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들은 왜 베이징 올림픽을 보이콧하나?

1936년 8월 1일 제11회 베를린 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한 히틀러.ⓒ Getty
[대기원] 티베트 유혈사태 이후 올림픽 횃불이 가는 곳마다 꺼졌다. 중공은 소위 ‘애국’ 운동을 일으켜 횃불을 구하려 했지만, 온통 붉은색으로 뒤덮인 분노한 청년들의 ‘애국’ 폭력은 세계를 더욱 불안하게 했다. 그 결과 베이징 올림픽 배후에 있는 인권박해가 더욱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되었고 올림픽을 보이콧하려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최근 베이징 올림픽 보이콧 대열에 유대인들이 새로 합류했다. 지난 5월 1일, 나치 홀로코스트 기념을 하루 앞두고 185명의 미국 유대인 지도자들은 베이징 올림픽 보이콧에 전 세계 유대인이 동참할 것으로 호소하고 나섰다. 미국 홀로코스트 기념관 위원회 전 회장인 랍비 어빙 그린버그(Irving Greenberg), 뉴욕의 저명한 랍비 하스켈 룩스타인(Haskel Lookstein) 및 워싱턴의 David S. Wyman 홀로코스트 연구소 등이 공동으로 발기한 이 선언에는 중공이 인권을 탄압하고 이란·수단·시리아·하마스를 돕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유대민족의 강력한 목소리로 세계인이 주목해야 할 사건이다. 현재 베이징 올림픽에 대해 세계적으로 3가지 목소리가 있다. 즉, 반대하지 않거나, 개막식에 불참하거나, 올림픽을 보이콧하는 것이다. 이중 유대인들이 택한 것은 가장 강력한 방법인 올림픽 자체에 대한 보이콧이다.

세계적으로 유대인들이 존중받는 이유는 단지 그들이 나치 학살의 피해자이기 때문은 아니다. 미국 속담에 세계를 결정하는 것은 미국이고 미국을 결정하는 것은 유대인이라는 말이 있다. 미국의 부와 과학기술, 선거는 유대인들의 손에 달려 있다. 유대인 중에는 금융계, 법조계, 연예계의 거두들이 적지 않다. 월스트리트의 세계적인 투자은행 리만 브라더스 회장 펄드, 전 연방준비위원회 위원장 그린스펀, 투자의 귀재 소로스 등이 모두 유대인이다.

워싱턴과 뉴욕의 유명 로펌 중에서도 약 40% 이상이 유대인이다. 언론계 및 연예계에서도 월트 디즈니, 워너브라더스, MGM, 파라마운트, ‘뉴욕타임스’ 등도 모두 유대인 소유이다. 이외에도 노벨상 수상자 중 17.8%가 유대인이다. 정치권에서도 미국 전체에 약 80여 개에 달하는 유대인 ‘정치행동위원회’가 있다. 유대인들은 미국의 공화당과 민주당 양당에도 많이 포진해 있으며 클린턴 내각 때는 6명의 장관이 유대인이었다.

유대인들은 중국(中國 역주: 엄밀하게 말하면 중화민국)에 대해 특별한 감정을 갖고 있으며 우정을 아주 중시한다. 상하이, 카이펑, 하얼빈 등의 도시에는 지금도 유대인 혼혈 후예들이 있다. 2차 대전시기에 상하이 시민들은 일찍이 5만 명의 유대인들을 보호해 준 적이 있다. 오스트리아 주재 중국 외교관인 허펑산(何鳳山)은 수천 명의 유대인들을 살리기 위해 그들에게 비자를 발급해준 적이 있다. 비록 이런 것들은 모두 중공이 집권하기 이전에 발생하긴 했지만 이스라엘은 건국 후에도 여전히 경제, 군사, 사막 관리 등 여러 방면에서 중국을 도와 은혜에 보답해왔다.

그렇다면 왜 미국 유대인 지도자들이 전 세계 유대인들에게 베이징 올림픽 보이콧을 호소하게 되었을까?

