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먹을 때는 개도 안 팬다는데--

--- 정말로 패 보면 어떻게 될까? -글: 산사람-


독자 여러분은 위의 말을 가끔 듣기도 하고 가끔 하기도 했을 것이다.


점심시간을 빼앗아 가며 일을 시키는 상사에 대해서 샐러리맨들이

볼멘소리로 투덜대며 잘 쓰는 말이기도 하고

공부는 안하고 군 것 질에만 시간을 보내는 아들을 어머니가 나무랄 때

퉁명스럽게 돌아오는 아들의 변명이기도 하다.


언뜻 들어 보면 일개 미물인 개에게까지도 생존을 위한 취식의 권리를 존중하여야 한다는
점잖은 유학자님의 가르침에서 유래됐다고 짐작이 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이 블로그를 계속하는 동안 필자가 여러 번 인용할지 모르는 사실이 하나 있다.


적어도 옛 부터 내려오는 말 중에서 동물과 관계된 것의 상당수가 사실적 또는 과학적인
근거가 있다는 사실이다.


위의 말도 사실적 근거가 있음을 강하게 입증해주는 사건을 나는 목격

했었다.


수 십 년 전 필자의 어린 시절 고향 시골에서 발생했던 한 사건에서 이 유명한 말이 사람이나
개의 권리 존중을 위한 듣기 좋은 도덕적 가르침의 소리가 아니라 사람들에게 밥 먹는 개를
건드리면 큰 봉변을 당 할 수 있다는 동물 행태학적인 경고의 말이라는 것을 배울 수가 있다.


우리 동네에 봉길이라는 잘 생긴 소년이 있었다.

나보다 한 살 어렸지만 아주 친해서 하루 건너 만나다시피한 관계였다.


그의 집은 부자여서 나는 넓은 마당을 가진 그의 집에 자주 놀러 갔었다.

그 집에 동네에서 단 한 마리밖에 없는 진돗개가 있었다.

복구라 불리던 이 녀석의 성깔이 대단히 드세어서 수틀리면

아무나 물어 버리는 난폭자였다,


그래서 항상 마당 구석에 줄로 묶어 두어야 했다.

줄에 묶여서도 이 녀석은 집 식구만 빼고 찾아오는 사람마다 죽을 듯이

맹렬히 짖어 대는 바람에 사람들은 이 집 출입을 피했었다.


나와도 이미 안면을 틔워 놓은 지가 일 년이 넘었건만 복구는 나를 볼 때 마다 그 안면을
몰수하고 인상을 쓰거나 짖어 댔었다.


그래도 이 녀석은 저와 항상 놀아 주는 봉길이에게 만은 어리광 부리는

아기처럼 순하게 따랐었다.



어느 주말, 친구들과 고기잡이 하러 멀리까지 갔다가 어둑어둑해서

돌아 와 보니 동네가 수런수런하고 이상 했다.


나는 저녁을 먹으면서 할머니에게 동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물어봤다.


할머니는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집단 개싸움이 있었다고 오해 할만한

대답을 해 주셨다.


“동네 개가 진돗개에게 물려서 읍내 병원에 실려 갔단다.”


동네 개는 봉길이의 아명이다.

옛날에는 아이들에게 병을 부르는 역신들이 안 찾아오도록 동네 개니 개똥이니 하는
천한 이름들을 잘 붙였었다.

대개 학교 갈 무렵이면 정식으로 이름을 지어 호적에 올리는데 동네 어른들은 아이들이
정식 이름을 갖게 되어도 버릇대로 아기 때 이름을 불렀었다.


나는 놀랐지만 시간이 이미 늦은 저녁이어서 봉길이를 찾아 가지를

못했었다.

잠자리에 들어서도 이 사건이 믿어지지가 않았다.

“ 그렇게 사이가 좋던 봉길이를 복구가 마구 물어 버리다니---”


나는 어머니에게 다시 물어 보았다.

어머니는 간단히 대답했다.

“개가 미쳐버린 거야. 그렇지 않고서야 그런 난동을 필수가 없지 ?”


속으로 생각해보았다.

맨 날 묶어 놓기만 했던 복구가 광견병에 걸릴 가능성은 없어 보였다.


다음 날 나는 학교가 끝나자 바로 봉길이네 집으로 달려갔다.

복구가 봉길이의 온몸에 걸쳐 만들어 놓은 상처가 열 곳이 넘어 보였다.


정 떨어지는 표현이지만 마치 복구가 마음 먹고 종길이의 전신을

잘근잘근 씹어 놓은 것 같았다.

나는 아파서 말도 못하는 봉길이에게 차마 사건 경위를 물어 보지도 못하고

치료 잘하라는 말만 남기고 돌아 올 수밖에 없었다.


