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현실

<사회가 안정이 되려면>

민주국가에선 언론이 자유롭고 정보가 투명하기에 모든 불량한 현상과 사회모순이 공개되고 겉으로 드러난다. 그래서 겉으로는 매우 혼란스러운 것 같지만 바로 이런 폭로, 언론이 퍼뜨리는 어지러운 모습이 민원을 해소하여, 민의가 반영되고 잘못이 시정된다. 그래서 사회는 안정적이다.

중공이 말하는 사회안정은 정권의 안정이다. 중국사회는 곳곳마다 모순,충돌과 원한(怨恨)이다. 빈부격차가 극심하고 ‘부자를 미워하는 심리’가 널리 퍼져있다. 우리한국도 부자를 미워하는 심리는 중공으로 수입되어 있다. 민원(民願)을 호소하는 군중들의 억울함, 강제철거민들의 피눈물, 토지를 빼앗긴 농민의 분노(지금도 중공이 필요하면 언제듯 느닷없이 빼앗아간다)등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참다참다 민중항쟁이 끊임없이 발생하고 곳곳마다 항쟁이다.

민주국가에서는 사람마다 자신의 이익을 대변할 사람을 찾아 선거를 하고, 그러다보니 관리들이 자주 바뀌고 겉보기에는 정권이 매우 불안정한 것 같지만 실제 사회는 안정적이다.

반면 공산국가는 인민의 선거권을 박탈하여 집권자가 멋대로 행사하며, 사회는 극히 불안정하다. 중공은 정치적인 부패로 누적된 민심의 분노를 다스릴 수 없고, 자유를 갈망하는 민중을 적으로 몰아 박해하여, 민심은 흉흉하다. 사실 민주와 자유가 없다면 진정한 안정은 유지될 수 없다.


<중공의 권력투쟁>

공산당이 건립된 날부터 권력투쟁은 줄곧 존재했다. ‘모함과 살인’으로 표현되는데 모택동은 10만명의 홍軍을 학살하고 西路軍(서로군)과 신사軍을 몰살시켰다. 또 당내 정적(政敵)인 유소기등을 몰아내기 위해 문화(文化)말살의 대혁명을 발동하고 많은 사람을 반동으로 몰아 학살했다. 참혹한 투쟁의 원인은 중공의 야만성(野蠻性)과 독재성(獨裁性) 때문이다. 또 등소평등 원로들이 권력을 사수하기 위해 당규(黨規)와 헌법(憲法)을 무시하고 총서기 호요방과 조자양을 축출한 후 전세계를 경악시킨 “6.4천안문 학살”을 저질렀다.

내부 권력투쟁에서 죽은 ‘중공 당원과 간부들의 숫자’는 전쟁에서 적군에게 죽은 인원보다도 많다.


<인민을 위한다는 중공>

매사에 인민이란 말을 갖다붙이는 것은 공산당의 큰 발명(發明)이다. 인민(人民)이란 단어는 소련에서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소련 공산당지도자들은 자칭 ‘인민위원’이라 했다. 중공은 인민이란 단어를 씀이 극(極)에 달해 인민공화국, 인민정부, 인민의 공복, 인민군대, 인민공사, 인민법원, 인민검찰원, 인민은행, 인민폐 등(等)인데 인민이란 명목에는 결코 인민이 없다. “중화인민공화국”이라지만 인민이 없고 공화(共和)가 없으며 심지어 중화(中華)도 없다. 국명(國名)하나만 보더라도 세가지 거짓말로 이루어져 있다. 지금의 중공에는 중화문명, 문화, 문물을 공산당정권유지를 위해 전부 훼멸시켰고, 마르크스주의, 레닌주의를 종교대신 받든다.


<거짓 현대화>

한국가의 현대화를 말하자면 경제의 현대화, 물질의 현대화, 정신의 현대화, 환경의 현대화를 포함하는데, 오늘의 중국(중국공산당)은 물질은 과잉되어도 정신은 궁핍하고, 경제는 팽창해도 제도는 부패되었으며, 고층건물은 즐비해도 빈부격차가 심하다.

어떤 사람은 몸에 금은보석을 두르고 온 종일 산해진미(山海珍味)를 먹지만 언행(言行)거지는 오히려 비루(鄙陋)하고 저속(低俗)하다. 어떤 사람은 손꼽히는 부자가 되었음에도 기부(寄附)나 선행(善行)으로 어려운 사람을 돕지 않으면서도 온갖 사치를 부리며 돈을 물쓰듯 한다. 어떤 사람은 서양(西洋)을 숭배해 멋도 모르고 흉내를 내며 인권은 경시(輕視)한다.

인터넷은 선진(先進)문명의 지표인데 중공은 도리어 정권에 맞게 걸러내고 정권유지에 나쁜 것은 막고 내외부에 알리지 않는다.

중공은 수중에 장악한 대량의 선전도구인 신문, 방송등 언로를 차단해 여론몰이를 한다.

중국이 고속성장을 하지만 GDP가 세계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6%에 불과하다.

