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을 따지지 않고 시류에 편승하는 것은 오늘날 중국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처세 이치’라 할 수 있다.

많은 중국인은 중공에 의해 반복적으로 박해당하는 동포에 대해 냉소적인 태도를 취하며, 보고도 못 본 척, 듣고도 못 들은 척 하거나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척 한다. “나만 잘 살면 그만”이라며 대수롭지 않아 하는 이들도 많다.


이런 태도는 공무원, 기업인, 화이트 칼라, 고임금에 매수된 지식인 등 기득권 층에 속할수록 더 보편적이다.

그러나 하나만 알고 둘을 모르는 것과 같은 모양새다. 우리가 사는 이 세계는 서로 긴밀한 유대관계를 갖고 있다. 남이 어렵게 살면 나 역시 살기가 어렵다.


무슨 말인지 이해 못 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보자. 당신이 중국에 산다면, 아무리 상류층이라고 하더라도 대기오염과 수질오염으로 인한 피해를 벗어날 수 없다.


중공이 장기간 환경보호를 무시하거나 심지어 인위적으로 생태환경을 파괴한 결과이다. 여기에 일반 국민들의 환경에 대한 낮은 인식도 한 몫 한다.


또 중국에서 길거리를 걷는다면, 요즘 들어 더욱 그러한데 신변에 대한 위협, 언제 난폭한 범죄의 대상이 될 지 우려스러운 느낌을 받는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궁극적으로 중공이 법치가 아닌 인치(人治)로 통치하면서 사회기강을 무너뜨리고, 자신들의 부패에 대한 사회적 지탄과 분노를 약화시키기 위해 인위적으로 일반 대중의 도덕과 양지를 짓밟은 결과다.


비슷한 예는 또 있다. 중국에서는 남에게 원한 살 일 없이 살아왔더라도 하루아침에 집이나 토지를 정부로부터 몰수당할 수 있다. 보상은커녕, 부당한 대우를 항의할 곳도 없다. 강제 철거와 폭력에 그대로 노출된다.


이는 다른 이들이 이렇게 당하는 사이 모두가 나몰라라 외면했고, 이로 인해 모두의 권리가 박탈당했기 때문이다. 당신의 운명은 당신이 중국인이기만 하면 원했든 원치 않았든 권력에 의해 이미 속박당해 있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억압에 굴하지 않고 인권을 수호하느라 커다란 대가를 치렀다. 환경운동가, 인권운동가는 불법적으로 체포됐고, 부패관료의 부당한 권력남용을 청원하던 사람들은 구타당했다. 사실 그들이 얻으려던 것은 자신의 권리일뿐만 아니라 우리의 권리이자 당신의 권리였다. 그들, 우리, 당신은 서로 다른 사람이지만 부당하고 정통성 없는 권력 아래 속박됐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다. 그러나 ‘내 일 아니니까’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보고도 못 본 척, 들어도 못 들은 척 한다. 오늘은 그들이 박해를 받지만 내일은 당신일 수 있다. 이는 중국의 숱한 숙청의 역사가 증명하는 사실이다.


독일의 목사 마틴 니멜러는 처음에 나치를 지지했다가 나중에 나치의 탄압을 받았다. 니멜러는 훗날 자신의 행동을 참회했는데, 현대 사회를 사는 중국인에게 귀감으로 삼을만한 명언이다.


“처음에 그들(나치)은 유태인을 살해했지만 나는 유태인이 아니기에 반대하지 않았다. 나중에 그들이 천주교 신자를 살해했지만 나는 천주교도가 아니기에 여전히 반대하지 않았다. 또 그후 그들이 노동조합원을 살해할 때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라서 여전히 반대하지 않았다. 그들이 나를 공격할 때에는 반대할 사람이 이미 몇 명 남지 있지 않았다.”


진파공(陳破空) 중국문제전문가/자유아시아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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