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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大三合六生七八九(대삼합육 생칠팔구) ♣
대삼합육은 글자 그대로 큰세개를 더하면 육이된다는 이야기다. 여기서 큰 세개란 무엇일까? 고민할 필요도 없이 바로 천지인의 삼극 이다. 즉 天의 數 一과, 地의 數 二와, 人의 數 三을 합하면 六이 된다는 말이다. 이 당연한 덧셈을 왜 하고 있을까? 앞에서 하늘의 수가 네 가지였다. 일一이삼, 땅의 수는 일二이삼, 사람의 수는 일三이삼, 여기에서 천지인이 가지고 있는 고유수 하나씩을 빼면 1+2+3은 모두 6으로 같다는 말이다.
즉, 天地人은 同本異象이란 말이다. 하늘의 수도 6이요, 땅의 수도 6이요, 사람의 수도 6이다. 따라서 천지인의 三極이 모여있는 합일된 상태인 太極의 수가 바로 <666>이다. 삼극이 한자리에 모인 대삼의 수인 것이다. 天符經 여든한(81)글자를 세개의 숫자로 압축하면 <666>이란 수가 나온다. 많이 본 것 같은 數일 것이다. 맞다.
요한이 묵시록에서 짐승의 수로 지칭했던 바로 그 숫자이다. 東洋思想을 숫자로 상징하면 <666>이 나오는데 幻像을 보고 있던 요한 의 混沌된 뇌리에 왜 이 숫자가 떠올랐을까? 그렇다, 末世에 基督敎의 가장 커다란 적이 바로 동양의 精神이라는 것을 요한은 豫言的인 幻覺 속에서 보았던 것이다. 기독교를 崩壞시키고, 滅絶시킬 巨大한 힘의 象徵을 이 숫자로 보았다. 그리고 요한은 그 정체를 사탄을 追從하는 짐승으로 적었던 것이다.
이 요한의 黙示錄과 우리 韓民族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두개의 대립되는 豫言書 요한啓示錄과 鄭鑑錄을 대조 분석하면 未來世의 방향을 알 수 있다. 정다운 스님의 정감록해설은 모두 틀렸다. 정감록은 그렇게 푸는 것이 아니다. 이 <666>이란 수자에 얽힌 東西洋 二大문명의 衝突과 그 終末을 天符經 해설이 끝나는 대로 알려 드리겠다. 그건 일단 뒤로 미루고, 뒷 구절을 보자. 生七八九, 칠팔구가 생긴다고 했는데, 이 칠팔구를 더하면 천하의 절기가 스물네개이다. 일년의 운행이 24로 나누어지는 것이다.
삼극이 존재하면서 우주의 운행이 시작됨을 말하고 있다. 음양이 조화를 이루면서 천지가 돌기 시작하는 것이다. <666>이란 數字를 본 김에 잠깐만 옆길로 새자. 물론 천부경과 관련이 있는 이야기다. 요한이 계시록에서 기독교의 최후의 적을 <666>으로 상징되는 동양의 정신으로 보았고 그 化身인 짐승들로 보았는데, 그 짐승들은 누구이겠는가?
천부경으로 이어진 한思想의 아들들, 그 옛날 桓因이 통치하던 天界의 후손들 ... 바로 우리민족이다. 倍達民族의 이마에는 이 한사상 이 지울 수 없게 각인되어 있다. 우리들의 이마에는 <666>의 表象이 찍혀 있는 것이다. 이것은 누구도 否定할 수 없고, 누구도 지우지 못한다. 설사 그가 독실한 기독교신자라 하더라도 그의 영혼은 한사상이 출렁 거리는 삼신의 세계이다. 요한에 비견되는 우리의 대예언가 천표律師의 심안에 반대로 그들은 무엇으로 보였을까? 마찬가지로 짐승으로 보였다. 그것은 푸른원숭이었다.
인류의 역사에서 주인공은 어느 민족이었을까? 많은 주연들이 무대위에서 조명을 받고 활약을 보이다가는 사라져 갔다. 그런데 영화의 주인공은 중간에 사라지거나 나중에 나타나거나 하지 않는다. 처음부터 등장해서 영화 끝날 때까지 나오는 게 진짜 주인공이다. 물론 마지막에 죽는 수는 있지만. 그건 영화가 끝나는 순간이다. 주인공이 중간에 죽어버리는 영화는 아직 없다. 그렇다면 희랍은 주인공이 될 수 없다.
