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어느 고을에 총명하고 마음씨 착한 봉이라는 소년이 있었습니다. 봉이의 어머니는 심보가 나빠서 몸져누운 시아버지를 구박하는 못된 며느리였고 아버지는 게으르며 뭐든지 부인의 말만 따르는 못난 사람이었습니다.

봉이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병상의 할아버지를 극진히 모셨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이 깊도록 할아버지 방에서 어깨와 다리를 주물러 드리며 말동무를 해드리던 봉이는, 할아버지가 잠이 드신 뒤 슬그머니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는데, 우연히 안방에서 부모님이 나누는 밀담을 듣게 되었습니다. “여보, 언제까지 이렇게 병든 아버님을 모시고 살아야 하는 거예요?” 어머니는 앙칼진 목소리로 쏘아붙였습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병든 노인네 수발하다 잘못하면 내가 먼저 죽겠어요.” 이에 봉이 아버지가 그렇지만 어쩌겠소. 여하튼 돌아가실 때까지는 모셔야지.”

봉이는 부모님의 비밀이야기를 듣고 몹시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때, 어머니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다시 말했습니다. “내게 좋은 생각이 있어요. 당신이 내일 아침 아버님을 지게에 지고 산에다 두고 오세요.” 화들짝 놀란 아버지가 아니, 그게 무슨 소리요? 아무리 모시기가 어렵다 해도 어찌 그런 생각을...” 이에 봉이 어머니는 당신 고려장이란 말도 못 들어봤어요? 늙은 노인을 산에다 버리는 것은 예부터 있어 온 풍습이라고요.”

부모님이 나누는 이야기를 밖에서 듣고 있던 봉이는 너무도 놀랍고 슬펐습니다. 그날 밤 봉이는 한잠도 자지 못했습니다. 내일이면 아버지는 어머니의 말대로 할아버지를 산에다 버리고 올 것이 뻔했습니다. 봉이는 할아버지가 가여워서 눈물이 났습니다. 할아버지가 아버지를 기르실 때는 얼마나 귀여워하셨을까, 얼마나 소중한 자식으로 생각하셨을까? 이를 생각하니, 부모님이 미워졌습니다. 그러다가 봉이는 문득 한 가지 묘안이 떠올랐습니다.

아침이 되자, 봉이의 어머니는 그나마 조금은 양심이 남아 있었던지 할아버지의 진짓상을 다른 날보다 잘 차렸습니다. “오늘이 무슨 날이냐? 웬일로 생선 토막이 다 상에 올랐구나!” 할아버지는 밥상 곁에 앉아서 가시를 발라드리는 봉이에게 말했습니다. “할아버지, 오늘부터는 아버지 어머니가 할아버지를 더욱 잘 모시려나 봐요아침 식사가 끝나자 봉이 어머니는 할아버지의 옷을 갈아입혔습니다. “새 옷을 입으니까 기분이 좋구나.” 할아버지는 싱글벙글했습니다. “아버님, 제가 모처럼 산에 모시고 가서 맛있는 실과를 따드릴 테니 지게에 앉으시지요.” 봉이 아버지가 지게를 가져와서 말했습니다. 할아버지는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고 지게위에 앉았습니다. “아버지, 저도 같이 가겠어요.” 봉이는 이를 놓칠세라 얼른 따라나섰습니다. “봉이 넌 집에 있거라.” “봉아, 내가 찰떡을 만들어 줄 터이니 너는 집에 있거라." 아버지와 어머니가 말렸지만 봉이는 한사코 할아버지를 따라가겠다고 우겼습니다. 아버지는 할 수 없다는 듯 봉이를 데려가기로 했습니다.

산으로 가는 도중, 할아버지는 지게위에서 잠이 들었습니다. 아버지는 좋은 기회라 생각하며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봉아, 너도 알고 있겠지만 할아버지는 너무 오래 사셨어. 네 어머니와 나는 더 이상 할아버지를 모시기가 힘이 드는구나. 그래서 오늘은 할아버지를 산 속에다 버리러 가는 길이다. 알겠니?” “, 알겠어요. 정 모시기 힘드시다면 어찌할 수 없는 일이지요.” 봉이는 태연하게 말했습니다. 할아버지와 정들었던 봉이였던지라, 그런 말을 들으면 몹시 놀라고 가슴 아파하리라 생각했던 아버지는 내심 놀랐습니다. “네가 부모를 이해해 주는 것을 보니 이젠 다 컸구나!” 아버지는 조용히 말했습니다. 드디어, 산 속 깊은 곳에서 아늑한 장소를 발견했습니다. “저 바위 아래가 좋겠군.” 아버지는 중얼거리며 그곳에다 지게를 내려놓았습니다.

할아버지는 여전히 지게위에서 잠들어 있었습니다. 잠든 것이 오히려 잘 됐다고 생각한 아버지는 봉이를 데리고 재빨리 그곳을 떠나려 했습니다. “아버지, 저 지게는 가지고 가야지요.” “아니다. 할아버지를 지게에서 내려놓으면 깨실지도 모르니 우리는 그냥 내려가는 게 좋겠다.”아버지는 봉이의 팔을 끌었습니다. “안 돼요 아버지. 저 지게를 꼭 가져가야 해요봉이는 고집스럽게 버텼습니다. “아니, 왜 꼭 지게를 가져가겠다는 거냐?” 아버지가 짜증스러운 듯이 말했습니다. “당연하잖아요? 이다음에 아버지나 어머니가 늙고 병들면 저도 산에다 버릴 때 이 지게를 쓰겠어요.”

봉이의 말을 들은 아버지는 한동안 아무 말도 못하고 입을 벌린 채 멍하니 서 있었습니다.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렇지, 나도 언젠가는 늙고 병드는 날이 있겠지. 그러면, 우리 봉이 녀석이 나를 지게에 지고 산으로...’ “아버님, 이 불효자식을 용서해 주세요. 지금까지 아버님을 잘 모시지도 못하고, 더구나 이 산속에다 아버님을 버리려 했으니 저는 참으로 몹쓸 자식입니다. 부디 저를 용서해 주세요. 앞으로는 정말 잘 모시겠습니다.” 아버지는 잠든 할아버지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참회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마음씨 곱고 지혜로운 아들 봉이 덕분에 자신의 불효를 깨닫게 된 아버지는 그 뒤 누구보다도 할아버지를 극진히 모시는 효자가 되었습니다. 봉이가 한 말을 전해들은 어머니도 역시 자기 잘못을 뉘우치고 참으로 효성스러운 며느리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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