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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속의 일들에 해당되는 글 584건
- 2011.04.29 북한 `금강산관광특구 신설…주권 독자 행사`
- 2011.04.29 페트병이 만드는 ‘먹을 수 있는 물’
- 2011.04.26 중국인 유학생의 한국생활기
- 2011.04.03 “중공 ‘6不’은 사이비 법률”
- 2011.04.03 EU, 2050년까지 자동차 모두 없앤다?
- 2011.04.03 쓰촨대지진과 동일본지진
- 2011.04.03 중국(중국공산당) 더이상 개도국행세 말라
- 2011.03.14 중국의 영웅 모택동 동상 조각난채로
- 2011.03.14 중국 하늘에도 땅에도 구멍이
- 2011.03.02 중국 빈부격차, 얼마나 심각한가?
- 2011.03.02 장쩌민이 가장 후회하는 일 두 가지
- 2011.01.20 서울 어린이들이 왜 평양말까지 배워야 하죠
- 2011.01.20 직접 목격한 북한 노동자 폭동, 탱크로 밀어버린 현장은
- 2010.11.19 원주외곽으로
- 2010.09.30 키, 부모 유전자 때문만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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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09.23 남북한 사돈될뻔 -재미있는 일화 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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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와 합의 ’금강산관광’ 정령은 효력상실
북한이 금강산 지구에 금강산 국제관광특구를 독자적으로 신설해 주권을 행사키로 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9일 보도했다.북한 최고인민회의는 이날 이런 내용을 담은 정령을 발표했다.
또 이번 조치로 지난 2002년 현대그룹과 합의 아래 만들었던 ’조선주의인민공화국 금강산관광지구를 내옴에 대하여’는 효력을 상실토록 했다.
북한의 금강산 국제특구 지정 정령은 지난 8일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대변인이 담화를 통해 현대그룹의 금강산 관광 독점권의 효력 취소를 발표하면서 “금강산 관광을 새롭게 하는 것과 관련한 해당한 국가적 조치는 곧 취해지게 될 것”이라고 밝힌 데 따른 후속조치로 보인다.
이에 따라 북한은 현대그룹의 금강산 관광 독점권을 취소하고 해외자본을 유치하기 위한 수순밟기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정령에 따르면 특구는 그동안 현대그룹이 관리해온 강원도 고성군 고성읍, 온정리 일부 지역과 삼일포, 해금강, 금강군 내금강지역, 통천군 일부 지역을 포함토록 하고 북한의 주권행사가 가능토록 했다.
그동안 현대그룹과 합의에 따라 금강산 관광지구에서는 북한의 권리행사가 일부 제한돼 있었다.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는 정령에서 “특구개발을 위한 법인, 개인과 기타 경제조직의 자유로운 투자를 장려하고 투자한 자본과 재산, 기업운영을 통해 얻은 소득과 기타소득을 법적으로 보호한다”며 “특구개발이 진척되는 것에 따라 새로운 관광대상지를 늘려 관련 대책을 세울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리종혁 아태평화위 부위원장은 지난 13일 정기열 중국 칭화(淸華)대 초빙교수와 면담에서 현대그룹의 금강산 관광 독점권 효력 취소 결정과 관련해 “시설을 비워놓으면 다 망가져 금강산 관광을 우리 쪽에서라도 시작해보자고 한 것”이라며 “물론 남측이 시작할 때까지다”라고 밝혀 이번 조치가 한시적 조치일 수 있음을 시사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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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에서 빈 페트(PET)병은 간단한 살균 소독기 역할을 한다. 오염된 물을 페트병에 담아 햇볕에 6시간 두면 자외선으로 살균 소독이 된다. www.waterschool.com
캐나다 출신의 자선사업가 프레이저 에드워즈(Fraser Edwards)는 6년 전 아프리카 동부 우간다를 방문 중이었다. 하루는 호텔 밖에 서 있는데 한 아이가 들 것에 실려 가는 것을 보았다.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아이가 며칠 동안 설사를 앓다가 탈수 증세가 심해지자 병원으로 이송되는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아이는 결국 죽었어요. 옳은 일이 아니었죠.”
에드워즈는 당시 그 일이 마치 자기 때문에 일어난 일처럼 느껴졌다고 한다. 부친이 엔지니어였던 에드워즈는 잡초를 제거하는 기계를 개발해 큰돈을 벌었다. 이후 부인과 함께 남태평양 파푸아뉴기니에서 자선사업을 했고, 캐나다로 돌아와서는 원조단체인 컴패션캐나다에서 일을 했다.