국내외의 압력이 거세져 중공이 정말로 견디기 어려워지면 ‘느림보걸음’을 시작한다. 개혁을 하지 않았다고 말하자니 올해하나 내년에 하나 고치거나 또는 국제조약을 체결하든가 악법을 일부를 폐지한다. 중공이 개혁을 한다고 말하자니 형식만 바꾸고 내용은 그대로이거나 혹은 약속만 있고 실제 행동은 없다. 남의 것을 모방하고 배운 것이 ‘느림보걸음’인데 이는 외부세력에 대처하기 위한 것이다.


<자신감인가 열등감인가>

매번 중공지도자가 해외에 나갈 때면 주재외교관들은 현지 화인들을 동원해 열렬한 환영을 연출한다. 목적에 도달하기 위해 길거리에서 동원된 수고비를 나눠주거나 상을 준다. 이러는 이유는 해외화교들의 옹호를 받고 있으니 “국내민중들은 반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또 이렇게 하여 미리 “해외화인들의 항의 목소리를 차단”하는데 있다. 또 열렬한 환영인파 장면을 통해 지도자의 자신감을 지탱시키고 깊숙한 열등감을 덮어주기 때문이다. 환영나간 군중들은 돈을 받기위해 나간 사람들이 많고 일부 순진한 애국심의 발로로 자발적으로 나가는 경우도 있다.


<인권 유린>

중공은 인권을 짓밟고 동포들을 박해해 국제사회의 비평과 질책을 받아왔다. 이럴때면 중공은 내정간섭이라 쏘아 붙인다. 한 국가에서 입씨름이나 붓으로 하는 다툼이라면 다른 나라에서 굳이 간섭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그 나라 내부에서 정부가 견해가 다른 부류를 박해하고 민중을 학살한다면, 다른 국가들은 이를 질책하고 못하게 제지(制止)하는 것이 당연하다. 국경이 다르다고 하여 폭력과 범죄를 내버려둘 수는 없지 않은가? 국제사회는 일찍이 외부간섭이 부족해 캄보디아, 르완다, 수단에서 민중학살을 앉아서 보고만 있었으나 이런 대학살자들은 정의(正義)의 심판을 받고 있다. 이런 침통한 교훈 때문에 국제사회의 간섭의지와 힘이 날로 강해지고 있다.

중공이 말하는 중국의 내정은 국제사회가 간섭할 수 없을 뿐만아니라 중국인민 자신들도 간섭할 수 없다. 인민들이 이의를 제기하면 경고를 받거나 감옥에 가거나 살해 당한다. 이른바 내정이란 사실 중공의 일당(一黨)정치이다. 이는 폭정이지 내정이 아니다. 이런 이유로 중공은 정의로운 인권인사. 국제사회와 문명(文明)국가들을 자신의 가장 큰 적(敵)으로 보고있다.

중공자신은 자국 내정에는 간섭하지 말라면서도 해외 도처에서 타국의 내정은 간섭한다. 이런 간섭은 모두 부정적이고 반동적이며 사악한 세력이 지원하는데 독재본성에 부합한다. 캄보디아공산당, 수단정부의 대학살은 모두 중공이 배후(背後)에서 시킨 것으로 학살에 사용된 무기 역시 대부분 중공이 지원해준 것이다.

중공은 동포를 박해해 인권을 짓밟으면서도 국제사회의 비평을 거절한다. 주권과 관계없는 데도 나라 주권에 관련된 문제라며 절대 양보 못한다고 나온다. 국제사회는 단지 특정사건에 대해 거론하는 것뿐으로 나라 주권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대만분리>

1949년 이전 대만과 중공은 ‘중화민국’으로 같은 나라였다. 그런데 ‘중화인민공화국’을 세우면서 대만은 분리되었다. 그런대 지금 중공은 대만이 같은 민족임을 내세워 대만 독립을 반대한다. 이 때문에 대량의 미사일, 전투기, 군함을 총동원해 대만 국민들을 협박하고 있다. 최근 중공은 ‘反분열법’을 제정했는데 사실 대만을 흡수하려는 욕심으로 만든 법이지만 ‘국가통일법’이라 부르지 못하고 이름을 숨겨서 사용한 것이다.

1989년 중공은 세계인이 모두 지켜보는 가운데 전세계를 경악시킨 ‘6.4천안문 학살’을 감행한 후 대만 독립을 외치는 목소리가 비로소 높아지기 시작했다. 1980년 장경국총통이 대만에서 민주정치를 시작할 때 중공도 민주개혁을 실시했더라면 대만, 중공의 통일은 그때 되었을 것이다. 학살사건이후 대만 독립파가 정권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중공이 자국민들 마저 무자비하게 탄압하는데, 어찌 대만사람들을 잘 대해 줄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만약 통일과 분열을 기준으로 잘잘못을 논한다면 1949년 폭력수단으로 국민당정부를 뒤엎은 공산당이야 말로 중국을 두나라로 분열시킨 화근이자 오늘날까지 통일을 가로막고 있는 죄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