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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가면 내일이 오고, 이렇게 날이 가면 한 일이 있게 되고 이것이 모여 추억이 쌓이고 나이가 많아져 갈수록 더 많은 추억이 있게 된다. 나이가 들수록 본 것이 많고, 들은 것이 많고, 해본 것이 많고, 기쁘거나 좋은 일도 많이 겪고, 좋지 않은 일도 많이 당하고, 실망이나 좌절도 많이 당한 사람이다. 말하자면 세상사의 경험이 나이가 들수록 많이 겪어 나이 적은 사람보다 나이 많은 사람이 경험이 많다는 말이다. 그래서 남자들은 나이자랑을 하는 것인가!
세상에 태어날 때 누구나 다 귀한 자식으로 태어난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손자본다고 좋아서 춤을 추고, 낳은 부모가 제 자식 낳았다고 온동네 소문내고, 때맞추어 백일잔치 돌잔치 이렇게 귀한 대접을 받으며 자라면서, 중고등학교 수업료보다 더 많은 돈이 드는 유치원에 다니고, 계단을 밟듯 학교를 거치면서, 많고 많은 경쟁을 거치면서, 이런 저런 쓴 고배를 마시면서, 남의 말도 다 들을게 못되는 구나하고 알게 되고, 때로는 거짓말도 해야 되는구나 알게 되면서. 그 곱던 마음이 세상일로 상처를 받아 원한이 쌓이게 된다.
모든 일이 재대로만 돼준다면야 억울한 일, 억울한 사람이란 게 있을 수 없겠지만, 일이란 게 다 재물과 관계되고 情(정)이란 게 작용하여 거꾸로 갈 때가 훨씬 많다. 남의 도움을 받아 잘된 사람이야 좋겠지만, 그 반대편의 피해를 입은 사람은 미칠 지경일 것이다.
일가친척이라 봐주고, 고향사람이라 봐주고, 동문이라 봐주고, 동기라 봐주고, 옆집에 산다고 봐주고, 평소 안다고 봐주고, 돈 갖다주니 봐주고, 이렇게 하다 보니 피해보는 사람이 생길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세상 살다보면 억울한 일이 한 둘이 아니다. 어떤 사람은 뭘해도 아무 탈이 없는데 누구는 하기만 하면 탈이 생긴다. 어떤 사람은 큰 실수를 해도 아무 일도 없는 듯 잘 넘어가는데, 누구는 사소한 실수를 해도 온 천지가 떠들썩하기만 하다.
예전에 들은 말이 떠오른다. 부잣집 애가 겨울에 비싼 양말을 따뜻하게 신고 세배한다고 들어오니 집주인이 쫓아나와 반가이 맞으면서 추운데 어서 들라하고 손을 잡아당기는데, 어떤 가난한 집 아이는 돈이 없어 양말도 신지 못하고 맨발로 세배한다고 들어오니 얘야! 추운데 집에 있지 뭘하러 오느냐고 하더란 얘기가 생각난다. 광(식량을 쌓아두는 창고)에서 인심난다고 아무래도 있어야 따르는 사람이 많다.
그래서 나이들수록 들은 것이 많고 본 것이 많고 먹어본 것이 많아, 모든 일에 별 흥취가 적다. 뭣이든 새로워야 흥미가 생기고 정신이 초롱초롱해 지는데, 늘 보던 것이야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맛있는 과일이 나와도 별로이고, 얘기를 해도 듣기 싫고, 누가 와도 반갑지가 않다.
미인이 줄줄 따를 정도로 잘생겼던 대장부나, 남자들이 줄줄 따르던 미녀나 늙어지면 밭고랑처럼 주름살만 생기고, 온 얼굴이 지저분하고, 탱탱하던 피부가 축축 늘어지게 된다. 커다란 눈이 눈까풀이 내려와 단추구멍처럼 실눈이 되고, 쩌렁쩌렁하던 목소리는 모기소리만큼이나 작아진다. 먹는 것이 귀찮고, 입는 것이 귀찮고, 말하는 것이 귀찮고, 보는 것이 귀찮고, 듣는 것이 귀찮아진다.
나이가 들수록 혀가 감각이 둔해져 맛을 모르고, 코가 둔감해져 냄새를 맡지 못하게 되고, 이빨은 빠져 음식을 씹지 못하니 음식맛을 모르고, 말도 어둔해지고, 눈은 침침해 잘 보이지 않고, 귀가 먹어 말을 하는지 않는지 세상이 조용하고, 머리는 희끗해져 간다.
그래서 늙기 전에 많이 베풀고, 좋은 일 많이 하고, 남을 배려하고, 또 그 가운데서 인생을 즐겁게 살아서, 늙어서 대접받고 후회없는 생이 되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젊은 사람들이 따르고 존경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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