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10대 등신불

불교에서는 최고 경지로 수행하면 원적한 후 육신이 썩지 않는다고 말한다. 불교용어로 이런 육신을 ‘전신사리(全身舍利)’라고 한다. 다시 말하면 원적한 후 몇년이 지나도 육신이 썩지 않고 살아있는 것처럼 그대로라는 것이다.

이런 경지는 물론 일반적인 수행으로는 도달할 수 없다. 따라서 이런 육신을 가진 고승들을 중국에서는 ‘육신보살’이라고 부른다. 국내에서는 등신불(等身佛), 혹은 즉신불(卽身佛)로도 알려져 있다.

당송 이후, 많은 ‘육신보살’이 나타났다. 유감스럽게도 혜능선사 이후 천년 동안 전란이 빈발해 무수한 명산대찰들이 파괴되고 승려들이 흩어져 대부분의 육신보살이 보존되지 못했다.

더구나 근대에 이르러 문화혁명이란 사상 최대의 문화재 파괴로 인해 현재 중국에 남아있는 육신보살의 수량은 더욱 적어졌다. 현재까지 남아있는 중국의 10대 육신보살을 소개해 본다.(이하 인터넷이미지)
1. 자항보살(慈航菩薩ㆍ1893-1954): 속명은 애계영(艾繼榮), 복건성 북부 사람. 17세에 복건대금호(福建大金湖)에서 머리를 깎고 출가해 태허(太虛)대사를 따라 전국각지를 순회하고 홍법했다.

이후에 남양(南洋)을 방문해 항일국책을 선전했다. 만년에 대만에 거주했으며 ‘대만불학원’을 창립해 대만승려교육을 시작했으며 중국대륙에서 대만으로 온 청년 승려들을 수용했다. 1949년 간첩으로 오인받아 감옥살이를 하다 1954년 감옥에서 원적했다.

원적한 후 그를 항아리에 넣었는데 얼굴이 생전과 같았다. 5년 후 항아리를 열고 검사한 결과 얼굴이 자색을 띌뿐 전신이 그대로 보존됐다. 현재 자항보살의 전신은 대만 미륵내원에 보관돼 있다.

2. 혜능법사(慧能法師ㆍ638—713): 선종 육조(六祖) 혜능대사가 오조(五祖) 홍인(弘忍)대사에게서 의발을 전수받은 이야기는 유명하다.

“보리(菩提)라는 나무는 본래 없고, 명경(明鏡)도 대(臺)가 아닐세. 본래 한 물건도 없거늘, 어는 곳에 티끌이 끼랴”는 게송은 바로 혜능선사의 걸작이다. 혜능에 대한 전설은 아주 많은데 대부분 선종의 이치와 관계 있다.

3. 인의사태(仁義師太ㆍ1911—1995): 속명은 강소민(姜素敏)으로 동북사람. 1940년 오대산 현통사(顯通寺)에 출가해 인의라는 법명을 얻었다. 출가후 전심으로 수행해 1995년 4월 구화산 통혜선림(通慧禪林)에 이르러 초겨울에 7일간 음식을 끊은후 원적했다. 당시 85세.

4. 석지장(釋地藏ㆍ630-729): 신라 왕족으로 속성(俗姓)은 김(金), 호는 교각(喬覺)이다. 당고종 영휘 4년 출가 후 흰 개를 데리고 바다를 건너 중국에 왔다. 구화산에 이르러 수행도장을 건립했다.

개원 16년 원적했는데 당시 99세. 시신은 함속에 앉은 상태였다. 3년 후 열어보자 얼굴이 생전과 같았다고 관절을 움직이자 결과 금사슬을 흔드는 것과 같았다고 한다. 김교각은 지장보살의 화신으로도 알려져 있다.

구화산에서는 석탑 하나를 만들어 김교각의 육신을 보존하고 ‘김지장(金地藏)’이라고 존칭하고 그 전각을 ‘육신전(肉身殿)’이라고 명명했다.

5. 해옥보살 석해옥(海玉菩薩 釋海玉ㆍ1497—1623) 구화산 동굴에서 100년간 생활. 산을 내려온 적이 없었고 사람과 만난적이 없으며 제자를 거느리지 않았다.

126세 되던 해의 9월14일 오전 그는 자신의 백년역사를 적어놓은 편지를 옆에 놓아두고 원적했다.

6. 덕청보살 석덕청(德淸菩薩 釋德淸ㆍ1546-1623), 속성은 채(蔡), 자(字)는 등인(澄印), 호는 감산(憨山), 안휘성 사람. 젊었을때 남경의 보은사에 출가해 무극법사와 운곡(雲谷)의 제자로 됐다.

그 후 사방으로 떠돌아 다니다 황태후가 하사한 <대장경> 및 금을 받아 해인사(海印寺)를 건립하고 주지로 됐다.

7. 석해경(釋海慶ㆍ1909—1991), 하남성 비양(泌陽) 사람. 18세에 출가해 1987년 하남성 사기(社旗)현의 내불사(來佛寺)에 있었다.

1989년 백마사에서 보살계를 받았으며 1991년 원적. 79년 생애 중 61년 간 승려생활을 했다. 승려들은 그의 시신을 항아리에 넣어 매장했다. 1997년 가을 유골을 고향의 불탑으로 옮겼다.

8. 석은련(釋隱蓮ㆍ1903—1997), 1946년 호남성 남악(南岳)에 도착한 후 영풍(永豊)에서 수행했다. 1997년 음력11월5일 원적해 보통 관에 넣고 아무런 방부처리도 하지 않은채 탑에 보존했다.

3년5개월 후, 관을 열어본 결과 얼굴모습이 생전과 다름 없었고 피부가 탄력 있었으며 사지가 부드러운 육신보살이 되어 있었다.

9. 대흥보살(大興菩薩ㆍ1894-1985), 자는 요유(了維), 1931년 남경에서 출가. 1958년 구화산의 쌍계사(雙溪寺)에 도착.

1985년 2월17일0시5분 ‘아미타불’을 몇번 왼 후 상서롭게 웃으면서 원적. 당시 91세. 원적 7일 후, 항아리에 넣어서 원형 탑에 보존.

10. 묘지보살 석묘지(妙智菩薩 釋妙智ㆍ1888—2003), 복주 사람. 1937년 장주(漳州) 용해(龍海) 부궁진(浮宮鎭) 학석암사(鸛石岩寺)로 머리를 깎고 출가. 30년대 말에는 복주 고산(鼓山) 용천사에(涌泉寺) 거주.

1999년 제자 석법광(釋法光)의 요청으로 장주 용문구(龍文區) 향광념(香光念佛堂) 불당에 장기 거주하다 2003년 116세 나이로 원적. 3년후 시신이 담겼던 단지를 열자 모습이 생전과 다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