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베이생활9 낙서장 2014. 1. 12. 00:54

 

 

 

 

 

 

 

 

 

 

 

 

 

 

 

 

아픈사람 병을 자랑하면 병이 나을 수 있는 방법이 찾아지듯이 도서관에서 첨만난 한국여同學(같이 어학을 배우는 사람)에게 방세가 너무 비싼집에 살고 친구가 없고 혼자라 어디 다니지도 못하고 늘 집에만 있어 바깥구경을 거의 못한다고 했더니 동학이 자기사는 집주인에게 말해 이틀만에 집을 옮기게 되었다.
 

 

물론 옮길 것을 감안해 미리 다른 싼집을 물색해놓고 있었지만 아마 한 달후라야 이사할 수 있을거라는 생각을 했는데 지금사는 집주인이 자기가 세놓아야할 방이 있고 또 말솜씨가 좋아서 내가 전에 살던 집주인에게 나 대신 의사를 잘 전달하여 (내가 방 보증금을 두달치를 기한전에 나가게 되면 원래는 보증금을 못받는다는 데) 이틀만에 나오면서 주인이 세놓을 시간도 주지않고 말하자마자 바로 나오면서도 보증금도 다 돌려받고 새로 이사하는 집은 지금보다 월65백원(韓貨26만원)이 싸다. 나는 다니는 사대부근에 있는 집을 미리 물색해 놓았지만 이사를 바로 하도록 배려해주는 사람한테 나하고 싶은대로 하는 것이 도리가 아니어서 지금의 집주인의 의견을 따르기로 했다. 물론 이사할 때도 동학이 나를 도와 짐을 옮겨주었다. 나혼자 스스로 방을 구하면 나혼자 짐을 다 옮겨야 한다.

 

집주인에게 나를 소개해준 동학학생은 한국서 가까운 지역에 살고 같은 대만사대 어학同學에다 한국에서 비슷한 시기에 대만에 와서 나와 똑같은 학기에 시작해서 배우는 것도 비슷하다. 또 한집에 사니 밖에 나가 같이 다닐 수 있으니 좋다. 나는 타이디엔따로우(한국의 한국전력)부근 9평 타오팡(온전한 원룸)에 살다가 3평짜리 단간방에 사니 좀 비좁기는 하지만 거의 반값의 방세라 만족해야 한다. 절약을 위해 싼집은 좋다. 왜냐하면 돈버는 직장이 있으면서 세를 얻어살면 좀 비싸도 되겠지만 그냥 놀면서 공부하는 형편에 비싼집은 사치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새로 이사온 후 20일만에 다시 원래 옮기려던 대로 좀 큰방으로 옮기게 되었는데(임시로 작은 방에 살게 된 것은 동학이 한국에서 친구가 놀러오므로 내가 사는 3평방으로 옮기면 같이 지낼수 없었기 때문에 더 살게 된 것,그리고 한국서 온 친구가 돌아간후 3평방으로 서로 맞바꾸어 살게 된것) 처음 살던 집보다는 그래도 월3천원이 싸다. 좁은방은 자는 자리가 키만큼 밖에 길이가 안돼 약간 불편했지만 새로 옮긴방(동학과 서로 맞바꾸었다)은 아마 6평은 될듯하다. 말하자면 월세는 첨 살던 집이 만약 140원이라면 3평짜리 옮긴방은 75원이고 다시 옮긴 좀 큰방은 110원인 셈이다.

 

그래서 처음주말은 집주인과 同學과 셋이서 차를 렌트해서 같이 우라이(烏來)라는 온천관광지로 유명한 곳을 갔는데 폭포공원이라는 곳에 케이블카를 타고 가니 산위에 연못과 호텔이 있는데 경치가 좋았다. 폭포는 강옆에 엄청난 물줄기를 내려쏟는데 날씨가 비가내리고 날도 어두워져 사진찍기가 안좋았다. 저녁을 먹고는 온천탕을 갔다. 1실에 1인 또는 2인이 사용하는데 100(우리돈 4천원정도, 이것은 401로 계산한 것이고 지금은 351로 우리나라 돈이 가치가 좀 있게 변했다)이다.

