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남미 대륙의 고대문명 편

멕시코, 테오티우아칸의 달 피라미드(Moon Pyramid). 달에 대한 제사가 목적으로 축조되었으며, 건축풍격은 태양 피라미드와 같은데, 다만 규모가 작고 태양 피라미드보다 약 200년 후에 건립되었다.ⓒ 법신사

중앙아메리카에 세워진 피라미드식 신묘

유럽인이 아메리카에 발을 내딛기 전, 그 넓은 대지엔 일찍이 다양한 문명이 수없이 출현했다. 그들 문명은 한동안 번영하다가 까닭 없이 사라졌는데, 남겨진 것은 수수께끼의 유적들과 해독할 방법이 없는 많은 문자들이다. 오늘날 우리는 폐허에서 출토한 문물을 보며 이 문명의 정황을 추측할 뿐이다.

대략 3,200년 전, 멕시코 만 해안에서는 중앙아메리카 문명의 어머니라고 불리는 올맥(Olmec)문명이 존재했다. 그들 역시 불현듯 아메리카 대륙에 출현한 수수께끼의 문명이다. 시간적으로 주나라 무왕이 멸망시킨 은나라와 상나라(殷商)에 가까운데, 이 문명의 사람들은 옥기(玉器)를 유난히 사랑했던 것 등 기타 여러 특징 때문에 일부 학자들은 올맥문명이 아마도 전쟁에 패해 해외로 피난했던 은상(殷商)유민이 건립한 것이 아닐까 추측하고 있다.

이 문명은 수백 년간 번영하다가 기원전 400년 무렵 갑자기 사라졌는데 그 원인은 알 수 없다. 다만 이 문명이 지녔던 사회제도, 신묘 건축, 아메리카 호랑이(jaguar)에 대한 숭배, 옥기玉器제작, 상형문자, 숫자 체계, 천문역법 및 종교 신화의 전통들은 모두 그 후 중앙아메리카에서 발생하는 문명들이 그대로 답습해 내려갔다.

마야, 아메리카의 희랍 문명

올맥문명이 사라진 후, 각 지역에서 다양한 문명이 출현했다. 기원전 약 500년, 마야(Maya)문명이 매우 많은 도시국가 형식으로 중남미 지역에 나타났다. 서기 100년부터 900년에 이르는 동안 발전하면서 황금기에 이르렀다가 곧 명확치 않은 원인으로 급속히 쇠퇴하면서 결국 도시는 무성한 숲 속에 파묻혀버렸다.

마야인은 천문, 역법, 수학, 예술 등 다방면에서 특유한 높은 수준의 문명을 보여주었는데, 훗날 유럽인들은 마야문명을 가리켜 ‘아메리카의 희랍’에 비유했다.

대략 동시에 출현한 것으로 또 사포텍(Zapotec)문명이 있다. 그들은 몬테 알반(Monte Alban)에 종교적인 중심지를 건설했다. 또 기원전 100년 무렵엔 테오티우아칸 (Teotihuacan)문명이 출현해 웅대한 도시를 건립하고 서기 7세기 전후까지 이어졌으나 까닭을 알 수 없이 갑자기 사라져서 현재는 유적만 남아있다.

그밖에도 10세기말에 이르러 톨테크(Toltec)문명이 출현했고, 13세기엔 아즈텍 제국(Aztec)이 멕시코 중부와 북부지역을 통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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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의 피라미드

옛 중앙 아메리카문명들은 신앙을 주축으로 하고 있었다. 대륙에 널리 분포된 사다리꼴 피라미드는 종교의식을 거행하던 장소였는데, 이런 피라미드는 크고 높고 웅대하며 정밀한 구조로 되어 있다.

그러나 고고학 연구에서 확인한 것으로는, 중앙아메리카의 옛 문명은 시종 청동기나 철기의 발명 흔적이 없고, 바퀴나 수레도 사용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그들이 어떻게 대형 석조 건축물을 건조할 수 있었는지, 또 어떻게 크고도 정밀한 석상을 조각했는지는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피라미드식 신묘(神廟)는 도시의 중심에 건조되었고, 그 수 역시 매우 많다. 예를 들면, 마야문명의 최대 도시는 티칼(Tikal로, 이 도시의 총면적 65㎢ 범위 내에는 약 3천여 곳 이상의 피라미드, 제단, 돌비석 등 신앙유적이 남아있다. 높이가 70m를 초과한 대형 피라미드는 도시중심에 10개가 남아 있고, 소형 신묘는 50여 개 이상이다.

특이한 점은 이들 유적지는 중국 전통의 건축문화와 유사하다는 점이다. 중앙아메리카 지역 고문명의 종교 건축물은 설계 과정에서 천지운행을 상징하는 숫자 기법을 사용을 사용했다.

예를 들면, 마야문명중의 가파른 피라미드의 계단은 모두 365개인데 이는 1년의 날 수 365일을 상징하고, 마야의 기원 1세기는 52년이어서, 피라미드 사면에는 각각 52개의 사각 부조(浮彫)로 체현되어 있다.

▲ 나스카 문양
페루 남부에 있는 ‘안데스의 촛대’ 란 이름의 나스카 지역 문양.나스카인이 지상에 남긴 거대한 윤곽 선(Nazca Lines)으로, 그 크기가 작게는 100m에서 크게는 8Km의 직선에 이르는 등 다양한 형태로 남아있으며, 그 용도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알려진 것이 없다.ⓒ 신기원

태양신을 숭상한 잉카문명

중앙아메리카의 고문명과 유사하게 남아메리카에도 여러 고문명이 출현했다. 최후의 잉카(Inca)제국 이외에 기타 문명도 도시국가 형식으로 나타났다. 대략 3,000년경에 시작된 페루 안데스 산맥의 챠빈(Chavin) 문명, 티아우아나코문명(Tiahuanaco), 모치카(Mochica) 및 나스카문명(Nazca)이 계속 출현했다.

모치카인 들도 피라미드를 건립했고, 특히 나스카인은 지상에 거대한 윤곽의 선 도안(Nazca Lines)을 남겼는데, 그 용도는 아직까지 정설이 없다.


기원 7세기로부터 1,438년까지 기간에 페루에는 도시로부터 발전해 나온 많은 국가가 탄생했다. 그 중에서도 페루북부의 치무왕국(Chimu)이 가장 번성했는데, 수도 찬찬(Chan Chan)의 건축물은 매우 웅대했다. 잉카문명은 서기 약 1,200년 경 가장 일찍 출현해 쿠즈코(Cuzco) 일대에 수도를 건립했다.

잉카인들의 신앙은 태양신이었다. 전설에 따르면 태양신이 자녀를 파견, 인간세계에 도착해 인류문화를 가르쳤고 잉카인은 태양신의 후예이다. 이 밖에 조물주가 유일신인데 볼 수도 없고 상상할 방법이 없으며 태양신이나 기타 신에 비해 지위가 훨씬 높다.

잉카인은 많은 신묘를 세우고 신명을 받들었다. 1,532년 잉카제국의 마지막 황제가 스페인 사람들에게 사형에 처해지면서 남미 민족으로 이루어진 남미 통치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식민지시기에 접어들었다. 그 후 유럽인은 유럽도시의 건설 개념에 따라 도시를 건설했고 잉카의 도시는 파괴되었다. (끝)

/ 김영선 기자

마추픽추의 잉카 문명ⓒ 신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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