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문화(黨文化) 해체가 바로 사령 부체의 제거 (06/9/23 土)


글/ 칭위안(清源)

중국 대륙 사회에는 기묘한 현상이 존재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거의 모든 사람들이 XX당의 사악함을 분명히 알고 있지만, 절대 다수의 사람들은 오히려 다양한 구실로 XX당 정권의 합법성을 묵인하고 있고 심지어 그 중 일부 사람들은 XX당의 만행에 갈채를 보내고 있다. 그러나, 이지적이고 청성(淸醒)한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다. 기왕에 어떤 것이 좋지 못한 것을 알면서도 오히려 그것을 ‘인정’하고 심지어 그것을 위해 변호하는데, 만약 이러한 일이 극소수의 사람들에게서 일어났다면 그래도 이해할 수 있지만, 십수 억 인구의 국가에서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현상은 좀 괴상하다는 것을.

중국 역사상 얼마나 많은 사악이 일어났었든지 막론하고,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것은 중화 문화의 주류가 유가의 ‘인(仁), 의(義), 예(禮), 지(智), 신(信)’과 도가의 ‘진(真)’ 및 불가의 ‘선(善)이라는 것이다. 특히 지식인들 가운데는 ‘살신성인(殺身成仁)’ 등 정의를 추구하는 전통이 있다. 그러나, 역사상 가장 우수한 이 민족은 왜 XX당의 폭력 정권하에 복종하게 되었을까? 우리는 XX당이 중국에서 횡행하는 동시에, 일종 온통 거짓말로 가득 차고, 폭력과 테러를 통해 추진하는 문화가 중국 대륙에 빽빽이 들어서 있다는 것에 주의해야 한다.

그것(당문화)은 이성이 없지만 도리어 어디에나 다 있어 사람들로 하여금 그 가운데 깊이 빠지게 하고 스스로 깨닫지 못하게 한다. 그것은 사람들의 행동을 통제할 뿐만 아니라 영혼까지 통제한다. 그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선악을 분별하는 자주(自主) 의식을 잃게 하고, 당신에게 그것을 인정하도록 강요한다. 그것은 영혼의 타락을 종용하며, ‘역 도태’라는 방식을 통해 ‘중견 인물’을 선택한다. 그것이 바로 당 문화이고, 그것이 바로 사령(邪靈)의 부체(附體)이다!

당문화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비이성(非理性)’이다. 이 특성은 또한 당문화가 인류가 반드시 구비해야 할 문화 체계가 아니라는 것을 표명하고 있다. 왜냐하면 인류는 이성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비이성’은 표면적으로 볼 때 행위 혹은 언어 논리의 혼란성으로 표현된다. 혹은 그것을 궤변, 생떼쓰기, 신경질이라고도 부른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말하면, 이러한 ‘비이성’의 특성은 사실 XX당 사령(邪靈) 짐승성질[獸性]의 구체적인 표현이다.

XX당은 계급으로 사회 인민들을 분류하고, 아울러 일정한 시기 내에 이것을 기준으로 사람의 생사를 확정한다. 약간의 역사적 상식을 갖춘 사람이라면 모두 사회적으로 빈부 차이는 항상 존재해 왔으며, 부유하나 어질지 못한 사람이나 또는 ‘가난’하지만 아주 흉악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이 상식적인 사실은 오히려 XX당에 의해 강제로 ‘좋고 나쁨’의 표준이 되었으니, 황당무계하고 가소롭기 그지없다.

필자는 어릴 때 왜 빈부의 차이가 있을까에 대해 고민하며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있다. XX당은 부자는 가난한 사람들을 억압하고, 착취하여 부를 쌓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필자의 고향에서는 풍속이 사나웠다. 나는 어렸을 때 사람은 정말이지 너무나도 억압받기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구(舊) 사회’의 지주, 부자는 반드시 매우 많은 고용인들을 먹여 살려야만 비로소 부를 쌓을 수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지주와 부자들이 부를 쌓기 전에 어떻게 그렇게 많은 고용인들을 먹여 살렸느냐는 것이다!?

