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이 끝나자마자 그들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무덤부터 찾아갔다.

그들이란 문재인 등 민주통합당 당선자 30여 명이다. 민주당 대표권한대행 지휘봉을 잡자마자 KBS 등 언론사의 파업(일부는 불법 파업) 시위 현장을 돌아다니며 시위를 격려했던 문성근 대표대행이 그 앞줄에 섰다.

그들은 노무현의 묘소에 찾아가 꽃을 바치며 ‘의회 권력을 교체하지 못해 죄송하다’고 말했다. 마치 노무현 전 대통령이 민생이나 국가 안보보다 의회 권력 빼앗아오기를 더 학수고대하고 있는 사람인 양 말한 것이다. 과연 추종자들이 의회 권력 잡는 것이 무덤 속 노무현의 꿈이고 바람일까. 그들에게 고언(苦言)을 보낸다.

‘무덤 속 노무현을 깨우지 말라.’

그를 깨우고 귀찮게 하지 말라는 뜻은 순수하지 못한 의도로 그의 후광(後光)을 이용하지 말라는 말이기도 하다. 추종했던 옛 지도자의 묘소를 참배하는 것이 인륜지사(人倫之事)이지 그게 왜 ‘깨워서 귀찮게 하는 정치적 이용이냐’는 반론을 내놓을 것이다. 무덤 속의 그를 깨워서는 안 되는 이유와 들이댈지 모르는 반론에 대한 답은 이렇다. 그들이 반론을 주장하고 싶다면 먼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내놓아야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부엉이 바위 끝에 섰어야 했던 그 당시 그들 중 어느 누가, 몇 명이 그의 곁에 함께 서 있었던가? 권좌에서 물러서자마자 차명 계좌 등 갖가지 측근 비리 의혹으로 벼랑 끝까지 몰려 있었을 때 그는 처절하게 외로웠고 어느 누구에게도 기댈 곳 없는 광야에 홀로 서 있었다. 유난히 자존심이 강했던 주군(主君)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을 만큼 고독했을 때 그 많은 가신(家臣)들과 속칭 ‘친노’들은 어디에 있었던가.

최후의 순간 부엉이 바위 끝에 선 그의 눈앞에는 권력을 누렸을 시절 곁자리서 웅성댔던 얼굴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쳤을 것이다. 주군이 죽음을 선택할 만큼 외롭게 무너져갈 때도 끝까지 지켜주지 않았던 측근들이 이제 와서 주군의 흘러간 후광이나 업으려 한다면 그는 무덤 속에서 어떤 생각을 할까. 고맙고 기특하다고 할까. 아니면 권력 무상의 배신감을 느낄 것인가. 더구나 모든 추종자들이 한마음으로 참배 온 것도 아니고 친노`비노`중도로 갈래갈래 갈라져 다투는 모습을 보면서 어쩌면 그는 ‘무덤에서 날 깨워내 정치마당으로 끌어내지 말라’고 할지 모른다.

죽음으로부터도 보스를 지켜주지 못한 그들이 어느 날 죽은 보스의 이름만 끌어다 친노(親盧)라는 깃발을 들고 나온 것이야말로 노무현이란 비눗방울 이미지 속에 들어가 공짜로 날아오르려는 전략이다. 옛 정치가의 대중적 인기와 연민의 향수를 다시 끌어내 야권 세력의 지분을 키우는 데 이용해 보려는 꼼수이기도 하다.

본능적 정치 감각을 지녔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그걸 모를 리 없다. 더구나 500만 표의 심판을 받는 실정(失政) 속에서도 제주 해군기지나 한`미 FTA의 필요성을 주장하며 국익(國益) 중시의 통치도 했었던 그의 국정 노선을 갈아엎고 말을 바꿔가며 종북 노선을 따른 추종자들. 비서실장까지 시켜줬음에도 자신과 노무현은 비전이 다르다고 말한 심복, 거기다가 선거 후 민생과 사회 안정에만 몰입해도 민심이 움직일까 말까 한 때에 불법 파업 현장에 나가 주먹이나 휘두르는 민심 외면의 추종 세력들.

그런 친노들이라면 오히려 노무현 자신이 친(親)해지기 싫을 것이다. 친노의 깃발을 든 그들이 무덤 앞에 백만 송이의 꽃을 바친다 해도 무덤 속의 그는 단호히 말할 것이다. ‘나를 깨우지 말라. 내가 외로울 때 너희는 내 곁에 없었고 해군기지, FTA 같은 나의 국정 철학마저 뒤집고 부정한 너희들과 친(親)하거나 이용당하고 싶지 않다’고. 그리고 ‘지난 10년 사이 더 이상 노랑풍선 같은 이벤트성 정치가 먹혀들지 않을 만큼 국민의 정치 의식은 성숙됐고, 종북 바람이 세질수록 자유 민주주의 나무의 뿌리는 더 단단히 활착한다는 사실을 너희들만 모르는구나’고 질책할 것이다.

무늬만 친노인 그들 귀에는 그런 그의 말이 들리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의 유추된 그 질책이야말로 무덤 속의 그를 깨우면 안 되는 이유요, 묘소 참배가 정치 쇼가 아닌 인륜지사라 우겨댈 반론에 대한 답이다. 진정한 친노라면, 그를 편히 쉬게 하라.

김정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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