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의 얼굴을 가진 인도
[인도에 관한 사실들 ②]
인도를 여행한 한국 사람들의 소감은 대개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하나는 교통, 숙식, 사회 인프라 사정이 열악하고 기후가 맞지 않아 크게 고생을 했다는 것과, 그런 속에서도 인도와 인도인들의 순수하고 원초적인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는 것이다.

필자는 위의 두 가지 견해 모두에 공감하는 입장이다. 방대한 영토에 인종과 문화가 다양한 인도는 오랜 세월 인도에 체류한 사람에게도 쉽사리 결론을 내리기 어려운 불가사의한 면이 있다. 천의 얼굴을 가지고 있는 인도는 자칫 장님 코끼리 만지는 식의 실수를 하기 쉬운 대상이다.

척박한 환경속에서 다져진 인도인들의 인내심

인도는 어제의 부정적인 모습이 오늘은 어느새 긍정적인 모습으로 바뀌어 있을 정도로 변화의 속도가 빠른 면이 있다. 그러나 인도는 또한 동전의 양면처럼 쉽사리 해결하기 어려운 난제들을 여럿 안고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인도는 제3세계권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서구식 민주제도를 자랑하고 있다. 28개주로 구성된 연방국가로서 의원내각제 정부형태를 취하고 있는 복잡한 정치구도 속에서도 선거와 국민여론에 바탕을 둔 민주정치가 제대로 이행되고 있다.

반면에 열악한 사회 인프라, 과다한 빈부격차, 종교 간 대립, 뿌리 깊은 카스트제도, 행정의 비능률 등 가까운 장래에는 치유되기 어려운 고질적인 문제들도 다수 안고 있다. 인도가 자랑하는 민주주의도 다수 빈민층의 표를 의식한 지나친 선심정치로 개방과 발전의 발목을 잡는 측면이 있다.

외부인의 눈에는 심각해 보이는 이런 문제들이 놀랍게도 인도인들 사이에서는 대수롭지 않은 일상으로 간주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주어진 현실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종교적 윤회론, 오랜 세월 척박한 기후와 환경 속에서 다져진 인내심이 저변에 깔려있기 때문이다.

인도인들에게는 주어진 현실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종교적 윤회론, 오랜 세월 척박한 기후와 환경 속에서 다져진 인내심이 저변에 깔려있다. 사진은 인도 북부 마날리에서 도로공사를 위해 트럭을 타고 이동하는 하위 카스트 인부들.

인도는 빠른 듯 하면서도 느리게, 느린 듯 하면서도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뉴델리 외곽지역은 최첨단 고층빌딩과 아파트들이 서울 강남 못지않은 웅자를 자랑하고 있는가 하면 여전히 정전이 빈발하고 도로 사정도 크게 나아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인도가 발전하고 있는 것만은 엄연한 현실이다. 그것도 인도 나름대로의 페이스를 유지하면서 변신하고 있다는 것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필자가 개인적으로 체험한 사실 또는 검증된 내용을 중심으로 소개하는 이번 시리즈물이 독자들의 인도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편견을 해소시키는 데 다소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영어 제대로 구사하는 인도인 10% 불과

한국인들이 잘못 알고 있는 것 가운데 인도인들은 영어를 잘할 것이라는 선입관이다. 물론 영국 식민지 영향으로 전반적인 영어 구사 수준은 인도인들이 한국인에 비해 훨씬 낫다. 그러나 인도인 대부분이 영어를 잘 할 것이라고 기대하면 오산이다.

영어를 구사할 줄 아는 인도인은 전체 12억 인구의 10%에 불과하다. 그 10% 인구 중에서도 영문법에 정통하고 작문을 완벽하게 해낼 수 있는 비율은 그리 높지 않다. 사진은 인도 시골학교의 아침조회 모습. <사진제공=이경훈>
놀랍게도 제대로 된 영어를 구사할 줄 아는 인도인은 전체 12억 인구의 10%에 불과하다. 그것도 1970년대에는 2%대에 불과하던 것이 꾸준한 교육을 통해 10%로 늘어난 것이다. 10% 인구 중에서도 영문법에 정통하고 작문을 완벽하게 해낼 수 있는 비율은 그리 높지 않다.

인도에는 힌디어를 포함 23개의 공용어가 있다. 대부분의 주에서는 타밀, 오리야, 텔레구어 등 자신들만의 지역별 공용어가 있으며, 이 지역 언어가 아니면 해당지역 주민들과는 원활한 의사소통이 어렵다. 영어는 정부업무, 행정서류 등에 많이 쓰이고 있지만 그 동안 정식 공용어 취급을 받지 못하다가 최근에야 공용어 대열에 합류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현지인들과 상대해서 공적, 사적 업무를 처리해야 하는 외국인들이 겪는 어려움이 크다. 공관에서 정부기관에 연락했을 때 전화를 받는 비서나 하위직 공무원들은 영어를 아예 못하거나 이상한 발음의 영어로 응답해서 의사소통에 애를 먹기도 한다.

우리 공관의 영사 한분이 교민 관련 사건이 생겨 금년 초 인도 북부 우타라칸드(Uttarakhand) 주 리시케슈(Rishikesh)에 긴급 출장을 갔다. 밤을 새워 현지에 도착한 담당 영사는 현지인들은 물론 업무 협조를 받을 담당 경찰조차 영어를 못해서 난감했다고 한다.