이 사건 후 에드워즈는 수질분야 과학자로 40년을 일한 밥 델(Bob Dell)을 만났다. 비슷한 시기 델도 에드워즈와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된다.
델은 깨끗한 자연환경으로 유명한 캐나다 온타리오 출신이다.
“퇴직할 때까지 수질과학자로 세계에서 가장 깨끗한 물을 가진 지역 주민들에게 깨끗한 물을 공급하는 일을 했죠.”
우간다와 케냐로 여행을 갔던 이 수질학자는 완전히 다른 세계를 경험하게 된다.
“아이들이 소가 소변을 본 물웅덩이에서 소를 몰아내고 물을 마시는 모습을 목격했어요. 아이들에게 깨끗한 물을 공급할 방법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캐나다로 돌아오자 사람들이 저보고 에드워즈를 만나보라고 권했어요. 나를 만난 에드워즈는 함께 우간다의 한 마을로 가 보자고 제안을 했어요. 그 마을에서는 아이들 다섯 중 한 명은 다섯 살을 채우지 못하고 수인성 질병으로 죽고 있었어요. 오염수 문제가 가장 심각한 지역이었죠. 그 길로 캐나다로 돌아와서 하던 사업을 정리했어요.”
뉴욕에서 공식 출범을 가진 워터스쿨의 대표 밥 델.
델은 수질 분야에서 평생 일했으나 완전히 새로운 정수법을 찾아야 했다.
“하루 1달러 미만으로 사는 사람들에게 어떤 정수 방식이 필요할까 하는 것이었어요. 물론 원조 단체들이 정수 필터를 나눠주고 있었죠. 하지만 이런 방식은 원조단체에 대한 의존만 높일 뿐이죠. 또 정수에 쓰이는 염소는 운반할 때 위험할 수 있고 아주 외딴 곳까지 보내기에는 어려움이 많아요.”
델은 외부 공급 없이도 지속가능한 해결책을 찾아야 했다. 그 때 찾아낸 방법이 바로 페트병을 이용한 정수 방식이었다.
“페트병은 어디에나 널려 있고, 전 세계에서 하루 1000만 개씩 생산이 되고 있죠. 아프리카 나이로비의 공장에서도 매일 25만개가 생산되고요. 페트병은 사용 후에는 쓰레기가 되지만 그 안에 물을 넣고 태양 아래 6시간 정도 놔두면 자외선이 세균을 죽이는 역할을 합니다.”
이 방식은 델이 새롭게 고안해 낸 것은 아니었다. 스위스의 수자원연구기관 EAWAG가 연구를 했고 세계보건기구(WHO)가 이 방식 도입을 고려하고 있는 중이었다. 델과 에드워즈에 따르면 “단지 현장실험이 이뤄지지 않았을 뿐”이었다.
아프리카에서 한 여성이 빈 페트병을 옮기고 있다. PASCAL GUYOT/AFP/Getty Images
델과 에드워즈는 아프리카에 가서 직접 페트병 정수 방식을 실험했다. 델은 깨끗한 물을 6시간 정도 햇볕에 놔두는 실험을 반복했다. 살균 정도를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먼저 24가구에게 이 방식을 전수했다. 아이들 건강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 학교 선생님은 아이들이 학습이 가능할 정도로 좋아졌다고 평가했다.
델은 “아주 짧은 기간에 아이들 질병이 사라지는 것을 봤죠. 이후 우간다와 케냐에 사는 주민 40만 명에게 이 방식을 전수했어요”라고 말했다.
WHO 통계에 따르면 매년 340만 명이 수인성 질병으로 사망하고 있다. 또 하루 4000명의 아이들이 깨끗한 식수 부족으로 사망하고 있다. 일부 아프리카 국가에서는 인구 절반이 수인성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
☞ 크리스토퍼 박사는 내전에 시달리는 아프리카 콩고민주공화국에서 의료봉사를 했고 다양한 분야에서 24권의 저서를 냈다. 존크리스토퍼 박사가 쓴 기사는 미국과 유럽 주요 신문과 잡지에 게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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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국에서 생활해야 하는 유학생들은 고독함과 외로움을 자주 느낀다. 그래서 유학생들은 서로 잘 모르는 사이라도 쉽게 친해진다. 서로의 마음을 가장 잘 알고, 지친 마음을 위로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건너온 많은 유학생들은 늘 함께 식사하고 수업에 참석하며, 아르바이트도 함께한다. 생활에 어려움이 있으면 서로 돕고, 고통스럽거나 우울할 때면 위로해주거나 함께 술을 마신다. 이렇게 시간이 흐르면 정이라는 씨앗이 자연히 움트기 마련, 고락을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연애도 시작된다.
