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문화재 디카여행 2007. 6. 14. 16:46

北韓文化財


平 壤 市


을밀대 - 평양시 중구역 금수산



평양시 중구역 금수산의 을밀봉에 있는 을밀대는 6세기 중엽


고구려시기에 평양성 내성의 북쪽 장대로 처음 세워진 누정이다.


을밀대란 '윗미르터(윗밀이언덕)'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여기에 '을밀선인'이 자주 하늘에서 내려와 논데서,


또는 '을밀장군(을지문덕 장군의 아들)'이


이 곳을 지켜 싸운데서 온 이름이라는 전설도 있다.


지금의 누정은 1714년에 축대를 보수하면서 고쳐 지은 것이다


을밀대 주위의 아름다운 경치는 '을밀상춘(을밀대의 봄맞이)'으로


일찍부터 백성들의 사랑을 받아 평양8경의 하나로 일러왔다


東明王陵 - 평양시 역포구역 용산리




무관상 : 부분노, 부위염, 무골, 묵거



문관상 : 오이, 재사, 송양왕


이 능은 평양시 역포구역 용산리에 위치하고 있다.


북한에서는 이 무덤을 5세기에 재축조된


고구려 시조 동명왕의 무덤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1993년에 대대적으로 개건되었다.


부여에서 태어났다고 전하는 동명왕(고주몽, 혹은 추모)은


어린 시절부터 무술에 능하고 지략이 출중하였는데,


뜻을 같이 했던 오이, 마리, 협부 등과 함께


남쪽으로 내려와 고구려를 세웠다고 한다.


동명왕은 주변의 소국들을 통합하고 외적들을 물리치면서


19년 동안 나라를 다스리다가 하늘로 올라갔다고 전하고 있다.



開城市


왕건왕릉 - 개성시 해선리





고려 태조 왕건왕릉은 개성시 개풍군 해선리에 위치하는


송악산의 줄기가 뻗어내려 온 만수산의 나지막한 등성이 위에 자리잡고 있다


943년에 창건된 것을 1994년에 개건하였다



선죽교 - 개성시 선죽동




비문은 당대의 명필 석봉 한호의 글씨로 전한다




선죽교는 고려시대 후기의, 길이 8.35m, 너비 3.36m인 석조 다리이다.


『고려사』에 의하면 이 다리는 1216년 이전에 건설되었고


건설 당시의 이름은 선지교였다.


그후 고려 말의 충신 정몽주가 이 다리에서 피살된 때부터


선죽교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


현재 이곳에는 난간이 있는 다리와 없는 다리가 있는데


난간이 있는 다리가 선죽교이다.


이 난간은 1780년 정몽주의 후손들이 사람이 다니지 못 하도록 설치한 것이고


난간이 없는 다리는 사람들이 다닐 수 있도록 그 곁에 새로 놓은 것이다.


선죽교 옆에는 "선죽교"라고 쓴 비석이 있다.



범사정 - 개성시 박연리



범사정은 개성시 박연리에 있는 1700년에 세운 조선시기 건물로


우리나라 3대 명폭의 하나인 박연폭포를 옆에 끼고


대흥산성 북문으로 오르는 언덕길 중턱에 있는 정자이다.


'중경지'에는 1700년에 이 건물을 세우고


옛 이름대로 현판을 달았다고 쓰여있다



박연폭포 - 개성시 박연리



개성시 중심으로부터 26km 산성리의 천마산과 성거산에 끼어


계곡에 있고 높이는 35m이다.


폭포위에 박연이라고 불리는 직경 8m의 아름다운 연못이 있고


고모담이라고 불리우는 직경 40m의 용추의 물가에, 큰 '용암'이


수상에 머리를 내밀고 있다. 용추의 동쪽언덕에 범사정이라는 절이 있다


옛날 어느 만월밤 박진사라는 청년이 불고 있는 피리소리에 홀려서,


이 호수의 용녀가 그에게 반해 호수속으로 유인해가 버렸다


. 자식을 잃은 어머니는 슬픈나머지 폭포밑에 몸을 던졌다.


그 이후에 호수를 박연이라하고, 폭포밑 담을 고모담이라고 부른다고한다.


옛날부터 조선 3대폭포 중 하나이다


폭포는 명유 서경덕(徐敬德)과 명기(名妓) 황진이(黃眞伊)와


더불어 이른바 송도삼절(松都三絶)로 알려져 왔다.



공민왕릉 - 개성시 해선리



공민왕릉은 개성시 개풍군 해선리에 위치한 1365년~1374년에


해당하는 고려시대 왕릉이다. 2기의 무덤을 동서로 나란히 세운


쌍릉형식으로, 고려 31대 공민왕의 무덤인 현릉(서쪽)과


왕비(노국 공주)의 무덤 정릉(동쪽)으로 이루어졌다.


공민왕은 왕비가 세상을 떠나자 오랜 기간에 걸쳐


이 방대한 무덤공사를 직접 지휘하였다


會文里24개돌유적 - 함경북도 鏡城郡會文里





함경북도 鏡城郡 會門里에 위치한 발해의 유적이다.


이 유적은 회문리 소재지에서 서 북쪽으로 약 300m 떨어진


밭 가운데서 발견되었다.


이 유적은 돈화시 소재지 교외나 관지, 해청방, 요전자 등에서


알려진 24개 돌유적들과 같은 성격의 특수한 기념건축물터이다.


유적의 기단은 남북 19.2m, 동서 13.5m의 장방형으로 생겼으며,


높이는 1m 정도이다. 기단 위에는 한 줄에 8개씩, 세 줄의 주춧돌이 놓였다.


주춧돌이 놓인 부분은 남북 10m, 동서 7.8m이며,


주춧돌 열 사이의 거리는 3.9m이다.


현무암을 대충 다듬어 만든 주춧돌은 길이, 너비, 높이가


각각 70-90cm 정도이며, 땅 속에 30cm 가량 묻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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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심사 - 함경북도 명천군 보촌리



개심사는 826년에 창건하고 1784년에 재건한 조선시대 사찰로,


함경북도 명천군 보촌리 칠보산에 자리하고 있다.


개심사는 "함북금강"으로 불리는 칠보산의 내칠보에서도


경치 좋기로 이름난 개심대에 위치하고 있다.


기록에 의해 이 사찰이 826년 대원화상에 의해 창건되었음이 밝혀졌다.


그후 1853년에 또한 대대적으로 재보수되었다.



平安道


보현사 - 평안북도 향산군 향암리





대웅전




만세루


기묘하고 수려하기로 이름 높은 묘향산에는


우리나라 5대 절의 하나인 보현사가 자리 잡고 있다.


묘향산 보현사는 조선시대 중기에서


후기의 사찰로, 1042년에 창건한 것을 재건한 것이다.


보현사는 빼어난 주변경관과 함께


임진왜란때 활약했던 서산대사의 사적이 있어 이름이 높은 곳이다.


1216년, 1634년, 1761년의 큰 화재를 맞는 등 여러 차례의 재난으로


보수와 중건을 거듭하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보현사에서 가장 뛰어난 건물은 대웅전(원래는 보광전)으로 1765년에 중창되었고,


묘향산 보현사 8만대장경의 보존고있어 불교도서관의 기능도 수행하고 있다


만세루는 지난 6.25전쟁시기 폭격에 의하여 대웅전과 함께 불타 버렸으나,


1979년 대웅전과 함께 만세루는 옛 모습을 다시 갖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