 

일행은 2인실로 먼저 들어가고 반시간을 기다려 차례가 되어 혼자 남아 어떻게 하나 불안하게 고민했는데 1인실에 들어가라고 알려와 물생수 한병과 얇은 타월1장을 주어 들어가는 곳곳에서 안내를 하는 사람이 있어 쉽게 들어가긴 했지만 바닥이 흘린물 때문에 옷벗는 것이 쉽지않았다. 말이 온천이지 물만 냉온수가 나오는 수도꼭지가 있고 콘크리트 욕조가 있는 것에 불과했다. 특히 타월이 너무 얇아서 몸도 제대로 닦지도 못하고 게다가 양말이 젖거나 하면 신기불편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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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다음 주말부터는 동학의 친구가 한국에서 일주일간 놀러와서 나도 같이 따라 나선 셈이다. 금요일 오후부터 토요일,일요일은 같이 놀고 평일은 오전은 한국친구혼자 시내구경을 하다 오후에 만나 같이 다녔다. 전보다 새학기 선생님은 숙제도 좀 적게 느껴지고 또 나도 어느정도 세월이 흘러 적응되어 시간적으로 지금은 약간의 여유가 있다. 그러나 휴일마다 놀러다니는 바람에 블로그 글쓸 시간이 없었고 학습진도도 따라가기 어려웠다. 도무지 선생님 물음에 답변을 할 수가 없어 곤혹을 치렀다. 왜냐하면 매일 적어도 4시간이상 보통 6시간은 예습과 복습을 해야하는데 교재를 읽지도 않고 갔으니 물으면 무슨 내용이 있는지 알아야 답변을 할수있기 때문이다.

    

첨살던 집에서는 매일 세끼를 집에서 먹을때가 많았지만 학기가 바뀌면서 오후반에서 오전반으로 옮기는 바람에 대만 언어교환학생과도 만날 수 없게 되었다. 집을 새로 옮기고 나서는 거의 한끼 저녁식사만 집에서 해먹고 있다. 같이 행동하다보니 아침은 주로 나가면서 집근방의 햄벅을 사먹고 (50:우리돈 2천원으로 아침끼니해결) 점심은 학교부근에서 100원전후의 식사를 하고 저녁은 집에와 반은 해먹고 반은 사먹는다. 사먹어도 비싼 것은 못먹고 100원전후이다. 대만은 공식저으로 뉴타이완달러라고 표현하지만 거래는 전부 콰이치엔을 쓴다. 원은 문장에서만 사용할 뿐 실생활에서는 사용하지 않는다.

 

휴대폰으로 인터넷하는 것은 생각도 못하다가 이제 어느정도 생활이 익숙해져 알고보니 두달에 180(한화7천원)1GB를 사용할 수 있는걸 신청해서 쓴다. 물론 사는 집에도 WIFI(내전용 와이파이이고 노트북과 휴대전화 모두를 사용하고 한달에 5백원을 낸다) 돼서 집에서는 와이파이, 집을 나서면 중화전신 데이터로 바꿔쓴다. 그러므로 학교 WIFI는 석달만 쓰고 12월말에 그만 두었지만 어디가도 인터넷이 되니 좋다.

 

물론 첨엔 말이 안통해 한달에 900원하는 휴대전화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다고 중화전신 직원이 말했다. 그러나 1기가를 쓰는데는 싸게 가입할 수 있다고 알려주지 않았다. 그런데 1기가 신청을 한후 여기전화는 선불이므로 신청과 동시에 180원이 빠져나가고 지금부터 인터넷이 된다고 문자가 온다. 그러나 문자와 전화모두 돈이 빠져나가므로 5백원이하의 잔고가 있으면 불안해서 중화전신에(물론 이걸 많이 쓰고 따거따도 많이 쓴다) 충전하러 중화전신 가니 여기서는 충전안되고 지하철로 가란다. 그런데 다른직원에게 말해 충전을 했는데 이렇게 하는걸 뭐라고 말하냐 물으니 충전은 배터리를 충전하는 것으로 알아듣기 쉽고 加値라고 하면 알아듣는다고 했다. 말하자면 잔액가치를 증가시킨다는 뜻이다. 한국사람들은 대만인이 융통성이 없다고 더러 말한다. 며칠전 와이파이 배선 때문에 왔던 전신직원이 선을 고정시키는 공구하나도 안 갖고 맨손으로 작업을 하러와 좀 실망했따.

 

집주인을 동학이 언니라 부르니 나도 언니라 칭한다. 나는 대만 사람들이 외국인에게 좀 바가지 쒸운다고 느끼는데 언니는 그럴 일 없다고 잘라 말한다. 나는 지금에야 보니 중화전신은 180원으로(물론1기가 이지만) 두달을 인터넷을 사용할 수있는데도 중화전신직원은 하루에 100원 하는 무한기가 휴대전화인터넷을 쓰게하여 나는 하루쓰고 100원을 주었던 일과 문이 잠겨 열쇠따게 직원이 처음6백원이라더니 외국인인걸 알고 말을바꿔 9백원을 달라고 한것과 손목시계 배터리를 한국서는 문구점에서는 우리돈1,2백원하면 사고 보석시계점가면 우리돈1500원이나 2천원받는데 여기 시계점은 외국인이라는 걸 알고 100(우리돈4천원)을 달라고 해서 나는 그렇게 느낀다고 말하니 대만은 돈 가지고 바가지 씌우지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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