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공동] 수학으로 세상읽기
▲ 박경미 홍익대 수학교육과 교수 ⓒ
지능이 낮은 사람이 개수를 셀 때 ‘하나’, ‘둘’, 그 다음에 ‘아! 많다’라고 한다는 유머가 있었다. 요즘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수 개념을 쉽게 습득하기 때문에 비현실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인류가 3이라는 개념을 생각한 것은 예사롭지 않은 사건이었다. 하나(나)와 둘(너)만 생각하던 인류가 ‘셋’을 알게 된 것은 ‘나’와 ‘너’를 넘어서는 제3의 ‘그것’을 인정하게 된 것이며, 3 이후의 ‘많은 것’을 생각하는 시발점이 되었다. 3에 해당하는 three의 어원이 ‘넘어서는’을 뜻하는 trans 혹은 through라는 점을 고려할 때, 3이 지닌 이와 같은 의의가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관용구나 속담에서 3은 '많다, 반복한다'는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맹모삼천(孟母三遷)은 맹자의 어머니가 자식 교육을 위해 세 번이나 이사했고, 삼고초려(三顧草廬)는 유비가 제갈공명을 세 번이나 찾아갔다는 의미이다. 삼사이행(三思而行)도 행동하기 전에 세 번을 생각한다는 것으로 숙고의 횟수가 3이다. 속담에서도 3은 자주 등장한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 ‘삼년 기른 개가 주인 발등 문다’,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에 모두 3이 들어 있다. 이 속담에서 3은 구슬이 서말이나 되어도, 삼 년이나 기른 개가, 서당 개로 삼 년이나 지낸다는 식으로 많은 양과 긴 시간을 뜻한다.

한자에서는 세 개의 글자를 중복 배열하여 새로운 글자를 만들기도 한다. 예컨대 나무가 3그루 모이면 나무빽빽할 삼(森)이 되고, 여자가 3명 모이면 간사할 간(姦)이 된다. 동일한 글자를 많이 배열할 수 없다는 한계 때문에 세 개를 택했겠지만 두 개를 넘어서 세 개가 되면 충분하다는 것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따지고 보면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적 표현에는 수를 포함하는 경우가 유난히 많은 것 같다. 아득히 높고 먼 하늘을 의미하는 구만리장천(九萬里長天)이나 겹겹이 둘러싸인 깊은 대궐을 의미하는 구중궁궐(九重宮闕)에는 9가 들어 있다. 십년공부(十年工夫), 십년감수(十年減壽), 십년지기(十年知己)’에서 10은 오랜 시간을 의미하며, ‘열 번 찍어 안 넘어 가는 나무 없다’에서 10은 충분한 횟수를 말한다. 수가 더 커져 100에 이르면 완벽할 만큼 충분함을 뜻하는데, 그 예로 백전백승(百戰百勝), 백발백중(百發百中), 백약(百藥)이 무약(無藥), 백배사죄(百拜謝罪) 등을 들 수 있다.

40도 많다는 것을 의미하는 수로 사용되어 왔다. 예를 들어 ‘알리바바와 40인의 도둑’에서 40인이어야 할 필연적인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라 꽤 많은 수의 도둑이라는 의미이다. 40은 성서에도 자주 나온다. 하나님은 40일을 영적으로 중요한 기간으로 간주했으며, 창세기 7장12절은 노아의 홍수 때에 “비가 땅 위로 40낮 40밤 동안 내렸다”고 진술하고 있다. 또한 모세는 시나이 산에서 신과 40일을 함께 했고, 예수는 40일 동안 광야에서 금식했다. 여기에서 40일은 상당히 긴 시간 또는 변화의 기간을 나타난다. 이런 성서의 영향인지 14세기 베네치아에서는 선원 중에 병든 사람이 있는지 알아보는 검역 기간을 40일로 잡았는데, 이 역시 40일 정도를 지켜보면 충분하다는 판단에서 비롯된 것이다.

서양에서 7은 럭키 세븐이라고 해서 행운의 수로 대접받아 왔는데 특히 성경에서 7은 완전, 절정을 뜻하는 수이다. 하나님은 6일 동안 세상을 창조하고 제7일은 안식을 취하였으며, 창조된 만물이 보기에 좋았다고 7번 말하였다. 요셉이 해몽한 파라오의 꿈에는 7년간의 풍년과 7년간의 흉년이 예언되어 있다. 솔로몬왕이 건축한 7계단이 있는 성전은 7년에 걸쳐 건축되었고 성전 완공 축제도 7일간 계속되었다. 또 예수는 십자가에서 7마디의 말을 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불교에서도 극락은 칠천계로 되어 있고, 석가모니는 7년 동안 구도의 고행 생활을 했으며 7주간을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해탈의 기쁨에 잠겨 있었다. 우리나라의 49제도 7x7이므로 7과 관련된다.

숫자 7을 종교와 관련짓는 일련의 해석은 일종의 견강부회일지 모른다. 그러나 인간은 수에 여러 가지 의미를 부여해 놓고, 때로는 그 의미를 즐기며, 때로는 그 의미에 갇혀 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박경미 홍익대 수학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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