우선 이는 유대인들이 홀로코스트(나치의 유대인 대학살을 지칭)를 잊지 않고 오늘날 박해받는 민족들을 돕는 방식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유대인들은 전쟁이 끝난 후 600만 명에 달하는 홀로코스트 피해자들을 잊지 않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했다. 가령 ‘홀로코스트 기념일’, ‘홀로코스트 기념관 건립일’을 만들었고, 나치범죄와 관련된 국가와 기업에 손해배상을 청구했으며, 전범(戰犯)을 붙잡아 정의를 지키는 데 일조했고, 자신들을 구해준 은인(恩人)들을 찾아내 은혜에 보답한 등이다.

하지만 유대인이 당시의 고난을 잊지 않고 있음을 가장 잘 드러내주는 것은 오늘날에도 고난을 겪고 있는 민족들을 동정하고 그들이 박해를 제지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이번 보이콧 선언문 중에는 ‘중국 올림픽은 코우셔(유대인이 인증하는 식품)가 아니다’라는 격언이 있다. 여기서 코우셔(Kosher)란 유대인들이 특수하게 청결 가공 처리한 식품 및 그 과정을 말한다. 선언에서는 중국이 비록 올림픽 선수촌에 ‘코우셔 주방’을 만들긴 했지만 중공정권이 수단 인종학살과 티베트인들을 학살하는 악행에 비춰볼 때 유대인이 1936년 히틀러의 베를린 올림픽과 유사한 베이징 올림픽으로 중공정권을 ‘표백’할 수는 없다고 했다.

두 번째로 유대인들은 나치 홀로코스트 기간에 자신들이 겪었던, 방치되고 구원받을 수 없다는 고통이 어떤 것인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때문에 그들은 늘 실제적인 행동으로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화정책을 반복하고 있는 서방국가 및 정치인들을 일깨워주고 있다. 나치의 반(反)유대인 정책은 1933년부터 시작되었다. 1941년 이후 아우슈비츠 및 다른 강제수용소에서 발생한 홀로코스트의 진상이 여러가지 경로를 통해 연합군 측에 전달되었다. 하지만 연합군 측에서는 각종 핑계를 대기에 급급했다. 전쟁은 전면적으로 고려해야 하고, 인간으로서 그런 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는 것은 믿기 어려우며, 잘못하면 연합국 전쟁포로들에 대한 보복이 우려된다는 등의 이유로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못했다. 단지 1943년 10월 6일 400명의 유대교 랍비들이 백악관을 찾아와 청원하고 항의한 후에야 미국 정부는 비로소 죽음의 위협에 처한 유대인을 구원할 조치를 취하기 시작했다.

예전 상황과 아주 흡사한 것은 서방의 일부 정치지도자들이 아직도 각종 구실을 대면서 올림픽 배후에 있는 중국의 인권박해를 대충 얼버무리거나 혹은 입을 꾹 다물어버렸다는 점이다. 때문에 유대인들은 그들에게 사악(邪惡)에 직면했을 때 ‘영광스런 중립’은 없다는 것을 일깨워주려 하는 것이다.

결국 유대인은 돈과 양심의 저울 중에서 양심을 더 중하게 여긴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유대인은 자고로 뛰어난 장삿술로 유명하다. 그들이 어찌 올림픽에 숨겨져 있는 거대한 투자기회를 모르겠는가? 그들이 어찌 중국이란 광활한 시장이 있다는 것을 모르겠는가? 그러나 사업은 사업일 뿐이며, 유대인은 히틀러가 개최한 올림픽과 같은 방법으로 중공정권을 미화하는 이번 베이징 올림픽을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었다.

유대인이 중국을 감사하게 생각하는 마음은 여전히 존재한다. 그러나 ‘사악과 한패가 될 수는 없다’는 것은 그들이 보다 고차원적으로 중국의 은혜에 보답하는 방식이다. 이 점에서 구글과는 다른데, 비록 회사 규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공에 굴복해 바른 말을 하지 못하는 구글과는 달리 유대인 지도자들은 행동으로 자신들의 양심을 보여주었다.

유대인이 경제적인 이익 때문에 서로간에 암묵적으로 침묵을 유지하고 있는 서방의 잠재규칙을 타파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유대인이 베이징올림픽을 보이콧하는 진실한 의미이다.

시사평론가 리톈샤오(李天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