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에 꽃잎은 날리고

봄에 꽃이 많이 피지만 꽃이 핀다고 한 철에 들고 일어나듯 다 피는 것이 아니다. 복이 온다고 한꺼번에 감당 못할 만큼 오는 것이 아니듯이. 우리가 눈으로 보기에는 눈에 보이는 정경이 다 꽃이면 좋겠지만 그럼 꽃만 있어야 하니 다른 것이 없어도 안 된다. 꽃은 따뜻한 봄날에 피는 꽃이 제일 많다. 물론 같은 봄이라도 날짜를 달리해서 순서대로 꽃이 피지만 어느 한 기간에만 왕창 피었다가 왕창 시드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나는 봄을 가장 좋아하고 다음으로 여름 가을 겨울 순으로 좋아한다. 봄과 여름은 나무도 울창하고 꽃도 피지만 가을부터는 단풍이 들어 스산하고 싸늘한 바람이 불면 잎은 다 떨어진다. 단풍을 보면 나는 왠지 허전하다. 떨어져 낙엽이 되기 전 잠깐 붉은 빛을 띨 뿐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그렇게 생각할 뿐 나뭇잎의 신세는 처량한 신세인 것이다. 그것도 나무줄기와 뿌리에 영양분이 다 빨리고 나니 창백해진 모습으로 우리네의 못 살 때의 동생에게 젖을 다 빨려 마른 엄마모습 같다.

벌이 한동안 없다 싶더니 요즘은 예전의 그 토종벌인지 아니면 외래종인지 모르지만 그나마 꽃에 벌이 많이 보인다. 그런데 이놈 벌들이 제일 아름다울 것 같은 막 피어나는 꽃에는 절대 앉지 않고 한창 피어있는 꽃에만 앉는 것이다. 열여덟 처녀가 한창 아름답게 보이는데 사람눈에 아무리 아름다워도 벌에게는 막 피어나는 꽃은 꽃도 아닌 모양이다.

낙엽을 밟는 것이 낭만적이지만 낙엽위에 떨어진 꽃잎들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좀 더 피어있을 것이지 왜 이리 빨리 떨어졌남? 특히 봄날에 보는 핑크빛 꽃잎들은 꽃다운 나이 때야 당연히 설레이지만 나이가 든 노인들의 가슴에도 두근거리기는 마찬가지 일 듯하다. 누구나 자기 늙는 것은 깨닫지 못하고 사니까. 다 깨닫게 될 때쯤이면 이미 백발이 되어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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