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훙빙 교수, 그는 누구인가

'베이징대의 정신적 지도자’ 로 칭송 받아

▲ 중국자유문화운동 위원 위안훙빙 교수
ⓒ 대기원
위안훙빙(袁红冰) 교수

위안훙빙(袁红冰) 교수는 중국근대사에서 “가장 깊은 사상을 갖춘” 자유파 법학가로 저명하다. 동시에 그는 시인이자 철학자이고 문학가로서 지난 10일, 대만에서 처음 열린 중국자유문화상의 시초가 된 ‘중국자유문화운동’의 발기인이며, 수석위원이다.

법학교수인 그는 베이징대 법대교수, 구이저우성 법학회 회장, 구이저우 사범대학 법학원 원장을 지내며 중국 내에서 꽤 탄탄한 경력을 쌓았다. 그가 베이징대에서 교수를 역임할 당시, ‘베이징대의 정신적 지도자’로 칭송받기도 했다. 그러나 1989년 6ㆍ4 기간 동안 학생들의 민주애국운동을 지지했다는 이유로 중공 당국의 박해를 여러 차례 받았다.

몽골 출신인 그에게 몽골과 티베트의 참혹하고 절망적인 정경은 다른 이보다 더 눈에 밟혔다. 그는 10년간 세상에 중국의 실체를 알리고자 비밀리에 4편의 책을 엮었다. 이 4부 문학 장편은 ‘自由在落日中-자유는 석양 중에 있다’, ‘文殤-문상’, ‘金色的聖山-금빛 성산’, ‘回歸荒涼-황량으로 회귀하다’ 이다. 위안훙빈은 이 책을 통해 사람들이 잘 모르는 공산사회의 인생비극을 심도 있게 그려냈다. 특히 ‘금빛 성산’은 티베트 청춘남녀가 겪는 고난의 운명묘사를 통해 중국공산당 티베트 대학살의 범죄행위를 아주 세심하게 그렸다. 소설 ‘황량으로 회귀하다’도 부패한 중국 공산당 정권 아래에서 지식인이 겪는 타락과 생명에 대한 절망을 잘 묘사했다. 그는 중공이 덮어 감추고 싶은 사실만 골라서 폭로한 것이다. 1994년, 자유민주사상을 담은 ‘역사의 조류(歷史的潮流)’가 발행되었을 때, 중공은 여러 이유를 들며 그를 불법감금 했다. 2004년 7월, 그는 책을 출판하려고 죽음을 무릅쓴 채 호주로 망명했다. 그의 이름은 현재 중공이 규정한 “주요 금서 전문가” 명단에 올라있다.

위안훙빙 교수의 자유민주화 운동은 중국을 벗어나자 더 활발해졌다. 그는 호주에 망명한 후 인터넷 사이트 ‘자유성화’를 만들고 2006년 11월에는 ‘중국자유문화운동’을 발기했다.

그는 “중공과 그 산하 문화기구가 수많은 종류의 상을 만들었지만, 그것은 문화노예를 장려하는 것이므로 자유인과는 무관하다.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노벨문학상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서방문화가 기준이다. 노벨문학상의 심사위원들은 중국의 언어와 문화에 대해 결코 충분하게 이해할 수 없으며 동시에 중국문화의 운명에 대해 심각하게 고려하거나 관심을 두지 않는다. 오늘날 전 세계 각종 문화상이 많지만, 중국 자유문학을 진정으로 이해하는 상은 그 어디에도 없다”라며 중국자유문화상의 탄생 배경을 밝혔다.

위안훙빙교수가 말하는 중국 고난문학

마르크스주의와 중공 독재정권은 중국의 정신을 지옥으로 밀어 넣었다. 이는 역사 속에서 인류가 겪었던 만년의 고난을 초월한 것이다. ‘중국고난문학’에서 고난은 자유로움과 영혼을 잃은 아픔, 인성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비통함, 진실을 알면서도 거짓을 말해야 하는 슬픔을 의미한다. 인간의 고난은 문학의 영원한 주제이자 최고의 시를 만드는 원천이다. 곧 ‘비극’이 문학의 본질이라는 것을 고난문학을 통해 다시 확인할 수 있다.

‘고난문학’은 단순한 고난의 기록이 아니라 고난을 한 층 높은 인류의 정신 가치로 승화시킨 것이다. 이는 중공의 통치 아래 잃어버린 진정한 중국의 영혼을 되살릴 수 있는 새로운 문학 형식의 서막이다. ‘중국고난문학’에 속하는 소설, 시, 희곡은 반드시 현재 유행하는 지극히 평범한 심미적 취향을 초월, 비범한 미학의 개성이 있어야 한다. ‘중국고난문학’의 목표는 고귀한 영혼의 회귀로 ‘진정한 아름다움’을 추구한다. 아름다움이 영혼의 신앙이 된다면 고귀한 문학의 시대는 곧 열리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