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김승욱 기자 = 20세기 초반 근대전환기 한국인이 스스로를 바라보는 시선과 외부인이 한국인을 바라보는 시선은 격차가 어느 정도였을까.
최근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이 펴낸 '충돌과 착종의 동아시아를 넘어서-근대전환기 동아시아의 자기 인식과 대외인식(성균관대출판부)'는 근대전환기 한국의 자기인식과 대외인식의 차이를 조명한 연구서라 할 만하다.
크게 동아시아 삼국의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이해를 다각도로 분석한 제1부와 근대 미디어에 나타난 한국의 자기인식을 논한 제2부, 한국과 동아시아 삼국 사이에 벌어진 외교분쟁이나 내분, 입장 등을 고찰한 제3부로 구성됐다.
김성남 동아시아학술원 연구교수는 '1910년대 식민지 조선에 대한 중국의 인식'에서 새로 발굴한 중국인의 조선답사기 3부를 통해 당시 중국인의 조선에 대한 인식을 들여다봤다.
1915년 중국관리 왕양빈(王揚濱)이 조선물산공진회를 참관하고 쓴 '조선조사기(朝鮮調査記)'와 농림강습소 소장 진임지(陳臨之)가 조선의 실업(實業) 현황을 견학하고 쓴 '조사조선실업보고(調査朝鮮實業報告)'는 1910년대 식민지 조선의 산업발전에 주목하며 낙후한 중국의 현실을 한탄한다.
반면 '비밀품'이라는 표식이 붙은 저자 미상의 '조선문견록(朝鮮聞見錄)'은 산업발전의 이면에 자리한 조선 민중의 고통과 민족말살정책을 고발하고 중국인에게 일본을 경계하라고 촉구했다.
"시장과 관청의 건축은 날로 새로워지고 흥성하고 있다. 현재와 이전을 비교해 보면 그 흥함과 피폐함을 잘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모두 조선인의 고혈을 짜내는 일이니 조선인들에게 물어보면 모두가 생계를 유지할 수 없어 살아갈 수가 없다고 답한다. 한일합방 이전에 비해 세금이 20배를 넘었고 인구는 4분의 1이 줄었다"
김 교수는 "3부의 조선방문기는 식민지 조선경제를 바라보는 다양한 논쟁과 쟁점들에 대한 상반된 인식의 틀과 관점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고 설명한다.
이희수 동아시아학술원 연구교수는 '19세기 러시아인들의 한국에 대한 기록'이라는 논문에서 1885-1896년 조선을 여행한 러시아인 5명의 여행기를 살폈다.
러시아 육군 참모본부 알프탄 중령은 1895년 12월 조선을 방문하고 일본의 본격적인 침략을 눈앞에 둔 조선의 상황을 이야기했다.
"일본은 아직 명목상으로 자주국인 조선을 실제적으로 일본에 종속적인 관계로 만들기 시작했다. 일본이 의도하는 것은 조선을 일본의 혼으로 물들이는 것이다. 노골적인 힘에 의지하지 않더라도 이 두 민족이 시간이 흐르면 저절로 융합되게 하기 위해서였다"
김 교수는 "러시아인의 눈에 비친 조선은 관료의 횡포와 부패, 정치적인 혼란과 유약함 등 부정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선량함과 지혜로움 등 긍정적인 평가도 찾을 수 있었다"고 말한다.

잠시 나간김에 봄기운을 좀 훔쳐 봤습니다.




















한겨레 의 발원지 백두산 천지

한겨레 참역사

가.한겨레 참역사를 왜 알아야 하는가!

역사란 무엇인가, 우리가 지나온 발자취다. 그러면 우리는 왜 역사를 배우는가, 인간은 자신이

지나온 발자취를 돌아보며 반성을 하고 위대한 역사로부터는 용기와 힘을 얻어 더 나은 삶을

가꿀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역사를 거울삼아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 보고 잘못된 점이 있으면

고쳐서 이를 바탕으로 새롭게 미래를 준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힘과 용기 반성의 근거가 되는 역사가 누군가에 의해서 조작되고 왜곡 되었다면

이를 토대로 더 나은 삶을 설계한다는 것은 모래위에 집을 짓는 것과 같다. 또한 개인적 국가적

민족적 차원의 어떠한 노력도 힘은 힘대로 들이고 열매가 없거나 노력의 결과가 반감되는 공허

한 소모전으로 끝나기 쉽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 한민족의 역사는 심각하게 왜곡 조작되었고 현재 소설책 같은 엉터리

역사를 진짜로 알고 배우고 있다. 민족혼이 뿌리체 날아가 버린 역사를 우리의 뿌리라고

가르치고 배우고 있는 것이다. 이는 마치 호랑이에게 너는 고양이니 고양이로 살아가라

것과 같으며, 본래 신분은 왕자인데 거지라고 세뇌시켜 원치 않게 거지의 삶을 강요하는

것과 같다. 이는 개인은 물론 민족전체에 이루 헤아릴 수 없는 폐해를 몰고 와 모든 문제

의 근원이 된다.


이제 우리의 참역사가 누구에 의해서 어떻게 왜곡 조작되었는지 실상을 파헤치고 이로 인해

우리가 어떤 정신적 중병에 걸려 있는지 진단 한다.나아가 한민족 참역사를 확인함으로써,

모든 어두운 그림자를 걷어내고 짓눌린 민족혼의 부활을 모색해 본다. 그러면 본래 우리가

가지고 있던 무한한 저력을 제한 없이 발휘하여 우리가 바라는 풍요로운 삶을 자신감과

긍지를 가지고 신명나게 꽃피울 수 있을 것이다.


1.한민족사 왜곡조작의 실상

한민족 사학계는 현재 우리의 역사가 심각하게 왜곡조작 되어 있다고 하며 쥐나족(중공)

과 왜족 서양세력 그리고 우리자신에 의해 복합적으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첫째 쥐나족(촤이나, 중공)에 의한 역사왜곡조작이다. 한민족의 역사가 중원대륙

에서 꽃을 피울 때, 쥐나족은 대만 섬 건너편 조그마한 구석에서 겨우 대만 크기의 강역

을 가지고, 있는지 없는지 조차도 모를 정도의 작은 나라(송국-연사)의 종족이었다.

이것과 다소 차이가 나긴 하지만 쥐나족의 발생지는‘낙양’이라고 하며 크기가 대만의

절반 밖에 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 같은 사실은 저명한 화교의 양심고백에서 밝혀졌다.

이 화교에 고백에 의하면 쥐나족이라고 할 수 있는 역사가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쥐나족이 자기네 역사요 조상이라고 주장하는 전설적인 삼황오제, 요순시대, 하,은,주,

춘추전국시대의 열국(진,초,연,제,한,위,조)이나 모두 한민족(동이족)지 쥐나족이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민족의 유력한 역사서인 한단고기에 기록된 것을 보면

위와 같은 고백과 대부분 일치하고 있다. 그런데 쥐나족은 왕성한 번식력으로 인구를

빠르게 증가시켰고 이에 따라 중원의 주인인 한민족은 주변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결국은 터어키 티벳 위글 몽고 중원대륙의 소수민족, 한도(한반도) 등으로 분산하여

각자 축소된 역사를 이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쥐나족은 원래 주인이었던 한민족이 남겨놓고 간 땅을 자기들이 차지하자, 거기

서 꽃피운 한민족의 역사도 자기내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여기서 쥐나족의 역사왜곡

조작은 시작된다.

이에 따라 쥐나족은고래로 부터중화중심주의를 내세웠고 자기 주위의 민족은 전부

오랑캐라고 부르며 자국 중심의 역사를 기술하였다. 본래 중원대륙의 주인인 한민족을

동이족東夷族으로 부르는데 서도 저들의 왜곡수법이 드러난다.

이른바 ‘춘추필법’은 자국을 높이는 역사서술 방법인데 사마천 이하 역대 쥐나족의 역사

가들은 철저하게 이 방법을 따른다.


특히 사마천의 역사왜곡 수법이 왜인(일본인)인 ‘오향청언吾鄕淸彦’에 의하여 적나라

하게 폭로되었는데 본말전도本末顚倒식이다. 즉 중원대륙의 단군조선의 한민족Corea의

역사쥐나족의 역사로 뒤바꾸었다고 한다. 더구나 사마천이 편찬한 역사(사기史記25권)

는 그가 태어나기전의 거의 1천년 이상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다. 당시 까지 제대로

된 사료가 없는 상태에서 사마천이 그 많은 사서를 편찬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

다. 따라서 사마천이 서술한 사서들은 거의 꾸며낸 쥐나족 위주의 재미있는 이야기 책

수준이라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

쥐나족의 역사왜곡수법에는 크게 세 가지 원칙 있다. 하나는 자기나라의 허물은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둘은 자기는 높이고 남은 낮춘다는 것이며, 셋은 자기 것은 자세히

말하고 남의 일은 축소하여 말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영향으로 춘추전국시대를 정리하고

통일 왕조를 세운 진(쥐나-촤이나-China)시왕 이라는 자는 당시까지 존재하던 한민족

(동이족)사료를 수거하여 모조리 불태워 버리는 이른바 분서갱유의 만행을 저지른다.

따라서 소위 쥐나족의 정사(정통사서)로 알려진 25사도 전적으로 믿을 게 못된다. 그런데

한국 사학계는 이 25사를 역사기술의 원전으로 삼으며 맹신하고 있는 실정이다.


오늘날 한민족에게 심각한 상처를 주고 있는 역사왜곡의 결정체 동북공정도 쥐나족의

이러한 못된 버릇에서 나온 것이며 알려진 것 보다 훨씬 심각하다.

현재 중원대륙은 오십여개 소수민족으로 구성되어 있고 소수민족이 장악하고 있는 땅이

쥐나땅의 60%나 되며 이 지역에는 무한한 지하자원이 매장되어 있다. 그런데 티벳의

경우 달라이라마를 중심으로 하는 분리 독립운동에서도 보는 바와 같이 중원대륙의 소수

민족들은 가능하면 쥐나 로부터 독립하기를 원한다. 이에 쥐나 공산당 정권은 이들을

하나로 묶어 하나의 중국을 만들어야 하는 절박한 사정이 생겼고 이를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것이 역사의 통일이다.

그래서 서남공정 서북공정 동북공정이라는 역사왜곡조작을 하게 되었으며이런 이유로

쥐나족은 기를 쓰고 한민족 역사를 자기네 역사라고 우기는 것이다.

동북공정의 핵심은한민족의 상고사를 모조리 쥐나족의 역사로 둔갑시켜 한민족의 혼과

뿌리를 송두리체 뽑아버려 결국 한민족을 말살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황하문명도 자기 것이라고 하더니 이제는 더 윗대의 선진문명이 속속들이

발견되자 곧 바로 자기 것이라고 하면 앞뒤가 안 맞아 억지라는 것이 탄로 날까봐 외부

에 공개를 하지 않고 숨기면서 자기 것으로 짜 맞추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현재 객관적으로 드러난 사실 하나를 고발하면 다음과 같다. 그 전에는 한민족의 신시

배달국 14대 한웅천황‘치우’를 쥐나족의 조상으로 보지 않았다. 반면에 치우천황과

운명의 대결을 펼친 황제헌원을 자기네 조상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동북공정이 그 마각

을 드러내던 1990년대 들어와서는 이제 치우천황까지도 자기네 조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단순히 고구려사 강탈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고구려사 강탈은 일부분이다. 물론

저들이 고구려를 빼앗아 가면 당연히 북한지역도 저들의 땅으로 편입된다. 실제로 요녕

성의 쥐나족 역사학자(양군)는 북한의 대동강유역이 쥐나족의 영토였다는 논문을 공적게시

판에 올리고 중공당국도 이를 공식화하고 있다.이것이 소위동북공정의 전체적인 윤곽이다.


현재 티벳과 중원대륙의 심장부 서안(주신제국=단군조선의 서울)과 북중국 그리고 만주

지역에는 이집트의 피라밋보다 큰 것을 포함하여 헤아릴 수조차 없는 피라밋이 산재

있다. 이것은 기원전 3천년 이상 거슬러 올라가는 고대유적으로써 주신제국(단군조선)과

구려(고구려)의 무덤으로 알려져 있다.

첨부파일

세계최대 피라미드.jpg (65kb)[ 파일받기 폰샷전송 ]

세계최대의 피라밋(밑변의 길이가 약242m 인 중국서안의 제2단군릉-서안시내 축구장 보다 크다)


왜냐하면 거기에서 출토되었던 부장품들이 조선반도에 사는 한민족과 일치하는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쥐나족은 이러한 사실을 숨긴 체 철저한 통제속에서 지금 열

심히 동북공정을 진행하고 있다. 이 동북공정이 완성되는 날 쥐나족은 바로 자기들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할 것이다. 더불어 우리의 시조 단군할아버지도 저들의

할아버지로 둔갑해 있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지금까지 줄기차게 단군할아버지의 목을 치는 얼빠진 자들은 얼씨구나 하고

좋아할 것이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우리에게는 유력한 역사서 한단고기라는 것이 있다.

사대주의 식민반도사관에 중독된 제도권 강단사학계는 이를 가짜라고 하며 매도하고 있

으나 이들의 뿌리라고 하는 이병도 조차도 한단고기를 믿어야 한다고 하였다. 그런데

이 한단고기를 쥐나족은 동북공정의 근거자료로 인용하기 시작하였다. 참고로 올림픽 개막

식이나 체육경기에서 남북한이 단일조로 나올 때 ‘한반도기’를 사용하는데 이것은

쥐나족의 동북공정을 도와주는 꼴이 될 수 있음을 밝혀둔다.

한민족은 기원전 7천년 경부터 중원대륙의 진정한 주인으로 군림해 왔다. 그런데 쥐나족

은 종족을 빠르게 번식하여 기껏해야 기원전 2~3백년 경에 와서 민족국가라고 할 수 있는

진시왕의 진나라를 세우게 된다. 그 후 쥐나족의 역사가 한, 수, 당, 송, 명으로 이어진

다고 보더라도 영토적으로는 현재 쥐나족 강역의 3분의1 수준에 해당하고 기간도 다

합쳐봐야 1천 2~3백년을 넘지 못한다. 현재의 쥐나족의 영토는 우리와 한 핏줄인 대청

제국이 선진 최강의 군사제도(팔기군제도)앞세워 넓혀 놓은 것이다. 사실이 이러함에도

뻔뻔스럽게 역사를 왜곡 조작하여 모두 자기네 역사라고 한다.


둘째, 왜족(일본)에 의한 역사조작이다. 지리적으로도 조선반도의 남쪽에 있고 역사

적으로도 한민족으로부터 인력과 선진문물을 이어받아 원시야만에서 벗어난 왜족이 산업화

에 먼저 성공함으로써 은혜를 저버리고 한민족을 식민 지배하였으니 이른바 일제 36년이

다. 일제는 한민족을 말살하여 영원히 통치하고자 한민족의 혼이요 뿌리인 참역사를 치밀

한 계획 하에 왜곡조작 하였다. 일제가 한민족을 강제병합하고 나서 제일 먼저 착수한

사업이 조선반도 전역에 산재 해 있는 역사관련 책자를 색출 수거하는 일이었다. 1910.

11. 조선총독부 산하에 ‘취조국’을 두어 이듬해인 1911.12.까지 수거하였는데 그 분량

은 상상을 초월한다. 조선총독부 관보에 나타나는 숫자를 보면 51종20여만권에 해당한

다. 일제는 이렇게 수거한 서적을 한국사를 왜곡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만 남겨두고 나머

지는 불태우거나 왜국으로 약탈해 갔다. 전국에서 수거한 책을 경복궁 안에서 불태웠

는데 종이 타는 냄새가 3일 동안 계속되었다고 한다.

일제는 이렇게 1차적인 정리 작업을 마친 후 본격적으로 한민족역사 조작에 착수한다. 1922.12.에 ‘조선사편수회’를 만들어 <조선사>를 편찬하였는데 무려 35권에 해당한다. 당시 쌀

한가마니 값이 10원도 안되었다고 하는데 일제는 이 조작된 역사를 만들기 위해 100만원

이상을 쏟아 부었다고 하니 역사 조작에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는지 알 수 있다.


일제는 왜인들만 역사조작에 참여하면 탄로날까봐 조선인도 참여 시키는 치밀함

보였다. 대표적인 인물이 오늘날 국사교과서 편찬의 아버지라고 불리 우는 이병도다.

이 자는 매국노 이완용의 조카손자인데 당시 이완용이 고문역할을 했다고 한다. 오늘날

대학의 사학교수등 강단사학계의 주류는 이 이병도가 키워낸 자이다. 그리고 이들의

제자들이 전국의 중.고등학교 국사교사로 활동 중이다. 그런데 말년에 이병도는 양심에

가책을 느꼈는지 단군은 신화가 아니라 실재하는 역사라고 고백을 한 바 있다.

일제의 한민족 역사조작은 한민족정신 말살의 일환인데 한민족정신 말살의 기조를

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조선 사람들이 자신의 일,역사,전통을 알지 못하게 함으로써 조선인의 민족혼,

민족문화를 상실케 하고 그들의 무기력, 무능함, 악행을 들추어내어 그것을 과장하여

조선인의 후손들에게 가르친다. 그리하여 조선 청년들로 하여금

그들 조상을 경시하고 멸시하는 감정을 일으키게 하여 그것을 하나의 기풍으로 만든다.