로마도 잠시 동안의 주역이었지 진정한 주인공은 아니었다. 始皇帝의 晉도 그렇고 진기스칸의 蒙古도 마찬 가지다. 사라센도 영국도 미국도 모두 아니다. 세계사의 처음부터 등장하여 최후까지 남으면서 人類史라는 영화의 줄거리의 중심에 서있는 두 주인공이 있다. 화면에는 석양의 노을빛이 흐르고 두 주인공이 황야에 마주서 있다. 엔리오 모리코네의 음악이 흐르고 두 주인공은 총을 뺀다. 둘중에 하나가 말을 타고 황야 저멀리 사라지면 영화는 끝이다. 인류사라는 서부극에서 이 두 주인공의 이름은 유대민족과 韓민족이다. 무슨 황당한 소리? 하실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고, 定해진 神의 계획이다. 두 민족은 주인공만이 가지는 공통적인 특징을 완전히 동일하게 가지고 있다. 두 민족은 地球上에 거의 같은 時期에 나타난 最初의 人類였다. 이 과정의 비밀은 다음에 "선천기"를 올릴 때 상세히 들려 드리겠다. 지구상의 모든 민족은 이 두 민족으로부터 뻗어나간 傍系가족들이다. 물론 上古時代에 이 두 민족은 地球의 지배자였다. 한쪽은 아프리카와 南美와 大西洋을 지배했고, 한쪽은 아시아 전체의 지배자였다. 두 민족은 거의 같은 시기에 그들의 방계인 민족들의 강성 함에 눌려 역사의 助演으로 전락하게 된다.
유대민족은 이집트와 로마를, 배달민족은 황하유역의 황토인들에게 일시 그 주인공 자리를 내주게 되는 것이다. 모든 액션 영화가 다 그렇지만 주인공은 꼭 악당들에게 잡혀 위기의 순간을 맞는다. 두들겨 맞고 고문당하고 비참함에 빠진다. 그러나 주인공은 절대로 죽지 않는다. 그리고 영화는 그들로 해서 스토리가 이어져 가야 한다. 두 주인공은 거의 같은 시기에 같은 이유로 무대에서 사라지게 되는데, 이건 복수를 위해 주인공이 잠깐 도피하는 시기가 되는 것이다. 그들이 사라진 뒤, 세계사는 그들과는 전혀 무관하게 움직여나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실상 이 세계는 그들 두 민족이 움직여 온 역사이다. 유대민족의 기독교가 지구의 절반쪽 역사를 결정지었고, 배달민족의 한사상이 나머지 절반을 儒佛仙으로 움직였다. 군사력, 경제력, 기술력을 앞세운 주인공들은 반짝 연기로 사라졌지만 이 두 주인공의 힘은 始終一貫 세계를 움직였다. 두 주인공 민족의 정신이 세계를 움직인 두개의 軸이었던 것이다. 兩大민족은 종교적으로 "選民사상"이라는 공통의식을 가지고 있다.
세계에서 신에게 선택된 민족이라는 의식은 이 두 민족만이 보이는 특질이다. 그들의 신은 아브라함의 신이고 모세의 신인데 반해 우리의 신은 桓因이요, 환웅이며 단군으로 이어졌다. 이 두 민족만이 神이 지정해준 땅을 가지고 있는 시오니즘의 뿌리를 갖고 있다. 그들의 신이 지정해 준 땅은 가나안이요, 우리의 환인(하늘님)이 지정해 준 땅이 신시로부터 발원한 韓半島였다. 이 두 민족만이 상고시대부터 바꾸지 않는 유일한 가치를 유지시켜 왔다.
유대사상과 한사상이다. 이 두 민족만이 고등한 이념과 교리의 체제를 담고 있는 경전을 가지고 있다. 바이블과 삼대성서(천부경, 삼일신고, 참전계경)가 그것이다. 이 두 민족만이 세계에서 유일한 예언서를 가지고 있다. 그들의 것은 舊約과 모든 세기이며 우리의 것은 신지와 정감록이다.
이 두 민족만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인류사의 마지막에 대한 개념과 철학적 토대를 가지고 있다. 그들의 종말론을 "末世"라 하고 우리의 것을 "開闢"이라 한다. 그들과 우리는 비슷한 기간 고난의 시기를 견디어 왔다. 그들은 땅을 잃은 채 역사(바이블)에 의지해 고난을 견뎠고, 우리는 역사를 잃은 채 땅(한반도)에 의지해 고난을 견뎠다. 이 두 주인공은 영화의 클라이막스에 화려하게 등장하기 직전에 최후의 위기를 똑같이 맞는다.
