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핑크스
피라미드 건설 방법상의 논쟁이 고대 이집트인의 지혜를 재현하는 문제라면, 대 피라미드와 스핑크스에 대한 연대분석은 더욱 도전성을 가진 가설에 이른다. 대 피라미드는 고대 이집트인의 손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더욱 오래되고 위대한 사전문명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우선, 대 피라미드의 각 수치가 대단히 정확하다. 예를 들어 각 능선은 거의 정확하게 동서남북을 향하고 있고 각 방위의 오차는 5분(1분은 1도의 60분의 1)이내이다. 이렇게 방대한 건축물이 엄청난 정밀도를 유지하고 있다.

대 피라미드를 이렇게 높은 기술 수준으로 건설하려면 적어도 수천 년의 진화가 필요하다. 그러나 이집트 역사를 돌아보면 이런 기술 발전 과정과 기록을 찾을 수 없다. 현재 정통적인 견해는 대 피라미드는 기원전 2,500백 년 전 이집트 제4왕조에 건설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집트에서 하룻밤 사이에 신과 같은 기술자와 거인과 같은 장인이 출현했단 말인가?

그 외, 이집트인은 파라오를 기념하고 칭송하기 위해, 왕묘 내부를 대단히 화려하게 장식했고 풍부한 부장품을 묻었다. 그러나 서기 820년, 대 피라미드를 최초로 발굴했을 때 내부는 아주 수수한 방이었고 부장품, 보물, 조각은 물론 파편 하나 없었으며 벽 역시 어떤 그림이나 문자 장식도 없었다.

역사학자들은 ‘도굴묘’라고 추정했으나 실제 연구에 의하면 도굴범이 다른 통로로 피라미드에 들어올 가능성은 거의 희박하다는 것이다. 상식적으로, 도굴범이 파편 한 조각도 남기지 않고 훔치는 것은 불가능하다. 벽에 그려진 파라오의 비문을 전부 지웠을 가능성은 더욱 없다. 그렇다면 대 피라미드의 건설 주인공이 누구인지 정말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대 피라미드 근처의 스핑크스이다. 과학자들은 스핑크스에서 물로 침식된 듯한 흔적을 발견, 조사한 결과 스핑크스가 습한 기후에 노출되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기원전 3천년 이래로 기자의 고원은 줄곧 스핑크스상의 침식 흔적을 조성할 만한 비가 없었다. 기원전 만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만 이런 대규모의 침식을 일으킬 날씨가 있다. 따라서 스핑크스는 기원전 만년 이전 즉 사전문명시기에 이미 존재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그러나 많은 역사학자들이 사전문명 학설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인다. 그 중 가장 큰 이유는 만약 스핑크스가 더욱 오래된 문명에서 온 것이라면 그 문명이 존재하였다는 증거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사전문명을 입증할 만한 다른 발견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1992년 미국과학발전협회에서 사전 문명 및 스핑크스 건설 시기에 관한 논쟁이 있었으나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그렇다면 피라미드는 도대체 누가 만들었을까? 일부 과학자들은 심지어 피라미드 건설 주인공에 대한 시선을 우주로 돌렸으나 이것은 사전문명을 증명하는 것보다 더 어렵다. 고대 이집트학의 아버지 쟝 프란시스 챔폴리온은 19세에 “이 피라미드 주인공들의 지혜는 100피트 장신의 거인처럼 다른 사람들보다 뛰어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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