그 결과 조선의 청소년들은 자국의 모든 인물과 역사책에 대하여 부정적인

지식을 얻어 반드시 실망과 허무감 패배주의, 노예거지근성, 피동적가치관, 가학적

상호비난에 빠질 것이니, 이때에 일본의 역사, 일본인물, 일본문화를 소개하면 그

동화의 효과가 지대할 것이다. 이것이 제국일본이 조선인을 반半일본인으로 만드는

요결인 것이다.’ -문화정치를 표방하고 부임한 3대 총독 사이토 마코토(齌藤實)-


이러한 기치아래 일제는 역사조작의 가장 우선순위로 한민족의 국가시조와 상고사

를 부정한다. 그래서 실제 역사적 사실인 단군조선을 부정하여 단군을 한 개인으로

둔갑시켜 신화로 만들어 버린다. 그리하여 우리는 곰의 자손이 되어버렸다. 삼국

유사 원본에는 한국->한웅신시배달국->단군조선 7천년의 역사가 이어지는데 일제는

이것을 한인->한웅->단군으로 조작하여 3대에 걸친 세 사람의 이야기 신화로 만들어

버렸다. 이에 따라 우리의 실질적인 역사는 앞의 수천년의 역사는 날아가 버리고

소위‘삼국시대’부터 시작하게 된다.

현재 우리 국사교과서가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삼국유사 임신 영인본(1921년 일제가 발표한것 환을 환으로 변조함)

이렇게 역사의 기간을 축소해 버린 후에는 한민족의 강역도 조선반도내로 역시 축소한다.

'너희는 한반도에만 국한되어 살았던 민족’이라고 세뇌를 시켰는데 이것이 이른바

‘반도사관’이다. ‘한반도’라는 말도 일제가 만들어낸 용어다.


일제는 이이서, 한민족은 오늘날까지 완전한 독립을 해 본적이 없고 주인도 뿌리도 없는

유랑민으로서 무능하고 부패하고 민족분열을 일삼는 망국근성의 민족임으로 일본이 식민

통치해 주는 것은 조선인에게도 좋은 것이라고 주입시킨다.

즉, ‘전국시대에 유랑민들이 떠돌아 들어온 곳이 한반도 인데, 삼국시대에는 고구려

백제 신라로 나누어져 싸움박질 만 하고 고려시대에는 음탕한 역사가 진행되었고 이씨조선

시대에는 사색당쟁이나 사화가 끊이질 않았으며 , 영웅적 인물이 나오면 나오는 대로

족족 죽여 버리는 등 서로 용납하지 못하여 스스로 발전할 수 없고 추진력이 없이 살아

온 미개 민족이다. 그러니 대동아의 미래를 책임져야할 일본이 조선을 합방해서 보호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이와 같이 왜족은 자신들을 미개와 야만에서 문명인으로 개화시켜준 한민족의 은혜를

저버린 체, 미개하고 야만스런 옛 버릇이 도져 다시 야만적 역사조작을 오늘날 까지

해대고 있다. 개 버릇 남 못준다고 최근에는 우리의 유력한 사서‘한단고기’조차도

일부 조작한 것이 드러났다. 저들은 아직도 정신적 야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왜족과 쥐나족은 현재 국력과 사람숫자를 믿고 위와 같이 왜곡 조작된 역사를 세계 각국

에 선전 광고를 해대고 있고 아무것도 모르는 세계 각국은 저들의 국력과 사람숫자를

신뢰하여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는 게 현실이다. 대표적인 사례를 보면, 남한만 빼고

북한까지 쥐나족의 영토로 표기된 세계유명지도가 허다하며, 동해를 일본해로 표기한

지도가, 동해로 표기된 지도보다 훨씬 많다.


결국 이조시대와 일제침략기를 거치면서 우리의 역사는 완전히 창작소설로 변하였고 특히

일제의 치밀하고 체계적인 <조선사> 조작으로 우리가 지금까지 참으로 알아왔던 역사가

모두 가짜라고 보면 될 것이다. 다시 말하면 반도식민사관을 비판하는 사람들조차도

일제가 왜곡조작한 역사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용어적 측면에서 보면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사용하는 <한자漢字 한문漢文>이라는 용어

가 일제가 우리의 민족혼을 뽑아 버리고자 창조된 말이라는 것이다.


즉 한자도 한민족이 만든 것이기 때문에 이를 은폐 왜곡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일제

가 <조선사>를 왜족조작하기 전까지만 해도 한자라는 말이 없었고 <참글>또는 <진서眞書>

라는 말로 통했다. 이조시대에 간혹 한문이라는 말이 있는 것은 한나라 선비들이 지은

문장을 가리키는 말이었지 결코 한자자체를 한문이라고 부른 것이 아니라고 한다. 일제

의 역사왜곡조작이 얼마나 광범위하고 뿌리가 깊은지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셋째, 서양세력에 의한 한민족 역사왜곡이다. 합리적 과학적 사고로 산업혁명을 일

으켜 일찌감치 근대화에 성공한 서양열강이 19세기 말부터 조선반도에 나타나기 시작하였

다. 이들은 우수한 물질문명을 가지고 들어와 한민족을 압도하였다. 1945년 정치적

광복이후에는 이 역할을 아메리카가 조선반도 남쪽을 점령함으로써 이어 나갔다.

이들은 물질주의의 우수성을 주입시키고 모든 것을 서양 중심으로 재편해 나갔다.

이 과정에서 서양의 실증주의 역사관도 이식되었고 향후 한국역사학의 커다란 주류로

성장한다. 실증주의 역사관이란 역사를 논하려면 반드시 거기에 합당한 물적 증거가 뒷받침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적 증거가 없이 말하는 역사는 역사라고 볼 수 없다고 한다.


그런데 한민족역사의 주 무대는 시베리아 바이칼지역의 광활한 땅과 한주(만주) 그리고

중원대륙이다. 그러니 조선반도에서는 제대로 된 유적이나 유물등 물적 증거가 나올

리가 없다. 따라서 이러한 시각에 의하면 우리의 역사는 고구려 백제 신라에서부터 시작

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오늘날 한민족이 조선반도로 축소되고 쥐나족과 왜족이 왜곡

조작한 역사를 의심 없이 수용하여 이를 확대 재생한 함으로써 서양은 한민족역사왜곡의

한축을 이루고 있다.

중공이 조작하여 배포한 [한]나라 지도를 현재 서양세력이 사용하는 것


그러나 역사사라는 것은 단순히 물적 증거만 가지고 증명되는 것이 아니다. 문학 철학

인류학 언어학 연대기학 고고학 그리고 생활풍습 전통문화 등이 어우러질 때 역사가

제 모습을 갖추게 된다.


넷째, 한민족 스스로에 의한 역사 왜곡이다. 한민족 스스로에 의한 역사 왜곡이 구체적

으로 명백히 드러나는 시기는 이성계 조선시대다. 여기서 조시대라는 용어에 대하여

살펴보면, 이러한 용어는 일제가 한민족 말살의 한 일환으로 사용하던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렇게 쓰면 안 되고 조선시대 내지 조선왕조라고 불러야 맞다고 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그러나 이조시대는 한민족 전체역사를 놓고 볼 때 한민족을 위한 시대라기보다는 이씨

왕조와 여기에 부역해온 귀족을 위한 시대이고 더욱이 쥐나족(명나라)의 새끼중국 내지

지방정부로 존재하였다. 도무지 한민족 정권이라고는 볼 수 없는 역사가 전개되었다.

또한 조선이라고 하면 주신제국(단군조선)이 있고 이게 원래 우리 조선의 참모습이고

한민족의 조국이다. 만약 새끼중국 노릇을 한 이씨왕조를 조선왕조(조선시대)라고 부른

다면 주신제국을 부정해야한다.

왜냐하면 한민족의 정통성 측면에서 볼 때 이 둘은 양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당연히 이성계가 세운 조선을 이씨조선(이씨왕조)이라고 불러야 맞다.

현재 왜족 외에 쥐나족도 이씨조선이라고 부른다. 더구나 조선에는 기자조선 은조선

위만조선도 있는데 유독 이씨조선만 조선으로 부를 이유가 없으며 위대한 독립운동가이

자 역사학자인 단재 신채호선생도 이씨조선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그리고 북한도

리조시대라고 한다.


한편, 한민족 전체와는 괴리되어 있고 자기정권의 무사안녕에만 집착하고 있는 이북의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김정일 정권도 북한이 아니라 김씨조선이라고 해야 맞다. 김정

일 정권도 한민족 전체의 역사적 관점에서 볼 때 한민족을 위한 정권이라기보다는 집권

자와 이에 부역하는 소수세력의 이익을 위한 정권임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백성이 기아에

허덕이고 이를 견디지 못해 탈출하여 쥐나족의 성노리개로 전락케 하는 정권은 도저히

한민족 정권이라고 볼 수 없고 김씨조선(김씨왕조)이라고 해야 맞다.


한민족 스스로에 의한 역사왜곡은이성계가 위화도 대 반역을 일으킨 후 세운 새끼중국

노릇하던, 이씨조선에 와서 명백하고 구체적으로 진행된다. 새끼중국으로 살아가려면

기존의 대륙을 호령했던 위대한 한민족역사를 없앨 수밖에 없다.

반역으로 세운정권을 정당화 시키려면 반역을 알고 있는 세력을 제거해야 하고 이론적

측면에서는 반드시 역사를 왜곡하여 이씨조선이 생길 수밖에 없는 이유를 만들어 내야

했다.


그래서 이성계 일당은 이씨조선을 세우는 과정에서 당시의 지배세력과 현자 및 관련 백성

들을 무참히 살육을 하였는데 무려 20여만명에 달한다고 한다. 나라를 새로 만들면서

불가피하게 반대세력을 제거하는 것은 있을 수 있지만, 1~2백명도 아니고 20만명이나

죽인 것은 세계역사상, 한민족역사상 유래를 찾아 볼 수 가 없다. 이렇게 백성을 무자비

하게 살육한 것은 이성계가 한민족이 아니고이민족 이었기 때문이다.

이씨정권은 개국하자마자 먼저 고려사를 새로 쓰고, 주신제국을 ‘고조선’이라고

하고 스스로를 ‘조선’이라고 하여 역사를 왜곡한다. 그리고 고려시대에 편찬된

역사서를 왜곡 조작하여 새롭게 펴낸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김부식의

‘삼국사기’다. 그러나 원래 김부식이 만들었다는 역사서는 삼국사기가 아니라

‘해동사’(동이국사-연사)였다. 김부식이 사대주의에 물들어 삼국사기를 지었다고

욕들 하는데 사실은 이방원이가 김부식의 ‘해동사’를 수거하여 폐기처분하고 왜곡

조작하여 ‘삼국사기’라는 사서를 새롭게 내놓은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 조작된 역사서‘삼국사기’에 기초하여 ‘삼국시대’라고 하는 용어는

틀린 말이고 고구려시대라고 해야 옳다.


또한 이씨조선 개국당시 전국에 산재해있던 한민족의 위대한 역사를 기록한 고서적

들에 대하여 수거령을 내려 모두 국가가 관리하였다. 어버이나라 쥐나족을 거스르는

역사서가 함부로 민간에 돌아다니면 안 되었기 때문이다. 이씨정권은 이렇게 수집된

우리 한단의 고사서를 폐기처분한 것으로 보인다. 한단시대의 역사를 기록한 태백일

사에 보면 이씨조선시대까지만 하더라도 수많은 우리의 역사서가 존재했음을 알 수가

있다.

이씨조선은 이후 철저히 대 쥐나족 사대주의를 표방하며 쥐나족을 어버이로 떠받들고

모든 제도를 쥐나족 중심으로 재편하고 쥐나족 사상을 전 백성에게 주입시킨다.그리

하여 공자유가사상에 조금이라도 거스르면 ‘사문난적’이라하며 가차 없이 처단을

하였다. 천자는 쥐나족 뿐이며 새롭게 왕이 등극할 때 반드시 쥐나족의 인가를 받아야

했다.


모든 것을 쥐나족에게 의지하는 새끼중국, 쥐나족의 지방정권으로 탈바꿈하였다.

그리하여 사농공상 이라는 국가정책을 일관하였는데, 맨 위에 공자의 유가사상을

모시고 그 다음에 먹고는 살아야 하므로 농업을 중시하였다. 그 다음에는 있든 말든

상관하지 않는다는 식으로 상공업을 천시하는 정책을 고수하였다.


그 결과 한민족은 이씨조선시대 내내 헐벗고 굶주림에 시달여야 했다. 왕족과 귀족

일부를 제외하면 거의 원시생활이라고 해야 맞다. 옷을 물들여 멋 좀내고 싶어도

가난하여 물감이 없어 할 수 없이 흰옷을 입어야 했다. 우리민족은 흰색을 좋아하여

옷도 하얀 옷만 입는다는 백의민족 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을 들으면 슬퍼해야 옳다.

이조말엽(구한말) 민초들이 광장에 모여있다.색깔옷과 사람얼굴은 후에 인위적으로 채색한것

(선교사가 촬영-미 남가주대 소장)

이조시대 이전의 우리조상들의 복색을 보면 흰색 옷을 찾기가 대단히 어렵다. 특히

구려(고구려)의 벽화를 보면 눈이 부실 정도로 화려한 색깔로 물들인 복색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결국 이씨조선시대의 흰옷은 민족정신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가난과 궁핍의 상징이다. 구한말 선교사가 사람들이 시장이나 광장에 모이면 온통

하얀 세상으로 변한다고 감탄을 하였는데 결코 자랑할 만한 일이 아니다.

정권유지가 급선무였으므로 백성이 똑똑하거나 배부르면 안 되었다. 깨어있는 정책

입안자가 국부를 늘리기 위해서는 사회간접자본의 확충이 중요하니 도로망을 개설

하고 넓혀야 한다고 했을 때도, 외적이 쳐들어오는 길목이 될 수 있으니 안 된다고

하는 엽기적 정권이었던 것이다. 또한 신분을 양반 상놈으로 나누고 양반은 다시

적서로 차별하여 오늘날 차별문화의 뿌리를 이루고 있다.


고려시대까지만 하더라도 ‘개성상인’ ‘고려인삼’이라는 말이 잘 나타내 주듯이

상공업의 발달로 백성들은 적어도 기아선상에서 해매이지는 않았다. 아라비아 상인

까지 들락거릴 정도면 국제무역측면에서도 엄청난 발달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씨

조선시대에 우수한 성능을 자랑하는 군사무기나 과학 발명품도 따지고 보면 고려시대

에 개발해 놓은 것을 응용한 것에 불과했다. 그런데 이씨조선시대에 들어서면서부터

모든 것이 갑자기 멈추어 버리고 거꾸로 돌아가고 말았다. 구한말에 궁궐을 지킬

병력이 없어 왜족의 깡패들에게 왕비가 살해되는 어처구니없는 비극이 발생할 정도였

으니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 것인가!


이와 같이 이조정권은 우리의 위대한 역사와 정신을 폐기처분하고 철저히 사대모화

중심으로 역사를 왜곡 조작시켜버렸다. 그 결과 뿌린 대로 거두리라는 말을 증명이라

도 하듯이 말년에 가서는 농민들에게 조차 대항할 수 없을 정도로 약골로 변해 버렸

고 결국 나라가 사라져 버리는 한민족역사상 있을 수 없는 사태를 초래하고 말았다.

또한 폐륜정권 이씨왕조의 이러한 역사왜곡의 결과 오늘날 터키(투르크), 티벳,

몽고(원제국) 만주(금,후금,청제국)족 위글족 그리고 소위 ‘흉노족, 거란(요제국)족,

말(갈)족’등 북방민족이 모두 우리 한민족과는 상관없는 다른 민족처럼 세뇌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 모든 나라와 민족은 우리와 한 핏줄인 한민족임을 분명히 밝혀둔다.


다음으로 한민족 역사를 왜곡하는데 앞장 선 세력은 일제에 부역한 이른바 친일

반역자 집단이다. 구한말의 기득권세력은 일제 침략기를 거치면서 친일부역으로 친일

반역자집단의 주류를 이루며 다시 역사의 전면에 등장한다. 이들은 이승만과 박정희

의 비호하에 정치 경제 문화 언론 군사 학문(역사) 등 우리사회 모든 영역에서 지배

세력으로 자리를 굳힌다. 사학계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앞서 언급했듯이 중독 왜독

양독에 물든 무리들이 사학계의 주류세력으로 자리 잡고 사대주의에 입각한 반도

식민사관으로 역사왜곡을 심화 고착 시킨다.


일제의 <조선사>조작 편찬에 참여한 이병도가 주도한 현행 국사 교과서의 편찬, 각종

국가 공무원시험과 고시에서 주 수험 교재로 사용되는 한국사교재는 이병도의 영향권

안에 있었고 실증주의로 무장한 이기백이 만든 것이 대세를 이루었다. 또한 초대

국사편찬위원장은 만주의 친일반역자로 알려진 이선근이 맡았다.


