에서 3분의 1은 꿀벌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설명하는 말”이라고 강조했다.

꿀벌의 가루받이로 식물 열매 맺어
꿀벌은 사람들에게 어떤 유익한 일을 하고 있을까. 꿀벌은 꽃을 찾아 꿀을 채취한다. 꿀은 입으로 모아 삼킨다. 사람의 위에 해당하는 꿀주머니에 꿀을 채운다. 나중에 벌집에 돌아가면 꿀을 토한다. 이것이 벌집에 저장돼 나중에 사람들이 먹는 꿀이 되는 것이다.

꿀벌은 꽃에서 꿀만 채취하는 것이 아니다. 꿀벌은 꽃가루를 모은다. 어떤 꽃에서는 꿀이 많아 꿀을 채취하고, 어떤 꽃에서 꽃가루가 많아 꽃가루를 모으기도 한다. 꿀이 시원치 않은 회양목 같은 경우 꿀벌들은 꽃가루를 주로 채취한다. 꿀과 꽃가루가 함께 있다면 동시에 꿀을 채취하고 꽃가루를 모은다.

꿀벌은 꽃의 수술에서 가루를 모은다. 먼지처럼 풀풀 날라다니려고 하는 가루에다 침을 묻혀, 털이 많은 뒷다리 홈에 붙인다. 벌집에 가져갈 가루를 정강이 쪽에 갈무리하는 것이다. 벌집에 가져간 꽃가루는 자신들의 어린 동생인 유충(아기벌레)에게 먹인다. 사람들은 이 ‘화분(꽃가루)’을 벌집에서 채취해 자연식품으로 먹는다. 사람들은 꿀벌을 통해 꿀과 로열제리, 화분, 프로폴리스라는 천연식품을 얻는다.

꿀벌이 꽃에서 꽃가루를 정강이 쪽으로 뭉쳐 모으기도 하지만, 놓치는 것도 있다. 꽃가루는 말 그대로 가루기 때문에 붙는 힘이 없다. 벌들은 꽃가루를 모은답시고, 온몸에 꽃가루를 뒤집어쓴다. 원해서 그러는 것이 아니다. 꿀벌의 가슴뿐 아니라 온몸의 털에 꽃가루가 묻는다. 다른 꽃으로 가서 또 꿀과 꽃가루를 모으면서, 앞의 꽃에서 뒤집어 쓴 꽃가루를 이 꽃에다 흘려 놓는다. 수술에 있던 꽃가루를 자연스럽게 암술로 옮겨 가루받이를 하게 해주는 것이다. 가루받이를 통해 우리가 흔히 과일이라는 하는 열매가 생긴다. 윤병수 교수는 “꽃 중에는 자신의 수술에서 자신의 암술에 못 붙이는 것이 있는데 이런 경우 꿀벌의 역할이 커진다”고 설명했다.

어떻게 보면 꿀벌이 꿀과 꽃가루를 모아 벌집으로 가져가는 것은 주업이지만, 온몸에 뒤집어쓴 꽃가루로 다른 꽃에다 가루받이를 해주는 것은 부업이라고 할 수 있다. 꿀벌의 부업으로 지구의 식물은 열매를 맺는 셈이다. 사과, 배, 딸기 같은 달콤한 과일뿐 아니라 벼와 보리 같은 곡식도 꿀벌의 꽃가루 채취로 열매를 맺는다. 윤병수 교수는 “만약 꿀벌이 줄어든다면 쭉정이 열매가 많이 열린다”며 “농작물의 감소가 바로 코앞에 닥친 현실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기후변화가 꿀벌 감소 원인일 수도
‘꿀벌의 부업’(가루받이)은 최근 꿀벌을 키우는 양봉업자들에게 ‘꿀벌의 주업’(꿀과 꽃가루 채취)에 못지않게 수입을 올려준다. 딸기나 토마토 등을 키우는 비닐하우스에 벌통을 빌려주거나 파는 것이다. 꿀벌이 딸기꽃과 토마토 꽃을 부지런히 오가면서 딸기·토마토와 같은 맛있는 과일을 잘 열리게 해준다. 어떤 연구 결과는 꿀벌이 없을 때보다 꿀벌이 있을 때 과일의 수확량이 수십 배 늘었다고 보고했다.

꿀벌이 가루받이를 한 딸기는 ‘수정벌 딸기’라는 상품으로 포장돼 시장에서 일반 딸기보다 비싼 값으로 팔린다. 최용수 연구사는 “농약을 치면 꿀벌이 살 수 없다”면서 “꿀벌이 가루받이를 한 딸기라면 농약을 치지 않은 친환경 농산물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된다”고 설명했다.

미국에서는 양봉업자들이 농작물의 꽃이 피는 시기에 때맞춰 벌통을 옮겨 가면서 돈을 번다. 미국에서는 꿀벌보다 이렇게 버는 돈이 더 많다. 우리나라에서도 양봉업자들은 꿀벌에게서 꿀을 얻기보다 과일의 열매를 열리게 하는 데 점차 눈길을 돌리고 있다.

사람들에게 달콤한 꿀을 주고, 맛있는 과일이 매달리게 해주는 꿀벌들이 왜 사라지고 있을까. 미국과 유럽의 꿀벌 연구자들은 꿀벌이 사라지는 CCD 현상에 대해 연구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이렇다 할 원인을 발견하지 못했다. 바이러스, 꿀벌에게 해로운 해충인 응애, 농약 살포, 전자파, 기후 변화 등이 꿀벌을 사라지게 하는 원인이 아닐까 추측하고 있다. 지난해 사이언스 지에서는 CCD 현상의 원인이 이스라엘급성마비 바이러스(IAPV)로 추정된다는 논문이 발표됐다.

날씨가 갑자기 따뜻해지거나 이상해지는 기후 변화 때문에 꿀벌이 사라지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최용수 연구사는 “꿀벌은 여왕벌 한 마리에 일벌 수만 마리가 모여 사는 사회를 구성한다”며 “기온 변화로 꽃이 피는 시기라든지, 장소가 바뀌면서 사회 질서가 무너지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기후 변화가 꿀벌이 사라지는 복합적인 원인 중 하나일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지금 미국에서는 꿀벌이 집으로 돌아오지 않고 있다. 꿀벌이 아프다. 자신의 집을 찾아오지 못할 정도로 아픈 것이다. 녹색별 지구가 아프기에 앞서 꿀벌이 미리 병을 앓고 있는지도 모른다. 꿀벌이 없어진다면 더 이상 꽃도 없을 것이다. 꽃뿐 아니라 맛있는 아이스크림도, 달콤한 과일도, 배를 채워주는 곡식도 사라질 것이다.

꽃도 없이, 과일도 없이, 곡식도 없이 사람은 그때 무엇으로 살 것인가. 사람만이 살아 남아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최용수 연구사는 “자연은 식물- 초식동물 -육식동물과 같은 생태계를 유지하고 있다”면서 “꿀벌이 없다면 식물이 제대로 번식하지 못하고, 초식동물과 육식동물이 급격히 줄어들면서 전체 생태계가 무너질 것”이라고 가정했다.

<윤호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