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세상의 말,말,말…

2주에 1종 사라지는 언어, 지식의 보고도 함께 사라져

▲ 센트럴 오스트레일리아에 자리잡은 울루루 에어즈락. 호주는 90년대부터 토착민의 언어와 영어식 이름을 병기하는 정책을 채택, 울루루처럼 부분적으로나마 토착민의 명칭을 되찾았다. 하지만 호주는 여전히 가장 빠른 속도로 토착민의 언어가 사라지는 지역 중 하나로 꼽힌다.
ⓒ AFP/Getty Images
“언어가 생물의 멸종위기를 훨씬 능가하는 전 지구적 사멸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미 펜실바니아주 스워스모대 데이비드 해리슨 교수는 현재 지구상에 남은 7000종의 언어 중 절반이 21세기 말에 사라질 것이라 예측하며 이같이 경고했다.

해리슨 교수는 사멸위기언어연구소(LTIEL, 미 오리건주 소재, 이하 ‘연구소’)의 그레고리 앤더슨 교수와 함께 미국국립지리학회(National Geographic Society)의 인듀어링 보이시즈(Enduring Voices)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전 세계에서 현지조사를 진행 중이다.

두 학자에 따르면, 지난 500년 간 전 세계 언어의 절반이 이미 사라졌다. 현재 2주에 1종 꼴로 언어가 사라지고 있으며, 10명 미만의 극소수만이 사용하는 언어도 500종이나 되는 형편이다.

◇ 사회경제적 유인과 공식어 정책, 소멸 부추겨

언어가 사라지는 요인은 크게 자연적 도태와 사회적 요인으로 나눌 수 있다.
소수에 불과한 언어집단이 자연재해를 당할 경우 하루아침에 해당 언어가 없어진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주로 식민지 지역에서 채용하는 공식어 정책과 소수언어사용자들이 경제사회적 유인으로 지배적 언어를 선택하는 경향이 맞물려 소수집단의 언어가 사라진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경우, 50종이나 되는 토착어가 존재했으나 그 중 학교에서 가르치는 언어는 단 하나도 없다.

해리슨 교수는 특히 어린이들이 가장 주요한 결정자라고 강조한다. 그는 “어린이들은 사회적 특권의 지표”라며, “어린이들이 두 언어 환경에서 살고 있을 경우, 한 언어가 다른 언어보다 더 가치 있다는 점을 내재적으로 이해하며, 더 가치 있는 언어를 말하려 한다”고 설명했다.

앤더슨 교수도 사회적 요인이 가장 중요하다는 점에 동의하며 “한 집단이 자신들의 언어가 사회적 또는 경제적으로 방해 요인이 된다고 결정할 때 언어가 사멸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두 학자는 6살 어린이가 자신들의 언어가 가치 있다고 느낄 수 있어야만 언어가 보전될 수 있다는 점에 동의했다.

◇ 세계인구 0.2% 세계언어종의 절반 이상 사용

두 학자가 이끄는 프로젝트 팀은 언어의 다양성과 사멸위험 정도를 고려해 세계에서 언어의 사멸위기가 가장 심각한 지역을 지정해 사이트(www.nationalgeographic.com/mission/enduringvoices) 에 발표했다. 시베리아 중부와 동부, 호주 북부, 중남미, 미국과 캐나다의 북서태평양 인접 주 등 러시아어, 스페인어, 영어 등이 공식어인 곳들이 여기에 해당됐다.

특히, 호주 북부의 경우는 153종의 언어가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었다. 호주는 토착민 집단의 규모 자체가 원래 작은 데다, 이마저도 백인들과 갈등 속에서 흩어져버려 토착어의 보존이 어려웠다고 연구소는 설명했다. 남부 태즈매니아 섬을 비롯하여, 호주 남부와 동부의 토착민 언어는 이미 사라졌다. 그나마 북부지역에 한정돼 사용자들이 있었으나, 이도 극소수에 불과했다.

지난 7월 이 지역을 방문한 프로젝트 팀은 25년 전에 사라진 것으로 추정했던 아마라그어의 마지막 사용자를 만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사용자는 지난 50년간 아마라그어를 사용한 적이 없어 단어를 기억하는 것조차 힘들어 했다고 한다.

한편, 시베리아 동부는 지역적으로 러시아, 중국, 일본에 걸쳐 있는데, 주로 해당 국가의 공식어에 밀려 소수민의 언어가 위기를 맞는 경우였다.

사멸위기언어연구소는 많은 사용자의 언어는 더욱 득세하고, 소수자의 언어는 더욱 세력을 잃는 경향은 인간사에서 늘 반복돼 왔던 점임을 전제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그 속도가 더욱 빨라지고 있는 점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연구소 발표에 따르면, 전 세계 인구의 약 80%가 세계 언어의 1.1%에 해당하는 83종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 반면, 세계 인구의 0.2%만이 세계 언어의 절반 이상에 해당하는 3,586종 언어를 사용한다.

◇ 동식물 지식보고인 소수민 언어들

해리슨 교수는 한 언어의 사멸은 곧 그 언어가 담고 있는 동식물, 수학, 시간 등에 대한 지식의 영원한 소멸을 의미한다며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과학이 밝혀내지 못한 생물종이 80%가 됩니다. 하지만 이 말이 곧 인간들에게 그것들이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진 않습니다. 그 생태 환경 내에서 사는 사람들을 그 종들을 아주 친숙하게 알고 있습니다. 또 그 사람들의 분류 방법은 과학의 것보다 훨씬 섬세하기도 합니다. 그 사람들이 수백 년에 걸쳐 이룩한 지식과 발견을 우리가 내던져버리는 셈입니다. ”

연구소가 소개한 사례 중 하나는 대만 남부의 이랄라(Irala)섬에 사는 야미족이다. 주로 여름철에 잡는 날치를 주요 생계 수단으로 삼는 이 부족은 날치 450종에 해당하는 단어를 갖고 있다.

크게 식용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으로 나누고 그 다음 여성이 먹는 것과 남성의 것 등으로 나누어진다. 현재 3,000명 정도가 남은 야미족의 날치에 대한 지식은 바로 그들 언어 속에 저장돼 있는 셈이다.

해리슨 교수는 내셔널지오그래픽 뉴스와 인터뷰에서 지난 호주 방문 중에 만난 한 할머니의 모습에서 희망을 발견한다고 전했다. 야우루라는 토착어의 마지막 세 명 사용자 중 한 명인 이 여성은 학생들에게 약초식물에 대한 강의를 하고 있었다. 자발적으로 강의를 신청한 학생들은 식물들의 이름을 해당언어로 반복해서 발표했다. 해리슨 교수는 이 장면을 “지식의 전수가 이뤄지는 순간”이라며 자신들에게 영감을 부여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