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원 김홍도 그림의 비밀
이상한 그림의 의도는?




▲ 김홍도, <활쏘기>, 종이에 담채, 27×22.7cm. 국립중앙박물관
활쏘는 장정의 이상한 모습. 상체는 왼손잡이, 하체는 오른손잡이의 형태로 되어 있다.

조선 후기 문인화가인 강세황은 자신의 제자인 단원 김홍도(1745∼?)를 가리켜 ‘조선 400년 만의 파천황과 같은 솜씨’라고 극찬했다.


1745년 한양 출신인 그는 외가 대대로 화원(국가에 필요한 그림을 그리는 직업화가)을 배출한 미술가 집안으로, 어려서부터 외가 어른들에게 그림을 배웠다. 김홍도는 오늘날 풍속화가로 알려져 있지만 그가 남긴 그림 주제는 선불(仙佛)을 비롯해 인물, 화과(花果), 금충(禽蟲), 그리고 사실적인 산수화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하다.


그의 대표적인 풍속화 중 하나인 ‘활쏘기’는 아주 재미있는 그림이다. 화면에서 전복을 착용한 교관이 장정들에게 활 쏘는 법을 가르치고 있다. 인물들의 전체 구도는 배경을 과감하게 생략한 역삼각형 구도로 생동감을 주고 있다. 우선 화면 왼편에서 시위를 팽팽히 당긴 장정은 얼굴을 찌푸리고 있다. 긴장한 모습이 역력하다. 그리고 이 상황엔 아무 관심이 없는 듯 자신의 일에 골몰한 두 사람이 오른쪽 상하에 배치되었다. 위쪽은 궁시(弓矢)가 곧고 바른지 점검하고 있고 아래쪽 사람은 다음 차례에 쏘기 위해선지 활을 구부려 줄을 얹고 있다.


그림의 엉뚱함


그런데 이 그림을 좀 더 자세히 관찰해 보면 곧 이상한 점을 한 가지 발견하게 된다. 바로 왼쪽의 활 쏘는 사람의 자세다. 가죽 보호대(습)를 하고 있는 팔을 보면 오른손으로, 그는 필시 왼손잡이다. 그런데 다리 자세를 보면 엉덩이가 뒤로 빠진 것은 둘째치고, 선 자세가 왼쪽 다리를 앞세워 오른손잡이가 취하는 자세다. 상체는 왼손잡이 자세에 하체는 오른손잡이 자세다. 아주 부자연스럽고 바르지 않은, 엉뚱한 상태인 셈이다. 이미 활시위는 한껏 당겨서 있어 좀전까지 다른 곳의 지도는 마무리된 상태일 텐데 진지한 얼굴의 교관은 이 치명적인 결함을 미처 발견하지 못한 것일까?


이대로 화살이 활시위를 떠난다면 명중은 고사하고 제대로 쏘아질지 의문이다. 천재화가 김홍도가 활 쏘는 기본자세도 모르고 붓을 움직였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더군다나 단원을 궁중 화원에 두고 총애한 정조 임금도 50대의 화살을 쏘면 49대가 관중했다는 활의 명수였다고 하는데, 김홍도의 이런 실수를 보고 그냥 넘어가진 않았을 것이다.


만약 이 그림이 뜻밖의 실수가 아니라면 단원은 왜 이런 엉뚱한 자세의 그림을 그렸을까?
최근 한 TV프로에선 단원의 또 다른 그림에서도 이런 비정상적인 상황이 존재하고 있음을 조명한 적이 있는데, 알고 보니 오른쪽과 왼쪽이 뒤바뀐 게 한두 군데가 아니다.


고미술사 연구가들은 결국 이를 단원의 풍속화 전반에 흐르는 익살과 해학, 그리고 재치의 화풍 요소로 해석하고 있다. 이쯤 되면 교관이 근엄하면서도 진지해 보일 수록 학생의 터무니없는 자세는 더욱 부각되어 감상자의 웃음을 터지게 만든다는 점에서 이런 추리는 긍정적이다. 실제로 단원의 스승 표암 강세황은 단원의 많은 그림에 화평을 붙여놓기도 했는데, 그 문장들에서도 또한 해학적인 면모가 엿보여 사제지간의 흥취가 같은 맥락임을 확인할 수 있다.


활쏘기도 자기 수양의 하나


당대 문인화가들이 평하는 단원에 대한 기록을 보면, 수려한 외모와 더불어 인품 면에서도 단원이 교양과 담담함을 중시하여 자기 수양의 풍모를 갖추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사실 활쏘기는 중국의 고대 주나라 때 선비가 갖추어야 할 덕목인 육예(六藝)에 들어 있다. 예(禮), 악(樂), 사(射), 어(御), 서(書), 수(數) 중 사(射)가 바로 활쏘기다.


고대 한국에서도 역대로 임금들이 활쏘기를 권장해 궁중에서 궁술대회가 곧잘 개최되곤 했다. 고래로 전통 궁술은 경쟁을 하되, 오히려 예의를 지키고 습득하는 '다투기'로서, 마땅히 군자가 경쟁을 한다면 활쏘기가 마땅하다고 인식했다.


예기의 ‘사의(射義)’편을 보면, ‘射者 仁之道也 求正諸己 己正而后 發 發而不中 則不怨勝己者 反求諸己而已矣’라는 대목이 나온다. ‘활쏘기란 어짊으로 나아가는 길이다.(활을 쏠 때는) 스스로 올바름을 구해 내 자신이 바르게 된 뒤에야 쏜다. 쏘아서 적중하지 못하더라도 나를 이긴 사람을 원망하지 않고 도리어 나 자신에게서 (잘못을) 찾을 따름이다.’라는 뜻이다. 즉 남을 탓하지 않고 자신을 반성하는 자세를 활쏘기를 통해서 수양할 수도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또 ‘중용’에도 같은 맥락의 말이 있다. ‘활쏘기에는 군자와 같음이 있으니 정곡을 맞히지 못하면 도리어 그 몸에서 (잘못을) 찾는다.’(子曰 射 有似乎君子 失諸正鵠 反求諸其身)


단원 김홍도는 자신의 활쏘기 그림을 감상하는 사람들이 그림 속의 엉뚱한 모양새에 웃음을 터뜨리는 것에 머물지 말고, 나아가 감상자 스스로도 자신을 한 번쯤 돌아볼 것을 권유하려는 것은 아니었을까.

대기원시보이승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