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채색 개펄을 보랏빛으로 곱게 물들인 칠면초 군락

《전남 여수와 고흥 사이 순천만, 장흥과 해남 사이 강진만. 땅에 갇힌 좁은 물, 만(灣)을 끼고 있는 두 고을.
개펄 크고 들녘 넓어 먹을 것이 많고 인심도 넉넉한 남도의 ‘징’한 땅이요 바다. 그곳에 풍성한 가을이 영글었으니 세상 길손 두루 그리로 발길 돌림에 무슨 이유가 필요할까. 순천과 강진의 가을, 그리고 축제로 안내한다.》

○ 하늘을 거역하지 않는 사람들의 땅 순천
아직 순천만을 보지 못한 그대. 이 땅의 아름다움을 언급할 자격이 없다.
키 넘긴 무성한 갈대숲, 그 안에 둥지 틀고 새끼 돌보는 물새, 바람 한 숨에도 일렁대는 은빛 갈대의 유려한 물결. 혹시 석양의 황금빛에 물들라치면 무정한 남정네의 무쇠 솥 같은 무심함도 그 갈대꽃 솜털 끝에 찬란히 부서지는 햇빛처럼 산산이 부서지고 마는데…. 그래서 순천만 갈대숲에서는 모두가 아름다워진다.

자연을 흉내 냄이란 당치도 않은 인간의 오만. 이런 기특한 깨달음은 순천만 풍광을 온전히 내려다볼 수 있게 됐을 때 비로소 가질 수 있다. 가파른 계단 길로 오른 산 중턱의 전망대. 그 아래로 펼쳐진 장대한 개펄과 바다의 파노라마는 감동을 넘어 경외의 대상으로 승화한다.




무채색 개펄을 보랏빛으로 곱게 물들인 칠면초 군락, 동그랗게 원형의 군락을 이룬 기하학적 구도의 갈대밭, S자로 휜 갯골 물길의 수면에 작은 고깃배가 만드는 유려한 무늬의 아름다운 파형, 그리고 하늘만큼 너른 바다와 땅만큼 거대한 개펄. 그 땅과 하늘을 동시에 물들이는 찬란한 노을과 석양. 순천만에서 자연을 노래하지 않는 자, 그 자연을 즐길 자격도 없다.


800만 평의 광대한 개펄에 70만 평이나 되는 갈대 군락지가 있는 자연생태의 보고 순천만.
가을이 깊어 갈수록 푸른 갈대는 금빛으로 다시 피어난다.

갈대숲 속을 지그재그로 가로지르는 나무판자 길. 그 길로 걷는 이는 행복하다. 바람에 이는 갈대소리는 노래로 다가오고 하늘과 맞닿은 갈대숲 지평선이 그림처럼 펼쳐지기 때문이다. 스님 두 분이 훠이훠이 갈대숲을 지난다. 운수납자의 비운 마음에도 순천만 갈대숲은 욕심으로 다가왔던 모양이다.

순천에서 바다를 등지기란 쉽지 않은 일. 그러나 용기 내어 등을 돌리면 또 다른 풍광이 나그네의 눈 허기를 채워준다. 사방팔방이 산에 둘러싸여 마치 속세와 절단된 세상인 듯 자처한 낙안읍성 마을의 고즈넉한 가을 풍경이 그것이다.


읍성의 성벽 위로 난 이 길. 세상 어디에 이만큼 내 발과 눈을 즐겁게 하는 아름다운 길이 또 있을까. 밤톨처럼 옹기종기 모여 있는 초가지붕에는 호박이 누워있고 뒷마당 늙은 감나무에는 까치밥으로 남긴 땡감 몇 개가 대롱거린다. 도회지에서 놀러 온 초등학생 아이들은 새처럼 재잘대며 키 낮은 돌담 골목을 떼 지어 몰려다니고 관광객의 시선에는 이미 무뎌진 촌로 몇몇은 집 앞 텃밭에서 무심히 땅을 고른다.