한편 뿌리 뽑힌 종교세력도 한민족 역사 왜곡에 일조를 하는데 종교 세력은 각

시대마다 자기종교에 유리하게 우리역사를 난도질 해왔다. 정사로 알려진 삼국유사를

승려일연은 석가모니와 관련시켜 역사기술을 하고 있다. 기독교의 경우도 일제에 빌붙

어 먹다가 정치적 광복이 되고 아메리카가 대세를 이루자 이번에는 미제에 빌붙어 자기

종교에 유리하게 우리의 역사를 파괴하였다. 저들은 아직도 일제와 미제가 세뇌시킨

단군신화를 고집하며, ‘단군상은 신화속의 인물을 만들어 놓은 것’이라며, 보는 대로

목을 쳐 버리고 있다. 특히 한국기독교 총연합회의 발호가 두들어 진다. 이들에

게는 이제 미제가 어버이의 나라가 되었고 나라와 민족이라는 개념도 기득권

수호유지를 위하여 이용해 먹고 있다.


이와 같이 한민족의 위대한 역사는 쥐나족과 왜족 서양세력 그리고 우리 스스로에

의해 만신창이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쥐나족과 왜족의 일부 양심 있는 세력

들은 자신들의 한민족사 왜곡조작을 사실대로 고백하고 있다. 반면에 우리의 주류

강단사학계는 아직도 요지부동이다. 그 가장 큰 이유는 만약에 사실대로 인정을

해버리면 지금까지 수십년 동안 쌓아온 소위 ‘학문적 지식과 업적’이 하루아침에

무너지고 자신들이 학계에 설자리가 사라져서 밥줄이 끊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외부의 적보다 내부의 적이 더 무섭다는 말은 이런 경우를 두고 한 말일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러한 세력들에 의해서 우리의 참역사는 심각하게 오염된 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특히 현행 국사교과서는 일제가 한민족 혼을 말살할 목적으로 편찬한

<조선사>에 뿌리를 두고 있어 국사책이 아닌 정신적 독극물이다. 한국은 현재 정치

적으로는 독립이 되어 있을지 모르겠으나 일제가 만들어 놓은 <조선사>에 기초한

국사교과서를 국가가 앞장서서 강요함으로써 아직도 일제식민통치는 계속되고 있다.

이에 따라 민족정기(고려정신)도 계속 말살되고 있다. 이렇기 때문에 매국노 땅

소송이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나고 있고 법관도 이들의 손을 들어 준다. 또한 매국

하면 3대가 떵떵거리며 살고, 가산을 팔아가며 대를 이어 독립운동에 헌신하면 3대가

헐벗고 굶주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정을 잘 알기에 왜국은 대 놓고

독도를 침탈하고 있고, 왜곡 조작된 국사교과서를 먹고 자란 정치권과 정부는 왜구에게

참역사 의식을 상실한 체 맥없이 끌려 다니고 있다.


2.한민족 역사 왜곡조작의 폐해

민족정신의 토대가 되고 삶의 원동력이 되는 한민족역사 왜곡조작은 한민족의 정신

세계에 심각한 문제를 촉발시켰다. 역사왜곡조작은 사대주의를 낳았고 한민족을 뿌리

없이 방황하는 정신적 유랑민으로 만들어 버렸다.

1) 사대주의事大主義

사대주의란 말 그대로 큰 것을 섬긴다는 뜻이다. 작은 자는 큰 자를 넘볼 수 없고

섬기며 복종해야 하며 자기생각 보다는 큰 자의 생각이 더 우수하니 큰 자를 따라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 할 수 있겠다. 한마디로 종살이, 노예살이를 달갑게 받아들여

주인이 시키는 대로 수동적 피동적인 생활을 하자는 것이다. 자기 색깔을 버리고

남이 하는 것을 흉내 내어 따라하자는 것이다. 이 사대주의는 이조시대에 본격적으로

발흥하여 이조시대에는 중화사대주의, 일제침략기에는 일제사대주의, 현대에 와서는

서양사대주의 특히 아메리카(미제) 사대주의가 맹위를 떨치고 있다.


이러한 사대주의 풍토는 우리사회전반에 전염병처럼 번져 우리 삶의 모든 영역을 지배

하고 있다.


2)사대주의의 폐해

사대주의는 주인이면서도 종, 노예로서 사는 것을 의미하고, 자기정신이 있으면서도

남의정신을 마치 자기정신인양 가져다가 사는 것을 말한다. 또한 원래는 호랭이인데

고양이로 살려고 하는 것이고 왕자의 신분을 가지고 있으나 거지의 신분으로 살고자

하는 것이라 하겠다.

이러다 보니 한민족은 자기가 주인인지 노예인지, 호랭이인지 고양이인지, 왕자인지

거지인지 헷갈려 혼란 속에서 뒤죽박죽이 되었고 온갖 부정적 병리적 현상으로 고통을

당하며 이런 고통이 어디서 오는지도 모른 체 끝없는 소모전을 반복하고 있다.


첫째, 이기주의의가 판치는 사회로 변해 버렸다. 노예 거지근성이 우리의 심리를

지배함으로써 우리는 내일을 예측할 수 없게 되었고 이를 보장받기 위해 가능하면 내

것을 많이 확보해 놓아야 안심이 되었다. 이는 나하나, 내 가족, 또는 내가 속한 집단

잘 먹고 잘살면 그 만이라는 심리이다. 이기주의는 더욱 강고해져 이제는 개인적

차원을 넘어 집단적 지역적 이기주의로 까지 발전하였다.


오늘날 집단(지역)이기주의는 우리사회 모든 분야에서 활개를 치고 있다. 정치계 언론계

법조계 종교계 학계 재계 공무원세계 등 자기집단의 이익과 관련된 일이라면 그것이

국가적 민족적 전체이익과 배치되는 것이라도 똘똘 뭉쳐서 하나가 되어버린다. 그리고

이기주의가 생활화되면서 자신에게 특별히 이익이 돌아오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막무가내로 우기며 악을 쓴다.


이와 같이 현재 한국은 지독한 이기주의로 금이 가 있다. 그러나 본래 우리의 심성은

이렇지 않았다. 한단시대의 고사서인 소도경전본훈(한단고기 태백일사)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22대 단군 색불루(기원전1285년)때에 풍속은 순박하고 두터운 것

을 숭상하고 의로운 싸움에 용감하고, 공동의 이익에 힘쓰며, 공동의 일에는 민첩

하며, 공덕公德에는 밝았다. 선업하고 잘못은 바로 잡고 스스로 예의 있고 자애로운

풍속을 이루어 같이 삼신께 돌아와 의지하여 교화되었다’. 즉 민족전체의 이익과

개인의 이익이 충돌할 때 민족전체의 이익을 우선시하였고 이는 궁극적으로 자기의

이익으로 돌아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오늘날의 이기주의는 이씨조선

5백년과 일제36년을 지나오면서 발생한 사대주의의 폐습임을 알 수 있다.


둘째, 기회주의가 성공하는 사회가 되었다. 노예와 거지는 자기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다. 또한 희망과 미래가 없다. 끼니를 해결하고 희망과 미래를 약속받는

길은 주인에게 잘 보이고 환심을 사야한다. 그러려면 주인의 눈치를 잘 살펴 두었다가

주인의 맘에 들게 처신을 해야 한다. 그러다가 주인이 바뀌면 바뀐 새 주인에게 다시

충성을 해야 한다. 이게 기회주의고 노예와 거지의 운명이다. 반민족적 이씨왕조의

등장과 일제식민통치, 서양세력 그리고 이들에게 부역한 자들에 의한 역사왜곡조작은

사대주의를 탄생시켰고 한국사회를 기회주의가 성공하는 풍토로 만들어 버렸다.


기회주의 민족반역자들이 우리사회 상층부를 장악함으로써 일반백성들도 이들의 모습을

알게 모르게 닮아가고 중독되어 좋은 게 좋다고 기회주의적 처신에 동조하며 이에 편승

하게 된다. 그래서 사안의 옳고 그름을 스스로 합리적 이성적 기준으로 판단하기보다는

분위기 와 이해관계에 따라 결정한다. 특히 기회주의 상층부 지배계급은 약한 자에게는

강하고 강한 자에게는 약한 아주 고약한 풍토를 만들어 냈다.


최근 검찰은 국민이 부여한 국가공권력을 스스로 포기하는 작태를 보이며 국가경제에

심대한 피해를 가져올 수 있는 집단적 조직적 범죄를 가볍게 처리하며 적절히 타협하고

말았다. 바로 재벌에 대한 관대함이다. 반면에 절도 강도 등 생계형 일반 잡범에 해당

하는 개인적 범죄에 대하여는 시퍼런 칼을 들이대고 있다.


이러한 기회주의적 풍토는 자기보다 못하거나 못사는 사람에게 어설픈 주인행세를 하며

함부로 대하고 심지어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짓거리를 서슴치 않게 만들었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고 과거 왜인들의 한국기생관광을 저주하던 사람들이 이제

는 그 당한 것을 보상이라도 받겠다는 것인지 쥐나국이나 동남아의 저개발국가에 가서

왜인들이 하듯이 기생관광을 하며 온갖 엽기적인 행태로 한국의 위상에 먹칠을 하고 돌아

다니고 있다.


잠잠할 만하면 터지는 초대형금융범죄, 정.관계 재계를 아우르는 천문학적 비자금 사건

모두 기회주의가 낳은 자업자득이다. 국가경제를 좀먹고 제2,제3의 환란을 야기 시킬

이러한 초대형범죄는 우리사회가 지금 어떤 자들에 의해서 움직이고 있는지 단적으로

증명하는 사례라 하겠다. 겉으로는 정의와 국민 그리고 국가와 민족을 외치지만 뒷구멍

으로는 사리사욕에 눈이 멀어 아부와 협잡으로 나라를 좌지우지하는 이중적 위선적

변태들이 한국을 말아먹고 있다.


우리를 더욱 암울하게 만드는 것은 이러한 범죄를 저지르는데 직간접적으로 개입한

우두머리들이 백성들에게 모범이 되기는커녕 뒷구멍으로 온갖 불법을 저질러 놓고

자신들에게 불리하다고 할 때는 무책임하게 도주해 버림으로써 기회주의의 모범이

되고 있다. 그래놓고 이 죄 때문에 감옥에 갈 듯하면 사회에 몇 천억 기부하겠다고

하며 죄 값조차도 돈으로 사려는 아주 저질스럽고 천박한 천민자본주의의 진면목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셋째,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사회가 되어버렸다. 사대주의는 주인이 아닌 노예정신

으로 사는 것을 뜻한다. 이는 주인만이 벌인 일에 책임을 지지 노예는 결코 책임을 지지

않는 것을 말한다. 문제는 한국사회 상층부를 장악하고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기득

권 매국노세력이 앞장서서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문화와 풍토를 조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대개 정치적 사회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으면서 재정을 좌지우지 하며 자기 돈이 아니라고

함부로 쓰거나 자신의 영달을 위해 각종정책사업이라는 명목으로 천문학적인 재정이 투입

되는 일을 벌려 놓는다. 고속철도사업, 청계천사업, 러시아 유전개발사업, 새만금 사업

등이 그것이다.


새만금사업의 경우는 특히 심각하다. 이것은 대권욕과 탐욕에 찌든 정치꾼들이 만들어

낸 대표적인 무책임한 사업인데, 여기에 투입되는 비용만 수십조원이다. 새만금은 담수

호로 유지되고 제2의 시화호가 되지 않게 하려면 상류의 강에서 유입되는 각종 공장,

생활하수를 정화시켜야 하는데 여기에 투입되는 비용도 천문학적이다. 새만금 사업 자체

비용을 제외하고도 추가로 지출되는 비용이 이 정도다. 따라서 투입대비 수익을 볼 때

처참하다. 정부는 친환경적으로 개발하겠다고 둘러대지만 이미 국가적 대재앙은 시작

되었다고 봐야한다. 사태가 이러한데 지금 책임지겠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한편 1993년에 우루구아이 라운드라는 것이 열려 한국도 농산물 시장을 개방하라고

하였다. 특히 쌀 시장은 한국도 이제 더 이상 미루지 말고 유예기간을 주며 일정한 시기

에 전면 개방하라는 것이다. 그때 농민들은 정부와 정치권에게 근본적인 대책을 세우

라며 전국적으로 연일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이에 정치권과 정부는 농민들을 안심시키

며 쌀 시장만큼은 절대 개방하지 않겠다고 천연덕스럽게 약속을 하면서 쌀을 제외한

농산물에 대한 급조한 각종정책을 요란하게 내놓았다. 그런데 그 유예기간이 지난 지금

그런 정책은 모두 실패하고 쌀 시장 개방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이 전무한 상태로

개방을 맞이하고 있다. 책임지고 대책을 세우고 추진하겠다던 자들은 지금 일선에서

모두 은퇴한 상태다. 그리고 얼마 전 아메리카 쌀이 들어왔다. 그리고 다시 농민들은

애써 수확한 쌀을 길바닥에 뿌리며 사생결단식의 저항을 하고 있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우리사회의 현실이 이렇다 보니 우리에게는 어느새 상호혐오주의, 자학적 허무주의,

패배주의, 낙담좌절, 피해의식, 남 헐뜯기, 남 잘되는 것 배 아파하기, 왜소주의, 불신

풍조, 망각주의, 엽전근성, 아첨과 아부 문화가 자리 잡았고 불확실한 미래와 기약 없는

생활에 민족성은 급한 성격에 분위기에 휩쓸리고 다혈질적이고 즉흥적인 냄비근성으로

변해 버렸다. 이 대표적인 사례를 보면 다음과 같다.


독도문제다. 정신적으로 아직 야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섬나라 원숭이 떼, 왜족이

2006.3. 드디어 본색을 드러내며 범 정부차원으로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공식 선언하고

말았다. 그런데 우리는 1년 전에도 그랬듯이 신문방송이 앞을 다투어 격한 분노를 표출

하고 관련전문가 데려다가 토론회 몇 번하고 만다. 또한 정치권에서도 단기적 자극적

대책만 내놓으며 이로 인한 정치적 이해득실만 저울질 한다. 정부도 주한일본대사를

불러서 항의하고 주일한국대사도 왜국정부에 찾아가서 따지는 정도다. 그리고 세월이

흐르면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이 잠잠하다.


왜족은 이러한 한국인의 냄비근성을 잘 파악하고 있기에 더욱 노골적으로 독도침략을

치밀하게 그리고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재미있게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참고로 왜국은

박은식 선생이 한국통사韓國痛史에서 고발한 일제의 구한말 한국침탈 수법을 오늘날

독도침탈에서도 그대로 써먹고 있다.


3. 한민족이 나아갈 길

이와 같이 우리는 나라 안에서 사대주의에 중독되어 이기주의 기회주의 냄비근성으로

혼돈의 늪에서 해매며 자학적 소모전으로 표류하고 있는데, 나라밖에서는 다시금 세계

사가 재편되는 전환기에 들어서고 있다.


아메리카 중심의 세계가 새로이 떠오르는 쥐나(중국)와 이를 견제하고자 하는 아메리카

(미제)가 인도에 대하여 대대적으로 지원함으로써 아시아가 다시 세계역사의 중심으로

부상하고 있다. 인도는 머리산업(소프트웨어산업) 쥐나는 몸둥아리 산업(하드웨어산업)

으로 세계역사의 흐름을 주도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제까지 일본과 아메리카를

제외한 국제경제관계에서 한국은 비교우위를 통해 국부를 창출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일본의 건재함과 쥐나와 인도의 성장으로 우리의 설자리가 위태로워지고 있다.


한편 조선반도 정세는 더욱 꼬여가고 있다. 북한의 김씨조선은 김정일과 소수 공산

당세력의 정권유지에 매달림으로써 조선반도 전체 한민족의 운명을 위태롭게 하고 있다.

핵문제해결을 위한 6자회담이 꼬여가고 아메리카는 이를 이용해 위폐문제 인권문제

등을 내세워 김씨조선을 압박하고 있다. 쥐나족은 이를 틈타 다시 김씨조선을 자기편

으로 끌어들여 북한지역의 지하자원을 독점하고 경제 원조를 한다는 명분으로 물질적

문화적으로 김씨조선에 대한 지배를 가속화 하고 있다.


이와 같은 국내외적 상황을 보건데 가히 제2의 구한말이 찾아온 느낌이다.


결론적으로 민족정신의 토대가 되고 삶의 원동력이 되는 우리의 역사는 왜곡조작

되었다. 그리고 심각하게 오염된 역사를 우리는 지금까지 참된 역사로 배워왔고

결과 사대주의라는 중병에 걸리고 말았다. 주인이기보다는 노예정신으로 살아왔고,

왕자이기 보다는 거지정신으로 살아왔으며, 호랭이가 아닌 고양이의 삶을 강요받아

왔다. 이로 인하여 우리는 오늘날 끝없는 혼란과 병리적 현상 그리고 이로

인한 고통과 심각한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그러나 이제 우리가 본래 주인이요 왕자요 고양이가 아닌 호랭이라고 알려주는 우리의

참역사를 확인함으로써 이러한 어두운 그림자와 혼란을 걷어내고 우리가 바라는 삶을

신명나게 꽃피울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아울러 아시아가 세계의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는 전환기를 맞이하여 이에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대처함으로써 다시금 우리가 이를

주도하고 나아가 세계역사를 이끌어 가는 하늘자손의 역할을 다 할 수 있을 것이다.