나중에 성장한 후, ‘개혁 개방’이 시작되었고, XX당은 ‘근면[勤勞]하면 부자가 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 구호는 나로 하여금 다시 어렸을 때 진지하게 ‘생각’했던 이 문제를 생각나게 했다. 지금 사람들은 ‘근면하면 부자가 될 수 있다.’ 그렇다면 과거 사람들은 가능하지 못했을까? 그렇다면 그 ‘지주와 부자’ 또한 근면하여 부자가 된 것이 아닌가!? ‘근면해서 부자가 된 것’이라면 ‘게으르면 가난하게 된다’는 것인가!? 그렇다면 그 가난한 사람들은!? 이런 모든 것들은 아이의 유치한 생각이었다. 물론 결코 실제로 이렇다는 것은 아니다. 부귀는 스스로 결정하는 것으로, 하늘은 매우 공평하다. 그러나, 나는 지금 어렸을 때 이 문제에 어리둥절해 있었던 것에서 매우 분명히 깨달았다. 나의 지적 능력 발달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XX당의 거짓말과 앞뒤가 연결되지 않는 궤변에서 초래된 것이다.

내 기억에, 처음 정치 과목 수업을 들을 때, 선생님이 꼬박 한 시간에 걸친 수업 시간 동안 정치 학습의 중요성을 설명하면서 ‘정치는 전반 인류 생활속을 관통하고 있다.’, ‘정치를 이해하지 못하면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다’고 한 것을 기억한다. 물론 우리는 XX당이 겉모양만 번지르르하고 호언장담하는 거짓말의 외투 아래에서 세뇌 교육을 진행하는데 가장 능숙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가 자라 성인이 되어서야 비로소 ‘정치’와 나는 무관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정치’를 언급조차 못하게 하며, 지금에 이르기까지 ‘정치를 하는’ 것은 매우 큰 죄명이 되었으며, 아울러 ‘무상(無償)’으로 아무 사람의 머리에나 뒤집어씌울 수 있다. 이와 유사한 XX당의 비이성적 행위들을 우리는 인생에서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이 겪어왔다.

어떤 친구들은 어쩌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내가 본 이러한 것들이 모두 거짓말에 불과하다면 왜 당신이 말하는 것이 비이성이냐고. 어렸을 때, 우리 집 부근에 겉모습이 아주 멀쩡한 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하루 종일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길을 가르쳐 주는 것을 좋아했다. 그러나 그는 항상 행인들에게 반대 방향의 길을 가르쳐 주었다. 어떤 사람들은 헛걸음을 했다 다시 돌아와서는 그를 사기꾼이라고 크게 욕했다. 그러나 우리는 사실 그가 정신병 환자라는 것을 안다. 내가 XX당이 비이성적이고, 당 문화 가운데 비이성이 충만하다고 말하는 것은, 어떠한 정상인도 평생 거짓말을 하면서 살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 거짓말 날조가 얼마나 정밀하던지 막론하고, 이것은 모두 정상적이거나 이성적인 행위가 아니다. 거짓말은 단지 부분일 뿐이며, 그것의 전반 과정은 비이성적이다.

당문화는 거짓말, 폭력, 테러를 주요 원소로 하여 이루어진 문화이다. 이 세 가지 주요 원소가 서로 보완하며 당 문화의 ‘용착(容錯 역주: 착오를 포용하는 것)’성, ‘자아 적응’성, ‘자아 번식’성 등 방대한 생태 시스템의 일부 특징을 갖는다. 당문화 가운데 거짓말과 폭력이 가득한 것은 XX당의 존재 자체가 합리성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거짓말과 폭력이 없이는 XX당은 단 1분도 생존할 수 없다. 당 문화 가운데 테러가 가득한 것은, XX당이 천성적으로 비합리적이어서 시시각각 매우 두려워하며 그 생존에 영향을 미칠 요소의 출현에 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이로 인해 ‘요람 상태에서 압살한다’는 ‘명언’이 생겨났다.

