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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날의 의미
산다는 것은 따분한 것이기도 하다. 같은 생활이 반복되면 지루하기 마련이다. 몸이 있으므로 인해 먹고난지 한참되면 배가 고파오고, 날씨가 추워지면 따뜻한 곳을 찾게되고 더우면 그늘을 찾게 된다. 운동을 하면 더워져 찬것이 먹고 싶고, 찬물이 먹고 싶어진다. 사람은 다 몸으로 인한 영향을 받는다. 어쩌다 잘못디뎌서 쇠못이 신발속으로 올라오면 발다닥이 구멍이 생겨 한동안 질룩거리며 병신이 되어(욕이아니다) 생활을 해야 된다.
세상에 일어나야 할 일은 반드시 일어나게 되어있다. 사람이 늙고 때가 되면 죽는 것과 같이.
인간으로서는 죽음을 피할수 있는 방법이 없다. 인간뿐만 아니라 동식물을 비롯하여 우리가 흔히 무생물이라는 것도 다 생명이 있는 것으로 때가 되면 사라지게 된다. 출발은 같이 했지만 달리기하면 1등하는 선수가 있듯이 인생도 시작이 같아도 끝은 다르기 마련이다. 살아가면서 남의 것을 많이 가로채면 살 때는 이득보는 것이 많아져 좋다하겠지만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신은 어느 누가 일방적으로 득만 보게하거나 손해만 보게는 하지 않는다. 모든 것에는 대가가 따른다. 나중에 나이들고 철들어 죽을때가 되면 알게된다.
일본사람에 대해 특히나 우리민족은 그리 좋은 인상이 들지 않지만 배울 점은 많다. 상술을 일찍 받아들여 말하자면 (과학도 상술의 일종) 남에 대해 상당히 신경을 쓴다. 일본인들은 남에게 폐를 끼치는 것은 절대로 하지 않는다. 어떤때건, 누가 보건 안보건 언제나 마찬가지다. 이걸하면 남에게 해가 되지 않을까를 늘 생각한다. 물론 폐를 안끼치려면 공중도덕을 잘 지켜야 한다.
그들은 줄을 서야하는 때는 줄을 서서 순서를 기다리고, 남이 있는 데서는 절대로 전화를 걸지도 않고 받지도 않는다. 우리야 뭐 오는 전화 어떻게 안받나 하겠지만 무슨 급한 상황도 아닌거라면 혼자있을때 통화하면 된다. 말하자면 지하철이나 버스안이나 절대로 통화하지 않는 일본인을 따라 좀 배워야 한다. 꼭 받아야할 경우는 열차라면 남이 없는 곳으로 피해서 듣기지 않게 조용히 간단히 통화한다.
우리는 살펴보면 지하철같은 곳도 허점 투성이다. 제일 먼저 지하철로 들어서면 “에스컬레이터를 이용시는 뛰거나 걷지 맙시다.” 이것도 잘못된 것이다. 바쁘다고 뛰어가면 전기장치에 지장을 초래해 그렇다치더라도 걸을 수는 있게 해야지 걷는 것도 못하게 하다니. 일본인은 항상 에스커레이터를 타도 항상 한쪽으로 비켜서서 (한사람이 이쪽에 서면 뒤따르던 사람은 다 그쪽편에 붙어선다) 남이 지나갈 수 있게 배려한다. 우리는 걷는 것조차 방송을 해서 못하게 하니 에스컬레이터를 타면서도 신경을 안쓰고 아예 이쪽저쪽 꽉막아 제맘대로 서서 탄다.
그럼 에스커레이터를 내려 승강장에 가보자. 전동차를 기다리다가 전동차가 들어오면 또 방송이 나오는데 “전동차가 진입하고 있으니 안전선 뒤로 한걸음씩 물러나기 바랍니다”하고 또 방송이 나온다. 이럴때 일본이라면 누가 나서도 나설 것이다. “아니! 줄 잘 서있는데 뒤로 한걸음 물러나면 그럼 줄은 엉망되고 흐트러지는 것이 아닌가?” 아예 설 때 안전선뒤쪽으로 줄을 서서 기다리게 하면 될 것을 차가 들어온다고 섰던 줄을 흐트러지게 하는 방송을 왜 하는지 알 수가 없다. 이런식으로 하니 질서를 지키려해도 지키지 못하게 하면서 “무슨 줄서기 운동”. “기초생활지키”라는 운동을 하는지 알 수가 없다!
