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와 부처의 의식레벨은 1,000룩스, 마하트마 간디는 700룩스, 아인슈타인과 뉴턴,
프로이트는 499룩스, 그럼 당신의 의식 레벨은 얼마인가?
의식의 지도

신의 관점 세속의 관점 수준 대수의 수치 감정 과정
자아 존재깨달음 700-1000 언어이전 순수의식
항상존재완전한 평화 600 축복 자각
하나 전부갖춘 기쁨 540 고요함 거룩함
사랑 자비로운 사랑 500 존경 계시
현명한 의미있는 이성 400이해 추상
인정많은 화목한 포용 350 용서초월
감화주는 희망에 찬자발성 310 낙관 의향
능력있는 만족한 중용 250 신뢰 해방
용납하는 가능한 용기200 긍정 힘을주는
무관심한요구가 많은 자존심 175 경멸 과장
복수에 찬 적대의 분노 150 미움 공격
부정하는 실망하는 욕망125 갈망 구속
징벌의 무서운 두려움100 근심 물러남
경멸의 비극의 슬픔 75 후회 낙담
비난하는 절망의 무기력 50 절망 포기
원한을 품음 사악한 죄의식 30 비난 파괴
멸시하는 비참한 수치심 20 굴욕 제거



700의 한 개인은 200이하의 인간 7000만 명을 상쇄한다.
600의 한 개인은 200이하의 인간 1000만 명을 상쇄한다.
500의 한 개인은 200이하의 인간 75만 명을 상쇄한다.
400의 한 개인은 200이하의 인간 40만 명을 상쇄한다.
300의 한 개인은 200이하의 인간 9만 명을 상쇄한다.
700의 12명은 한 분의 아바타르와 같다.
(현재 재구에는 700의 수준에 도달한 사람이 12명 존재한다.)




* 우리 연구의 목적은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는, 의식의 에너지장에 관한 실제적인 지도를 그려내는 데에 있다. 독자들이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에너지 장의 수치 등은 대강의 숫자로 나타냈다.
밑에 나오는 '의식의 지도'에서 측정된 수치는 감정이나 인식, 태도, 세계관. 영적 믿음 등을 통해 나타나는 특정한 의식 세계와 서로 상응한다. 시간이 허락된다면 이 도표는 인간 행동의 전영역을 포함하는 더 광범위한 것으로 확장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의식 세계를 수치화하는 데 있어서 '용기'의 수준인 200이 일종의 분기점이라는 것을 밝혀두고 싶다. 어떠한 생각이나 태도나 느낌이든 그 수치가 200 이하로 나타났다면, 그것은 근육반응이 약하게 나왔다는 것을 뜻한다. 수치가 200 이상으로 나타났다면 그 생각이나 느낌, 태도, 사물, 혹은 역사적 인물들은 피험자의 근육 반응을 강하게 했다는 것을 뜻한다. 이 200이라는 수치야말로 끌개가 강하냐 약하냐, 영향력이 긍정적이냐 부정적이냐의 분기점인 것이다.