공관에서 일하는 현지 고용원들도 대부분 영어로 의사소통은 되지만 영문 서한 작성 등 고급 수준의 영어 구사에는 한계가 있다. 뉴델리의 한국인 가정에서 일하는 경비원, 청소부, 운전기사들 중에도 영어를 못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한국인 주인과 손짓, 발짓으로 의사소통을 하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2006년 말 인도 남부 카르나타카(Karnataka) 주에서는 학교의 영어교육 존폐문제를 놓고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인도 남부지역은 전통적으로 독립심이 강한데다 카르나타카 주는 자신의 고유 언어인 칸나다 어를 쓴다. 그러나 카르나타카 주 정부의 영어교육 금지 움직임은 지나치게 국수적이라는 언론의 포화를 맞고 슬그머니 꼬리를 감추었다.

인도의 아킬레스건, 카스트 전통

인도 카스트 제도의 기원은 기원전 1300년으로 올라간다. 당시 중앙아시아에서 이주한 아리안들이 토착민인 드라비다족을 정복하고 정착하는 가운데 성립되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카스트 즉 신분차별제도는 고대 로마, 중국에도 있었고 가깝게는 우리 조선시대에도 사, 농, 공, 상의 형태로 존재했었다.

인도사회에서 카스트 제도는 여전히 눈에 보이지 않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특히 인도 전체 인구의 70% 이상이 살고있는 농촌에서는 봉쇄적인 사회라는 특성상 아직 카스트 제도의 전통이 굳건히 살아있다.

그러나 유독 인도에서 힌두교 교리와 밀착되면서 깊은 뿌리를 내렸고 한때 인도를 지배했던 불교와 이슬람교의 영향력도 이를 변화시키는데 실패했다. 카스트(Caste)의 어원은 16세기 인도를 여행했던 포르투갈인들이 족속, 혈통을 뜻하는 자신들의 언어 카스타(Casta)를 사용한 데서 나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인도 카스트 제도에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4계급 외에 불가촉천민(Untouchable)이 있다. 불가촉천민은 노예계급인 수드라만도 못한 불결한 동물 취급을 받던 계급이다. 각 카스트 상호 간에는 결혼이 금지되고 거주지에 제한이 있었으며 특정한 직업에만 종사할 수 있었다. 보다 큰 문제는 이 비인간적이고 잔혹한 카스트제도가 대를 이어 세습되어 왔다는 데 있다.

현대문명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인도 사회도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고 카스트 제도에 따른 전통질서를 부정하는 현상들이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특히 시장자본주의가 깊숙이 침투한 도시 생활에서 카스트는 표면상으로 큰 의미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종교, 의례, 교육, 취업 등에서 카스트 제도는 여전히 눈에 보이지 않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특히 인도 전체 인구의 70% 이상이 살고있는 농촌에서는 봉쇄적인 사회라는 특성상 아직 카스트 제도의 전통이 굳건히 살아있다.

인도 정부는 카스트 제도의 폐해를 시정하기 위해 전향적인 대책을 수립, 시행하고 있다. 우선 헌법 17조에 카스트 간의 차별을 금지하는 조항을 명시해 놓았다. 또한 하위카스트 들을 위해 교육 장려금을 지급하는 한편, 대학입학과 정부 관리 임용 시 일정비율을 이들에게 할당하는 특혜를 주고 있다.

불가촉천민 스스로도 자신들의 권익옹호와 신분 상승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인도 신분차별 폐지 운동의 선구자이자 인도 헌법의 아버지인 암베드 카르(B.R. Ambedkar) 박사는 불가촉천민 출신이었다. 그는 미국 콜럼비아 대학에서 정치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인도 초대 정부의 법무부 장관을 지내기도 했다.

암베드 카르 박사는 신분차별 철폐운동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150만명의 추종자들과 함께 힌두교를 버리고 불교로 개종했다. 1956년 이루어진 이 개종식은 인류 역사상 가장 규모가 큰 단일 개종식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후에도 신분차별과 힌두사원 출입제한에 반발하는 불가촉천민들의 개종이 뒤를 이었다.

그러나 아직도 불가촉천민과 하위카스트들에 대한 유형무형의 차별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이는 수천년을 이어 내려온 악습의 뿌리가 얼마나 깊은 것인가를 잘 보여주는 것이다. 심지어 인도사람들 중에는 카스트 제도는 직업의 구분에서 출발한 인도의 독특한 문화일 뿐이지 차별은 아니라고 강변하는 이도 있다.

2006년에는 인도 정부가 23.5%로 되어있던 하위 카스트의 대학입학 특례 비율을 49.5%로 확대하는 과정에서 큰 저항에 부딪히기도 했다. 당시 하위 카스트 입학 할당제를 극렬히 반대했던 세력은 인도 유명대학의 의과 및 공과대학 학생들이었다. 상위 카스트 출신 학생들이 좋은 직장이 보장되는 이들 대학의 기득권을 하루아침에 포기하는 것이 쉽지 않았던 것이다.

또한 인도 비하르 주에는 상위 카스트 반동세력이 결성한 비밀 군사조직 ‘란비르 세나’가 있다. ‘란비르’는 ‘란비르 바바’라는 19세기 지주계급 투사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며, ‘세나’는 현지어로 ‘군대’라는 뜻이다. 이 ‘인도판 KKK단’인 무장단체는 전통적 신분관계를 무시하거나 자신들의 권위에 도전하는 하위 카스트들을 무력으로 응징하거나 몰살시키는 일을 하고 있다.

뿌리 깊은 카스트 제도는 합리적인 해결책이 강구되지 않으면 인도의 국론 통합과 발전을 저해하는 아킬레스건이 될 수도 있다.
주인도 김승호 홍보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