유대인들은 나치에 의해 말살의 위기를 맞았고, 우리는 倭人들에게 말살의 위협에 직면했다. 두 민족은 똑 같이 최후의 시련을 견뎌냈으며 이제 악당들에게 빼앗겼던 그들의 무기를 찾고 있다. 유대인들은 잃었던 땅을 찾았고, 우리는 잃었던 역사를 찾고 있다. <땅을 잃고 영혼만으로 大地를 방랑하는 자가 땅으로 돌아가고, 영혼을 잃고 땅에 뿌리박혀 울던 자가 영혼을 찾으면 그것이 개벽의 시작이리라>고 한 신지의 예언이 적중하고 있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바야흐로 두 주인공이 역사의 무대에서 단 둘이 마주설 날이 다가오고 있다. 어느 쪽이 정의이며, 어느 쪽이 불의일까? 다음 역사가 그것으로 결정되리라.
유대민족에서 발원된 기독교정신, 그리고 기독교 정신을 씨앗으로 해서 마침내 열매를 맺은 서양의 문화를 압축해서 표현한다면 무엇이 될까? 나는 그것을 <자유와 평등>이라고 생각한다. 이 자유의 정신은 근세 이후에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로 꽃피었다. 평등의 사상은 필연에 따라 사회주의를 잉태하여 공산주의를 낳고, 반세기 에 걸쳐 평등의 아들이 지구의 반을 붉은 색으로 물들였다.
초기 아담스미스를 비롯한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창시자들이 대부분이 유대인이었음과 공산주의를 만든 칼 마르크스가 유대인이었다는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천부경으로 시작된 한사상이 모든 것의 뿌리가 되고 있는 동양 문화의 본질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조화와 질서>였다. 아마겟돈은 자유와 질서의 전쟁이고, 평등과 조화의 전쟁이다. <자유와 평등>이 승리하면 말세요, <조화와 질서>가 승리하면 개벽이 될 것이다.
남녀가 평등한 사회와 남녀가 조화하는 사회간의 전쟁이요, 아버지와 아들이 자유로운 사회와 부자지간의 질서가 엄정한 사회간의 전쟁이다. 신 앞에서 만인이 평등한 세계와 신과 인간이 조화를 이루는 세계간의 전쟁이다. 인간이 자연에 대해 자유로운 문명과 인간이 자연의 질서에 따르는 문명 간의 충돌이다. 아마겟돈은 <자유와 평등> 그리고 <조화와 질서> 이 둘 중에 앞으로의 인류가 어느 것을 택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종말이다.
<자유와 평등>은 인류를 몰락으로 인도할 것이고, <조화와 질서>가 인류를 질곡에서 끌어내는 구원의 밧줄이 될 것이다. 다음 세기의 개벽은 인류를 <조화와 질서>의 세계로 인도하게 될것이다. "음이 양을 지배하여 둘로 가르면 후천개벽의 징조이다." 신지의 이 예언은 무엇을 말하는가? 음의 인류, 서양인들이 양의 인류의 적자인 한민족을 지배해서 둘로 갈라놓는다는 말이다.
오늘의 分斷상황이다. 반(북한)은 평등의 이름으로 지배하고 있고, 나머지 절반(남한)은 자유의 이름으로 지배하고 있다. "양이 음을 초극하여 하나가 될 때 새로운 하늘이 열리리라." 이 예언은 통일한국이 남쪽의 천민자본주의와 북쪽의 교조사회주의를 동시에 극복해 갈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자유에 의한 무한경쟁의 자본주의와 평등에 따른 강제행복의 공산주의, 어느 쪽도 아닌 <조화와 질서>에 바탕한 새로운 국가, 새로운 사회의 건설이 있게 될 것이다. 이 새로운 국가의 형태가 후천사의 세계인류의 따라오는 바가 될것이다. 인도시인 타고르가 말한 동양의 횃불이 불확실한 인류의 미래를 밝히게 될 것이다. 이것이 정감록이 말하고 있는 "개벽"의 요체이다. 우리가 세계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세계가 우리를 따라오게 될 것이다. 다음의 세기는 찬란한 동양정신, 한사상의 세기이다. 한민족은 인류사의 주인공으로 찬란하게 복귀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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