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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일을 마치고 집에 가는 길,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반가운 사람의 전화를 받았다. 얼굴에 웃음을 가득 안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려 했으나 "뭐라고?", "잘 안들려", "다시 한 번 얘기해줘"와 같은 말을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우렁차게 울리는 버스의 엔진소리 외에도 하하호호 쉴새없이 재잘거리는 버스내 라디오방송, 저마다 큰 소리로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차창 밖 거리의 가게들마다 경쟁적으로 틀어대는 음악소리까지 겹치니 수화기 저 편에서 어떤 말을 했는지 알아들을 재주가 없었다. 버스에서 내려 한길을 벗어나 집 근처에 와서야 서로 나직하고 편안한 목소리로 통화를 할 수 있었다. 그나마 조용한 곳에 사는 사람들도 많지 않은 형편이고 보면,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소음이 없는 구역은 대체 얼마나 되는지가 궁금해졌다.
확실히 어딜가나 견디기 힘들 정도의 소음에 우리는 쫓겨다닌다. 모퉁이 한 번만 돌면 나타나는 공사장, 낮이고 밤이고 꽉꽉 막힌 차들이 뱉어내는 경적소리와 엔진 돌아가는 소리, 가게들마다 우렁차게 바깥을 향해 틀어대는 음악들… 조용한 곳에서 커피 한 잔의 휴식을 즐긴다는 커피전문점들은 또 어떤가? 가만히 눈을 감고 있으면 테이블을 가득 채운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 쉴새없이 주문이 들어오고 점원들이 얼음을 갈고 에스프레소를 만드느라 기계를 돌리는 소리, 쉴새없이 여닫히는 문소리에 우리 귀가 혹사당하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런데도 그 많은 탁자에 앉은 사람들이 저마다 조용한 휴식을 즐기는 중이라 생각하는 것을 보면, 아마도 이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너무나 익숙해져서 소음속에 산다는 사실조차 잊었가보다.
캐나다로 이민갔다 오랜만에 고국을 방문한 한 사람에게 이런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어딜가도 너무나 시끄럽다. 이 와중에 다른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 서울사람들 정말 대단하다. 나도 이런 도시에서 다른 사람들 말을 알아들으면서 살았었다는건 더 놀랍다."
물론 번잡하고 큰 대도시의 시끄러움은 피할 수 없는 것이고, 소음이 문화가 되는 일도 있다. 뉴요커들은 24시간 시끌벅적한 맨해튼의 소음을 가리켜 '브로드웨이의 자장가(Rullaby of broadway)'라고 말한다. 시끄러운 한국 역시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이 세계를 움직인다는 증거라며 우리는 국가 슬로건을 다이내믹 코리아(Dynamic Korea)로 정했다. 역동하는 한국 제2의 도시 부산의 슬로건 역시 다이내믹 부산(Dynamic Busan)이다.
그러나 끊임없는 소음은 사람을 피곤하게 한다. 몸이 아플 때 가장 먼저 신경 쓰이는 것이 주변에서 들리는 소리이고, 주말 아침 피곤한 몸을 쉬고 있을 때 TV에서 흘러나오는 소리가 짜증나게 들리지 않던가. 고즈넉한 사찰도, 지친 몸을 쉬는 남국 해변의 휴양지도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듣기 거북하고 불편하고 짜증나는 도시의 소음이 아니고 조용한사방에서 아스라이 들려오는 자연의 소리다.
역동의 표상인 대도시에 살고 있어 소음을 피할 수 없다면 최대한 줄여보는 것은 어떨까. 불특정 다수를 향해 틀어대는 커다란 소리가 보이지 않는 폭력이라는 사실을 안다면 내 가게 매출 올리겠다고 앰프 볼륨을 MAX까지 올려놓거나 버스에서 라디오를 틀어놓고 승객들에게 듣기를 강요하지는 않을 것이다. 공공장소의 휴대폰 벨소리나 시끄러운 통화도 물론 없어질 것이고, 최대한 경음기를 사용하지 않고 급가속을 삼가며 조용히 운전하는 것이 미덕임을 알게 될 것이다. 우리의 노력만으로도 우리를 괴롭히는 소음은 대부분 없어지지 않을까?
京鄕新聞 김명일 기자의 블로그http://blog.khan.co.kr/mi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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