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거지 제대로 하지? 당신이 씻은 그릇은 이전에 무엇을 담았는지 알 수 있단 말이야”
“엥, 그게 무슨 소린가?”
“지난주 먹었던 카레 냄새가 그릇과 냄비에 베였어. 무엇보다 눌러 붙은 음식물 봐!”
“수세미로 박박 문질렀는데?”

애처가임을 자부하며 음식은 못 해도 청소며 설거지를 도맡아 온 김대리는 성의를 다해 그릇을 씻었다. 그러나 돌아온 아내의 반응은 불만만 가득하다. 아무리 음식을 맛있게 먹어도 불쾌감을 주는 그릇에 담으면 식욕을 떨어트릴 수 있다. 그래서 김대리는 완벽한 설거지를 위해 연구에 연구를 거듭했다. ‘착한’남편이자 ‘센스 있는’ 남편이 되고 싶었던 것이다.

일단 그릇에 벤 냄새부터 제거해 보자. 이럴 땐 물 서너 컵에 밀가루 두 스푼을 넣고 하루 쯤 담가준다. 밀가루의 흡착성분과 기름기, 냄새가 강력하게 결합되어 그릇에 베인 냄새를 제거해 준다.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한 것으로 보였지만 이제 보니 그릇이며 유리창이며 환풍기며 그동안 무심코 씻었던 것들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세상은 아는 만큼 보인다더니 자세히 관찰해 보니 물병이나 유리컵 속엔 때가 가득하다. 또 저녁에 아들과 먹은 새우튀김을 담았던 그릇의 기름때, 주방 환풍기에 달라붙은 기름 연기까지 김대리는 이번 기회에 말끔히 해치우기로 마음먹는다.

물병이나 유리컵 속의 때 눈에는 쉽게 띄지만 남자의 큰 손을 물병 안에 집어넣기 쉽지 않다. 어항도 아닌데 식구들이 먹는 물병 속에 물때가 끼었다고 생각하니 한시라도 빨리 제거하고 싶다. 이럴 땐 남편의 ‘힘’을 보여주자. 물병에 달걀 껍질을 넣고 열심히 흔든다. 팔 근육이 찌릿찌릿하지만 효과는 확실하다. 속껍질의 단백질과 겉껍질의 탄산칼슘이 물을 만나 비누같은 세척효과를 내고, 달걀 껍질의 거친 부분이 수세미와 같은 역할을 한다. 냄새와 때를 동시에 없앨 수 있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는 셈이다.

만약 남은 달걀이 하나도 없다면 어쩔텐가? 걱정하지 마시라. 굵은 소금으로 거칠게 닦아도 오래된 얼룩이 쉽게 지워질 수 있다. 단 소금 입자가 너무 굵으면 고급 유리잔에 흠집이 생길 수 있으니 주의가 필요하다. 소금은 대표적인 알칼리성 물질이다. 반면 물때는 단백질이나 지방산 등이 쌓인 산성물질이다. 따라서 알칼리와 산성이 만나면 중화반응이 일어나면서 유리에 붙은 때가 쉽게 분해된다.

또는 먹다 남은 레몬 껍질로 문질러도 유리에 낀 때가 잘 빠진다. 레몬 껍질에 들어있는 구연산은 비누와 같은 성질이 있어 물때나 얼룩 등을 깨끗하게 제거해 준다. 여기까지만 듣고 실행하다 때가 안지워진다고 투덜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깨끗이 지우고 싶다면 껍질의 바깥쪽으로 문지르는 것이 효과적이다.

주방에 있는 환풍기는 음식의 기름 연기 때문에 쉽게 더러워지고 때가 생기면 잘 지워지지 않는다. 이런 경우엔 냄새를 제거해 줬던 밀가루를 다시 이용하자. 지저분한 환풍기를 분해한 다음 밀가루를 구석구석 뿌려둔다. 이 상태로 30분 정도가 지나면 밀가루가 기름을 말끔히 흡수한다. 기름때와 밀가루가 결합하면서 환풍기 표면에 들뜬 상태로 있게 된다. 이때 뜨거운 물을 적신 헝겊으로 환풍기를 닦아내기만 하면 환풍기 청소 끝이다.

주방의 그릇과 환풍기를 청소했다고 끝난 건 아니었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아래를 내려다보니 가스레인지 주변이 왜 이리 지저분하단 말인가? 김대리는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팔을 걷어 부친 만큼 ‘퍼펙트한 마무리’를 하고 싶었다. 기름기나 국물이 떨어지면 뜨거운 불기운에 쉽게 눌러 붙는 가스레이지에는 밀가루나 베이킹 소다(식초와 함께)를 뿌리면 밀가루의 전분이 때와 결합한다. 세제 묻힌 스펀지로 이를 닦아내면 주방이 한결 깨끗해진다.

아참, 수저통에 있는 은수저를 놓칠 뻔했다. 군대를 간 남자들은 많이들 경험해 봤겠지만 치약이 이를 닦는데만 쓰이는 것은 아니다. 변기청소를 할 때, 녹슨 파이프를 닦을 때 이보다 좋은 세제는 없다. 왜냐하면 치약은 다양한 성분의 연마제(금속이나 유리의 표면을 매끄럽게 만드는 알갱이)로 이뤄져 알루미늄이나 금속 등의 표면을 닦으면 때가 벗겨지고 반짝반짝 광이 난다.

주방청소와 설거지를 다 마치자 뜻밖에도 장모님이 불쑥 방문하셨다. 특별한 반찬거리도 준비해 놓지 못한 상황이었는데, 주방에 들어선 장모님은 입이 벌어지셨다.
“우리딸 시집 잘갔네, 그려~”
“별 말씀을요.”
“내, 사위 좋아하는 장어구이 해 주려고 장봐 왔네.”
아내 사랑을 실천했더니 장모님에게도 점수를 얻을 수 있었다. 그리 대단한 방법도 아닌데 한번쯤 실천해 보는 것은 어떨까? (글 : 서금영 과학전문 기자)

자료출처 :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KISTI의 과학향기(http://www.yeskisti.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