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를 타고와 돌아보면 왜 이렇게 길은 굽어있는지,

반듯하게만 달려왔는데,,."


이런 우수에 찬 멘트를 남기고 킬라(신하균)은 그녀(윤지혜)의 품에서 숨을 거둔

다. 10여분을 우수에 찬 음악을 배경으로 롱테이크로 이끈 <예의없는 것들>의

지막 씨퀸스는 최근 몇 년 사이 한국영화에서는 보기 힘든 명장면이였다. 배우

과 스태프들과 관객들 모두 감정이입이 되어서 함께 눈물을 흘리면서 이 씨퀸

만들고 감상하였을 것 같다. 참 인상적인 엔딩이었다.


ⓒ 튜브픽쳐스

영화의 도입에서 킬라는 할 수 있는거

고는 요리집에서 단련된 칼질솜씨뿐

이다. 거기다 혀까지 짧은데, 쪽팔리게

혀 짧은 소리로 말하기보다는 벙어리

흉내를 내면서 살기로 결심하고 있다.

그런 그에게 두 가지 일이 생긴다.

하나는 의사에게서 그의 짧은 혀를

고치는 길을 알게 되고,거기에 필요한

1억원모으기 위해서 전직을 결심하

이다. 그새로운 직업은 킬러이다.

즉 돈 받고 사람죽여주는 것을 대행하

것이다.

그러나, 사람 죽이는 것이 어디 쉬우랴.

기술가진 것만으로 힘들고 고민도많다.

그런 킬라(신하균)에게 킬러계의 선배

발레(김민준)는 좋은 충고를 한다.

직업에서 살아남고 성공하기 위해서는 나름대로 직업의식을 반영해서 원칙을

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정한 킬라의 원칙이 "예의 없는 것들"만 보내버리자는 것이다. 킬라는

세상 도처에 살고 있는 예의 없는 것들만 골라서 매너 있게 처리한다는 원칙을

정한다. 그리곤, 킬라의 생활은 순조롭기만 한 듯하다. 그의 청부살인사업은

순풍에 돛 단 듯 승승장구하고 짧은 혀를 고칠 1억원은 곧 모일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 단조로운 그의 생활에 뛰어드는 이가 생기는데 바로 '그녀'

(윤지혜)다. 영화 후반부에서야 알게 되지만 '그녀'는 어릴 때 헤어진 킬라의

고아원 동기다. 어린 시절 고아원 꼬마들에게 매만 맞던 킬라에게 용기를 불어

넣어주고 처음으로 사랑을 알게 해 준 사람이다.


그러나, 그녀는 창녀생활에, 포주의 정부를 걸쳐 술집여급으로 전락하여 있고,

그런 그녀를 킬라는 알아보지 못한다. 그녀 또한 킬라에게 호기심으로접근하여

육체적 관계를 맺지만 그가 어린 시절 자신의 고아원 동기라는 것을 나중에알게

되고는 혼자만의 비밀로 간직하려고 한다. 현재 자신의 처지를 알리기가 부끄러

운 것이다.



▲ 예의없는 것들을 한방에 날리는 킬라, 영화의 중후반에서 킬라는 정말 예의

없는 것들(부패 검사,교육자,목사 등)도 보내 버린다.

ⓒ 튜브픽쳐스

킬라는 그녀와 동거를 하고 그들의 생활엔 고아소년 하나가 뛰어드는 변화가 생

긴다. 그러나 킬라는 그녀의 사랑을 거부한다. 그이유는 아이러니컬하게도 어린

시절 고아원 소녀에 대한 일편단심의 사랑 때문이다. 물론, 그 고아원 소녀가

'그녀'라는 사실은 꿈에도 모르고, 그녀 또한 킬라와의 커뮤니케이션의 단절로

그의 그런 속사정은 모른다. 킬라가 정말로 그리워하는 것이 자신이라는 것을.