일주가 지나고 아직 온 몸에 딱지를 여기저기 얹은 봉길이가 학교에 나오고 서야
자세한 내막을 알 있었다.


사건이 터진 날.

복구는 매일 밥을 챙겨주는 아주머니가 집에 다니러 가느라 밥을 얻어먹지 못하고
하루를 꼬박 굶은 터였다.

그래서 신경이 상당히 날카로워져 있는 상태였다.


점심이 지나서야 돌아온 아주머니가 서둘러 밥을 챙겨주자 굶주린 복구는 미친 듯이
덤벼들어 밥을 먹어댔다.


그 앞을 지나가던 봉길이가 보아하니 복구가 저렇게 급히 먹었다가는

배탈이라도 날 것 같았다.

그래서 대나무를 집어 들고 별 생각 없이 복구의 등을 한 대 치면서

“ 야! 임마 작작 처 먹어라!” 하고 한 마디를 했다.


순간 캥! 하며 증오의 눈길로 봉길을 돌아보던 복구는 일초의 여유도

없이 봉길의 다리를 물어 쓰러뜨렸다.


그리고 사정없이 기관총 사격 같은 연속 공격을 가해 봉길의 여기저기를

물어뜯었다.

봉길의 비명 소리에 아주머니가 달려와서 복구에게 물을 한 바가지

끼얹고 봉길을 끌어 냈다.

그리고 결과는 내가 본대로의 만신창이가 다 된 봉길의 전신이었다.


봉길은 나에게 말했다

“ 형!우리집은 이제 죽어도 진돗개 안 기를 거여!”

그 진돗개는 그의 형이 광주에 사는 군대 동기에게 특별히 부탁해서

쌀 두어 가마의 돈을 지불하고 사온 것이었다.


동네에 오직 한 마리뿐인 진돗개였었고 봉길이 집안의 자랑이었다.

나는 그런 훌륭한 개가 왜 너를 배신해서 이렇게 만들어놨냐고 물었었다.

열 두어 살인 봉길이가 그런 것을 알 이유가 없었다.


뭐라고 뭐라고 했는데 세월이 이만큼 흐른 뒤 내 기억에서는 다 사라졌다.

그러나 지금도 기억하는 말이 있다.


몇 달 뒤 학교에서 봉길이를 놀리던 학교 소사(그 무렵의 관리인)가 그에게 하던 말이었다.

“ 봉길아! 저 풀 뜯는 소도 가서 한번 패 줘라. 우리도 소고기 국 한번 원없이 먹어 보게!”

봉길이는 놀라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 아니라우. 울 할매가 짐승은 밥 먹을 때는 패는 것이 아니라고 혔어요.”


뒤의 봉길이의 말은 어쩐지 오랜 세월이 지나서도 나의 뇌리에 생생하다.

개도 밥 먹을 때는 안 팬다는 말을 그 후 자주 들어서였나보다.


봉길이의 봉변을 똑똑히 본 나는 그 뒤 군 생활이나 직장 생활을 할 때에는
업무 때문에 부하 직원들의 점심시간이나 저녁시간을 절대 방해 하지를
않았었다.

밥 먹을 때는 절대 방해를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은 변변치 않은 내가 온통 망가져
반창고와 붕대 투성이가 된 봉길이의 수난에서 시청각 효과로 배운 처세훈이며
꼭 후배들에게 권장하고 싶은 금언이다.


다 쓰고 블로그에 올리기 전 생각해보니 어쩐지 독자들이 궁금해 할듯하다.


봉길이를 박살낸 복구의 운명이다.

별로 말하고 싶지 않은 최후를 복구는 맞이했다.

봉길이가 병원으로 실려 가자 화가 머리끝까지 난 그의 형은
복구 집
옆에 있던 절구통의 떡메를 들고 휘둘렀다.


결과는 한 방으로 끝나고 무참하게 세상을 떠난 복구는 옆집의 젊은이들에게 주어져
보신탕으로
산화해 버렸다.

앞서 학교 소사가 봉길이를 놀리던 것을 이런 배경이 있어서였다.


뒷 끝이 씁쓸해서 5,60년대 인기 가수 페티 페이지가 부른 강아지 노래 하나를 유튜브에서
퍼와 선사한다.


패티 페이지는 한국의 패티 킴이 그녀에게서 예명을 빌려온 대가수였다.

지적이고 조용한 멜로디의 테네시 월츠나 체인징 파트너, 아이 웬트 유어 웨딩 등의 히트곡을
냈는데 여기 붙인 노래는 역시 그 녀의 히트곡인
“ How much is that doggy in the window?"이다.

여성 애견가들이 좋아 할만한 노래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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