나. 주신제국(단군조선)이전의 역사


1.현생인류의 시원은 한반도 한민족

45억년전에 지구가 생겨 난후 인류가 출현한 시기는 대략 150만년전에 아프리카에서

활동한 오스트랄로피테쿠스라고 알려졌다. 그러나 이는 인류이기는 했으나 유인원에

가까웠고 현생인류의 직접적인 조상으로 보지 않는다.


그렇다면 현생인류는 언제 어디서 출현하였을까, 또한 현생인류로 판단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발견된 화석을 조사해보니 약3~4만년전의 것으로 보이는 유럽의 크로마뇽인과 중원

대륙의 상동인의 뇌의 용적이 오늘날 인간의 뇌의 용적과 크기가 비슷하여 이들을

현생인류의 조상으로 꼽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화석만 발견될 뿐, 구체적으로 어떠한 흔적을 남겼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반면에 고인돌(지석묘,Dolmen)은 당시의 생활상을 엿 볼 수 있는 부장

물이 무수히 묻혀있다. 따라서 현생인류의 조상 그것도 직접적인 조상은 인공적

시설물인 고인돌이 유력한 증거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고인돌이 전 세계적으로 분포되어 있지만 그 고인돌의 80%이상이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한반도에 모여 있다. 이는 현생인류의 발상지가 한반도라는 결정적인 증거

이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고인돌이 분포 되어있는데 그 숫자가 약7만 여기로 알려져 있으며

그 중 1만여기는 북한지방에 3만여기는 남한에 분포 되어 있다. 그런데 일제침략기

신작로나 저수지 도로 철도 건설과정 및 해방 후 도시와 공단건설 농지정리 댐건설

등 국토개발을 하면서 무수한 고인돌이 파괴되거나 다른 용도로 사용되는 과정에서

수만 기가 유실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점을 감안 할 때 한반도내에 세계고인돌의

80%이상이 존재한다는 주장이 가능하다.

한반도 내고인돌 선돌 분포도(고인돌 사랑회 제공)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평안도 증산군 용덕리에서 발견된 10호 고인돌의 경우 돌

뚜껑 겉면에 80개의 구멍을 뚫어 별자리를 새겨 놓았다는 점이다. 또한 상원군 번동

2호 고인돌 뚜껑돌에도 역시 80개의 구멍을 내어 북두칠성의 국자 자국을 만들어

놓았다.

일반적으로 세계천문학계에서는 기원전 1200년경의 것으로 보이는 메소포타미아의

바빌로니아에서 발견된 토지경계비에 새겨진 별자리를 고대 천문학의 원형으로 보아왔다.


그런데 한반도에서 발견된 위 고인돌의 별자리는 이보다 1800년 이상 앞서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쥐나 운남성, 베트남, 태국, 인도의 아삼과 대칸고원 주변의 고인돌에는 한국의

]것과 같은 고누판이 새겨져 있고, 제주도 오누이 장사 전설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져

오고 인도의 아삼지역 고인돌 부근에는 한국 것과 닮은 당간지주와 솟대가 발견된다고

한다. 인도 매갈라야주의 박물관장은 인도의 고인돌이 한반도의 고인돌 보다 나중 것

이라는 것을 근거로 인도인이 한국에서 왔다고 하였다고 한다. 이런 점을 살펴 볼 때

한반도에서 고인돌문화를 발생시킨 민족이 한민족임을 알 수 있고,따라서 한반도에서

출연한 현생인류의 시조인 한민족은 점차 세계 각지로 뻗어 나갔고 가는 곳 마다 고인돌

문화를 건설했다고 봐야한다.


그런데 오늘날 인간은 황인종 백인종 흑인종으로 크게 나누어져 있고, 황인종인

한민족이 한반도에서 출발하여 전 세계적으로 퍼져나가 현생인류를 이루었다고

하는데, 흑인종의 경우 어떻게 황인종인 한민족과 같다고 할 수 있는가라는 강한

의문이 든다.

그러나 이는 오랜 세월동안 기후와 풍토의 영향을 받아 유전적 형질이 변형되어서

그렇게 되었다고 본다.1만년이상의 세월을 다른 환경에서 산다면 각자 그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원래 같은 종족이었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외형적 모습은 변할

수밖에 없다.


첫째, 아프리카 흑인의 머리는 곱슬머리 그것도 비비꼬인 머리카락을 하고 있는데,

전문가들의 말에 의하면 아프리카지역의 강렬한 태양열이 피부에 직접 닫는 것을 차단

하기 위하여 머리카락이 그렇게 변하였다고 한다.


둘째, 피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피부가 하얀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열대지방에 가서

몇 년을 살다보면 원래의 피부보다 상당히 검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필자의 경우

인도에 가서 몇 개월 살지도 않았는데 피부가 검어져서 처음 한국에 돌아 왔을 때

동남아인 취급을 받은 경험이 있다.


따라서 하루 이틀도 아니고 1만년이상을 그러한 곳에서 산다면 충분히 피부색깔이

변할 것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셋째, 한국에 우유가 처음 들어 왔을 때, 사람들은 비위가 상해서 제대로 마시질

못했다. 우리의 몸이 우유를 흡수할 만한 체질이 안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계속하여

자주 마시게 되자 우유를 흡수할 수 있는 새로운 인자 즉, 한국인의 인체에 없었던

효소가 새롭게 생성되어 현재는 누구나 편하게 마시고 있다. 이는 환경에 따라서 우리

의 인체가 얼마든지 다른 모습으로 변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넷째, 반대로 아무리 흑인이라고 하더라도 인간 보편적 성질은 그대로 가지고 있

으며, 더욱이 흑인종의 피나 황인종의 피나 똑같아서 서로 피를 주고받을 수 있다.

또한 이빨 색깔도 같고 정액의 색깔도 황인종이나 흑인종이나 똑같다. 즉 겉 거죽만

색깔이 틀리지 그 외는 똑같다는 것이다.


아울러 백인종의 경우도 한 가지 사례를 들어 보면, 현재 헝가리인의 경우 백인종의

형상을 하고 있으나 그 골격이나 내부적인 인자가 한민족으로 증명된 훈족(흉노, 스키

타이)의 후손임이 드러났다. 참고로 훈족은 아틸라 시대에 로마제국을 호령했다.

최근에는 독일(게르만족)이 스스로 자기네들의 뿌리가 한반도 한민족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따라서 현생인류의 발상지인 고인돌이 집중적으로 모여 있는 한반도에서 이곳의

주인인 한민족이 전 세계로 퍼져나가 각지의 기후와 풍토라는 환경의 영향을 받아

백인종으로도 변하고 흑인종으로도 변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한편 고인돌 외에 우리나라 경남 창녕지방에서 지금으로부터 약8000년전의 소나무배

가 발견된 점,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볍씨(약1만5천년전)가 한반도 충북 청원에서

발견된 점도 주목할 만한 근거가 될 수 있겠다. 또한 2004.5.에는 전남 장흥 신북

마을에서 2만2천년전의 마제석기가 발견되어 파란을 일으키고 있다. 지금까지 세계

최고로 알려진 마제석기는 1만1천년전의 것으로 이란 이랔 팔레스타인등지에서 발견된

바 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볍씨(약1만5천년전 충북청원)

결국 한반도에서 현생인류가 발생하여 전 세계적으로 퍼져나가 오늘날의 다양한 인종

으로 변했다고 본다. 따라서 그 원형은 한민족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2.현생인류 최초의 문명국가 한국(환국)


1)문명의 의미와 발생조건

오늘날 문명이라는 말은 여러 곳에서 사용되고 있다. 문명이란 인간이 원시생활을

뛰어넘어 인간의 생각을 통하여 인공물을 창조하여 의식주를 해결하고 문화적인 생활을

하는 단계라고 말할 수 있겠다. 따라서 인간은 자신의 생활경험을 통해 사물에 대한

지식을 얻고 이를 바탕으로 도구를 사용하여 노동을 하며 의사소통을 위해 언어와

문자를 사용할 때 문명이 발생한다. 즉 문명은 도구와 언어(문자) 그리고 인간의

생각이라는 3가지 요소가 갖추어졌을 때 발생한다.


2)수메르문명

인류 문명과 관련하여 초 고대 문명으로서 ‘아틀란티스’와 ‘뮤’ 그리고 ‘위글’

문명 등이 거론되지만 구체적인 증거들이 확보되어 보편화 단계까지 오지 않은 상태

이며 전설적인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한민족의 유력한 사서인 ‘삼성기전 하편’에서는 지금으로부터 9203년전

파내륜산 밑에 남북5만리 동서2만리의 강역과 12개 나라를 거느린 한국이 있었고

3301년 동안 이어졌다고 한다. 또한 이 지역은 천해의 동쪽 땅이며 천해는 지금

북해라고도 한다. 고인돌과 이 기록을 근거로 한민족은 한반도에서 발원하여

시베리아를 중심으로 중앙아시아 중원대륙을 아우르는 남북5만리 동서2만리의

한국문명을 건설했다고 본다.

또한 통치자 명칭을 한인(환인)이라 하고 한인 7인의 이름을 일일이 기록하고 있다.

그 이름을 보면 다음과 같다.


1세 한인‘안파견’, 2세 한인‘혁서’, 3세 한인‘고시리’, 4세 한인‘주우양’

, 5세 한인‘석제임’, 6세 한인‘구을리’, 7세 한인‘지위리’이다. 그런데 3301년

동안 ‘어떻게 7명이 다스릴 수가 있는가’ 라는 강한 의문이 생긴다. 21세기의

상식으로는 이해되지 않는다. 그러나 기독교 경전의 성경 창세기에서도 나오는 바와

같이 아득한 옛날 인간이 수백년을 사는 것은 기본이었다. 900살 이상 사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님을 성경 창세기는 말한다. 우리식으로 말하면 ‘신선’이

가장 적합한 비유라고 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3301년 동안 7명이 다스렸다는 기록은

충분히 신빙성이 있다.


그런데 한국이 거느린 12개 국가 중에서 ‘수미리’국이 나타나는데 이는 지금까지

밝혀진 인류문명 중에서 가장 오래된 문명인 ‘수메르’가 바로

‘수미리’라는 것이 민족. 재야사학계의 지배적인 견해다. 또한 움직일 수 없는

유력한 증거들이 속속들이 발견되고 있다.


첫째, 수메르문명이 동북아시아에서 이동한 것으로 볼 수 있는 유적이 이라크

북부 자그로스산맥에서 발견되었는데 자모르 유적이라 한다.

이 자모르유적에서 곡식 알갱이와 돼지, 사슴, 개의 뼈와 사슴 뼈로 만들어진 돌낫이

나왔는데 탄소연대가 BC.6700년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곳에서 5000개가 넘는 곰, 염소, 돼지, 개의 점토조각과 작은 두상 조각상이

발견되었는데 두상의 형태는 가늘고 긴 얼굴에 얇은 입술과 뾰족한 턱, 높은 광대뼈와

째진 눈을 하고 있는데 편두를 한 동이족의 얼굴이다.


이렇게 자모르 유적에서 개의 뼈와 돼지를 키우고 흑요석의 세석기를 사용했다는

것은 약 3000년 앞선 시기의 동북아시아문화와 일치한다. 이는 한반도 백두산지역의

흑요석 문화와 일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제까지 개를 포함한 가축사육이 시작된 것을 신석기초기에 메소포타미아지역으로

보았는데 스웨덴의 왕립기술원에서 개의 조상을 분석한 결과 이는 동북아시아의 2종류

늑대에서 15000년 전에 유전형질을 물려받았다고 한다.


그것은 15000년 전이고 이 개가 전 세계에 퍼진 것은 12000~ 8000년 사이다.


그런데 자모르 유적에서 개의 뼈가 발견되고 이스라엘의 나티피안유적(BC.10000년)

에서도 개를 순장한 무덤이 발견되었는데 개를 순장하는 풍습은 동북아시아의 오환,

숙신, 견융에서 행해진 풍습이다.


이렇게 세계 역사학계가 수메르와 이집트문명의 갑작스런 출현을 최대의 수수께끼로

보고 있는데 개의 조상을 알아보면 그들이 동북아시아에서 이동한 종족이란 것을 알

수가 있다.


둘째, 언어의 유사성이다. 교착어란 명사에 토씨를 바꾸어서 주어나 목적어를 표현

하는 언어다. 예를 들어 주어의 경우 교착어가 아닌 영어나 한어는 ‘나’를 표현할

때 그냥 I 나 我 로도 충분히 말이 된다. 그러나 교착어인 한국어는 ‘나’만 가지고

는 주어가 안 된다.


나+는 이라고 해야 말이 된다. 목적어도 마찬가지다. 영어는 me 로서 충분하다. 그러나

한국어는 나+를 이라고 해야 말이 된다. 일본어도 마찬가지로 ‘아나따’(당신)만

가지고는 목적어가 될 수없다. ‘아나따’+‘오’라고 해야 ‘너를’이라는 말이

된다. 그래서 문장구조도 교착어는 주어+목적어+동사 구조를 하고 있다.

또한 교착어는 ~다. ~까? ~로 ~가 등의 조사를 써서 언어의 의미가 달라지는 것이

특징이다. 이런 교착어를 쓰는 종족은 동이계열의 종족으로서 한국 몽고 일본과 터키

그리고 헝가리와 쥐나국(촤이나)의 소수민족인 묘족으로 파악되고 있다.


그런데 수메르어에서도 한국어와 같은 교착어현상이 나타나고 발음과 뜻이 거의 일치

한다는 것이다. 몇 가지 실례를 들면 다음과 같다.


슈메르발음[뜻] 한국어 발음[뜻] 슈메르발음[뜻] 한국어 발음[뜻]

아누(Annu)[신] 하느님 [하느님,上帝]Bad 바드 [ 밭 ]밭 (Bat) [밭, 田 ]

안 (An) [天] 하늘 (ha) [ 하늘, 天 ]Na 나 [나 1인칭]나 Na [ 나,我 ]

기르(Gir) 길 (Gil) [路]Ge 그 [3인칭 ] 그 Ge [ 3인칭 ]

라(Ra)[~에서 ] 로 (Ro) [ 조사 ] I 이 [1 인칭 ]이 [지시대명사]

아비Abi[아버지] 아비 (Bo) [아버지]Uhma 움마[엄마]엄마 Uhma [엄마]

니므 Nim[님 任 ] 님 (Nim) [ 님 任] As아스:처음[1] Asi아시[처음,시작]


위 ‘아시’의 경우는 우리의 고어로써 처음 한 빨래를 ‘아시빨래’라고 하는 기록이

고문헌(삼국사기)에 나온다. 충청도의 경우 필자의 어머니가‘아시로 먹는다’

‘아시로 한다’라고 하시는 말씀을 자주 듣는다. 그리고 아느(An)는 하느님을 뜻하고

최고의 신을 말하는데 우리말의 하늘님, 한울님과 같은 의미로 [아래아]를 기준으로

하면 모두 같은 소리가 난다.


또한 안(An)은 제정일치 사회에서는 우주의 최고신을 대신해서 땅을 다스리는 성인을

말한다. ‘대한민국’에서‘한’은 한자 한韓이 아니라 순 우리말 ‘한’인데, 이는

단=칸과 같은 것으로 큰, 지도자, 호태왕(황제)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현재 우리의

지명에서도 이러한 흔적을 찾아 볼 수 있다. 충남‘대전’은 이씨조선이 한자지명

으로 바꾸기 전에는‘한밭’이었고, 충남대천도‘한내’였다.


한자에서도 한(汗)과 간(干)은 같은 소리의 글자로 한국어에서는 칸으로 읽기도 하는데

징기스칸을 한자로는 성길사한(星吉沙汗)이라 했으며 신라왕을 거슬막한(汗)이라고

한다. 즉 한(汗)은 고대에는 안(An)으로 통했고 안과 한(칸,단)은 결국 같은 뜻임을

알 수 있다.


셋째, 수메르인들은 스스로 검은머리에 황금색피부를 한 사람들이라고 불렀고,

자모르 유적에서도 나왔듯이 얼굴 생김새가 가늘고 긴 얼굴에 얇은 입술과 뾰족한

턱, 높은 광대뼈와 째진 눈을 하고 있는 동이족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이 수메르인들은 현재의 이란 이랔 파키스탄을 아우르는 지역에 동방으로부터 건너

와서 문명을 건설하였는데 이미 고도로 발달된 문명을 가지고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사법제도 학교제도 최초의 창조설화 등 세계최초라고 하는 39개 사건을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 이들 지역에 정착을 한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문명의 꽃이라고 볼

수 있는 문자를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 문자는 페니키아->그리이스로 이어지며

알파벳의 원조가 된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이들이 남긴 점토판에는 한자까지 보인다는 점이다. 한자는 이미

한민족(동이족)의 발명품이라는 것이 증명되고 있다. 쥐나족의 양심 있는 학자나 지식

인들(임어당-생활의 발견 저자)은 이것이 사실임을 고백하였다. 더구나 한자의 원형

이라는 갑골문자가 은허에서 발견되었는데 이 갑골문자를 발명한 은나라가 사실은

동이족인 한민족이 세웠다는 것은 이미 증명되었다. 더욱이 박씨집안에서 고려시대부터

가보로 전해 오던 갑골문자 천부경이 세상에 공개되었는데 은허의 갑골문자 외에 더

많은 갑골문자가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동양사를 다시 써야 한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한편, 이 수메르인들이 정착할 당시 이지역의 원주민들의 생활상은 원시인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고 한다. 직조기술이 없어서 동물의 가죽을 옷을 입고 다녔고

사냥을 통해 살아가고 있었다는 것이다. 당시 이 지역사람들을 지칭하는 말이 히브리

인인데 Habiru로 불렸다. 이 말은 ‘산적’또는 ‘떠돌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이 들이

이렇게 원시생활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을 때 수메르인들은 이미 옷을 짜서

입었고 옷에 물까지 들여 입었다. 건축기술도 발달하여 2층 가옥까지 지을 정도였다고

한다.