단지, 킬라가 참으로도 괴팍하고 이상한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이러는 와중에 킬라, 발레, 도장사범을 비롯한 킬러들의 사업에는 변화가 일어

난다. 킬라와 발레가 청부를 받아 살해한 청량리 사창가의 포주가 사실은 그의

쌍둥이 형제이고, 도망와중에 이권과 관련된 문서와 서류들을 실수로 가지고

가게 되는 것이다. 물론, 실제 청부 대상은 살아있고, 킬러들은 그 문서와 서류

때문에 추적을 당하는 신세가 된다.


발레는 댄스연습장건물에서 포주 부하들의 습격을 받는다. 드디어 최후의 일전

을 치른다. 그러나, 칼질의 달인이자 신기에 가까운 싸움기술을 보이던 발레도

깡패들의 계략에 걸려들어 칼을 빼앗기면서 깡패들의 연장질로 묵사발이 된다.

자신의 꿈이자, 청부대금을 모아서 올리던 건물의 옥상에서 발레는 장렬하게

싸우다가 투신을 한다. 결코 항복은 없다.


장면이 바뀌면 킬라 또한 함정에 걸려들고, 그녀윤지혜와 사창가포주를 둘러싼

관계의 비밀이 드러난다. 해피엔딩으로 향하길 바라는 관객의 염원을 져버리고

킬라와 그녀의 죽음으로 치닫고 있다. 너무나 슬프고 가슴이 찡한 엔딩으로 말

이다.





▲ 첫 살인을 한 킬라와 선배킬러,발레. 비내리는부두의 미장센이 분위기를 자아

냈다

ⓒ 튜브픽쳐스

<예의없는 것들>은 2006년이낳은 가장 인상적인 한국영화 중의 한 편이다.개인

적으로, 2006년도에는 <괴물> <달콤 살벌한 연인> <아랑>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등의 영화를 인상적으로 봤는데 그 마지막에 2007년도가 되서야 DVD로

본 이 영화를 추가해야겠다.


<예의없는 것들>의 인상적이었던 점을 몇 가지 꼽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우선,

글머리에 언급한 엔딩씨퀸스인 킬라의 죽음씬이다. 이 씨퀸스는 한석규, 심은하

주연의 <8월의 크리스마스>의 엔딩씨퀸스를 연상시키기도 했다. 두 씨퀸스사이

에 유사성은 음악을 사용했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없지만 죽음을 테마로 하여서

굉장히 잘 만든 씨퀸스라는 점은 공통점이라 할 만하다.


킬라의 죽음씨퀸스는 흔들리는 카메라,우수에 찬 음악, 킬라의 내레이션과 그녀

의 절규어린 독백이 결합되어 굉장히 멋진 장면을 연출했다. 특히, 대단한 장면

전환 없이 한 장소에서 킬라의 결투부터 그녀의 죽음까지 이어붙인 것은 대단한

기교라고 생각한다. 마치 눈물 젖은 눈망울이 응시하는 것처럼 찍어간 흔들리는

카메라의 테크닉도 뛰어나 보였다.


둘째. <예의없는 것들>의 줄거리와 이야기다. 오밀조밀하게 상승과 부침을 계속

하는 줄거리는 잔재미들의 연속이라고 할 수 있었고, 시종일관 극을 이끈 벙어리

킬라, 신하균의 내레이션도 특이한 선택이었다. 극의 원활한 진행에 방해가 될

수도 있는 선택이지만 신하균과 배우들의 연기에 힘입어 어색하지 않은 결합을

낳았다.


그리고, 결국 자신들에게 없는 것을 찾고자 하지만 찾지 못하고 가는 주인공들

(킬라, 그녀, 발레, 그리고 꼬마까지)은 인생의 덧없음과 미완성성, 들뢰즈의

용어를 빌면, 시뮬라크르까지 떠올렸다.


영화의 말미에서 감독은 상심한 관객들에 대한 배려인지, 조그마한 선물을 하나

해 준다. 일종의 환상씬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투우사가 된 킬라와 그녀,

꼬마가 따사로운 스페인의 어느 투우장에서 즐겁게 웃고 있다.


천국보다 낯선 곳에서 그들은 다시 태어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