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정조의 옅은 피부위로 태양이 따갑게 내리꽂혔다. 눈물로 범벅이 된 정조의 얼굴을 싸늘한 눈빛으로 내려다보며 영조는 매정하게 소리쳤다.


“세손을 빈궁 전으로 데려가라니까 무얼 하고 있어!”


정조는 영조에게 매달리며 울부짖었다.


“할바마마, 부디 아바마마를 살려주옵소서! 소손의 소원이옵니다. 제발.......부탁드리옵니다.”


“세자는 어서 뒤주에 들어가라니까 뭘 하고 있는 게야!”


사도세자는 절규하는 어린 아들을 뒤로한 채, 찢어지는 가슴을 안고 처참한 모습으로 비좁은 뒤주에 몸을 실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어린 정조의 작은 주먹이 분노로 부르르 떨리고 입술을 꽉 깨물며, 오늘 아버지의 죽음으로 몰아간 무리들을 언젠가 복수하겠노라고 다짐하고 있었다.


모두들 설마 했던 일이 벌어지고, 뒤주란 말도 안 되는 곳에서 이 나라의 세자가 갇혀 죽음을 당했다. 이 얼마나 비통하고 처참한 죽음이란 말인가!


아버지를 지킬 수 없었던 어리 세손은 치밀한 계획을 세워 조용하고 은밀하게 복수를 진행했다. 정조는 효장세자의 양자로 입적되어 11세의 나이로 세손에 책봉되었지만, 세손이 왕위에 오르면 사도세자의 원수를 갚을까봐 두려워하던 노론 벽파들이 세손의 왕위 계승을 강하게 반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정조는 그들 사이에서 자신을 지켜줄 인물인 홍국영과 은밀히 내통하면서 자신만의 세력을 키워나가고 있었다.


“홍국영, 나는 아직 힘이 없으니 당신이 내 곁에서 나를 지켜주오. 내가 저들에게 당하면 나라가 무너지고, 왕실이 무너지게 되네. 어떻게 해서든 저들을 굴복시켜 내가 왕위에 올라야만 나라를 바로 세울 수 있을 것이야.”


홍국영은 머리를 조아리며 정조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하지만 정조를 죽이려는 세력들은 끊임없이 치고 올라와 정조는 권력다툼의 소용돌이 속에서 죽음의 위협에 시달려야 했다. 특히 세손의 외조부였던 홍인한과 세손의 친고모였던 화완옹주는 세손을 죽이지 못해 안달이 나 있었다. 사도세자를 가둬 죽이는데 공헌을 했던 영빈이씨의 딸인 화완옹주는 영조의 후광을 얻어 자신의 안전을 꾀하고자 했다. 결국 화완옹주는 정후겸이라는 인물을 양자로 삼아 세손의 왕위계승을 막고자 하였다.


“전하, 제게 무엇이 있겠습니까? 부마는 일찍 죽고 자식도 얻지 못하였는데, 후겸이가 저를 기쁘게 해주고 있습니다. 부디 그를 총해하소서.”


이미 여든 살이 넘어 판단력이 흐린데다가, 천식까지 심해서 말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던 영조는 기꺼이 정후겸의 뒷배경이 되어 주었다. 정후겸은 홍인한과 결탁하여 세손을 제거하려는 무리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세손은 이미 20대의 청년이 되었고, 홍국영은 굳은 충성심으로 세손을 죽이려는 정후겸과 화완옹주에게서 그를 지켜냈다. 영조의 병은 점점 깊어졌고, 영조는 마침내 세손으로 하여금 대리청정을 명하게 되었다.


“이제 내가 너무 늙어 나랏일을 처리할 수 없으니, 부디 세손이 나를 대신하여 정치를 펼치도록 하라.”


하지만 대리청정이 세손에게 주어진 복수의 기회라고 생각한 화완옹주는 온 몸으로 영조의 결정을 반대하고 나섰다.


“아바마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대리청정이라뇨. 아바마마께서는 아직도 10년을 더 사실 수 있을 것이고, 세손은 아직 어려 나라를 이끌기에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제발 그 말씀을 거두어 주십시오.”


하지만 영조는 이미 결심을 굳혔고, 마침내 세손에게 대리청정을 명하게 되었다. 게다가 홍인한이 세손을 해치려 한다는 낌새를 눈치 챈 영조가 홍인한과 그 무리를 파직시켜, 세손은 그때서야 죽음의 그늘에서 숨을 돌릴 수 있게 되었다.


얼마 후에 영조가 죽게 되어 마침내 정조가 조선의 제 22대 왕에 오르게 되었다. 정조는 자신의 충신인 홍국영에게 힘을 주기 위해 홍국영의 여동생을 후궁으로 맞아들이기까지 했다. 자신을 죽음의 덫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준 그에게 속내를 털어놓았다.


“드디어 내 아비의 원수를 갚을 기회가 왔구나.”


“전하, 전하를 호시탐탐 노리던 화완옹주를 극형에 처해 권위를 세우시길 청합니다.”