넷째, 이외에도 수메르 왕을 ‘던건(단건)’이라고 불렀고 기원도 ‘던기(단기)’

기로 하였다. 동이족의 발명품이라고 알려진 1년을 12달로 하는 태음력을 만들고,

다시 하루를 24시간으로 만들었다는 점, 한 시간을 60분, 1분을 60초로 하는 60진법을

만들었다는 점, 인류 최초의 토기가 송화강(아무르)지역에서 1 만여년 전에 시작되

었고 소위‘레반트’문화가 중동지역에 등장한 것이 약 6천년 전이라는 점, 수메르의

12궁도와 한민족의 12간지의 유사성, 그밖에 수메르와 한국은 묘장제도, 순장제도,

최고지도자의 상징을 봉황으로 삼고 있는 점 등이다. 이러한 현상은 같은 뿌리가

아니고 서는 설명될 수 없다.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 벽에는 거대한 봉황 한 쌍이 그려

져 있다.


또한 수메르문명의 특징 중의 하나는 지구랏이다. 지구랏은 높이만 하더라도 수십미터

나 되는 거대한 사각형모양의 신전이며 피라밋과 유사하다. 2003.3. 아메리카(미제)가

이랔을 침공하면서 이랔지역에 산재해 있던 수메르유적에 엄청난 피해를 입혔는데,

이때 이랔에 남아 있는 지구랏에 총탄이 맞은 것을 방영해주기도 하였다. 이 지구랏은

제천의식을 하던 곳으로 알려졌고 우리의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모습과 닮아 있다.

이러한 수메르문명은 이후에 나타나는 이른바 메소포타미아 문명 이집트문명에 영향을

주었음을 어렵지 않게 예측할 수 있다.

4)수메르 문명과 기독교 및 이슬람교

현재 서양정신의 주된 뿌리라고 할 수 있는 헤브라이즘이 녹아 있는 기독교성경 첫

번째 경전인 창세기에는 아브라함이 나온다. 시기적으로는 기원전 약1900년 사람이다.

이 사람은 기독교(천주교 개신교)와 이슬람교의 실질적인 시조이다.


그 전에 노아도 나오지만 아브라함이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직접적인 계보조상이라고

알려졌다. 즉, 기독교는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에게서 낳은 적자 이삭의 후손이고

이슬람교는 아브라함이 그의 하녀 하갈에게서 낳은 서자 이스마엘의 자손이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갈대아 우르(Ur)에서 살다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땅인 현재의

이스라엘 지방으로 이동한다. 여기서 갈대아 우르는 수메르문명의 중심지인 이랔 지방

으로 밝혀졌다.

또한 성경에는 바벨탑사건이 나오는데 이 바벨탑도 사실은 지구랏에서 파생된 것이

라고 한다. 그리고 우르남무(Urnammu)법전은 수메르인이 만든 것인데 인류최고의 법전

이다. 이 법전의 명칭에도 우르(Ur)가 나온다. 기독교 성경에는 10계명을 하나님으로

부터 받았다고 하는 모세가 나온다. 모세는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애굽)에서 노예

생활을 할 때 이집트 왕립도서관 서고에서 수많은 책을 읽으면서 유대역사를 집필하

였는데 이것이 소위‘모세5경’이고 구약성경의 초반부를 장식하고 있다. 그런데 사실은

이것도 함무라비법전에서 나왔다고 한다. 그리고 이 함무라비 법전은 수메르법 우르남

무법전을 보완한 것이라고 한다.

수메르 문명의 상징 지구랏(천제단-무당인 여사제가 주관-이라크 소재)


한편 수메르인은 이미 고도의 농사기술을 가지고 있었고 홍수에 민감할 수밖에 없어

홍수가 수메르인들에게는 엄청난 골치 거리였다. 그래서 수메르인들홍수이야기

나오는 서사시‘길가메시(Gilgamesh)를 남겼다. 그런데 노아의 홍수사건은 이 길가메

시와 완벽하리만큼 일치한다. 이와 같이 성경에 나오는 창조설화 홍수이야기의 원형이

이미 수메르의 점토판에 기록되어 있었다.

또한 위 자모르 유적에서 나타난 사람의 모양과 관련하여 구약성경 창세기에는 네피림

이라는 종족이 나오는데, 독사의 얼굴과 매서운 눈을 가진 외래의 주시자들이 기술과

천문을 가르쳐 주었다고 한다. '금지된 신의 문명'의 저자 앤드류 콜린스도 이

자모르인들이 마치 ‘아시아인 같은’ 이라고 표현하면서 그들이 성경에 등장하는

네피림 주시자들 이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한다.


따라서 서양정신의 모태인 기독교와 아랍회교문화의 이슬람교조차도 수메르 문명의

영향권 안에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빛은 동방에서’ ‘문명의 빛은 오리엔트에서 비추기 시작했다’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서양사에서도 최초의 서양문명인 기원전 1000년전에 발생한 그리이스(희랍

또는 헬레니즘)문화와 뒤를 이은 로마문화가 오리엔트 즉, 동방에서 왔다고 인정하는

것을 보면, 이들 두 문화도 수메르문명의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결국 서양문명은

그리스의 합리적 이성(헬레니즘)히브리의 감성적 신앙(헤브라이즘)이라는 두

물줄기로 이루어 졌고 이 문명은 한민족의 후예 수메르에서 나왔다.


한편 수메르인들은 인도에도 내려가 인더스 문명이전에 모헨조다로라는 도시국가를

건설하였는데 여기에서도 벽돌로 쌓은 신전을 만들었다. 이 수메르인들은 중앙

아시아에서 남하하면서 기원전 2300년에 폭이 10m나 되는 도로를 건설했으며 상수도와

쓰레기 처리장은 물론 공동 목욕탕까지 갖춘 계획도시를 만들었다.

현재 교착어로 알려진 드라비다어(수메르어의변형)가 인도 여러 지방에서 사용되고

있고 드라비다어로 알려진 타밀어는 인도 남동부 타밀주에서 사용되고 있는데 우리말과

같은 것이 무려 1천여 개나 달한다고 한다. 필자는 현지 여행 중에 마치 전라도

사투리를 듣는 착각에 빠진 적이 있다. 또한, 인도의 고대어라고 하는 산스크리트어

(범어)의 모태가 되고 동서언어의 뿌리인 천축실담어’는 거의 1만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것은 현재 한반도 각 지방의 사투리와 거의 일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담어만 수십년 동안 연구해온 <셰죵ㅎ한림원>의 강상원 박사가 영국의 옥스퍼드대학

에서 펴낸 ‘산스크리트-영어’사전 나오는 ‘천축 실담어’를 비교분석한 결과

우리의 각 지방 사투리와 ‘천축실담어’가 대부분 일치하는 것을 확인했다.

‘천축실담어’ 옥스퍼드사전에 나오는 예를 몇 개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ari-langh

(아리랑): ‘사랑하는 사람이 서둘러 이별한다’. Asia(아시아): 와서 쉬야, 쉬시오,

안식의땅. Um-jive(움집):엄마,음마(um-ma),음(陰um),자궁(子宮),태->영어로는 홈home.

geshi khieya(거시기):머리속에서 찾아 가지고 밝히겠다. manura,manusa,manavi: wife

인류의 조상, 지혜의 화신. masi-kheya(머시기):계산해서 밝히겠다. gama(가마):

나아가다. iriya jjaja(이리여 짜짜-소를 몰때): 빨리 심(力)내라. uli-ta(얼리다.

어울리다):성교하다.음양의 조화. Ehden(에덴.이전엔):하늘로부터 ‘얻은동산’.


위에서 보는 바와 같이 현재 한반도 전역에서 사용되고 있 사투리(표준말포함)가 알파

벳으로 그대로 표기되어 있고 그 뜻도 대부분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대동소이 하다.

오히려 우리가 모르고 있던 뜻까지 나와 있을 정도다.


또한 한민족은 앞서 본바와 같이 수메르인이 인도에 이동하여 살았고 근대에 이르기까지

인도무굴제국을 세운 몽고족이 주도권을 행사하며 살았다. 그리고 불교의 석가모니

천축실담어와 한가지인 산스크리트어(범어)를 사용했는데 이 산스크리트어가 우리의

사투리에 속한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그래서인지 석가모니도 한국인이었다는 말이 나오고

대영박물관에 소장되어있는 석가모니의 초상이 가장 신빙성을 갖는다고 하는데 이를

보면 한국인상이다.

그리고 현재 인도 구자랏 지방의 구자랏어도 우리 한글의 모태가 되어있는 가림토 글자

에서 나왔다고 한다. 가림토 글자는 한단고기 단군세기 편에 기원전 2181년 경자2년에

이 글자를 창제하게 된 과정이 기록되어있다.

4.구자랏문자

"આજે નસીબ સારું છે!" બટન, આપને આપની શોધના પ્રથમ વેબ પાના પર લઇ

જશે.

"આજે નસીબ સારું છે!" એટલે શોધવામાં ઓછો અને વાંચવાનો વધુ સમય.

20세기 인도의 성인으로 추앙받고 있고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시인 타골(Tagore)

일찍이 영감에 휩 쌓여 한국을 열렬히 사모하였다. 그의 일생과 작품은 현재 인도

캘커타의 빅토리아여왕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이는 필자가 1997년 인도를 여행

하면서 그곳에 들러 확인한 바 있다.


타골이 얼마나 한국(Korea)를 그리워하였는지 그의 시 한수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는 이 시에서 한국이 ‘홍익인간’사상과 ‘신선의 나라’ ‘지상낙원’과 같은

나라였음을 노래하고 있는 듯 하다.그의 시를 감상하면서 한국문명의 존재를 확인해

보자.

과거 아시아의 황금시대에 한국(Korea)은 문명의 횃불을 높이 들었던 나라중의

하나였다. 그 찬란한 횃불이 다시 타오르기를 기대하노라.


마음속에 두려움이 사라지고,

이상은 높은 곳을 향하여, 지식은 자유를 구가하고,

아집의 담벽을 시원히 헐어버려,

세상에 분열이 사라진 곳,

언어가 진리의 샘에서 솟아나는 곳,


은근과 끈기로 노력하며,

성취를 위하여 뻗어가는 그곳에,

맑은 지성의 물결이 낡은 풍속에나,

황량한 사막으로 흘러도 윤택하게 꽃이 피고,

생각과 행동이 무한히 퍼져 열매를 맺는 곳,


우리들의 마음이 자유의 천국으로 인도되어,

내 마음속에 기리는 조국, Korea(Kuliya-구려,고려)여!

깨어 일어나, 태초문명의 찬란한 횃불을 높이 드소서!’


이처럼 한국의 수메르인들은 메소포타미아 지역과 인더스지역에 수메르 문명을

일으켜 이후 나타나는 이른바 세계4대 문명의 원조가 되었다. 수메르문명이 발견되기

전에 세계사학계에서는 ‘황하문명, 인더스문명, 메소포타미아문명, 이집트문명’

이른바 4대문명이 대세를 이루었다.


쥐나족(촤이나-중국)이 자기들의 문명이라고 우겨대는 황하문명도 사실은 그 이전에

하북성과 요녕성 내몽고지역 일대에서 발생한 홍산문명보다 1천년이상 뒤지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 홍산문명의 주인공이 동이족 즉 한민족이었음이 밝혀지고 있다.


3)아메리카 인디언 인디오 문명

현생인류 최초의 한국문명의 흔적을 태평양건너 아메리카 대륙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현재 소수민족으로 살아가는 북아메리카와 멕시코의 원주민남미의 인디오들

사실은 한국시대를 전후하여 한국에서 건너온 사람들로 밝혀지고 있다. 이들은 현지에

정착을 하면서 이주해 올 때 가져온 한국문명을 이식하였다. 이러한 증거는 여러

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첫째, 피라밋이다. 피라밋은 현재 가장 많이 알려진 것이 이집트의 피라밋이다

그런데 중원대륙의 티벳, 서안, 내몽골자치주 한주(만주)등에서도 피라밋이 발견되

었고 이집트 피라밋보다 규모면에서 월등히 큰 것도 있다. 그리고 조선반도에서도

발견되는 피라밋도 그 규모는 아주 작지만 원형은 중원대륙에서 발견되는 피라밋과

같다. 그리고 이 이들 피라밋의 특징은 사각뿔모양의 피라밋이 아니라 꼭대기가

평평한 방단형 피라밋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아메리카와 멕시코 남미에서

견되는 피라밋도 이런 방단형이라는 것이다.


만주 집안의 장수칸(황제)의 피라밋(위에 천제단이 있었다)

중국서안의 제2단군릉 피라밋(방단형 계단형-중공은 나무를 심어 야산으로 위장 숨기고 있음)

멕시코의 태양 피라미드(천제단-방단형 계단형-인공위성사진)

사진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피라밋 위 부분이 모두 평평한 방단형(계단형)이다.

이것은 하늘에 제사를 지낼 때 사용하는 제단이라고 한다. 앞서 살펴본 수메르문명의

상징 지구랏과 같은 기능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아메리카지역의 피라밋은 한국에서 이주한 시기와 피라밋을 지은 왕들을 조사해

본 결과 중원대륙이나 고구려의 피라밋보다 시기적으로 늦게 만들어졌다고 한다.


둘째, 이른바 편두遍頭식 머리를 하는 제도가 한국과 마야문명이 같다는 것이다.

편두란 이마가 납작한 머리를 말한다. 한국의 경우는 앞서본 수메르의 자모르 유적

인두상이 편두를 한 동이족의 모습이라는 것과 가야시대신라시대편두식 머리를 한

것으로 밝혀졌는데 마야인들도 역시 같은 편두식 머리를 한 것이 발견되었다. 그리고

이 편두식 머리를 하게 된 이유도 양쪽 다 거의일치하고 있다. 편두식 머리를 한 것은

령적 능력을 개발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셋째, 언어와 풍속 유물 문자 그리고 주요사건이다. 먼저 언어와 풍속을 보면 마야

문명과 잉카문명(남미)의 언어와 풍속이 한민족 문화와 똑 같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네’를 ‘그네’로,‘꽃신’은 ‘꼬신’으로, ‘낫’은 ‘낫’으로, 나무를 묶은

것을 다바리(경상도 사투리)라고 하는데 이것도 똑같다. 새를 쫓을 때 새끼(사내끼-

충청도 사투리)를 꼬아 만들어 <휘이~ 휘이~>돌려서 새를 쫓는 소리도 한민족과

똑같다. 이외에 도자기, 꼬막단지, 맷돌, 팽이, 물레, 베틀, 물 두레박, 윳놀이,

뜨개질, 베틀로 옷감을 짜서 입는 것, 물을 머리에 이고 다니는 것, 등에서 일치한다.

참고로 이러한 현상은 인도와 쥐나사이의 히말라야 고산지대의 소수민족에서도 나타

난다.


에콰돌의 경우 한국방송이 ‘걸어서 세계속으로’라는 세계풍물여행을 방영하는 것을

보았는데, ‘키토’라는 지역을 소개하면서 인디오들의 생활모습을 비쳐 주었다. 이들의

생활은 가난하였다. 대부분 뜨개질과 바느질 베틀로 옷감을 짜서 시장에 네다 팔아

살아가고 있었다. 아기를 퍼대기로 둘러서 업고 다니는 것은 역낙없는 우리의 모습이었다.


다음으로 유물과 문자다. 멕시코 올멕 유적지에서 옥으로 만든 홀(笏)에 새겨진 상형

문자가 갑골문인데 해독 결과 신시배달국 14대 한웅천황 치우(蚩尤)와 소호(少昊)등

한민족(동이족東夷族)의 이름으로 밝혀졌다. 또한 아메리카 캘리포니아에서 3000년경으로

보이는 인디언의 돌 닻이 발견되었는데 재질이 아메리카 대륙에는 없는 것으로써

동아시아에서만 출토되는 것으로 밝혀졌다. 쥐나의 <용봉문화원류> 책에는 중앙아메리카

최초의 문명인 올멕문화는 은(殷)왕조가 주나라에게 망해서 이동한 것으로 보고 있으며

은왕조는 동이족이 세운 나라라고 주장한다. 은왕조는 은조선으로 부르기도 한다.


한편 다음 두 가지 사건을 통해서도 마야문명이 한국에서 나왔음을 확인할 수

있다.

