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낳는새-詩 낙서장 2011. 11. 5. 14:48


나무를 낳는 새
유하

찌르레기 한 마리 날아와
나무에게 키스했을 때
나무는 새의 입 속에
산수유 열매를 넣어주었습니다


달콤한 과육의 시절이 끝나고
어느 날 허공을 날던 새는
최후의 추락을 맞이하였습니다
바람이, 떨어진 새의 육신을 거두어 가는 동안
그의 몸 안에 남아 있던 산수유 씨앗들은
싹을 틔워 잎새 무성한 나무가 되었습니다
나무는 그렇듯
새가 낳은 자식이기도 한 것입니다


새떼가 날아갑니다
울창한 숲의 내세가 날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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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한 안개에 갇혀 나는 섬이 된다.
보름달처럼 해가 떴고 흥건히 젖은 참나무와 벚나무가 흐릿하다.
약속처럼 모든 물상이 알 수 없는 곳에서 조잘댄다.
파르르 떨듯 행복한 눈물이 저런 것일까?


나의 전생은 찌르레기였는지 아랍을 떠돌던 방물장수였는지 가끔 구름을 쳐다보며 넋을 잃거나 별을 바라보며 멍해지는 걸 보면 불가사리 새끼였거나 태양이 두 개인 우주의 별똥이었거니 산수유 열매 되어 붉어졌거나 직박구리 혀에 감긴 좁쌀이었다가 내가 너이고 그였다가 우리가 된다.


응달진 길을 에돌아 고단한 적 없지 않았으나 달콤한 시절도 있어 은혜로운 이 가을쯤이 나의 정수리가 아닐까.
예고 없이 찾아오는 당신, 나의 육신을 거두어 가시라.
저 깊고 어두운 곳으로 데려가 과일나무의 뿌리가 되어 노동의 존귀함을 깨우치게 하시라.
쓸모 없는 은사시잎의 몸부림을 겸허히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하시라.
최후의 추락은 부활이며 환삼덩굴처럼 얽힌 순환이다.


이 가슴 시리게 생명과 우주의 위대한 사랑을 배우게 하시라.
외로움을 견딜 수 없어 늘 푸른 소나무도 속잎이 붉어졌으니 싸리잎까지 도르르 말려서 엇갈린 그대에게 편지를 씁니다.
지천으로 어울려 핀 개여뀌와 고마리 섶을 헤치며 당신이 아닌가 하여, 그대의 내세인 별천지에서 이만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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