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하사탕 촬영지 진소마을<출처:여행작가 이종원>
위 치 : 충북 제천시 봉양읍 공전리 일원

조치원과 제천 봉양읍을 잇는 충북선은 중부내륙 산간지역을 관통하는 철도도선이다. 그중 동량-삼탄-공전 구간은 도로가 발달된 오늘날에도 열차가 아니면 접근이 불편한 오지이며 사람의 손때가 덜 탔기에 충북의 동강이라고 불리는 절경을 고이 간직하고 있다. 백운면 애련리 진소마을은 영화 ‘박하사탕’에서 “나 다시 돌아갈래” 라며 철로위에서 절규하던 설경구의 강렬한 모습을 되새겨볼 수 있다. 한 남자의 굴절된 개인사를 통해 다사다난했던 한국 근대사의 과거와 현재를 돌아보는 영화로, 주인공이 달려오는 기차를 막아서며 가장 순수했던 과거로 돌아가길 희망했던 메시지를 남긴 기억의 공간이다. 제법 높다란 산자락아래는 터널이 뚫려 있고 철교 아래는 진소천이 흐르며 철로는 커브를 그리며 휘어 있었다. 철교 앞에서 ‘박하사탕’을 상징하는 대형 영화포스터와 한국영상자료원에서 만든 촬영장소 안내 동판이 서 있어 영화 속 감동을 더해준다. 진소마을까지 승용차로 간다면 장호원에서 38번 국도를 타고 가다가 백운면을 지나 6km 정도 계곡을 따라 진입해야 하며 마지막 1.6km는 좁은 비포장 길이며 승용차만 진입이 가능하다.
영화 박하사탕 촬영지 진소마을
<출처:여행작가 이종원>

충북선 18개 역에서 가장 한가로운 역인 공전역은 상하행선 모두 합쳐봐야 무궁화호만 6번 정차한다. 달랑 1명만 근무하고 있는 역사는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시골역 분위기가 느껴진다. 영화‘박하사탕’을 음미하며 플랫폼을 어슬렁거리려도 좋고 역사 바깥으로 나가 한가로운 가을풍경에 젖어보는 것도 좋다. 청류가 흐르는 계곡으로 내려가면 여러 사람들이 앉을 수 있는 너럭바위도 나온다. 식당이나 가게가 없기 때문에 도시락, 간식을 준비해 가는 것이 좋다. 버스비가 기차 삯보다 저렴하고 편수가 다양해 마을사람조차 기차를 외면해 하루 이용객이 고작 10명 남짓하여 조만간 무인역사로 바뀔지도 모른다고 한다. 공전역에서 하차해 자양영당을 둘러보고 시내버스를 이용해 제천까지 가서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
<출처:사진작가 이종원>

공전역에서 둑방길을 따라 도보로 10여분 정도 거닐면 조선 의병의 넋이 서린 자양영당을 만날 수 있다. 자양영당은 조선후기 대유학자인 이항로 선생의 수제자인 성재 유중교 선생이 제자들을 가르친 곳으로, 의병장인 유인석이 8도 유림 600명을 모아서 의병을 일으킬 것을 발의해 전국적으로 의병 창의를 처음으로 일으켰던 곳이다. 제천을 중심으로 원주, 영월, 단양, 충주 등으로 활동무대를 넓히며 활동하였는데 일본군과 관군의 우세한 화력에 밀려 해산되었다가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자 의병지도자들이 의림지에 모여 군세를 정비하고 수많은 전투를 통해 일본군에게 상당한 타격을 가했고 훗날 무장독립군 창설의 모태가 되었다. 유중교 선생의 사랑채와 안채, 유인석의 옛집, 의병을 모신 사당인 숭의사와 의병기념탑이 서 있다. 제천의병전시관(043-641-4811, www.jcub.kr)은 구한말의 외세 침입과 그에 반발한 제천의병의 활약상을 알기 쉽게 꾸며 놓았다. 다양한 소장 자료는 물론 동판부조, 남산전투 디오라마, 영상, 정보검색 등을 통해 의병운동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울고넘는 박달재 노래비
<출처:여행작가 이종원>
박달과 금봉의 사랑을 형상화한 동상
<출처:여행작가 이종원>

대중가요로 널리 알려진 ‘울고 넘는 박달재’의 배경이 된 박달재에 서면 드높은 산세와 파란 하늘이 맞닿아 있어 한 폭의 그림을 보는 것 같다. 지금이야 차로 10분 만에 재를 넘을 수 있지만 옛날에는 박달재와 다릿재를 넘으려면 걸어서 며칠이 걸렸다고 한다. 워낙 고갯길이 험하고 가파른데다가 숲이 우거져 있어 호랑이 같은 산짐승이 불시에 튀어나오는 것은 물론 지나가는 행인을 노리는 도둑이 많아 이곳을 넘는 새색시는 두 번 다시 친정에 가기 어려웠다고 하여 ‘울고 넘는 박달재’가 되었다. 정상에는 박달과 금봉의 애틋한 사랑을 형상화한 동상과 ‘울고 넘는 박달재 노래비’가 서 있다. 그밖에 박달재 조각공원, 서낭당, 전망대도 있다. 박달재 정상아래 박달재 숯가마(043-646-0021, www.bdjsootgama.co.kr )는 솔숲이 펼쳐진 시원스런 경치가 좋으며 몸과 마음을 쉬어 갈 수 있는 공간이다. 총 8개의 가마 중 숯을 피우고 난 3개의 가마를 찜질방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가마마다 온도가 다르게 배치했다. 탈의실과 샤워실, 식당까지 갖추고 있으며 참숯으로 구운 삼겹살이 별미다. 참숯과 장식용 숯 화분을 구입할 수 있다.
단풍산책길이 좋은 배론성지
<출처:여행작가 이종원>
배의 밑바닥 형상을 하고 있는 최양업신부기념대성당
<출처:여행작가 이종원>

첩첩산중 깊은 계곡에 숨어 있는 배론성지(043-651-4527, www.baeron.or.kr )는 그 산세가 마치 배 밑바닥 같다고 하여 불려진 이름이다. 1801년 신유박해 때 많은 천주교인들이 배론 산골로 숨어들어 옹기장사를 하면서 생계를 유지했다. 황사영은 당시 박해상황과 천주교도의 구원을 요청하는 백서를 토굴에서 집필하였으며, 1855년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사제배출을 위한 성요셉 신학교를 이곳에 세웠다. 현재 토굴과 신학교가 복원되어 있으며 우리나라 최초의 유학생이자 두 번째 신부가 된 최양업 신부의 묘소가 성지로 조성되어 있다. 굳이 천주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조용한 산책길을 거닐면서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가져봄직하다. 산자락을 붉게 물들인 가을 단풍이 좋고 단풍이 지나면 수북이 쌓인 낙엽을 밟는 호사도 누릴만하다. 배 밑바닥 모양을 하고 있는 최양업 신부 기념 대성당의 천정이 이채롭다.

배론성지 초입에서 신림 쪽으로 가다보면 깎아지는 절벽위에 탁사정 정자가 아스라이 서 있다. 암반을 적신 물이 반원을 그리며 하얀 모래사장과 송림을 만들어내고 있다. 탁사정은 조선 선조 때 제주 수사로 있던 임응룡이 고향으로 돌아올 때 해송 8그루를 가져와 심었다고 하여 ‘팔송’ 이라고 명명하였으나 지금은 해송이 남아 있지 않다. 도보 3분이면 탁사정 정자에 오를 수 있으며 이곳에서 내려다본 장쾌한 풍경도 볼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