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상

[SOH] 중국 공산당(중공)이 설립된 지 90년이 되는 올해, 빈부격차, 관료부패, 수많은 불평등과 부조리 등 한계를 보여온 중공이 마오쩌둥 시대의 전제정치와 계급투쟁에 기대어 지금의 난국을 극복하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사고 있습니다.


지난 24일 중국 인민대회당에서는 칭화대 창립 100주년 기념 행사가 열렸습니다. 행사에 참석한 인물들 중에는 문화대혁명 초 칭화대 반역파 지도자였던 콰이따푸(X33967;大富)도 있었습니다.


1966년 당시 이공학부 화학과 3학년이었던 콰이따푸는 칭화대 홍위병단 책임자로서 류샤오치(劉少奇) 전 주석과 그 아내 왕광메이(王光美)에 대한 잔혹한 공격을 주도했습니다. 이듬해 콰이따푸는 그 업적이 인정되어 베이징시 혁명위원회 상무위원으로 발탁되어 칭화대 유혈 무력투쟁의 선두에 섰습니다.


‘베이징시 반역파 5인’중 1명인 콰이따푸는 문화대혁명 후 투옥되었고, 1987년 석방된 이후 공개석상에 나타나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의기양양하게 인민대회당에 나타나 많은 사람들에게 봉인된 문화대혁명의 기억을 되살렸습니다.


지난 2월 19일에도 이 같은 회귀 조짐을 보이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날 인민일보는 마오쩌둥의 후계자인 화궈펑(華X22269;鋒) 전 총리의 탄생 90주년을 기념해 ‘당과 인민의 사업을 위해 분투한 일생’ 이라는 제목으로 6,000자에 달하는 장문의 기사를 게재했습니다.


그러나 이 날은 화궈펑의 생일일 뿐만 아니라 덩샤오핑의 기일이기도 했습니다. 인민일보는 덩샤오핑을 제쳐두고 1981년 실각한 후 거의 언론을 주목을 끌지 못한 화궈펑을 ‘중국의 혁명, 건설, 개혁에 공헌했다’고 칭찬에 열을 올렸습니다.


1976년 마오쩌둥이 사망한 후, ‘문화혁명 색깔’이 남아있던 정치가인 화궈펑은 덩샤오핑과 권력 투쟁 후 사실상 실각했습니다. 지금까지 중국은 덩샤오핑을 소홀히 하고 화궈펑을 찬양한 적이 없습니다. 자유아시아방송(RFA)은 이날 인민일보 보도로 보여진 갑작스런 풍향의 변화는 중공 설립 90주년이 되는 이 시기에 중국 최고 지도부가 마오쩌둥 시대로 퇴보시키려는 것은 아닐까하고 분석했습니다.


이러한 문화혁명 색깔은 다른 곳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충칭시에서 시작된 ‘홍가(紅歌)’ 재보급 운동이 중국 전역으로 퍼지고 있습니다. 20일 충칭일보에 따르면, 중선부(中宣部)와 CCTV는 이미 36곡의 대표적인 홍가를 선정해 지난 10일부터 5월 20일까지 이 36곡을 텔레비전으로 매일 반복 방송하고 있습니다. 홍가는 중공을 찬양하는 노래입니다.


또 허난성 허난사범대학에서는 ‘홍가스타’라는 홍가 경연대회를 열었습니다. 학교측은 대학식당에 무대를 마련하고 학생들에게 먹으면서 홍가를 듣게 합니다. 학교측은 홍가는 ‘사상의 식량’이며, 홍가를 듣고 노래하는 것은 학생들의 ‘애당(愛X20826;) 애국(愛國)’ 정열을 자극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이를 인터넷 방송과 기존 언론을 통해 보도하며, CD와 DVD를 제작했습니다.


2,500년 전 인물인 공자도 이 색깔 공방에 본의 아니게 끼어들게 됐습니다.


‘공자가 돌아오면 공산당 멸망도 가깝다’고 말했던 마오쩌둥 맞은 편에 올해 1월 높이 9.5m의 공자상이 나타났고, 설치된 지 100일째 되는 지난 21일돌연 철거됐습니다. 홍콩의 동방일보는 텐안먼(天安門) 광장이라고 하는 민감한 장소에서 공자의 등장과 퇴장은 지도부 내부의 ‘연기없는 투쟁’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고 지적했으며, 공자의 ‘패배’는 중공이 다시 계급투쟁 시대로 회귀하려는 것이고 지도부 내부가 좌경화하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고 분석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