在美강석일 박사 '사이언스誌'에 발표
▲ 초전도체 박막의 단면적을 고배율 투과 전자현미경으로 보면 흰 초전도체 사이에 일렬로 배열된 BZO 나노입자들을 볼 수 있다. 이 나노입자가 자기장에 의한 전기저항을 막아낸다.
/미 오크리지국립연구소 제공
발전소에서 생산한 전기는 가정에 오기까지 40%가 사라진다. 구리전선의 전기저항 때문에 열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최근 재미(在美) 한국인 과학자가 발전소에서 보내온 전기를 100% 그대로 전달할 수 있는 꿈의 전선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열나지 않는 전선
1911년 과학자들은 온도를 섭씨 영하 200도 가깝게 낮췄을 때 전류가 아무 저항 없이 흐르는 물질, 즉 초전도체(超傳導體)를 발견했다. 그후, 1986년 이트륨-바륨-구리-산소로 개발된 이 물질은 구성원소들의 앞글자를 따 ‘YBCO’로 불렸다. 과학자들은 이 물질로 전선을 만들고 주변에 액체질소를 흘려주면 전류를 100% 손실없이 전송할 수 있는 전선을 만들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그 기대는 곧 무너졌다. 자석을 돌리면 전류가 발생하듯, 전류가 흐르면 자석의 성질을 띤 자기장이 발생한다. 그런데 자기장이 강해지면 전선에 전류를 잡아당기는 일종의 소용돌이가 생겨 저항이 발생했다. 즉 초전도 효과가 사라지는 것이다. 미 오크리지국립연구소의 강석일(姜錫日·40) 박사는 같은 연구소의 아미트 고얄 박사와 함께 “20년간 과학자들을 괴롭혀온 난제(難題)를 아주 단순한 공정으로 해결하는 데 성공했다”고 지난달 31일자 ‘사이언스’지(誌)에 발표했다. 사이언스는 이 논문을 ‘이 주의 뉴스’로도 소개했으며, UPI통신, 네이처, 뉴사이언티스트, 내셔널지오그래픽 등에서 잇달아 획기적인 연구성과로 보도했다.
초전도 전선은 형태를 유지하면서도 잘 휘어지게 하기 위해 금속을 뼈대로 한다. 1세대 초전도 전선은 은(銀) 튜브 안에 초전도체를 넣고 열을 가해 잡아 늘인 형태다. 반면 강 박사팀이 개발한 초전도 전선은 구리 전선에 YBCO 초전도체를 3㎛(1㎛는 100만분의 1m) 두께로 입힌 이른바 2세대형이다. 두 가지 모두 전선 주변으로 액체질소가 흐르면 전선의 온도가 섭씨 영하 196도로 떨어지고 초전도 현상에 의해 전기 저항이 사라진다.
강 박사팀은 전선에 일종의 불순물을 첨가해 자기장에 의해 발생하는 소용돌이를 그곳에 가두는 방식을 사용했다. 건국대 물리학과 김대호 교수는 “이전에도 비슷한 방법이 시도됐으나 일단 초전도체를 만들고 다시 고가의 입자가속기를 사용하는 등 공정이 복잡해 비용면에서 실용적이지 못했다”며 “강 박사팀이 개발한 방법은 공정이 훨씬 간단해 실용화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했다.
강 박사팀은 초전도체와 바륨-지르코늄-산소(BZO) 가루를 함께 섞고 강력한 레이저를 아주 짧은 시간에 쏘았다. 그 결과 한 번에 불순물역할을 하는 BZO 나노입자가 기둥모양으로 정렬된 초전도 박막이 만들어졌다. 나노입자는 자기장이 생긴 곳에서 전류를 붙잡아온 소용돌이를 단번에 억제했다.
과학자들은 전력송신에 사용할 수 있으려면 초전도선이 폭 1㎝당 300A(암페어)의 전류를 흘릴 수 있어야 한다고 보고 있다. 물론 그 길이도 500m 이상이 돼야 한다. 강 박사는 “이번 연구에서 폭 1㎝ 당 400A의 결과를 얻었다”며 “몇 년 안에 산업체에서 우리 기술을 이용해 수백m에서 수㎞ 길이의 상용 초전도선을 개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실제로 미국과 일본에서 구리전선에 초전도 박막을 입힌 전선을 수백m 이상의 길이로 만드는 연구가 한창이다.
미국의 대표적 초전도체개발사인 ASC사의 연구개발 책임자인 알렉스시 말로제모프 박사는 사이언스지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연구는 세계최고의 결과로 굉장히 중요한 가치를 갖는다”고 평했으며, 위스콘신주립대의 데이빗 라바레스티에 교수도 “강 박사팀의 초전도 전선이 세계에서 가장 앞서 있다”고 인정했다. 전북대 물리학과를 졸업한 강 박사는 웨스턴일리노이주립대를 거쳐 테네시주립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나노입자 이용해 ‘자기 소용돌이’ 막고 액체질소 흐르게 해 ‘열 안나는 전선’ 만들어
... “세계 최고 연구 성과” 과학계·외신 등 극찬
▲ 미 오크리지국립연구소의 강석일 박사가 초전도 박막을 만드는 레이저 장치를 조작하고 있다.
◆국내서도 연구 활발
초전도 전선은 국내에서도 연구가 한창이다. 작년에 열린 미래성장동력 성과전시회에서는 ‘차세대초전도응용기술개발사업단’이 만든 1세대형 초전도 케이블이 3대 연구성과의 하나로 선정된 바 있다.
사업단의 오상수 박사(한국전기연구원)는 “일차적으로 올해 안에 길이 50m에 폭 1㎝당 80A의 전류를 보낼 수 있는 초전도선을 개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오 박사에 따르면 현재 우리의 연구수준은 연구소 랭킹으로 보면 세계 8~9위 수준. 그러나 내년쯤에는 세계 2위 정도로 도약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사업단은 2011년까지 길이 500m 이상의 상용 초전도 전선을 개발한다는 계획이다.
초전도 전선 어디에 쓰이나
자기부상 열차·MRI… 군사무기로도 활용 가능
초전도 전선으로 만든 코일은 저항이 없어 강력한 자기장도 만들 수 있다. 이를 이용한 것이 지금 병원에서 진단장비로 쓰고 있는 자기공명영상장치(MRI)다. 초전도 코일은 강력한 자기장으로 반대 극성의 자석을 밀어올리는 방식으로 레일 위를 떠서 움직이는 자기부상열차를 만들 수 있다. 군사용으로는 강력한 자기장을 발생시켜 지상의 전기전자시스템을 파괴하는 무기로도 활용이 가능하며, 초고속 위성통신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출처: 조선일보/ 이영완기자 ywlee@chosun.com / 도움말 과학자문단 현택환 서울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