‘고독은 연애의 촉매제’라는 말은 과장된 표현이 아니다. 기쁨을 함께 나누고, 슬플 때 누군가에게 하소연할 사람이 없을 때면 연애를 더 갈망하게 된다. 정확하게 말하면 마음의 위로를 더 갈망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두 사람이 만나면 아주 쉽게 사랑의 도가니에 빠지게 된다.
외국유학생활 중에 연애를 시작하는 많은 사람들의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서로 위로하고 서로 도우면서 어려운 길을 걸어 지나가기 위함이다. 그렇지만, 연애를 하면서 장래에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연애를 순결하고 행복하게 하는 사람도 물론 있지만, 정욕에 빠져 있는 유학생들도 매우 많다. 많은 유학생들은 장기간 국외에서 생활하면서 도덕적 한계선을 점점 망각하고 있다. 주위 환경의 강렬한 유혹도 무시할 수 없는데, 그 속에서 점점 자신의 정욕을 방종 한다. 어떤 이는 기분 좋을 때는 사귀고, 기분이 나쁘면 갈라지는데, 수시로 상대가 바뀐다. 심한 사람은 연애를 자신의 욕망을 풀기 위해 연애하는 사람도 있다.
한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늦은 밤 내가 있는 남자 숙소로 한 중국여학생이 몰래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 그 여학생을 보면서 말할 수 없는 반감이 생겼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여학생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많은 유학생들이 정욕에 대한 방종으로 학업이 황폐해졌던 것이다. 하루하루 무의미한 시간은 지나고 있는데, 흘러간 청춘은 무엇으로 바꿔 올 수 있을까.
그러나 사실 사람들은 마음 깊은 곳에서 진실한 사랑을 갈망하고 있다. 누구나 내심으로는 사랑에 대한 무한한 열망과 아름다운 지향이 있을 것이다. 나 또한 진정한 사랑은 서로 믿고 포용하는 기초 위에서 사랑하는 두 사람이 손에 손을 잡고 마음을 가까이하면서 같이 울고 웃으며 함께 풍랑을 헤쳐나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떨어지지 않고 버리지 않으며 어려움 속에서 서로 의지하고 돕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게 애정은 일시적으로 느끼는 충동적인 기분이 아니다. 하나의 경력이자 걸어온 길이라 생각한다. 가끔 노인들이 서로 부축해주며 내 곁을 지나가는 것을 볼 때마다 그들의 깊은 사랑을 느낄 수 있다. 어떤 표현을 하지 않아도 호흡이 잘 맞고, 어떤 달콤한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를 소중히 여기는 것. 진지한 애정은 우리 내심에서 우러나오는 가장 진실한 갈망이며 영원한 기대이다. 국외에서 유학중인 젊은이들이 모두 행복한 사랑을 찾길 바란다. 서로 사랑하는 사람이 미래에는 한 가족이 되기를 바란다.
징위안(淨源·한양대 재학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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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前) 중공 총서기 자오쯔양의 비서 바오퉁(鮑彤·사진)이 며칠 전 또 다시 문장을 발표해 현 중공 지도부의 ‘6不론’을 재비판했다.
바오퉁은 “중공의 소위 최고지시(최고지도자의 지시)나 인민대표대회를 통과한 보고는 법률로 인정할 수 없으며 법률은 정치적 방향을 심판할 권리가 없다”고 주장했다.
또 바오퉁은 “‘6不론’을 주장하는 사람이 ‘6가지’를 주장하는 사람에게 유죄를 선포할 수 없다”면서 “발언을 구실로 처벌하는 것 자체가 몽매한 시대의 희극이며 중공의 ‘6不론’은 사이비법률”이라고 지적했다.
자유아시아방송(RFA)은 3월 24일 전 중공 총서기 자오쯔양의 비서 바오퉁의 세 번째 문장을 발표해 올해 양회(兩會)에서 인민대 우방궈 위원장이 주장한 ‘6不론’에 대해 평가했다. 여기서 6不이란 중공 지도부가 다당제, 사상의 다원화, 삼권분립, 양원제, 연방제 사유화 등 6가지를 추진할 수 없다는 주장을 말한다.
