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선소전: 장삼풍(1) 고사 2007. 5. 14. 10:17

列仙小傳(22) 장삼풍(張三豊) (1)

ⓒ 삽화/박영철
[대기원]도교 양대 교파를 융합하는 데 일조

동한(東漢)때부터 교단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도교는 금나라, 원나라에 이르러 크게 정일교(正一敎)와 전진교(全眞敎), 양대 교파로 나누어진다. 지역적으로 대체로 양자강과 회수(淮水) 남북지역을 경계로 한다.

남쪽은 정일교 위주였고, 북쪽은 전진교 위주였다. 정일교는 주로 도가전적, 단약(丹藥)을 만들어 복용하거나 부적 등을 채용하였다. 전진교는 자신의 도덕수양이나 수련을 중요시하였다. 원나라 말기나 명나라 초기에는 이들 양대 교파가 교류하고 융합하는 추세가 일어났는데 그때 상당한 역할을 한 대표적 인물이 바로 장삼풍(張三豊) 진인이다.

태극권의 창시자

한편 몇 년 전 중국 영화배우 이연걸이 주연한 ‘태극권’이라는 영화가 전 세계에 인기리에 상영된 적이 있다. 이 태극권의 창시자가 장삼풍 도인이다. 무협지에는 중원 팔대문파 중, 무당파의 개파 조사로 그 이름이 무수히 등장하여 보통사람들 귀에 익숙할 것이다.

장삼풍의 이름은 ‘전일’(全一), 호는 ‘삼풍’(三豊)이다. 어떤 사람들은 그의 이름이 ‘군보(君寶)’이고 ‘전일(全一)’은 그의 자라고도 한다. 또 이름이 ‘통(通)’, ‘금(金)’, ‘현일(玄一)’이라고도 하는데 하나뿐 아니라 상당히 많다.

낡은 장삼과 풀로 만든 모자를 쓰고

민간에 전해져 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장삼풍은 외관을 꾸미지 않았으며 추위와 더위를 불문하고 늘 한 벌의 다 찢어져가는 장삼과 풀로 엮어서 만든 낡은 모자를 쓰고 다녔는데 시간이 오래되자 낀 때가 반들반들 하게 되어 광이 날 정도였다고 한다. 이 때문에 ‘장납탑’(ZHANG LA TA : 불결하다, 지저분하다는 의미)이라는 이름을 하나 얻었다고 한다.

장삼풍의 본적이 요주(遼州), 의주(懿州), 보계(寶鷄) 등이라는 주장이 있고 심지어 사천, 호북, 산서 등도 그의 고향이라는 주장이 있는데 정확히 고증하기는 어렵다. 장삼풍이 득도한 시기조차도 송나라, 금나라, 원나라 때라는 각기 다른 주장이 있다. 이러한 불명확한 주장들은 오히려 그의 신비한 면을 나타내기도 하면서 그가 천하를 널리 주유했다는 것을 반영한다. 종적도 또한 일정하지 않다.

한 번 먹으면 수 개월을 먹지 않다

흔히 신선들에 대해 이야기하다보면 기이한 행적과 술법들이 등장하는데 장삼풍도 자연히 예외가 아니다.

밥을 먹으면 한 자리에서 잠깐 동안 솥단지 채로 먹어치웠는데 몇 달 동안은 아무 것도 먹지 않았다고 한다. 하루에 천리를 갈 수 있었고, 각처에 분신(分身)이 동시에 나타났다. 무슨 약을 쓰던지 병을 낫게 할 수 있었고 늙음을 되돌릴 수 있는 회춘의 묘술이 있었다. 죽어가는 병자를 소생시켜 걸어갈 수 있게 하였는데 이러한 불가사의한 일화들이 많이 전해져 온다.

명나라가 세워지고 촉(蜀) 헌왕(獻王)으로 봉해진 주춘(朱椿)은 명태조 주원장의 열한 번째 아들인데 여러 왕자 중에서 비교적 취미가 고상하고 손님을 잘 대접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주원장은 헌왕(獻王) 주춘(朱椿)을 ‘독수재(獨秀才)’라는 별명으로 불렀다.

이 독수재 주춘이 촉땅 사천에 있을 때 장삼풍을 손님으로 초청해서 환영의 자리를 성대히 마련했다. 그 자리에 참석한 사람들은 진기한 물건들을 선물로 내놓았는데 모두 그 진귀함에 찬탄할 뿐이었다. 이에 대한 답례로 장삼풍이 자리에서 일어나 “빈도(貧道) 또한 변변치 못한 선물을 준비하였사온데 원컨대 전하께서는 웃음으로 받아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하였다.

(다음 호에 계속)

글/김일륜 기자
삽화/박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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