당문화가 가지고 있는 특이한 성질 그것은 바로 ‘유전성(遺傳性)’이다. 당문화는 XX당이 인민을 우롱하여 그 정권을 수호하는 ‘합리성’이다. 민중들은 피해자이다. 상식에 따르면 사람들은 XX당 정권의 불법성 및 사악성을 충분히 인식할 수 있다. 그러나, 이상한 것은 XX당에 의해 억압당한 사람들은 당문화에 의해 감염 되었을 뿐만 아니라 또한 XX당의 비합리성, 거짓말, 폭력과 테러를 이어받았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엄마가 실수로 아이를 때린다(역주: 중공은 역대로 당을 어머니에 비유해왔다. 즉, 중공의 잘못은 마치 엄마가 실수로 아이를 때린 것처럼 작은 문제에 불과하며 설령 피해를 입더라도 어머니인 당의 은혜에 고마워해야 한다는 논리를 비유한 것.)’는 것인데 바로 피해자가 드러내는 비합리성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피해자는 과거에 박해당한 경험 때문에 ‘당’에 대해 뚜렷하거나 혹은 잠재의식적으로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불가사의한 것은 일부 피해자들이 XX당 정권의 붕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XX당은 소위 ‘XX당은 중국 안정의 근본이다’, ‘XX당이 없으면 누가 중국을 통치할 수 있는가’ 등의 거짓 명제가 널리 인정받거나 혹은 묵인되고 있다.

사실, 자세히 생각해보면 곧 분명해 진다. 이런 사유는 비정상적인 것이다. 폭력 침해를 당한 피해자들은 범죄자가 계속해서 자신의 주변에서 악을 행하기를 누구도 원하진 않지만 응분의 제재를 받지 않기를 희망하는데, 이것은 정상인의 사유가 아니다. 이것은 사실상 사람의 사유(思惟)가 아니며, 이것은 사령 부체의 사유이다. 고인(高人)이 이미 설명한 적이 있듯이 XX당은 사령 부체이다. 당문화는 매 사람의 몸에서 체현되는데 사실은 바로 이 사령이 인류의 사유를 통제한 결과이다. XX당의 멸망에 대해 두려움과 망망함을 느끼는 것은 사실 사람의 감정이 아니라 그 사령 부체의 두려움이다. 때문에, 당문화를 해체하지 않고, 사령 부체를 해체하지 않으면 정상인의 인성을 회복하기 힘들다.

소동파의 시 《제서림벽(題西林壁)》에서
“橫看成嶺側成峯 옆으로 보니 고갯마루요, 또 곁으로 보아도 봉우리로다.
遠近高低各不同 멀고 가깝고, 높고 낮음이 저마다 같지 않구나.
不識廬山眞面目 여산의 참 모습 알기 어려우니,
只緣身在此山中 이는 단지 내 몸이 이 산중에 묻혀 있음이로다.”라고 읊었다.

XX당을 평론, 연구하거나 심지어 크게 욕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만약 자신의 몸에 붙어있는 사령을 제거하지 않고, 그 사령이 우리에게 당문화의 관점과 방법으로 XX당을 보도록 강요한다면, 어떻게 XX당의 ‘진면목’을 알 수 있겠는가!?

왜 당문화를 해체해야 하는가? 이는 XX당을 해체하기 위함인가? 물론 주요 목적은 그것이 아니다. XX당은 겉보기에는 강대해 보이지만, 신불(神佛)의 눈에는 여전히 새끼손가락으로 비빌 나위도 없는 것이다. 당문화의 통제를 받고 사령 부체의 노예가 되어 XX당 사령을 인정하는 사람이 정상적인 인류인가!? 신불(神佛)은 사람에게 자비롭다. 당 문화를 해체하고 사령 부체를 없애는 것은 바로 사람들에게 인성을 회복할 수 있는 또 한 차례의 기회를 준 것이다. 이 세계는 인류의 세계이다. 하늘이 중공을 멸하려 할 때, 여전히 그 사령 부체가 달라붙은 ‘비정상’적인 사람들은 어떻게 되겠는가?

당문화를 해체하고, 자신의 몸에서 사령 부체를 없애는 것은 자신을 구하는 것일뿐만 아니라 또한 타인을 구하는 것이고, 민족을 구하는 것이다. 당문화가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이 하나 줄어들면, XX당이 악을 행할 수 있는 힘이 그만큼 줄어든 것이다. 자신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 자신의 미래를 귀중히 여기는 것으로 우리 모든 사람이 진지하게 고려해야 할 문제이다! 기회는 항상 있는 것이 아니다! 빨리 서두르자!


정견문장 : http://zhengjian.org/zj/articles/2006/9/14/3999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