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과 결탁해 천문학적인 자금을 해외로 빼돌리는 수법에 있어서

장쩌민에 비하면 쩡칭훙은 새발의 피다. (사진=Getty Images)

미국에서 발간되는 글로벌신문으로중국에 관한 가장 빠른 정보력을 가진 대기원시보는 지난 22일 쩡칭훙 일가가 대만 재벌 및 거물 정치인과 결탁해 돈세탁을 한 내막을 단독 보도했다. 쩡칭훙은 또 나중에 루넝 사건으로 700억 위안의 국유자산 손실을 초래한 바 있다. 하지만 쩡칭훙의 이런 수법은 장쩌민에 비하면 새발의 피에 불과하다.


아들에게 막대한 이권 챙겨준 장쩌민


장쩌민은 1993년 국가주석이 된 후 중공 당내 최고 직책 3개를 동시에 거머쥐었다. 총서기, 국가주석, 군사위원회 주석을 겸직하면서 당정군(黨政軍)의 대권을 독차지한 것이다.


그해에 장쩌민은 아들 장몐헝을 미국에서 불러들여 탐오와 부패의 길을 걷게 한다. 1994년 장몐헝은 수백만 위안을 ‘대출’해 상하이시 경제위원회로부터 시가 1억 위안이 넘는 상하이연합투자공사(上海联合投资公司)를 인수한다. 이 회사는 겉으로는 국영기업이지만 실제로는 장몐헝의 사유재산과 마찬가지였다. 장몐헝은 상하이연합투자공사를 발판으로 삼아 상하이에 둥지를 튼다.

1999년에는 중국 인터넷통신유한공사(이하 網通), 상하이자동차공업집단공사, 상하이공항집단공사 등 대형 국영기업에 이사로 있으면서 ‘전신대왕(電信大王)’이란 별명을 얻었다. 그는 자신의 거대한 통신왕국을 건설한 후 2001년에는 10여 개의 IT 관련회사를 거느리게 됐다.


1990년대 말~2000년 초반만 해도 국유기업은 영업성적에 대한 평가기준이 없어,사실상 재산을 불리는 수단이 됐다. 중국인터넷통신공사의 경우 명목상으로는 국영기업이지만 이후의 수법을 보면 장쩌민이 공돈을번 전형이 됐다.


국영기업발전 주장하며 사유화


중공 고위층 최측근에 따르면 장쩌민은 1999년 전후로 아들이 여러 국영기업에 들어가게 만든 후 권력을 이용해 돈을 빼돌렸다. 공개적으로는 '국영기업개혁과 발전'을 내세워 국영기업의 발전을 정치적인 문제로 승격시켰다.


장쩌민은 또 여러 차례 담화에서 국유기업 특히 중대형 국유기업을 잘 운영해야 하며 이는 사회주의제도의 전도와 운명이 달린 중대한 정치문제라고 주장했다. 국가는 대기업, 대그룹을 발전시켜 국민경제의 주력군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동시에 장몐헝이 통제하는 국유기업이 은행과 중앙에 끊임없이 손을 뻗쳐 돈을 모으게 했다. 이들 대형 국유기업은 사실상 은행과 중앙에서 돈을 끌어왔다. 끊임없이 각종 변칙적인 대출과 경제정책 및 외자와 합자 등을 구실로 돈을 끌어와 기업을 소유한 고위층 가족들에게 폭리를 안겨줬다.


장쩌민, 주룽지도 끌어들여


최측근에 따르면 주룽지 전 총리가 1998년 처음 총리를 맡았을 때만 해도 장쩌민이 제출한 국유기업발전정책을 옹호하면서 “3년이면 국유기업이 어려움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다”고 호언장담했다.그러나, 2-3년 후 주룽지는 일부 국유기업이 밑 빠진 독처럼 아무리 투자를 해도 발전은커녕 계속 돈을 달라고 손을 내미는 것을 발견했다.


보도에 따르면 망통의 자산이 장몐헝에 의해 증발되자 장쩌민은 자식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중국전신을 북방전신과 남방전신 둘로나뉘게 했다. 2002년 국무원 규정에따라 북방전신은 10개 성에서 고정자산을 망통에 넘겨야 했다.


하지만 당시 장쩌민은 최고 권력자였고 1999년 파룬궁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이 발생하면서 주룽지의 당내 입지가 약해졌다.


주룽지는 장몐헝 등의 행동을 보고도 일언반구도 할 수 없었다. 주룽지 자신이당내에서 압력을 받고 있던데다 그의 아들 주윈라이(朱雲來)가 1998년 왕치산(王岐山)의 추천을 받아중국국제금융유한공사(CICC)에 근무했기 때문이다. 이 회사는 장쩌민과 관련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주룽지는 줄곧 장쩌민 일가의 전횡에늘 불만이 있었다. 나중에 라이창싱 사건이 발생해 장쩌민 파 핵심 인물 여럿이 연루되자 주룽지는 철저한 조사를 주장해 장쩌민에게 타격을 줬다.


장쩌민은 라이창싱의 신병인도를 방해하는 한편 주룽지의 친척이자 중신집단 이사장 주샤오화(朱小華)를 뇌물수수혐의로 체포해 반격했다. 결국 라이창싱을 둘러싼 장쩌민과 주룽지의 대결은 장쩌민의 압승으로 끝났다. 라이창싱은 인도되지 않았고, 이 사건에 연루된 자칭린은 2002년 정치국 상무위원에 진입했지만 주룽지는 조용히 물러나야 했다. 또 주샤오화는15년 징역형을 판결받았다.


장쩌민의 돈세탁


과거 중국 내많은 업종은 개인경영이 금지됐었지만, 이들 영역을 개방하고 개인회사에 넘길 때 외국기업에 우선권이 부여됐다. 가장 중요한이유는 외국기업이 돈세탁을 도와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중공 고위층의 자금세탁 내막을전한 소식통에 따르면, 쩡칭훙은 자금세탁을 위해 대만 사업가와 결탁했고 장쩌민은 미국인과 결탁했다. 장쩌민이 권력을잡자 미국의 거물급 정치인 몇 명이장쩌민을 찾아왔다. 이중 한 명이 미국의 대중정책에 핵심적인 영향력을 지닌 B씨다. 월스트리트에서 대기업 CEO를 지낸 바 있는 B씨는 장쩌민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의기투합했다.


1995년 CICC가 설립된 후 중공 관방은 이 회사에 대해 “중국 최초의 외자투자은행이며, 건설은행과 모건 스탠리 등 투자자들이 1995년 공동 설립했다”고 언급했다.


소식통에 따르면 후에 장쩌민 일가는 B씨와 월스트리트의 연줄을 이용해 중국에서 천문학적인 자산을 빼돌렸다. 장쩌민은 또 주룽지의 입을 막기 위해 2004년 주윈라이를 CICC의 CEO로 임명했다. 주룽지가 장몐헝의 부패 행각에 대해 언급하지 못한 주요 이유다.


린펑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