하지만 정조는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내 그토록 아바마마의 원수를 갚으리라 다짐했건만 차마 할바마마의 총애를 받던 화완공주를 죽일 수는 없구나. 그건 곧 할바마마의 권위를 훼손시키는 짓임을...”


정조는 홍인한과 정후겸을 제거하고 이들과 함께했던 무리들을 모두 유배 보냈으나, 결국 화완옹주를 평민으로 전락시켜 섬으로 귀양을 보내는 걸로 일을 마무리 지었다.


한 편 정조는 조선대계를 위해 규장각을 지어 조용히 인재를 양성하고, 자신의 오른팔인 홍인한에게 모든 조정의 일을 맡겼다.


“홍국영, 자네가 몇 년 만 조정을 이끌어 주면, 나는 그동안 인재를 양성하여 조선의 힘을 마련해 놓도록 하겠네. 그렇게 해줄 수 있겠나?”


“전하, 이 홍국영, 천하의 악당소리를 듣는 한이 있더라도 이 나라와 전하를 위한 일이라면 기꺼이 감수 하겠나이다.”


정조는 모든 신하들의 눈을 홍국영에게로 돌려놓은 다음, 자신의 권력과 나라의 미래를 위해 인재양성에 힘을 쏟았다. 하지만 홍국영의 권력이 너무 커져 인사권을 마구 휘두르는 등 왕을 세력을 능가하게 되자 이곳저곳에서 상소가 빗발쳤다.


“여태 나와의 약속을 지키느라 고생했네. 자네가 내 힘이 되어주어 얼마나 든든했는지 모른다네. 허나 이제 자네와 헤어져야 할 순간이 온 것 같아.”


“전하, 저는 언제나 전하의 편입니다. 전하가 원하신다면 낙향하여 조용히 살겠으니, 슬퍼하지 마시고 저를 내쫓아 주십시오.”


정조의 복수와 은밀한 계획들, 그리고 규장각 내에서의 인재양성을 위해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었던 정조의 심복 홍국영은 결국 평민으로 전락되어 지방으로 내쫓기게 되었다.


이후 정조는 정약용을 만나 그에게 총애를 주었으나, 그가 천주교도라는 의심을 받자 그의 직위를 하락시킬 수밖에 없었다. 허나 정조의 뜻을 거스른 채 굳이 사퇴를 하고 낙향을 해버린 정약용에게 정조는 간절한 편지를 보냈다.


“정약용, 어찌하여 그대마저 나를 떠난단 말인가? 그대가 떠나면 조정은 온통 벽파의 세상이 되고 말 것이야. 더 이상 과인의 마음을 아프게 만들지 말고 제발 내 곁에 남아주게. 그대가 진정 나라를 생각한다면 즉시 올라오라!”


정조의 진심어린 편지를 받고 정약용은 다시 조정으로 올라왔으나, 이 때 정조는 심한 지병에 시달려 괴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등에 난 종기가 매우 악화되어 고통의 신음을 흘리던 정조는, 1800년 6월, 49세의 나이에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게 되었다.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으나 독살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전해지는 그의 마지막은, 사도세자의 죽음만큼이나 씁쓸한 것이었다.


“아버지의 죽음을 막을 수 없었던 내게, 독기 가득한 복수심은 살아가는 힘이 되었다. 초라하게 내던져 있던 조그만 뒤주도, 그 날의 강렬했던 태양빛도, 너무나 선명해서 잊을 수가 없어. 제 아비도 지키지 못했던 불효자로 평생을 살면서 단 한 번도 마음이 편했던 적이 없었다. 나 이제 늙고 병들어 과거를 돌아보니 내가 해놓은 모든 일이 그저 초라하게만 느껴지는 구나! 아버지께서 살아계셨다면 칭찬이나 충고의 말로 나를 보듬어 주셨을까? 나를 해하려는 무리들에 둘러싸여 숨조차 쉴 수 없구나! 그저 가엾게 쓰러진 아버님이 그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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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륜보다 앞선 정쟁(政爭) -사도세자영혼이야기




