列仙小傳(34) 강태공, 여상(呂尙)(1)

ⓒ 삽화/박영철
[대기원]주 문왕, 사냥에서 강태공을 얻다

姜太公강태공, 呂尙여상은 우리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인물이다. 일화도 많고 경세가, 병법가로 알려져 있으며 주나라를 도와 천하를 통일한 일등공신이다. 은나라 말기 東海동해 사람으로 四岳사악의 후손이다. 성은 姜강이고 이름은 尙상인데 그 윗대 조상들이 呂여 땅에 봉해졌으므로 呂尙여상이라고도 한다. 자는 子牙자아다.

때는 바야흐로 은나라 마지막 왕인 주왕의 폭정으로 은 왕국에 대한 백성들의 민심이 떠나고 있었다. 은나라 서쪽에 자리한 제후국 周주는 당시 훌륭한 군주인 昌창이 다스리고 있었다. 천자인 주왕이 너무 포악해 인과 덕이 없고 백성을 사랑할 줄 모르는 현실을 보고 한숨을 내쉴 때가 많았다.

어느 날 西伯서백 창은 사냥을 나가기 전에 이번 사냥에서 어떤 짐승이 잡힐 것인가 점을 쳐보았다. 역관이 산가지를 던지더니 이상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서백 창이 재차 “무엇이 잡히는가?”물었다. 이에 점술가는 “용도 아니고 뿔 없는 이무기도 아니며, 곰이나 범 따위의 짐승도 아닙니다. 사람이 잡힙니다. 천하의 으뜸가는 패왕의 보좌가 될 만한 인물을 얻을 것입니다.” 하였다.

강태공, 위수에서 세월을 낚다

이날 사냥에서는 토끼 새끼 한 마리도 못 잡고 渭水위수 강가를 지나는데 낚시하는 노인 한 분이 강가에 호젓이 앉아 있었다. 그림같이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는 이 노인이 누구인가? 바로 동쪽 바닷가에서 생계능력이 없다고 아내에게 구박받다가 마누라도 떠나고 본인도 고향을 떠나 이곳에 와 머물던 강상 노인이었다. 이때 강상의 나이가 거의 80세였다고 한다.

서백 창이 낚시하던 강상노인과 잠시 나눈 대화에서 그 인물을 알아보고 수레에 태워 돌아와 스승으로 삼았다.

이때 서백 창은 “일전에 우리 선고(先考 : 돌아가신 부친)이신 太公태공께서 말씀하시기를, ‘세상 이치를 통달한 분이 주나라에 와서 우리 주나라가 그로인해 일어난다.’고 하시더니, 선생께서 바로 그 분이 아니십니까?”라고 하였다.

그래서 태공이 오랫동안 바랐던 사람이라는 뜻으로 太公望태공망이라 하면서 師父사부로 삼았기 때문에 師尙父사상보 또는 태공이라고 했다.

지금도 한가로이 낚시 드리우고 세월을 기다리는 낚시꾼을 姜太公강태공이라 한다.

은나라를 멸하고 천하를 평정하다

강태공은 주 문왕 서백 창의 아들인 武王무왕을 도와 殷은의 주왕을 멸하고 천하를 얻게 했으며 그 공으로 濟제 땅에 봉해졌다. 강상을 시조로 하여 동쪽 산동성 일대 제나라는 800여 년의 역사를 열었다.

여기에서는 강태공이 벼슬하기 전 여러 가지 일화 중 몇 가지를 소개한다.

강태공은 젊어서 仙道선도에 마음을 두어 32세 때 곤륜산에 입산하여 元始天尊원시천존의 문하에서 수도를 했으나, 道도를 이루지 못하고 72세 때 스승의 명에 따라 하산하였다. 40여 년 간 수도생활을 하다보니, 친척도 친구도 모두 없어지고 생계유지도 막연하였다. 생각 끝에 과거 결의형제를 맺었던, 殷은나라 수도인 朝歌조가에 살고 있는 宋異人송이인을 찾아 의지하게 되었다.

강태공의 홀아비 생활을 측은히 여긴 송이인은 馬氏마씨라는 여자를 소개하여 살도록 하였다. 강태공이 72세 때 결혼하여 신혼살림을 꾸리고 송이인의 보살핌으로 1년은 그럭저럭 지낼 수 있었으나 마냥 남의 신세만 질수도 없는데 도만 닦던 사람이 세상 물정에 어두워 생계가 막연하였다.

(다음 호에 계속)

김일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