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에서 빈 페트(PET)병은 간단한 살균 소독기 역할을 한다. 오염된 물을 페트병에 담아 햇볕에 6시간 두면 자외선으로 살균 소독이 된다. www.waterschool.com

캐나다 출신의 자선사업가 프레이저 에드워즈(Fraser Edwards)는 6년 전 아프리카 동부 우간다를 방문 중이었다. 하루는 호텔 밖에 서 있는데 한 아이가 들 것에 실려 가는 것을 보았다.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아이가 며칠 동안 설사를 앓다가 탈수 증세가 심해지자 병원으로 이송되는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아이는 결국 죽었어요. 옳은 일이 아니었죠.”

에드워즈는 당시 그 일이 마치 자기 때문에 일어난 일처럼 느껴졌다고 한다. 부친이 엔지니어였던 에드워즈는 잡초를 제거하는 기계를 개발해 큰돈을 벌었다. 이후 부인과 함께 남태평양 파푸아뉴기니에서 자선사업을 했고, 캐나다로 돌아와서는 원조단체인 컴패션캐나다에서 일을 했다.

이 사건 후 에드워즈는 수질분야 과학자로 40년을 일한 밥 델(Bob Dell)을 만났다. 비슷한 시기 델도 에드워즈와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된다.

델은 깨끗한 자연환경으로 유명한 캐나다 온타리오 출신이다.

“퇴직할 때까지 수질과학자로 세계에서 가장 깨끗한 물을 가진 지역 주민들에게 깨끗한 물을 공급하는 일을 했죠.”

우간다와 케냐로 여행을 갔던 이 수질학자는 완전히 다른 세계를 경험하게 된다.

“아이들이 소가 소변을 본 물웅덩이에서 소를 몰아내고 물을 마시는 모습을 목격했어요. 아이들에게 깨끗한 물을 공급할 방법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캐나다로 돌아오자 사람들이 저보고 에드워즈를 만나보라고 권했어요. 나를 만난 에드워즈는 함께 우간다의 한 마을로 가 보자고 제안을 했어요. 그 마을에서는 아이들 다섯 중 한 명은 다섯 살을 채우지 못하고 수인성 질병으로 죽고 있었어요. 오염수 문제가 가장 심각한 지역이었죠. 그 길로 캐나다로 돌아와서 하던 사업을 정리했어요.”

뉴욕에서 공식 출범을 가진 워터스쿨의 대표 밥 델.

델은 수질 분야에서 평생 일했으나 완전히 새로운 정수법을 찾아야 했다.

“하루 1달러 미만으로 사는 사람들에게 어떤 정수 방식이 필요할까 하는 것이었어요. 물론 원조 단체들이 정수 필터를 나눠주고 있었죠. 하지만 이런 방식은 원조단체에 대한 의존만 높일 뿐이죠. 또 정수에 쓰이는 염소는 운반할 때 위험할 수 있고 아주 외딴 곳까지 보내기에는 어려움이 많아요.”

델은 외부 공급 없이도 지속가능한 해결책을 찾아야 했다. 그 때 찾아낸 방법이 바로 페트병을 이용한 정수 방식이었다.

“페트병은 어디에나 널려 있고, 전 세계에서 하루 1000만 개씩 생산이 되고 있죠. 아프리카 나이로비의 공장에서도 매일 25만개가 생산되고요. 페트병은 사용 후에는 쓰레기가 되지만 그 안에 물을 넣고 태양 아래 6시간 정도 놔두면 자외선이 세균을 죽이는 역할을 합니다.”

이 방식은 델이 새롭게 고안해 낸 것은 아니었다. 스위스의 수자원연구기관 EAWAG가 연구를 했고 세계보건기구(WHO)가 이 방식 도입을 고려하고 있는 중이었다. 델과 에드워즈에 따르면 “단지 현장실험이 이뤄지지 않았을 뿐”이었다.

아프리카에서 한 여성이 빈 페트병을 옮기고 있다. PASCAL GUYOT/AFP/Getty Images

델과 에드워즈는 아프리카에 가서 직접 페트병 정수 방식을 실험했다. 델은 깨끗한 물을 6시간 정도 햇볕에 놔두는 실험을 반복했다. 살균 정도를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먼저 24가구에게 이 방식을 전수했다. 아이들 건강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 학교 선생님은 아이들이 학습이 가능할 정도로 좋아졌다고 평가했다.

델은 “아주 짧은 기간에 아이들 질병이 사라지는 것을 봤죠. 이후 우간다와 케냐에 사는 주민 40만 명에게 이 방식을 전수했어요”라고 말했다.

WHO 통계에 따르면 매년 340만 명이 수인성 질병으로 사망하고 있다. 또 하루 4000명의 아이들이 깨끗한 식수 부족으로 사망하고 있다. 일부 아프리카 국가에서는 인구 절반이 수인성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

☞ 크리스토퍼 박사는 내전에 시달리는 아프리카 콩고민주공화국에서 의료봉사를 했고 다양한 분야에서 24권의 저서를 냈다. 크리스토퍼 박사가 쓴 기사는 미국과 유럽 주요 신문과 잡지에 게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