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H] 땅덩이가 넓어 대륙이라고도 부르는 중국. 많은 정치사건이 발생하는 중국에서 그중 특히 비중이 있는 사건 뒤에는 신기하게도 최악의 지진 대참사가 발생했다.


중국 역사상 격동의 한 해였던 1976년, 1월에는 '영원한 총리'로 불리는 저우언라이(周恩來·1898∼1976)가 사망했고, 4월에는 중국 공산당 수립 후 가장 큰 유혈 민주항쟁인 톈안먼(天安門) 시위가 발생했다. 그로부터 약 3개월이 지난 7월28일 오전 3시42분(현지시간), 허베이(河北)성 탕산(唐山)시에서 규모 7.5의 지진이 발생했다. 또 지진 직후인 9월에는 마오쩌둥(毛澤東·1893∼1976) 국가 주석이 세상을 떠나면서 중국은 대 격변에 휩싸였다.


당시 세계 각국은 많은 관심을 보이며, 구조팀과 의료단, 원조 물자 등을 준비했지만 중국 공산당 정부는 문화대혁명을 관통하고 있던 '자력 회복'을 이유로 외국의 원조를 거부했고 10년간 외국인의 출입까지 통제했다.


정부는 당시 지진피해 상황에 대한 보도를 엄격히 통제했으며, 각 언론에 긍정적인 내용만 보도할 것을 지시했기 때문에 인적·물적 피해는 정확히 보도되지 못했다.


3년 후인 1979년에서야 탕산 대지진으로 인한 사망자 수가 24만2천명, 부상자는 16만4천명이라는 공식 보도가 나왔다. 이 지진은 2012년 아이티 대지진으로 31만6천명이 숨지기 전까지 '1900년 이후 최악의 지진'으로 기록됐지만 서방 언론과 전문가들은 탕산 대지진으로 인한 실제 사망자는 65만5천∼79만9천명에 이를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중국 공산당은 이 지진에 대한 정부 주도의 추도식을 발생 30년 후인 2006년 7월28일에야 처음으로 개최했다.


탕산 지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2010년 3∼4월 규모 4.1∼4.2의 여진이 발생했고, 한 달 뒤에도 규모 3.2의 여진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같은 해 개봉한 펑샤오강(馮小剛) 감독의 영화 '탕산 대지진'은 중국 영화사상 최고의 흥행기록을 냈다.


또 2008년 5월 쓰촨(四川)성에서 발생한 규모 8.0의 강진도 앞서 같은 해 3월 티베트 수도 라싸(拉薩)에서 분리독립 요구 시위로 22명이 숨진 직후에 발생했다. 당시 지진으로 8만7천명이 목숨을 잃었다. 재앙은 항상 인간이 저지른 罪가 하늘에 사무치면 나타나는 神이 인간에게 내린 천벌(天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