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옛날에 농사를 짓는 형제가 서로 의지하며 살고 있었다. 어느 날 형이 중병에 걸려 생명이 위태로워지자 동생을 불러놓고 말했다. “아우야, 나는 곧 죽을 것 같구나. 이 집과 밭은 모두 네게 남겨주마. 앞으로 부디 열심히 농사를 지어 네 혼자 힘으로 살아가거라. 또 혹 있을지 모를 불의의 일을 대비해 네게 이 상자를 하나 주마. 이 속에는 값을 매길 수 없는 귀한 보물이 들어 있단다. 하지만 네가 더는 어쩔 수 없을 때 외에는 팔거나 열어보지도 말아라, 내 말을 명심해야 한다.”

동생은 눈물을 흘리면서 고개를 끄덕였고 형은 말을 마친 직후 세상을 떠났다.

동생은 형의 유언을 가슴에 새기고 매일 열심히 일했고 조금도 태만하지 않았다. 이리하여 비교적 평탄하게 몇 년이 지나갔다. 그러던 어느 해 큰 가뭄이 들어 수확할 곡식이 거의 없었다. 작년에 비축해놓았던 식량도 이미 다 먹어버린 상태였다. 동생은 자신도 곧 끝장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때 그는 문득 형이 임종 직전 자신에게 남겨준 보물상자를 떠올렸다. 이에 이튿날 성안에 들어가 보물을 팔기로 작정했다.

이튿날 동생이 성안에 들어가 보석상을 찾아가 주인에게 말했다. “보시기에 이 보배가 어느 정도 가치가 있습니까?” 주인이 상자를 받아 열어본 후 잠시 침묵에 잠겼다. 그런 후 상자를 동생에게 되돌려주며 말했다. “당신의 이 보물은 내가 살 수 없는 것이니 다시 가져가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내 보기에 당신이 곤경에 처한 것 같으니 은화 20냥을 빌려드립니다. 나중에 당신에게 돈이 생기면 갚고 그렇지 않으면 내가 준 것으로 칩시다. 어떻습니까?”

동생은 매우 이상한 생각이 들어 상자를 열어보았다. 그러자 그 안에는 아무 것도 없고 다만 한 장의 종이만 들어있을 뿐이었다. 종이 위에는 양심(良心)’이란 두 글자만 씌어 있었다. 동생은 그 자리에서 눈물을 흘렸고 형의 고심한 마음 씀씀이를 느낄 수 있었다. 살아남기 위해 그는 주인이 빌려준 20냥의 은화를 감사하게 받았다.

농작물이 이미 모두 죽었기 때문에 동생은 돌아가는 대신 성내에 남아 자그마한 장사를 시작했다. 1년 후 동생의 사업은 갈수록 잘 되어 곧 빌린 20냥을 돌려줄 수 있었다. 동생은 또 보석점 주인에게 많은 선물을 보내 감사의 뜻을 표시하려 했지만 주인은 한사코 받기를 거절했다.

이 따뜻한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아주 선량하다. 이 이야기가 중국의 어느 시대에 전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일화는 과거 중국인들이 양심을 아주 소중히 여겼으며 양심이 일찍이 중국사회에서 널리 퍼진 보편적 가치관이었음을 알려준다. ‘양심을 소중히 여기는 사회환경 속에서 사람이 양심을 팔 때는 형세가 극히 나빠 아주 위험한 때일 것이다.

이런 때에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양심에서 우러난 도움을 주었고 도움을 받은 사람 역시 감사한 마음을 지니고 은혜를 잊지 않았다. 총명한 형이 종이를 남겼을 때 당시 사회에는 일종의 신뢰와 긍정이 있었다. 이 이야기는 우리가 아주 어릴 때부터 양심이 사람의 생명 중에서 생명과 마찬가지로 높은 가치가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려주었다.

그러나 사회가 발전함에 따라 사람의 도덕관과 가치관에도 서서히 변화가 발생했다. 사람의 관념은 사람의 행위를 이끌어내는데 이 이야기는 사람들이 모두 양심은 값을 매길 수 없을정도로 귀하다고 여길 때에만 성립될 수 있다. 만약 이 이야기가 지금의 중국사회를 배경으로 한다면 많은 사람들은 단지 우스갯소리로 여겼을 것이다. 중국의 공산당문화에 세뇌당한 지금의 중국인들은 이 이야기의 진정한 뜻을 이해하기가 아주 어렵다. ‘양심이란 두 글자는 이미 이 사회에서 한 푼의 가치도 없는 것으로 무시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중국사회를 보면 며칠 전 포산(佛山)에서 웨웨(悅悅)라는 두 살 여아가 차에 치어 사망한 사건의 여파가 가라앉기도 전에 쓰촨(四川)에서 또 5세 아동이 차에 반복해서 치이는 사건이 발생했다. 어린 웨웨에게 도움의 손길을 뻗치지 않았던 행인들이나 아이를 죽이기 위해 여러 번 차로 친 쓰촨의 운전사에 대해 전 세계가 모두 비난하고 있다.

냉담하고 마비되어 인성이 없다는 비난이 중국인들과 중국이란 나라에 씌워졌다. 일찍이 양심을 소중히 여겼던 중국은 대체 어디로 갔는가? 중국인들은 대체 어쩌다 지금과 같이 이 모양으로 변했단 말인가? 이 사회는 대체 어찌 될 것인가? 이 모든 것을 이끌어낸 것은 무엇인가?

사실 우리가 이 사회를 비난할 때면 모두 변화가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사회가 비난해서 좋아졌는가? 우리 중국사람들은 한번 생각해봐야 한다. 중국인은 일찍이 양심을 중시하던 민족이었고 남을 돕기를 좋아하던 민족이었으며 도덕이 천하에 가득한 그런 민족이었다. 그러나 양심은 가치를 매길 수 없다는 것을 보편적 가치관으로 지녔던 중화민족은 지금 대체 어디로 갔단 말인가? 이제라도 마땅히 깨어나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