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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사(靑史)에 이름을 남긴다'고 한 까닭은?
우리는 흔히 역사적으로 중요한 업적을 남긴 사람에게 ‘청사(靑史)에 이름을 남겼다’고 한다. 여기서 청사란 사실 역사서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렇다면 왜 사서(史書)라 하지 않고 청사란 단어를 사용하게 됐을까?
‘청(靑)’이란 본래 푸른 대나무로 만든 죽간(竹簡)을 지칭하는 말이다. 종이가 발명되기 전, 고대에 기록을 남기는 중요한 매체로 죽간과 백서(帛書)가 있었다. 비단에 글을 남기는 백서는 드물었고 대나무를 얇게 잘라 만든 죽간에 글을 남기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책(冊)이란 단어의 원형도 이런 죽간을 가지런하게 끈으로 엮어놓은 것이다.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실(史實)을 기록할 때도 주로 죽간에 새겼기에 청사는 나중에 사서(史書)의 대명사가 됐다.
‘삼국연의(三國演義)’에는 “원컨대 여러분들께서 좋은 일을 하여 대나무와 비단에 이름을 남기고 청사(靑史)에 공(功)을 남기길 바랍니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또 ‘유림외사(儒林外史)’에 “이는 청사에 이름을 남길 일이니 내가 설마 너를 가로막겠느냐?”라는 구절이 나온다.
‘여사(女史)’라는 말도 사(史)와 관련해 지금도 널리 쓰인다.
여사란 본래 주나라 때 관직 명칭이었다. 얼핏 글자만 보면 여자 사관으로 오해하기 싶지만 남녀유별(男女有別)이 심했던 때인지라 여자는 사관이 될 수 없었다.
‘주례(周禮)’에는 “여사란 왕후의 예를 관장하는 직책이다”라 했다. 이에 대해 한(漢)대 유학자 정현(鄭玄)은 “여사란 바로 글을 아는 여자 노비를 말한다”고 주석을 달았다. 즉, 여사란 후궁의 의례를 맡아보던 여자로, 이런 일을 하기 위해 어느 정도 글을 알아야 했다. 따라서 여사는 사관(史官)과는 무관한 직책이다.
또 다른 설명에 따르면 고대 후궁의 여자 서기(書記)를 여사로 지칭했다고 한다.
‘후한서(後漢書)’에서는 “궁궐의 일을 나눠 각기 전담하는 부서를 두었다”며 “여사는 공과(功過)를 기록한다”고 했다. 청대 대표적인 소설 ‘홍루몽’에는 “정(政)노인의 큰딸 원춘(元春)이 어질고 효성스러운데다 재주가 있어 여사로 뽑혀 궁에 들어갔다”는 구절이 나온다. 여기서 가리키는 여사란 모두 후궁의 여자 서기다.
후대에 이 말이 계속 쓰이면서 여사가 점차 재능 있는 여자를 지칭하는 말로 확장됐다. 일종 미칭(美稱)이 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일반적으로 결혼한 여자나 사회적으로 명망 있는 여자를 높여 부를 때 주로 쓴다.
※우리는 색의 개념이 두루뭉실하여 대충 얼버무린다. 물론 푸른산하면 가까이서 보면 녹색이지만 멀리서 보면 하늘색깔과 휩쓸려 청색으로 보이고, 따라서 푸른대나무도 녹색이지만 푸른색이니 그냥 청색이라 한다. 일부러 녹색이라고 잘 안쓰니까.
푸른산 하면 청색을 말하지 녹색을 말하지는 않는다. 녹색도 청색도 푸른색이라 하는 데서 문제가 있다. 우리는 황인종인데 사실 색상표의 노랑색과는 전혀 같지 않다. 그러나 그림을 그릴때는 얼굴에는 또 살색이라 하여 연한 핑크색을 칠한다.
홍색은 황색과 붉은 색의 중간이지만 한자로는 붉을홍이라 하므로 왠만한 붉은색과 노랑색은 다 홍색이라 뭉뚱그려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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