문화재 전문위원이자 고건축 전문목수인 신영훈申榮勳씨가 1968멕시코 올림픽 때

멕시코에 가서 주변 유적을 방문할 기회가 생겨 돌아보았다고 한다. 그런데 고대의

대규모건축물들(계단식)이 위가 평평한 방단方壇으로 치켜 쌓은 모습을 하고 있었고

이 방단에는 신전을 지었다고 한다. 또한 현지 원주민들의 엉덩이에는 푸른점(청반점

몽고반점)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신영훈씨가 현지에 지은 한국정 준공식을 할 때

한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곳사람들이 찾아와서 신영훈씨가 입은 한복의 대님을 쓰다듬

으며 옛날에 자신들도 이런 옷을 입었다고 했단다. 그리고 현지 동포들이 말하기를,

높은 곳에 사는 고산족은 우리와 거의 같은 풍속을 지녔다고 했다고 한다.


또한 1910년, 청나라의 외교관 구양경이 멕시코에서 멕시코 혁명 때 죽은 화교에 대한

배상문제를 협의하는데 멕시코 원주민인 인디오의 지도자가 찾아와 만나기를 요청하여

났는데 자신들은 원래 동이족(은복포족=은나라사람)으로써 약 3천년 전에 이곳으로

왔다고 하며 자신들을 도와달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 사실은 실사로써 정식외교문서인

대만외교부 자료보관처에 보관되어있다고 한다. 참고로 청나라는 한민족 구려(고구려)의

후손 려진족이 세운나라다. 인디오의 지도자가 이것을 알고 찾아와서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이전에도 쥐나족의 관리가 멕시코에 갔을 때는 찾아오지 않다가 같은 한민족인

청나라 관리가 오자 찾아온 것이다.


남미의 경우 잉카문명에는 솟대가 보이고 인디오들이 아이들을 퍼대기로 둘러서

업고 다닌다. 북미의 경우 아메리카(미제)의 전차 잡는 최신형 공격무기인 헬기이름이

‘아파치’인데 이것도 북미 인디언의 말인‘아파치’에서 따온 것인데 우리 북한

사투리‘아바이’에서 나온 것이라고 한다. 또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소위‘나이

아가라’폭포도 원래 이름이 ‘네가람’이라고 한다. 이것은 순 우리말이다. 즉 네개의

물줄기 또는 냇물이라는 뜻이다. 뤄시아 합바롭스크 지방을 상징하는 문양이 청색과

홍색을 바탕으로 하는 곰과 호랑이로 되어 있는데 이는 단군조선시대에 이 지역이 단군

조선의 강역이었음을 증명한다고 본다. 이러한 연장선상에서 보면 아메리카의 옛 지명이

남아있는 곳도 그 어원을 따라가면 한민족과 관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따라서 아메

리카 대륙에 세워진 문명도 한국문명의 후손들이 이주해가서 건설한 것임을 알 수가 있

다.


5)기타 한국문명의 증거들

현재 인도와 중국사이의 히말라야 고산족, 태국과 미얀마 국경지대, 파키스탄의 고산족,

중원대륙의 소수민족, 티벳족, 그리고 시베리아의 부리야트 공화국을 중심으로 하는

소수민족, 알래스카 옆의 캄차카 지역의 문화와 생활방식을 보면 우리의 풍습과 문화와

거의 일치한다. 그 예를 들자면 끝도 없이 많으나 몇 개의 예를 들어보면, 첫째 무당

문화가 생활의 중심이라는 것이다. 우리의 성황당과 한가지인 돌무더기가 있고 형형

색색의 천과 끈이 나무나 기둥에 매달려 있다. 둘째, 짐승을 잡아 제단에 올려놓고

제천의식(고사지내기)을 한다는 것이다. 셋째, 맷돌, 절구통, 뜨개질이 있고, 베틀로

형형색색의 옷을 짜서 입고, 아기를 업고 다니고, 춤과 노래 음악을 즐기는 풍류문화가

고도로 발달해 있다. 넷째, 명절날이나 제천의식을 마치고 나서는 집집마다 방문하여

액운을 쫓는 행사를 한다. 그리고 이때 집에서는 보답을 하는데 보통 곡물을 내놓는다.

이는 우리가 대보름날을 맞이하여 풍물패가 요란스럽게 풍장소리를 내며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액운을 쫓아주고 집에서는 쌀을 내 주는 행위와 같다. 필자는 고향이 충청

남도 보령 웅천인데 이러한 행사가 해마다 대보름날에 있었음을 기억한다.


결론적으로 이와 같은 모든 사실을 종합해 볼 때 수메르문명과 아메리카 인디언 인디

오가 세운 마야, 잉카문명이 모두 한국문명 이었음을 알 수 있고 약 1만년전에 거대한

한국문명이 발생하여 오늘날 전 세계 인류의 모든 종교를 포함한 정신문화와 물질문명의

토대가 되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한민족이 전 세계국가에 대하여 종가집의

위치에 있음을 확인하는 것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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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역사]방으로 가셔서 한겨레 참역사 전문을 보신 후, 다시 파일로 올려진 한국시대

1.2.3을 차례로 열어보세요. 이 파일본은 역사관련 귀한 사진과 그림이 함께 있어 지루

하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중복하여 보시길 권하여 드리는 이유는 '참역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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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왕계표: 서기2007년 올해는 한기(桓紀)로 9204년이 된다. 한기로 환산하려면 서기년에다 7197년을 더하면 된다.

*단기로는 올해가 4340년인데 단군조선 2,096년의 역사와 아울러 그이전의 18대에 걸쳐 1,565년간 중원대륙에서 펼쳐진 한웅천왕의 배달국의 역사와 그이전의 한국시대 3,301년의 역사를 찾아내는 것이 우리의 몫이다.


(1) 한국(桓國) 한인계표

왕명 : 한인(桓仁) - 7대 3301년(한기 1 ~ 3301, BC7198 ~ BC3898)

왕 명

즉위년도(한기-B.C)

주요사건

1

안파견(安巴堅)

1-BC7198

2

혁 서(赫胥)

서방 만리에 환국의 법을 전한 광서제가 있었다.

3

고시리(古是利)

700년(수명)

4

주우양(朱于襄)

발귀리가 있어 동방 삼역에 삼의법을 전함.

5

석제임(釋提壬)

6

구을리(邱乙利)

하늘에 제를 올리는 "소도제천"시작.삼묘산 아래에 "서자부(庶子部)"를 세웠음."아랑 아랑 아르리 아르이고"천해를 떠나면서 부른 노래

7

지위리(智爲利)

3301-BC3898


참고 및 인용의 주요출처:

한단고기(임승국역주)

한민족사(율곤 이중재)

대쥬신을 찾아서(김운회)

한민족의 뿌리 사상 (송호수)

부도지(박제상저,김은수역주)

무속에 살아있는 우리상고사(조성제)

한국통사痛史(박은식)

고교 세계사(교학사)

서양문화사(민석홍,나종일)

개관 동양사(동양사학회)

NIV개신교 성경

불교반야심경

동서언어의 뿌리 천축실담어(강상원)

기타 인터넷누리집과 인터넷 까페 및 블록



지구 내부의 핵심인 중심 태양과
함께 그림으로 표현된 양극의 구멍


나사(NASA)에서 공개한
지구 북극 위의 위성에서 찍은 사진
  • 익사이팅 홍콩
    • 홍콩 첵랍콕 국제공항에서 시내로 들어오는 길 입구에 서 있는 휴대전화 선전 광고판.
    • 퀴즈 하나. ‘100만달러짜리 호화 야경(夜景)’을 자랑하는 홍콩에서 가장 크고 화려한 광고판은? 퀴즈 둘. 아시아 최고 부자인 리카싱(李嘉誠) 청쿵(長江)그룹 회장이 늘 애용하고 있는 휴대전화는? 세 번째. 홍콩에서 가장 비싸고 인기 있는 인삼 제품은?

      이 세 가지 물음의 정답에는 공통점이 있다. 모두 홍콩에서 활약하는 한국 기업이 주인공이라는 사실이다. 첫 번째는 삼성전자가 2005년 9월 홍콩섬 완짜이(灣仔)의 한 빌딩에 설치한 가로 115m, 높이 10m짜리 대형 전광판이다. 홍콩에 있는 수많은 옥외 광고판 가운데 가장 크다. 홍콩섬과 카우룽(九龍)을 오가는 스타페리 안에서 홍콩섬 쪽 야경을 바라볼 때, 일곱 가지 무지개 색깔로 바뀌는 ‘SAMSUNG’이라는 7개 알파벳 글자는 단연 압권이다.

      홍콩에서 ‘상신(商神)’으로 불리는 리카싱 회장의 손과 주머니를 항상 차지하고 있는 휴대전화는 다름아닌 LG전자 홍콩법인 제품이다. 리 회장은 지금까지 쓰던 LG의 U880모델 대신 시가 3600홍콩달러(약 44만원)짜리의 3G 최신형 모델인 LG샤인폰(shine phone)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홍콩에서 가장 호평받는 제품은 바로 한국인삼공사가 시판하고 있는 ‘천삼(天蔘)’ 시리즈이다. 박찬일 인삼공사 홍콩법인장은 “10개들이 천삼 한 근(600g)의 가격이 최고 2만1660홍콩달러(약 260만원)를 호가하지만, 중국과 홍콩 부자들이 앞다퉈 사가는 최고 인기 품목”이라고 자랑한다. 한국산 인삼은 홍콩 전체에서 수량 기준 점유율은 7.4%에 불과해도, 판매 금액 기준 점유율은 23%에 이른다. ‘양’보다 ‘질’에 집중하는 ‘프리미엄 전략’으로 홍콩의 고급 인삼시장을 평정하고 있는 것이다.

      더 눈길을 끄는 것은 LG와 삼성전자가 이끄는 가전 한류(韓流) 열풍. 이들은 소니 등 일본 브랜드의 ‘아성’마저 허물고 있다. 삼성전자가 홍콩 최고급 호텔인 페닌슐라호텔 공략에 성공한 게 대표적이다. 페닌슐라호텔이 20년 이상 사용해 오던 소니 TV를 버리고 객실에 삼성 LCD와 PDP TV 420대를 설치한 것이다.

      홍콩 최대 은행인 HSBC는 카드 고객들의 요청으로 8000세트의 삼성 LCD TV를 고객 경품용으로 주문했다. 홍콩의 관문인 첵랍콕공항도 최근 승객 대기실 등에 40인치 삼성 LCD TV 700대를 설치했다. 삼성전자의 LCD TV는 소니와 홍콩 1위 자리를 놓고 접전을 벌이고 있다.

      2005년 7월 현지법인을 출범한 LG전자도 급성장하고 있다. 1년 만에 브랜드 인지도가 3.5%에서 9%대로 껑충 뛰어 올라 지난해 홍콩주재 네덜란드 상공회의소(DBA)로부터 ‘최우수 마케팅 기업’으로 선정됐다. LG전자는 최근 1년 만에 LCD TV 점유율은 1%에서 6%로, 플라즈마 TV는 4%에서 11%로 각각 상승했다.

      휴대전화에서도 삼성과 LG전자는 각각 점유율 10%와 5%로 노키아, 소니에릭슨, 모토로라와 함께 ‘톱5강’을 이루고 있다.

      하지만 미국 등에서 한창 인기몰이를 하는 한국 자동차들은 홍콩에서 별 힘을 못 쓰고 있다. 인구당 롤스로이스와 벤츠 자동차 보유 비율이 가장 높은 특수한 시장 구조 탓인지, 홍콩에서 한국 브랜드를 붙인 승용차는 눈을 씻고 봐도 찾기 힘들다.

      홍콩은 전 세계 기업이 최신 기술로 최신 제품을 내놓는 ‘테스트 시장’이자 중국부자들이 가장 즐겨 찾는 ‘윈도 마켓’이다. 이런 글로벌 기업 전쟁터에서 우리 기업의 승전보가 더 자주, 더 크게 울려 퍼지길 소망한다.

      홍콩=송의달 조선일보 특파원(edsong@chosun.com)

  • 중국산 농산물은 왜 싼가.

    질이 한국산보다 떨어지기 때문.

    고려인삼 즉 한국인삼은 중국, 미국 등의 인삼보다 훨씬 더 비싸게 팔린다.

    약효가 훨씬 더 좋기 때문.

    그래서 예로부터 고려인삼의 명성은 중국 등 외국에서도 자자하다.

    조선시대때도 고려인삼을 팔려고 중국에 간 조선상인들에게서

    그것을 서로 사려는 중국상인들의 경쟁이 대단히 치열했다.

    한국 산삼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지금도 오래된한국 산삼은 부르는 게 값.

    미국에도 산삼이 있는데 약효가 별로 없다. 그래서 상품가치가 없다.

    중국동부지역과 한반도는 같은 종류의 농산물을 많이 길러 먹는데

    하나같이 한국산이 훨씬 더 비싸다.

    질이 훨씬 더 좋기 때문.

    한국농산물은 왜 좋은가.

    한국은 바다에서 육지로 올라온지 가장 오래된 땅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땅에 염분(소금기)가가장 적다.

    지각변동으로 바다속 땅이 위로 올라오면

    시간이 지나면서 차차 소금기가 빠진다.

    그래서 오래된 땅일수록 소금기가 적다.

    화강암은 마그마 즉 용암이 깊은 땅속에서 굳은 것.

    한국에는 화강암이 대단히 많다.

    널린게 화강암.

    한국에서는 [돌] 그러면 보통 [화강암]을 뜻한다.

    [북한산]

    북한산 저 바위들은 원래는 깊은 땅속에 있던 것들.

    저 바위 위 땅들이 오랜세월 깍이고 또 깍여서

    지금은 저 바위가 저렇게 땅위로 나와있는 것.

    원래는 저 바위 위에 땅이 수백미터는 있었을 것이다.

    화강암은 깊은 땅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므로.

    화강암이 많다는 것은 그 땅이 그만큼 오래된 땅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깊은 땅속에 있던 화강암이 땅위로 드러날 만큼 오랜 세월을

    비와 바람에 깍였다는 뜻.

    또한 그렇게 바다속에서 올라온지가 오래되었기 때문에

    한국의 강은 하나같이 맑다.

    사람이 오염만 안시키면 한강 하류도 1급수다.

    한국의 시내와 강은 사람이 더럽히지만 않으면

    아무데서나 마셔도 별 상관이 없다.

    이런 땅은 세계에서도 별로 없다.

    독일과 프랑스의 물도 대개 그냥 마실수가 없기 때문에

    걸러서 마시다보니 맥주, 포도주가 발달하게 되었다.

    땅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중국에는 화강암이 별로 없다.

    이는 무엇을 뜻하는가.

    중국과 한국은 붙어있지만 바다에서 땅위로 나온 때가 다르다는것.

    즉 한국땅이 바다속에서 위로 올라온지

    한참 후에 나중에 중국땅이 바다속에서 위로 올라온 것.

    그러므로 물(바다)밖에서 오래 퇴적된 [육지 유기질]이

    중국보다 한국땅에 훨씬더 많다는것.

    그러므로 같은 씨를 심어도 중국보다

    한국에서 더 좋은 농산물이 될 수 밖에 없다는 것.

    육지 식물은 [육지 유기질]을 필요로 하므로.

    그런데 특히 얕은 바다는 육지와 서로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다.

    육지에서 떠내려오는 유기질이 쌓이는 곳이 황해(서해)처럼 얕은 바다.

    그러므로 바다속에서 올라온지 오랜된 땅 옆의 얕은바다에

    더 많은 유기질이 쌓이는 것.

    같은 황해(서해)라도 중국쪽보다 한국쪽에 더많은 유기질이 쌓여있다는 것은

    한국쪽 바다속 땅에 사는 벌레들이 그만큼 더 영양지다는 것이고

    그 벌레들을 먹고 사는 물고기들도 더 영양지다는 것.

    그러므로 같은 황해(서해)에서 잡히는 물고기도

    한국쪽에 사는 물고기가 더 맛있는 이유가 드러난다.

    紧急抗议印尼政府违反国际公法扣留庇护难民贾甲先生

    贾甲先生在印尼现在的情况非常危急,3月9日被印尼警方从在巴厘岛的交流会上带走3月10日又被非法关押,并有可能遣返回大陆,贾甲先生在印尼是持有合法旅游签证的,而且他也得到了联合国的难民保护,他是有合法身份在印尼居留的,印尼警方关押或遣返贾甲先生都是非法的,是严重违反和破环国际人权公约的。遣返贾甲先生是至他于死地,无疑是配合大陆当局打压民主人士,我们对印尼警方这种作法表示强烈抗议。


    根据联合国公民权利和政治权利国际公约贾甲先生在印尼和平集会发表言论是合法的。

    我们要求印尼当局无条件释放贾甲先生还贾甲先生自由,并依据联合国难民地位公约》保障贾甲先生的自由和安全



    我们呼吁印尼警方要按照国际公约秉公执法,立即释放贾甲先生并保护他的人身自由和安全我们密切关注贾甲的情况。

    인도네시아 정부가 국제조약을 위반하고 자자(贾甲) 선생을 억류한 사건에 대한 긴급항의


    현재 인도네시아에 억류중인 자자 선생의 상황이 아주 위급하다.

