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사마귀병에 감염된 배추의 사진. 건강한 배추(왼쪽)에 비하여 병에 걸리면 배추 크기가 상대적으로 작아진다. 배추를 밭에 심은 후 바로 감염되면 수확이 불가능하다. | 식물도 암에 걸릴까? 대답은 ‘그렇다’이다. 식물병리학자들은 다양한 식물에서 암을 발견해 왔다. 우리가 매일 먹는 채소도 예외는 아니다. 다행스럽게도 채소에서 나타나는 대부분의 암은 원인을 알 수 있기 때문에 예방과 방제가 어느 정도 가능하다.
배추, 무와 같은 배추과 채소에서 나타나는 무사마귀병은 식물의 주요 암 중 하나다. 암세포는 인간의 그것처럼 무제한의 증식을 하는 미분화 세포의 덩어리로 유지된다. 물사마귀 증상과 비슷하다고 해서 무사마귀병이라고 하며 암 덩어리 내부는 일정한 모양이 없다. 병에 걸린 뿌리의 외부가 곤봉모양과 유사해 영명으로 ‘club root’라 불린다. 이 병은 1900년대 초 외국으로부터 유입된 것으로 추정되는 토양 곰팡이(Plasmodiophora brassicae)에 의해 발생된다.
배추가 밭에 심어진 뒤 수확까지는 약 2개월 남짓. 병원균들은 그 짧은 기간 동안 어떻게 배추에 암을 유발하고 증상을 나타낼까? 토양 속에 존재하고 있는 병원균 포자(휴면포자)는 적당한 온도와 수분이 주어지면 발아한 뒤 아메바 모양으로 형태를 바꿔 식물체 뿌리털이나 상처를 통해 조직으로 들어간다. 포자들은 뿌리털 안에서 분열과 증식을 반복한 뒤 또 다른 형태의 포자(유주포자)를 형성한다. 유주포자에 감염된 기주식물의 세포는 옥신과 시토키닌 등으로 조절되는 호르몬 체계가 무너져 정상세포와 달리 무분별하게 증식된다.
인간의 암이 조기발견이 어려운 것처럼 무사마귀병도 지상부의 식물체가 시들거나 토양위로 감염된 뿌리가 드러나기 전까지는 알기 어렵다. 식물체가 병원균에 감염된 뒤 증상이 외부로 나타나기 전까지 모든 과정은 땅속에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암이 어느 정도 진전되면 지상부가 시드는 증세를 볼 수 있다. 뿌리에 형성된 미분화 세포 덩어리가 세포로서 기능을 상실하기 때문에 양분과 수분의 흡수와 이동이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 무사마귀병에 감염된 순무의 사진. 토양 밖으로 드러난 뿌리를 통해서 감염여부를 알 수 있다. 감염된 뿌리는 지상부로 영양분과 수분의 이동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해 맑은 날 잎이 시드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 식물체의 지상부는 발육이 불량해진다. 이른 나이에 병에 걸리면 몇 주 만에 식물체 전체가 죽어버리게 된다. 뿌리의 혹도 처음에는 표면이 희고 단단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표면은 갈색으로 변하고 거칠어지다가 축 처지게 된다. 감염된 뿌리는 너무 빠른 성장 때문에 정상세포가 가지고 있는 코르크층을 만들지 못해 쉽게 갈라지고 미생물에 쉽게 감염되어 결국 검게 악취를 풍기며 부패한다. 식물세포를 가득 채우고 있던 병원균의 2차 포자는 뿌리가 고사하고 부패하면 다시 휴면포자로 변해 토양 속으로 유출돼 4년 이상까지 생존하게 된다.
그러면 무사마귀병은 어떻게 방지할까? 다행스럽게도 인간의 암과 달리 그들은 비유전성 병이다. 우선, 밭이 오염되었는지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우리나라 밭에 지천으로 핀 냉이, 꽃다지 등 배추과 잡초는 병원균의 서식처가 될 수 있다. 6월부터는 그들 잡초의 뿌리의 형태를 통해 구분할 수 있으며 혹은 병원균의 DNA 검사를 통해서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병이 걸린 식물체를 치료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병의 원인이 땅속에 있으니 인간의 그것처럼 도려내기가 곤란하며 방사선치료는 기술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가능한 방법이 아니다. 치료용 농약은 아직 개발돼 있지 않으므로 보호 목적으로 방제하는 것이 최선이라 하겠다. 방제를 위해 농약공업협회에 등록된 농약을 매년 사용해야 한다. 밭에 있는 모든 포자를 없앨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병원균 포자는 농기구, 사람의 발, 차바퀴, 빗물 등 움직일 수 있는 모든 것에 붙어서 주변 밭에 쉽게 옮겨질 수 있다. 상처는 가장 큰 감염 경로 중 하나다. 따라서 이른 시기에 병에 걸리면 치명적이므로 묘를 밭에 심을 때 뿌리에 상처가 나지 않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현실적으로 병원균에 감염된 밭에서는 무사마귀병에 강한 저항성 품종을 심는 것이 가장 추천할 만한 방법이다. 종자 값이 조금 더 비싸기는 하지만 농약 등 추가적인 비용과 노동력이 들지 않는다. 2000년경부터 저항성 품종이 시판된 이후로 많이 이용되고 있다. 올 여름, 김장 채소를 손수 키울 요량이라면 자신의 밭에서 암으로 고생하는 환자가 나오지 않도록 묘를 밭에 심을 때부터 만전을 기하도록 하자.
참고 문헌 Faggian, R., Bulman, S. R., Lawrie, A. C., and Porter, I. J. 1999. Specific polymerase chain reaction primers for the detection of Plasmodiophora brassicae in soil and water. Phytopathology 89:392-397. George N. Agrios. 1998. 식물병리학. 제 4판. (고영진 등 번역, 월드사이언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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