외국에 가보면 우리처럼 자가용 고급타고 다닌다고 자랑하는 나라도 없다. 전부 소형차를 타고 다닌다. 그것도 임차해서 빌려탄다. 우리는 개인마다 뭐 집이 있어야 하고, 자가용이 있어야 하고, 있어도 중형이나 고급이 있어야 하고 무슨 공산주의도 아닌데 전부 똑같이 있어야 하는가!
사람의 생명은 정해져 있는 것으로 언제 어떻게든 죽게 되어있다. 자살이나 특별한 사고가 아닌이상 죽지는 않게 되어있다. 그러니 제목숨이라고 제맘대로 하는 것이 아니다. 떳떳이 살면 죽어서도 두려울 것이 뭐 없다. 특히 항간에 말하는 출세못한 사람이야 뭐.
숨이 멎음이 죽음으로 모든 끝이 아니고 또다른 생명의 시작이다. 그러니 사고로 부딪혀 죽는 순간도 죽는 사람은 편안하다고 하지 않는가. 육신이 있을 때 불편하고 아프지 육신을 떠나는 순간은 아플게 없다. 사람은 다 같은 것으로 내가족이야 당연히 사랑해야하지만 남도 똑같이 사랑해서야 되지 않겠는가!
대학이나 입사시나 시험이 있는데 이걸 왜 만들어 귀찮게 할까하는 생각이 들때가 있다. 면접이나 제대로 해서 뽑으면 될일을 가지고 왜 성가시게 할까싶은 것이다. 모두 비슷비슷하니 어쩔수 없이 문제를 내서 점수많은 순으로 뽑고있는 것이다. 너무 점수에 얽매이게 되어 부작용이 있으니 좀 많이 뽑아서 면접에서 추리는 그런 방법이 생긴 것같다. 그럼 점수에 턱걸이해서 걸린 사람과 한점차로 떨어진 사람은 얼마나 차이가 있을까. 실제 차이랄 것도 없다. 아까 말했듯이 똑같은 중에서 어쩔 수 없이 뽑으려다보니 그렇게 된 것이니까.
만약 80점으로 1차합격하고 79점으로 떨어졌다면 참 억울한 일이지만 어쩔수가 없다. 버스나 지하철이나 기차나 1,2초차이로 못탈때가 있지 않은가. 출입문을 나오고 보니 잊은것이 있어 도로가니 이미 닫혔다면 키가 없으면 다시 들어갈 수 없다. 순간의 차이, 하나차이가 개인이 느끼기에는 엄청 큰 것이다.
마라톤이나 100m달리기 선수가 영점몇초차로 등수에 들고 떨어지고 하니 얼마나 하찮은 것 같지만 하나차이가 큰것인가. 1,2,3등에 들면 좋겠지만 4등은 존재조차 없어지고 인정않으니 참 냉정한 세상아닌가! 이뿐만이 아니다. 아주 급해 물건을 신청했는데 당일배송하는 마감시간이 지나 신청하여 당일 못받는 수도 있다. 사탕을 배급하는데 20개밖에 없는데 내가 스물한번째 차례에 서 있다면 못받는 것이 아닌가. 이러고 보면 무슨 영점몇초, 하나 차이란게 간단한 것이 아니다.
횡단보도에서 신호가 떨어지기를 기다리며 가끔 이런생각이 든다. 왜 차는 같은 방향으로 늦게 온 차도 계속 달리게 직진을 허용하면서 길을 건너는 사람에게는 허용하지 않고 횡단보도 신호등을 빨간등으로 바꿔버리는가. 직진차량이 지날때까지 푸른등을 두어도 우회전하는 차는 사람없으면 우회전하면 되니 문제가 없는데 누구를 애먹이려 도중에 적색등으로 바꿔버리나 싶다. 청색등으로 두면 직진차와 같이 건널수 있고 급한 사람도 무단 횡단을 않을 터인데 자꾸 도중에 잘라서 적색등으로 해버리니 언제올지 기다리니 지겹고 하니 무단횡단하는데 이건 무단횡단하도록 약간은 유도하는 것이 아닌가싶다.
시내버스도 요즘이 간격이 긴것은 거의 20분을 기다려야 하는데 승강장에 좀 더 서있어주어도 될일인데 미리떠나서는 네거리에서 신호받고 있는 걸 보면 참 미련한 운전사다 싶다. 한편으로는 관계기관에서 이런걸 좀 교육시키면 안되나 싶기도 하다. 바로 떠나도 횡단보도에서 걸리겠다싶으면 정류장에 좀 더 머물러주고 떠라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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