200 이하의 수준에 기본적으로 껄려 있는 삶의 태도는 '살아남기' 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낮은 수준은 가난과 결핍에서 비롯되는 절망과 우울의 영역이다. 그보다 높은 '본노'와 '욕망'의 단계에 이르면, 개인은 생존을 위해 자기 본위의 충동적인 행동을 하게 된다.
'자존심'의 수준에 이르면, 살아남으려는 본능이 다른 사람에게도 역시 중요하다는 것을 최초로 이해하기 시작한다. 긍정과 부정의 갈림길이 되는 '용기'의 수준에 이르면, 다른 사람들의 안녕이 점차 중요하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500의 수치에 이르면, 다른 사람들의 행복을 고려하게 되어, 그것이 그 사람을 움직이는 필수적인 요소로 자리잡게 된다. 600대에 가까워지면,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영적인 눈뜸에 관심을 갖게 되고, 600대에 이르면 인간의 선과 깨달음을 위한 추구가 삶의 기본적인 목표가 된다. 700에서 1000까지는 모든 인간의 구원을 위한 삶이다.
앞의 도표를 봄으로써 우리는 인생이라는 것이 얼마나 다양하게 표현될 수 있는지 더 깊이 이해하게 된다. 겉보기에는 가치가 없어 보이는 태도들도 검증해 보면, 딱히 좋다거나 나쁘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도덕적인 판단이란 수준이 높아진 상태에서만이 뒤를 돌아다보면서 할 수 있는 기능인 것이다.
예를 들어 보자 '슬픔'에 차 있는 사람(에너지 레벨 75)은 '분노'의 수준(150)에 올라감으로써 휠씬 진전된 상태에 도달한다. 분노 자체는 파괴적인 감정이고 낮은 수준의 의식 상태이지만, 사회의 역사가 보여주듯이, 개인뿐만 아니라 소문화권도 질식시킬 수 있는 '무기력' 상태보다는 더 활기찬 에너지라 할 수 있다. 절망에 찬 사람들이 절망을 벗어나서 어떤 것을 원할 수만 있다면('욕망'125), 그런 후 다시 '분노'(150)의 에너지를 사용하여 '자존심'(175)의 수준에 도달할 수 있다면, 200의 수치로 측정되는 '용기'의 단계까지도 충분히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용기'의 수준은 개인이나 집단적인 상태의 개선을 비로소 생각하게 되는 분기점이다.
반면에, 조건 없는 '사랑'의 상태에 이르러 사랑이 주는 것이 생활화된 사람에게는 그 이하의 수준은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 개인의 의식 향상을 위해 나아감에 따라 우리의 생각은 향상의 방향으로 저절로 계속되고, 또 저절로 좋은 방향으로 개선되어, 결국은 자아 향상이 우리의 생활 자체가 된다. 이러한 현상은 자기 연민이나 편협성 같은 부정적인 태도를 극복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자조自助 그룹의 회원들에게서 자주 볼 수 있다. '의식의 지도'에서 하위에 속하는 사람들은 자기 연민이나 편협성 등을 옳은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으며 또 그들의 생각을 정당한 것으로 믿고 수호한다.

* 이 도표가 가져다주는 인식론적인 효과는 미묘하긴 하지만 광범위하다. 스포츠,의학,심리학,정신의학,인간 관계와 행복에 대한 일반적인 탐구에 이르기까지 실용적으로 쓰여질 수 있다. 의식의 지도를 숙고하여 들여다봄으로써 인과관계에 대한 새로운 자각도 싹틀 수 있을 것이다. 그 사람의 의식 수준과 더불어 의식의 지도를 들여다보는 인지 능력도 향상되어서, 세상 사람들이 흔히 '원인'이라고 말하는 것들이 사실은 '결과물' 이라는 것이 명백해질 것이다. 자기 자신이 인식한 결과물에 대해 책임을 지게 됨으로써 그 사람은 비로소 피해자의 입장을 초월하여 '나를 지배하는 외부의 어떤 힘'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인생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사건이 우리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인지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인지, 배움의 기회로 작용할 것인지 우리를 억압하는 요소로 작용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그 사건 자체가 아니라 거기에 대한 우리의 반응과 태도인 것이다.
정신적인 스트레스란 우리에게 주어진 조건에 저항하거나 도피하고자 함으로써 스스로를 그물에 가두는 데서 생겨나는 것일 뿐, 우리에게 주어진 조건 자체에 어떤 힘이 있는 것은 아니다. 스트레스를 '창조할 수 있는' 힘을 가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어떤 사람에게는 혈압을 올리는 시끄러운 음악이 다른 사람에게는 기쁨의 원천이 될 수 있다. 이혼도 원하지 않을 때에는 큰 아픔이 되지만, 원하는 사람에게는 해방을 뜻한다.

* 우선 측정 숫자가 산수의 값이 아닌 대수의 값이라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따라서 수준 300은 150의 두 배가 아니라, 300의 10승을 말한다. 그러므로 아주 작은 수치가 증가하더라도 그 잠재력은 굉장한 진보를 이룩했음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 수치의 증가에 따른 잠재력의 증가 비율은 엄청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