    3월 9일 토론회에 참가하기 위해 인도네시아를 방문한 자자가 경찰에 연행된 뒤 3월 10일에는 또 불법으로 감금되었고 아울러 대륙으로 송환될 가능성도 있다고 한다. 자자선생은 인도네시아에 입국할 때 합법적인 여행 비자를 가지고 들어왔으며 아울러 UN 난민 자격도 갖고 있기 때문에 그가 인도네시아에 체류하는 것은 합법적인 것이다. 때문에 인도네시아 경찰 측이 자자 선생을 감금하거나 송환하는 것은 모두 불법이며 이는 국제인권조약을 엄중하게 위반하는 것이다. 자자 선생을 사지로 되돌려 보내는 것은 의심할 바 없이 대륙 당국의 민주인사 탄압에 협력하는 것으로 우리는 인도네시아 경찰의 이런 처사에 대해 강력한 항의를 표시한다.


    유엔 《시민권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조약》에 의하면 자자 선생이 인도네시아에서 평화적인 집회에 참가하여 발언하는 것은 합법적이다.

    우리는 인도네시아 당국에 무조건적으로 자자를 석방할 것을 요구하며 자자 선생에게 자유를 돌려주고 아울러 유엔 《난민지위 협약》에 근거해 자자의 자유와 안전을 보장할 것을 요구한다.


    우리는 인도네시아 경찰에 국제 조약에 따른 공정하게 법을 집행하고 즉각 자자선생을 석방하고 아울러 그의 인신의 자유와 안전을 보장할 것을 호소한다. 우리는 자자의 상황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


    관련 기사 :

    중공 탈당 고위간부, 인도네시아 억류

    “6개월내 공산당 붕괴 조짐 보일 것”

    등록일: 2007년 03월 12일

    올해 1월 인도네시아에 입국할 당시 인터뷰에 응하고 있는 자자 전 중국 산시성 과학기술 전문가 협회 비서장ⓒ 대기원
    [대기원] 중국 공산당을 탈당한 후 중국 민주화를 위한 활동을 펼치던 전 중공 고위관리가 인도네시아 당국에 의해 억류됐다.

    인도네시아 당국은 지난 10일 오후 정황상 혐의를 포착했다며 전 중국 산시성 과학 기술전문가 협회 비서장 자자를 체포해 발리섬 구치소에 억류중이다. 구체적인 위법 사실에 대해서 당국은 어떠한 증거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인도네시아 당국이 아무런 범법행위를 하지 않은 자자를 억류하고 중국으로 강제 송환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은 인도네시아 정부가 중공의 강한 압력을 받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했다.

    대기원시보는 자자기 억류된 구치소를 방문해 취재하는 데 성공했다.

    자자는 “인도네시아에서 어떠한 불법적인 일을 하지 않았다. 나는 단지 좌담회에 참가했으며 각 매체의 기자들도 그 자리에 있었다. 경찰은 우리가 좌담회에서 기자를 만나는 것을 달갑게 여기지 않았으며, 계속 좌담회장을 관찰하고 감시했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경찰의 요구에 따라 행동했으며, 나는 좌담회에서 어떠한 발언도 하지 않았다. 단지 나의 상황을 알고 있는 일부 사람이 나에게 말을 건네왔고 나는 근래 정황에 대해서 간단하게 답했을 뿐이다. 이는 단순한 대화였다”고 밝혔다.

    자자는 “공산당은 언제든 독이 든 밥을 먹이거나 주사를 주입하는 등의 수법을 사용할 수 있다. 이는 공산당이 주로 사용해 온 수법이며 며칠 후 갑작스런 증상으로 쓰러지더라도 병원에서 원인을 밝히기 힘들다. 현재 나는 큰 위험에 빠져 있다”고 호소했다.

    그는 이어서 “2,3개월 혹은 반년 이내 중국 내 공산당 탈당 흐름이 상당히 빨라질 것이다. (나의 망명과 탈당 선언은) 중국 내 전체 기관에 강대한 추동을 일으켰다. 만약 내가 여기서 송환된다면 당연히 중국의 개혁, 공산당 탈당 열풍은 사그라지게 될 것이다. 내가 중국에서 일으키는 작용은 분수령으로서 상당한 의미가 있고, 우리는 절대로 공산당이 하려고 하는 것을 이루게 해서는 안 된다. 공산당 정권은 이미 확실하게 와해되었다. 그렇다면 공산당이 최후의 숨을 몰아 쉴 때, 어떠한 수단이라도 쓰려고 할 것이며 어떤 일도 다 하려고 하겠지만 우리는 절대 공산당을 믿어서는 안 되며, 믿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자자는 해외의 원조를 적극 요청하면서 “당신들이 나를 도와 주는 것은 중국인민들을 도와 주는 것이며, 7천만 공산당원을 도와주는 것이다. 나는 중국의 광대한 당원과 전문인을 대표하여, 정치개혁을 진행해 갈 것이다. 현재 13억 중국 인민은 매일 하늘을 보고 탄식하고 있다. 세계 다른 나라에서는 민주가 실현되고 있는데 왜 중국인은 민주실현이 불가능한가? 왜 다른 나라에는 신앙의 자유가 보장되는데, 중국에는 신앙자유가 없는가? 왜 중국인이 공원에서 파룬궁을 연마하면 공산당의 잔혹한 박해와 탄압에 직면하며, 목숨을 잃어야 하고, 생체 장기적출까지 당해야 하는가”라고 덧붙였다.

    자자는 마지막으로 “나는 공산당이 이미 멸망할 때에 이르렀다고 생각한다. 나는 전세계가 중국인민을 구해 줄 것을 호소하며, 중국인민이 민주를 실현할 수 있도록 도와 주기를 호소한다. 중국에 민주가 실현되면, 세계는 비로소 안정되고 평화가 찾아 올 것이다. 공산당이 존재하기만 한다면, 전 세계의 평화는 없을 것이다”

    한편 자자는 지난해 대만에 관광차 입국한 후, 중국공산당과 결별한다는 성명을 발표하고 대만정부에 정치적 망명을 신청했다. 그러나 중공의 압력으로 대만정부가 그의 망명을 받아들이지 않자 홍콩을 경유, 중국에 송환될 위기에 처했다. 국제적 성원으로 위기를 모면한 그는 홍콩에서 태국으로 입국, 태국에서 유엔난민을 신청할 수 있었다. 그 후, 대만정부에 일시적으로 그의 입국을 허용했으며 현재는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등을 방문해 중국 민주화를 위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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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축국 없애려던 미국의 술책, 비동맹 회원들의 반발로 무산 / 삼족오 인장이 부끄럽다.
    아사달
    [원제] 부끄럽고 한심한 반기문(Christian)총장 소행


    반기문 UN사무총장이 UN기구를 개혁 한답시고 유엔 창설의 제일 목적이라 할 수 있는 군축국의 기능을 정무국과 병합하려다 비동맹회원국들의 맹렬한 반대에 부딛혀 그 뜻을 철회했다고 한다.

    군축국(軍縮局)은 UN창설 때부터 설치된 기구로서 국축과 핵 비확산 논의를 진행하고 집행하는 조직이며 국제분쟁 해결과 군비축소라는 UN의 목표를 실천하는 기구라고 한다.

    ▲반기문의 굳건한? 한미동맹 ©유엔
    이렇게 중요한군축국을 반 총장은 미국 출신 인사가 주도하는 정무국(政務局) 산하에 두어미국의 편의에 봉사하려 했던 것이다.

    후세인 사형 옹호 발언에 이어 또다시 기구 개악(改惡)에 거침없이 나서는 반총장을 두고 국제 외교가에서는 “여우에게 닭장을 맡긴 꼴”이니. “고양이 에게 생선전을 맡긴 꼴”이라는 비아냥거림도 있다고 한다.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동족으로서 가슴아픈 말이지만 미국의 주구노릇을 서슴없이 할여다가 첫머리부터 발목이 잡힌 반총장의 소행이 출신국 국민들까지 욕먹게 하고 있으니 이일을 어찌할꼬...

    어물전 망신은 꼴두기가 시킨다더니 반총장이 들어서 국민소득 2만불 시대를 향하여 질주하고있는 우리나라 우리 국민까지도 망신시키고 있다.

    한·미동맹체재하에서 잔뼈가 굵어지고 거기서 외무장관을 지냈다는 반기문총장을 두고 국제외교가의 수군거림은 어떤 것일까?

    역시나 미국식민지 출신은 속일 수 없다고 비웃으며 불쌍한 코리안이라고 욕들 할 것이라는 것은 너무도 뻔 하다.

    반기문 총장님! 지금 부터라도 세계의 지성이 수용하는 총장으로서의 위상을 정립하십시오.


    아사달, 시대소리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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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원에서 봄 꽃 찾기

    어제는 전국적으로 완연한 봄 날씨였습니다. 그래서 이곳 강원도 철원에서도 봄 꽃이 피지 않았을까 찾아나섰습니다.작년에는 너무 늦어서 복수초랑 만주 바람꽃, 꿩의 바람꽃, 노루귀 등을 만나지 못해서 올해는 일찍부터 수시로 왔다갔다하며 저 혼자 슬그머니 피었다 지지 못 하도록 확인하고 있습니다.

    애기똥풀 - 잎이 떨어지니까 여지 없이 노랑 액체가 나옵니다.

    얼음이 풀린 개울에는 날도래 유충도 보입니다.

    양지꽃 새순이 정말 귀엽습니다.

    망초대 같습니다.

    아마 이 버려진 벌집에도 봄이되면 다른 벌들이 찾아올겁니다.

    가시 엉겅퀴는 새순이 돗아난게 아니라 주저 앉아서 겨울을 났나봅니다.

    복수초인데 아쉽게도 꽃은 없습니다. 요리조리 살펴봐도 꽃 망울이 아직 없습니다. 좀 더 있어야되나봅니다.

    얼음을 뚫고 나온건지 따뜻해서 새순이 나온뒤에 다시 얼음이 언 것인지 아무튼 얼음위에 쑥 새순이 참신하면서도 강해보입니다.

    유충 주머니가 언제봐도 예쁩니다. 오른쪽에 날개 같은 것은 단풍나무 씨앗입니다.

    버들강아지 솜털이 보기만해도 부드럽게 느껴집니다. 아직 껍질을 완전히 떨구지 못했습니다.

    으아리 씨앗은 봄이 되기만을 악착같이 버티고 있습니다. 봄바람 타고 훨~ 훨~~날기만을 기다리며...

    고비 새순이 통통하게 맻혔습니다.

    새에게 습격당해서 유충은 먹혀버리고 구멍 뚫린 고치만 땅바닥에 나뒹굴고.....

    골짜기 도랑은 다 녹았습니다. 오늘아침에도 철원은 영하5도라고 하던데 가보면 이렇게 봄날인데......

    찔래나무 새순입니다.

    두릅도 찜해놓고... 봄되면 따러 와야지.....

    찔래 새순이 제법 잎을 피워올렸습니다.

    뭐니뭐니해도 진짜 봄의 상징 개구리알... 여기저기 많이도 퍼질러 놨더라구요.

    다음주쯤 복수초랑 다른 꽃들 기대하세요.

    해외(호주) 에서
    한국인 상대로 벌어지는 각종 사고들

    요즘 많은 한국인들이 관광차 또는 영어 공부를 하기 위해 해외로 나가고 있습니다. 따라서 전 섟瓦【?한국인 상대로 벌어지는각종 사건들이 최근 늘어나고 있어 주목되는데, 먼저 호주의 사례를 들어 현 실태를 파악해 보겠습니다. 최근 호주 역시 요즘 많은 한국인들이 이곳 호주로 관광을 하기 위해 또는 영어 공부를 위해 오고 있는데요. 늘어나는 한국인들의 숫자만큼 요즘 호주에서는 한국인들에게 벌어지는 각종 사건들도 시나브로 증가하고 있어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사실, 호주라는 나라는 한국인들에게 단지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가진 나라라고만 알려져 많은 한국인들이 호주를 여행할 때, 아무런 주의 없이 이곳을 여행하다 사고를 당하는 사례들이 최근 늘어나고 있습니다. 특히, 세계 유명 관광지인 호주에서 매년 적지 않은 사고들이 호주를 여행하는 관광객들에게 벌어진다는 사실은 조금 놀라운 일인데요. 이들 사고를 당하는 관광객들 중 한국인들도 매년 상당수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최근 호주 정부가 보고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7년 동안 호주에서 사망한 외국인들은 총 2,400여명이나 된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들 외국인 사망자 대부분은 호주 해변에서 립 (rip, 해변에서 바다로 빠져나가는 격류)을 보지 못한 채, 수영을 하다 사고를 당하고 있는 것으로 호주 정부는 파악하고 있는데요. 따라서, 호주 여행시, 수영을 할 때에는 주변에 안전 요원이 있는 지여부를 먼저 확인해야하고 주변에 파도의 높이까지 면밀히 파악한 후, 수영을 해야합니다.

    외국인 사망 원인의 두 번째로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것은 바로 '교통사고'입니다. 이들 호주에서 발생하는 교통 사고에는 특히 한국인 관광객들이 상당수 포함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는데요. 예를 들어, 호주의 도로는 한국과 다른 교통 체계 (호주는 우측통행)로 인해 많은 한국인들이 호주에서 운전을 할 때,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지난 3년간 호주에선 65명의 관광객들이 도로에서 역주행을 해,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한국 관광객들 역시 매년 교통사고로 사망하고 있는데, 지난 1 17일 오후 2시경 노던테리토리 앨리스스프링스에서는 한국인 남성 3명이 탄 차가 마주 오는 차와 정면충돌해 한국인 동승자 1명과 반대편 차량을 몰던 45세 호주 남성 운전자(퀸즐랜드 주 거주)가 현장에서 숨졌으며, 다른 한국인 1명은 심한 머리부상을 입어, 현재 이곳 애들레이드 병원에 입원해 아직까지 혼수상태에서 깨어나지 못하고있습니다. 사실, 한국인들이 호주에서 당하는 많은 사고들 중 교통 사고가 차지하는 비율은 매우 높은데, 대부분 과속 운전과 교통 체계가 달라 일어난 사고가 대부분입니다.

    최근에는 한국인을 상대로 하는 현지인들의 폭행 사건들도 증가하고 있어 주목되고 있는데요. 지난 1월에 호주로 관광차 온 한국 여행객 김 모 (26)씨는 지난 한 달 동안 호주 여행도중 골드코스트와 시드니에서 연이어 현지 불량배들에게 폭행을 당해 현재 이 사건을 호주 경찰이 조사 중에 있습니다.

    다행히 김 씨는 큰 부상은 입지 않은 채, 카메라만 조금 파손됐다고 하는데, 불과 몇 년 전에는 이러한 사건이 호주에선 흔치 않게 일어난 것에 반해 최근에는 호주 내 다른 주에서도 한국인들이 현지인들에게 폭행과 폭언을 듣는 사례가 종종 벌어지고 있습니다.

    현재 한국인들에 대한 폭행 사건들은 주로 호주 내 대도시들에서 일어나고 있지만, 요즘에는 교민 수가 비교적 적은 기자가 살고 있는 애들레이드 시 역시 현지인들이 유색 인종들을 테러하는 사건들이 종종 벌어지고 있는 형편입니다.

    예를 들어, 지난해에는 이곳 애들레이드 시 모드버리에 위치한 한 기숙사에 거주하는 흑인 유학생을 백인 청년들이 폭행을 한 사건도 벌어졌습니다.

    이처럼, 막연히 '안전한 나라'라고만 한국에선 여겨졌던 호주에서 한국인을 상대로 한 각종 사건들이 늘어나고 있어, 지금 호주로 여행이나 공부를 계획하고 있는 많은 한국인들은 사전에 호주에서 주의해야할 점을 미리 파악하는 것이 사고를 예방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특히, 사고가 났을 때, 영어에 대한 두려움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사건 현황을 자세히 알리지 않는 분들이 많은데, 피해자들은 되도록 이곳 경찰에 신고하고 본인이 원한다면 언제든 적절한 통역 서비스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한 빨리 사건을 경찰에 알려야합니다.

    <중국동포 눈물 닦아준 `뇌종양 여검사'>(종합)



    선고 이틀 전 뇌종양 수술받고 아직 요양중

    (서울=연합뉴스) 차대운 기자 = 뇌종양을 앓으면서도 어려움에 처한 중국동포를 돕기 위해 밤낮 없이 뛴 여검사가 항소심까지 가는 법정싸움 끝에 진실을 밝혀내 동포의 눈물을 닦아준 사실이 20일 알려져 진한 감동을 주고 있다.

    영화나 TV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사연의 주인공은 서울북부지검 형사2부 진혜원(32.여.사시44회) 검사.

    작년 초 재판을 전담하는 공판검사였던 진 검사는 물품대금을 떼였다는 중국동포 허모(49)씨가 한국인 사업가 김모(33)씨를 상대로 낸 형사소송 사건의 공판을 맡으면서 허씨의 주장이 진실일 것으로 확신하고 돕기 위해 발벗고 나섰다.

    중국 심천에 살던 허씨는 김씨에게 목도리 5천400개(3천500만원어치)를 수출한 뒤 대금을 달라고 했지만 김씨는 "돈을 받아놓고 딴 소리냐"며 오리발을 내밀었다는 게 허씨의 주장이었다.

    진 검사는 허씨가 중국에서 증거수집이 어려웠음에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지만 1심 재판부는 지난해 7월 증거부족을 이유로 김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판결을 도저히 수용할 수 없다고 판단한 진 검사는 이후 수사 부서로 발령났지만 끝까지 진실을 밝히기로 작심했다.