소슬한 바람에 가을이 깊어가는 모습을 보고 싶은 그대. 더 늦기 전에 순천만으로 떠나라. 깊어가는 정취 속에 가을이 영그는 소리도 들을지 모를 일이니 더 늦기 전에 서두르자.

○ 다산 정약용의 발자취가 서려 있는 강진
강진에서 바다를 떼고는 하늘도 땅도 사람도 볼 수 없다. 그리 넓지도, 그리 깊지도 않은 바다. 그래도 강진만의 개펄과 물은 이 바다 에두른 땅과 하늘, 사람을 두루 적시고 또 적신다.


강진만

그 바다. 다산 정약용(1762∼1836)이 흑산도로 유배 간 둘째형 약전(1758∼1816)을 그리워하며 초당 옆 천일각에서 애타게 바라보던 그 바다다. 초당에 머물던 다산에게 차(茶)를 가르쳐 주고 그와 경학을 논했던 만덕산 백련사의 혜장(1772∼1811) 스님이 달빛 고고히 내려앉는 절마당의 느티나무 가지 너머로 느긋이 관조하던 그 바다다.
그런 강진이니 예서 다산과 혜장을 빼고, 초당과 백련사를 빼고 두서없이 헤맨다면 시간 낭비요 헛발질이다.


만덕산 백련사

다산이 강진에 유배된 것은 1801년. 이후 다산은 18년간 강진에 갇힌다. 그러나 그 갇힘은 새로운 열림으로 반전된다. 그는 이곳에서 인생 후반을 꽃피우는 일체를 준비하고 실행한다. 첫 번째는 차를 배움이요, 두 번째는 500여 권의 저술을 남김이다. 그리고 세 번째는 혜장과 ‘한국의 다성(茶聖)’으로 추앙되는 초의(1786∼1866) 스님, 그리고 추사 김정희(1786∼1856)와의 교우다.


다산초당-동암

강진에서 다산의 발자취를 더듬자면 순서를 따름이 옳다. 그 초입은 다산유물전시관이다. 다산의 가계는 물론 강진 거주 역사와 저술까지 모든 것이 전시돼 있다. 다음은 다산초당. 18년 유배 중 후반 10년을 보냈던 곳으로 500여 권의 저술이 예서 이뤄졌다. 전시관에서 걸어갈 수 있다.

초당은 강진만이 내려다보이는 산 중턱의 숲 속에 있다. 마을에서 걷자면 10분 거리. 숲 그늘 속에는 동암 서암 등 건물 세 채가 약천(샘물) 연지석가산(연못) 다조(차를 끓이던 바위) 등의 유적과 함께 보존돼 있다.


백련사로 이어지는 오솔길

강진만이 잘 보이는 누정 천일각은 여기서 스무 걸음 거리. 그 옆으로 백련사로 이어지는 오솔길(800m)이 열린다. 백련사(주지 법상 스님)는 다산에게 차를 가르쳐 준 혜장 스님이 주석한 고찰. 만덕산 아래 깊은 차나무 숲이 절의 배후고, 그 산자락이 살며시 잦아드는 강진만이 정면에 펼쳐진 풍광 멋진 사찰이다.


둥지식당의 상차림

다산도 좋지만 강진에서 한정식 한 상차림을 거덜내지 않으면 그 여행 역시 무효다. 누구나 군침 흘리는 남도 한정식 가운데서도 강진의 상차림을 최고로 치는 이유는 간단하다. 강진만큼 땅과 바다에서 나는 먹을거리가 풍부한 곳이 없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강진세무서 건너편 골목 안에는 한정식 식당이 즐비한데 둥지식당의 2만 원(1인당)짜리 정식상은 평생 기억에 남을 만큼 인상적이다.

도깨비뉴스 리포터 동분서분



출처 : 소나무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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