나는 본시부터 자유분방한 성격이었다. 동궁에 틀어박혀 사는 신세가 견디기 힘들었다.
“귀한 자는 남들보다 더 많은 것을 누려야 마땅하거늘… 귀한 자는 더 자유로워야 하는 것이 아닌가? 내가 흔하디흔한 한량들이 즐기는 것도 못 즐겨서야 되는가.”
나는 부왕 몰래 평양을 가서 그곳 기생들과 한바탕 즐기고 돌아왔다.
이것을 알게 된 부왕의 진노가 심하였다. 이에 아랑곳없이 나는 동궁 후원(後園)에서 무술을 익히고 있었다.
과녁을 만들어 활을 쏘고 인형을 만들어 칼을 써서 베는 연습을 했다. 때로는 내 눈앞에 거슬리는 아랫것을 한 칼에 베어보는 실전연습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나를 반대하는 당파는 내가 학문을 안 하고 무예를 닦으면서 역모를 꾀한다고 부왕께 고해바쳤다.
나는 부왕께 불려 나갔다. 홍화문(弘化門) 밖에서 죄를 기다리다 휘녕전(徽寧殿) 섬돌 아래 엎드렸다.
“동궁은 듣거라. 너는 내 허락도 없이 관서지방으로 나가 기생들과 방탕한 짓을 하였으며 심지어 여승을 궁중으로 끌어들여 중놈의 자식을 왕실의 혈통에 섞으려 하였고 근래에는 역모를 꾀하기 위하여 무술연마까지 하고 있다는데 모든 것을 이실직고 하고 추호도 거짓이 있으면 용서 안 하리라.”
“아바마마 소자 잘못한 일에 용서를 바라오나 역모라니 그것은 부당하옵니다.”
“너의 음모를 내게 고변한 자가 있고 중벌을 내리라는 대신들의 의견이 있도다.”
나는 계속 용서를 빌었다. 하지만 부왕의 문책은 물러설 줄을 몰랐다.
“그렇다면 왜 후원에서 칼을 쓰고 활을 쏘며 알지 못할 불순한 책동을 하는가.”
나는 우리 조선의 전통적인 문관 사회가 싫었다. 내가 왕이 되면 우리나라를 무관위주의 사회가 되게 하고 싶었다. 국가를 책임지고 지도하는 자들이 자기 몸을 바쳐 나라를 지키자는 마음 자세를 갖춘 자들이 아니라면 그 나라의 장래는 알 수 없다. 문관들은 거의가 이론을 내세울 줄만 알지 자기 몸을 바치려는 마음을 갖는 자는 드물었다.
“소자는 화증병(火症病)이 있어 자신도 모르게 무술을 동작(動作)하곤 하였나이다.”
“나가 기다려라.”
나는 나가서 일단 부왕의 처분을 기다렸다.
이윽고 부왕이 나를 불러 휘녕전에 다시 나아갔다.
부왕은 지의금(知義禁)과 판의금(判義禁)만을 입회시키고 있었다.
“자결하라.”
부왕은 칼을 내주었다.
이 때 영의정과 좌의정 등이 와서
“저희에게 죄를 주시옵소서.”
하고 이마를 섬돌에 부딪쳐 머리에 피를 내었다.
“영상! 시역의 음모가 있는데 과인을 보고 고정하라니.”
“하명하셔서 자세한 결과를 조사토록 하심이 가한 줄로 아뢰오.”
“경들은 물러가오 집안일은 내가 처리하겠소.”
“전하. 어찌 집안일이옵니까?”
“대신들은 물러가라”
할 수 없이 그들은 물러갔다.
부왕은 자기가 왕비는커녕 후궁도 못되는 무수리의 자식으로 태어난 것에 콤플렉스를 갖고 있었다. 게다가 나 자신도 정실의 소생이 아니었다. 그러던 중 나의 정식 아내인 세자빈으로부터 세손이 태어나니 요즈음 세손만을 아끼고 있었다.
“어서 자결하라.”
부왕은 더욱 단호히 다그쳤다.
“전하 고정하시옵소서.”
이번에는 대신들이 죽기를 각오하고 들어오는 것이었다.
“오늘로 세자를 폐서인한다.”
부왕은 못 이겨 태도를 완화한 듯했다.
그것으로 자결은 면하나 했다. 모두들 안도의 한숨을 쉬는 것이었다.
부왕은 시립한 군사들에게 큰 뒤주를 가져오라고 명령했다. 군사들이 뒤주를 가져오자.
“그 안으로 들어가라.”
나는 단지 형벌을 주는 것으로 알고 들어갔다.
밖에서 철커덕 자물쇠 소리가 나더니 쿵쿵 못질소리가 났다.
몇 시간이 지나도 밖에서는 아무소리도 없었다.
갈증과 허기가 났다. 처음에는 괴로웠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기진맥진하여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이윽고 잠이 들었다.
부인 홍씨의 웃는 모습이 나타나 차차 다가오더니 다시 멀어졌다.
잠이 깨도 그저 깜깜할 뿐 낮인지 밤인지 알 수 없고 정신도 혼미하여 생시라고도 할 수가 없었다. 다시 언제 모르게 잠이 든 것인지 그저 환상이 보이는 것인지 여승 가선(佳善)이가 하늘 중에 떠오는 것이었다.
“동궁마마, 기생으로 평생을 살 뻔했던 저가 마마의 은혜를 입어 불문에 귀의하여 순사(殉死)하게 되었으니 어찌 감사하지 않으오리까. 소녀(小女)와 함께 영생극락의 길로 가시옵소서.”
가선은 내게 손을 내밀었다. 그 애는 평양기생이었으나 한번 나와 동침한 이후로는 더 이상 남자를 상대할 수 없다 하여 중이 되었다. 그러나 내가 뒤주에 갇혀 있는 동안 나의 방행(放行)과 관계된 자들은 기생이건 노복(奴僕)이건 모조리 죽임을 당하였던 것이었다.
“그래 함께 가자.”
나는 가선이와 함께 떠나갔다. 나의 몸은 그 애보다 더 무거워 조금은 거북하였으나 그래도 세상의 육신을 벗어나니 홀가분하였다.
(사도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