    이후 항소심 재판까지 공판검사역을 맡겠다고 고집했고, 북부지검은 젊은 검사의 열정을 이례적으로 수용했다.

    진 검사는 1심 판결의 부당함을 지적하는 50여 쪽의 항소이유서를 2심 재판부에 제출했다.

    통상 항소이유서가 20여 쪽 안팎인 점을 감안하면 `3천500만원짜리 소액사건'의 양으로는 엄청난 것이었다.

    항소심이 진행되는 동안 진 검사는 낮에는 배당사건을 수사하고 밤에는 늦도록 사무실에 남아 재판을 준비했다.

    진 검사는 방대한 양의 통관서류를 뒤져 추가 증거를 찾는 한편 허씨 입장을 뒷받침해 줄 수 있는 중국인을 설득해 법정에 증인으로 세워 김씨의 주장이 거짓임을 입증하는 데 주력했다.

    이런 노력 덕분에 항소심 재판부인 서울북부지법 11형사부(이병로 부장판사)는 지난달 26일 검찰 측 주장을 받아들여 김씨에게 징역 8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혹시 한국 사법당국이 한국인에게 유리한 판단을 하지 않을까 불안해 했던 허씨는 이달 초 승소 판결 소식을 전해듣고 감격한 나머지 서울북부지검 검사장 앞으로 A4 용지 여섯 장 분량의 감사편지를 보냈다.

    허씨는 편지에서 "진 검사님은 제 사건을 마치 본인이 피해를 본 것처럼 열정을 갖고 사건을 파헤쳤다"며 "정의는 살아 있다는 진 검사님의 확고한 신념과 강한 의지는 저뿐 아니라 사건 내막을 아는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다"고 감격해 했다.

    그는 또 "`진실만이 세상과 사람을 움직일 수 있다'는 작은 신념이 제 핏줄의 근원인 한국에서 입증됐다는 게 너무 감사하고 기쁘다"고 소감을 밝혔다.

    하지만 진 검사는 아직 편지를 받아 보지 못했다.

    지난달 24일 뇌종양 판정 후 큰 수술을 받고 요양 중에 있기 때문이다.

    그는 단순한 빈혈인 줄 알고 참고 지내다 수술 며칠 전에야 병원을 찾았다가 머리 속에 큰 혹이 자라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돼 긴급 수술을 받았다. 다행히 수술 경과가 좋아 병원에서 나와 집에서 안정을 취하며 방사선 치료를 받고 있다.

    주치의 허대석 내과교수는 "진 검사의 종양은 악성과 양성의 중간이지만 수술 경과는 대단히 좋은 편"이라며 "회복 후 두 달 정도는 절대적으로 안정을 취하는 게 중요하다"고 전했다.

    진 검사의 상관인 형사2부 하윤홍 부장검사는 "검찰 생활을 하면서 진 검사처럼 집념과 열의가 대단한 사람을 못 본 것 같다"며 "진 검사가 하루 빨리 건강한 모습을 찾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날 오전 통원 치료를 받기 위해 서울대병원을 찾은 진 검사는 "해야 할 일을 한 것 뿐"이라며 "지난 2년간 검사 생활을 하면서 `정의는 지켜진다'는 신념으로 살아왔고 앞으로도 이 신념을 잃지 않고 수사하는 사건에 대해 억울한 사람이 하나도 나오지 않게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한국영화, 아카데미상 수상은 아직 먼 길?

    [머니투데이 스타뉴스 윤여수 기자]


    "아카데미가 싫다. 영화는, 영화를 만들어놓은 내 것이 아니다. 영화가 새롭게 받아들여지고 상황에 따라 대표로 뽑혀 출품되기도 한다. 아카데미 출품에는 찬성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싫다."

    영화 '왕의 남자'(위 사진)로 지난해 10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관객들과 만난 이준익 감독의 말이다.

    당시 신선한 발언으로 들려왔지만 일부 네티즌들은 악성 댓글로 그에게 상처를 안기기도 했다.

    '왕의 남자'가 올해 미국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부문 후보작 선정을 위한 경합에 출품된 직후여서 시기적으로 화제의 중심에 아카데미상이 오르내린 건 당연했다.

    그러나 사실, 아카데미상은 '미국의 영화상'이다. 한국에 청룡영화상이 있고 대종상이 매년 후보를 내고 배우와 스태프, 작품에 상을 주는 것처럼.

    아카데미상은 "1927년 5월 할리우드의 메이저 제작사 가운데 하나인 MGM의 제작자 루이스 B. 메이저가 설립한 영화예술과학 아카데미가 주관하는 '미국 영화상'이다".(2006년 영화진흥위원회 '아카데미상 개요 및 심사경향 분석' 자료)

    따라서 기본적으로는 할리우드에서 제작되는 해당 연도의 모든 영화가 그 후보작이 될 자격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그럼 한국영화는 아카데미상과 어떤 연관이 있을까.

    한국영화가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호명될 수 있는 것은 외국어 영화상 부문에서만 가능하다.

    외국어 영화상은 세계영화제작자연맹에 가입한 각국의 영화 제작 단체가 자체 심사(한국은 영진위가 주관)를 거쳐 1편씩 출품한 영화를 대상으로 심사해 후보에 오른다.

    한국영화는 지난 1991년 신상옥 감독의 '아유미'가 처음으로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 후보작 선정 경합에 나섰다. 이후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1995년, 감독 정지영), 2000년 '춘향뎐'(감독 임권택), 2002년 '오아시스'(감독 이창동)가 출품됐다.

    이후 2003년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감독 김기덕), 2004년 '태극기 휘날리며'(감독 강제규ㆍ아래 사진) 그리고 지난해 '왕의 남자'에 이르며 한국영화는 매년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 후보작 선정 경합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 후보에 오르지 못했다. 해외 시장에서 한국영화의 위상이 높아졌지만 아직 아카데미상과는 인연의 끈이 닿지 않고 있다.



    일각에서는 '미국의 영화상'에 그리 흥분할 이유가 없다고들 한다.

    사실 1947년부터 시상이 시작된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 부문도 "아카데미상이 미국 중심의 잔치라는 비난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의도에서 시작됐다"(영진위)는 분석도 있다.

    이와 함께 영진위는 "외국어 영화상 심사경향이 아카데미의 일반적 성격-평균연령 60대의 투표인단이 '안전하고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며, 삶을 긍정적인 시선으로 보게 하고, 기분이 좋아지는 요소로 가득찬 작품'을 암묵적으로 선호하는 경향, 특히 사회적 이슈를 양념처럼 살짝 첨가해 주인공이 역경을 이겨내는 등의 휴먼드라마에 대한 애착-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고 적고 있다.

    실제로 최근 10년 동안 수상작들 가운데 "가족, 여성, 어린이, 역사, 휴먼드라마를 다룬 작품이 많다"고 영진위는 분석했다.

    또 "미국의 유수 배급사들이 배급한 작품들이 수상 기회를 많이 갖는다"면서 "이들 배급사의 영향력이나 아카데미를 전후한 미국 배급 상황이 심사 때 주요 고려사항"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소니클래식, 미라맥스, 파인라인 등 메이저 계열 배급사들"이 최근 10년 동안 수상작을 배급했으며 "시상식 이전인 12월에서 1월 사이 미국 개봉을 통해 인지도를 사전에 확산해 수상 혹은 노미네이션 이후 미국 내 흥행 성적이 급등했다"고 분석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한국 영화사들도 출품을 노리는 영화의 미국 배급 계획서와 함께 해외 세일즈 업체 및 미국 등 해외 배급사와 맺은 계약서, 최근 5년 이내 해외 세일즈 업체의 미국 판매 실적이 담긴 서류 등을 영진위에 제출하게 되어 있다.

    또 이 서류들 가운데에는 신청작의 감독이 제작한 작품 중 최근 5년 이내 해외영화제 수상 및 미국 개봉 증빙자료도 포함된다.

    그 만큼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은 할리우드가 아닌 다른 지역의 영화들이 미국을 비롯한 북미 지역 진출 및 시장 확보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실제로 영진위는 "한국영화의 북미 시장 개척 및 한국영화 브랜드 가치 제고에 지대한 공헌을 할 것"이라고 말한다.

    '아카데미상이 보수적인 할리우드의 상업적 위세를 확장하고 미국적 가치를 내세운다'는 비판에만 한국영화가 머물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美아카데미 후보에 단 한번도 못오른 배우는?



    [머니투데이 스타뉴스 김관명 기자]



    짐 캐리, 멕 라이언, 리차드 기어, 브루스 윌리스, 스칼렛 요한슨..

    이 배우들이 지금까지 단 한번도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후보에 오르지 못했다면 믿겨질까.

    AOL닷컴에 따르면 '로맨틱 코미디의 여왕' 멕 라이언은 3번이나 골든글로브 후보에 올랐으나 아카데미와는 영 인연이 없었다. 사실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시애틀의 잠못 이루는 밤' '남자가 사랑할 때' 같은 로맨틱 코미디가 아카데미에서 빛을 보긴 힘들지만, 그녀가 지난 2003년 마음 먹고 찍은 '인 더 컷'으로도 아카데미 러브콜을 못받아 말들이 많았다.

    '시카고'의 리차드 기어 역시 '사관과 신사'라는 아카데미 심사위원들이 좋아할 만한 작품에도 불구 상복이 없었다. 그는 2003년 '시카고'로 골든글로브에서 뮤지컬-코미디 부문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귀여운 여인' '최종분석' '아메리칸 지골로' 등 작품의 유명세에 비해서는 역시 아카데미 평가는 박한 편이다.

    브루스 윌리스도 아카데미와는 인연이 없다. '식스센스' '제5원소' '다이하드' 등 히트작도 많고 가장 미국적인 배우라는 평가지만, 정작 아카데미에서는 후보에 오르지 못했다. 오히려 해마다 아카데미 시상식 전날 발표되는 골든 라즈베리 시상식에서 '아마게돈'으로 최악의 남우주연상을 받는 불명예를 얻기도 했다.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아일랜드' '매치포인트'의 스칼렛 요한슨도 의외다. 2003년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로 전세계적인 스타가 된 스칼렛 요한슨은 이 작품으로 영국아카데미 여우주연상, LA비평가협회 신인상을 받았다. 하지만 아카데미는 그녀를 불러주지 않았다.

    이밖에 AOL닷컴은 아카데미 후보에 들지 못한 톱스타로 짐 캐리, 산드라 블록, 스티브 마틴, 케빈 베이컨, 마틴 신, 이완 맥그리거, 존 쿠삭, 스티브 부세미 등을 꼽았다.



    인체와 우주는 똑같다. 。우 주 이야기



    1미터.
    사람들의 일반적인 스케일이죠.
    10월의 따뜻한 날 한 남자가 공원에서 낮잠을 자고 있습니다.
    그의 곁에는 여러가지 물건들이 있군요.
    이 사진의 작은 사각형 안의 공간이 다음 사진 내용이 되는겁니다.

    '인간은 모든것의 척도이다.'
    소피스트였던 프로타고라스의 말을 인용하며, 인간에서부터 시작해봅니다.

    이 그림을 잘 기억해주세요.



    10센티미터.
    더 조밀한 비율입니다.
    이 사진은 손등을 조금 확대해서 보여준 그림입니다.



    1센티미터
    손등의 그림을 더 확대한 모습이죠.
    손등의 주름은 그만큼 손이 유연성이 있다는걸 의미한답니다.



    0.1 센티미터(1밀리미터)
    살 아래엔 작은 혈관이 흐르겠죠?



    0.1밀리미터.

    머나먼 별이 익숙하지 않은것처럼,
    우리의 몸이라고 해도 이렇게 확대된 부분은 익숙하지가 않군요.



    0.01밀리미터
    하얀 림프구 세포입니다.



    1마이크로미터.
    세포의 핵으로 들어가는겁니다.



    1000 옹스트롬. (0.1마이크로미터 , 0.0000001미터)
    기다란 분자 구조가 얽히고 섥혀서 세밀한 DNA를 구성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DNA구조는 모든 세포 내의 핵에 존재합니다.



    100 옹스트롬
    DNA의 2중 나선 구조지요.



    10 옹스트롬
    분자단위의 스케일입니다.



    1 옹스트롬
    원자 단위의 스케일입니다.
    핵 주변으로의 전자 구름이 보입니다.



    0.1옹스트롬
    탄소원자입니다.



    1 피코미터 (0.000000000001미터)
    원자의 핵.



    0.1 피코미터
    좀 더 가까이서 볼까요?



    0.01 피코미터
    양성자와 중성자로 구성되어 있는 원자의 핵 입니다.



    0.001 피코미터
    현대 물리학에서 최근에 탐구하기 시작한 양성자의 안쪽 부분이지요.



    0.0001 피코미터
    더 확대해보면 무엇이 있을까요...




    다시 시작합시다.



    다시 인간으로부터 다시 시작해봅시다.



    10미터.
    남자와 여자가 같이 공원에 소풍을 온 그림이죠.



    100미터.
    고속도로와 부두가 보이네요.



    1킬로미터
    도시가 보입니다.



    10킬로미터.
    도시의 중심도 보이고, 여러가지가 보이는군요. 모든것이 나타납니다.



    100킬로미터.
    시카고의 거대도시 영역입니다. 더불어 호수의 끝이죠.



    1000킬로미터.
    상공의 낮은 궤도에서 관찰한 모습입니다.
    1000만이 넘는 사람들의 거주지가 보이지요.



    만 킬로미터.
    푸른 하늘과 하얀 구름, 어두운 바다. 갈색의 땅. 동쪽으로 도는 지구.
    1967년이 되서야 인간은 지구를 지구 밖에서 관찰할 수 있게 되었지요.



    10만 킬로미터.



    100만 킬로미터.
    달의 궤도입니다.



    1000만 킬로미터.
    지구가 태양을 도는 궤도입니다.



    1억 킬로미터.
    다른 행성들의 궤도도 보이는군요.



    10억 킬로미터. (~7AU)
    태양계입니다. 다른 행성들은 잘 보이지 않지만
    태양 하나는 참 잘 보이네요. 멀리 목성이 궤도가 보입니다.



    100억 킬로미터.
    태양계 행성들 보일건 다 보입니다.



    1000억 킬로미터.
    태양도 작게 보이는군요.



    1조 킬로미터.
    오직 태양만이 보입니다.



    10조 킬로미터 (대략 1광년)
    빛이 1년을 여행해야 갈 수 있다는 거리인 1광년입니다.



    10광년 (3파섹)



    100광년
    참 넓기도 한 우주~



    1000광년
    슬슬 은하의 윤곽이 드러납니다.



    1만 광년
    커다란 별들도 전체적으로 봤을땐 작은 입자같군요..
    하나의 구름처럼 된 듯한 모양입니다.



    10만광년
    ..



    100만광년
    더 넓게..



    1000만광년(3메가 파섹)
    그렇게 거대한 은하도 하나의 점으로..



    1억 광년
    우리 은하가 겨우 보이는군요..



    10억 광년
    대부분의 공간이 이렇게 비어있는것처럼 보입니다..
    더 먼 공간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신비의 세계|
    동아시아 밑, 지구 내부에 ‘거대한 바다’ 있다

    미국 세인트루이스의 워싱턴 대학교 지진학자 마이클 와이세션 교수 등은 7일자 보도 자료를 통해 지구 내부에 거대한 지하 저수지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고 밝혔다.
    60만장의 진동도(震動圖)에 나타난 8만개의 전단파를 근거로 제작된 3D 컴퓨터 모델에서 그 모습이 확인된 ‘지구 속 바다’의 크기는 적어도 북극해와 비슷할 것이며, 깊은 맨틀 속에 물이 존재한다는 추정이 있었지만 실제로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태평양의 바닥 즉 대양저(sea floor)의 일부가 지구 중심 쪽으로 가라앉으면서 암석 속으로 물을 공급하고, 그 암석들이 다시 가라앉으면서 가열되어 약해지고 불안정해질 때 물이 배출된다. 배출된 물은 상승하면서 쌓여 막대한 양의 ‘지구 속 바다’를 형성하게 된다.
    이 저수지는 동아시아 아래, 지구 표면으로부터 620마일 아래(하부 맨틀의 상층)에 있다.
    관련 논문은 미국 지구 물리학 연합에서 발간하는 학술지에 실릴 예정이다.
    한편 이번 발견이 흥미로운 것은 쥘 베른의 소설 ‘지구 속 여행’을 연상시키기 때문. 19세기에 출간된 소설에서 한 과학자가 비밀문서에 기록된 터널을 통해 지구 속으로 여행을 떠나게 되는데, 그곳에는 고대 생물 종으로 가득한 바다와 대륙이 있었다.
    (사진 : 동사이아 아래 하부 맨틀의 상층에 존재하는 ‘바다’의 모습. 왼쪽 사진은 지구 단면도로 맨틀 내부에 존재하는 바다의 모습을 보여준다. 오른쪽 위 사진은 단면의 위치를 나타낸다. 두 그림 속에서 붉은 색은 부드럽고 약한 암석, 푸른색은 단단한 암석이다. 노란색과 하연색은 평균의 강도를 갖는다. 워싱턴대학교의 보도 자료 중에서.)
    김경훈 기자 (저작권자 팝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