‘최고지시’는 ‘법률’이 아니다
바오퉁은 “중공의 ‘6不론’에 대해 비판적인 논평을 낸 후 지인들로부터 우려섞인 조언을 듣고 있다며 “어떤 이는 6不론은 최고지시일 것이라고 했는데, 다시 말해 최고지도자의 지시를 따라야하지 않느냐는 말이다. 나는 6不이 최고지시인지 아닌지 알 수도 없지만 알고 싶지도 않다”고 말했다.
또 바오퉁은 “어떤 이는 전인대 보고는 사실상 지도부의 통과를 거친 것으로 신문에 보도됐다며 그런데도 법적인 효력이 없다니 무슨 말이냐”고 물었다며 “이는 내 논평이 ‘6不론’에 대해 토론을 시도한 것으로 당국이 간주해 처벌하지 않겠냐는 우려”라고 바오퉁은 설명했다.
바오퉁은 친구들의 이런 관심에 대해 감사를 표시하면서도 담담한 어조로 “최고지시를 법률로 인정하지 않는다. 전인대를 통과했다고 해도 법률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무엇이 법률인가’하는 문제에 관해 바오퉁은 입법절차에 따라 제안되고 입법심의와 입법표결을 거친 후 권위 있는 기관에서 ‘법률’이란 명의로 전 국민에게 공포한 후라야만 비로소 합격한 법률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오직 합격한 법률을 표준으로 해야만 ‘죄가 있고 없고’를 판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바오퉁은 중공의 ‘6不론’은 법률이 아니며 다만 정치적인 방향에 불과하다고 했다. 그는 정치적인 방향은 토론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그는 ‘6不론’을 주장하는 사람은 ‘6가지’를 주장하는 사람에게 죄가 있다고 선포할 권한이 없는 것은 6가지를 주장하는 사람이 6불가론을 주장하는 사람에게 죄를 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보았다. 정치적인 방향은 법률이 아니면 사람에게 죄를 주거나 또는 죄가 없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정치적 성향은 심판의 대상 아니다
바오퉁은 또 법률은 방향을 심판할 권한이 없다고 했다. 소위 방향, 이념, 신앙, 특색, 이데올로기 등과 같은 것들은 학술문제와 마찬가지로 전 국민이 모두 토론할 권리(찬성 또는 반대할 권리)가 있으며 법관이나 혹은 변호사가 판단할 대상이 아니다.
그는 초급법원에서 최고법원에 이르기까지 누구도 법률을 이용해 이런 것들의 옳고 그름을 해결할 수 없으며 이에 근거해 ‘유죄와 무죄’를 확정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왜냐하면 이 문제는 근본적으로 기소할 수 없고, 사건이 성립될 수 없으며, 심판할 수도 없고 양형(量刑)을 내릴 수도 없기 때문이다. 만약 이에 반해 공민의 언론자유를 보호하지 않고 압제한다면 법관 자신이 바로 헌법을 위반한 것으로 다시 말해 죄가 있는 것이다.
바오퉁은 더 나아가 법률 자체는 토론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만약 법률을 토론할 수 없다고 한다면 고치거나 폐기할 수도 없다. 아울러 새로운 법률을 표결하거나 만들 수도 없을 것이다. 이런 사회는 다만 무법천지가 될 뿐이다. 무법천지 사회라면 확실히 무슨 ‘죄가 되고 안 되고’의 경계선을 말할 수 없다.
언론을 죄로 다스리는 것은 죄악
바오퉁은 ‘발언을 구실로 치죄하는 (以言治罪)’ 것은 그 자체가 바로 일종의 죄악이라고 했다. ‘말하는 사람은 죄가 없다’는 속담은 중국 전통문화에서 아주 강력한 생명력을 지닌 것이다. 이는 서방의 문화와도 일치하는 것으로 국제적으로 공인받는 보편적 가치로 달리 말하면 언론자유이다. 언론자유는 또 중국 헌법 제35조의 내용이기도 하다. 그는 “감히 누가 언론자유에 반대하는 사람이 있을지 묻고 싶다. 만약 언론자유를 반대한다면 당신들 자신도 언론의 자유가 없는 것이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반드시 지적해야 할 것은 일찍이 수십 년간 아주 떠들썩했던 “당에 반대하고 사회주의에 반대하며 위대한 지도자에 반대하는 것이 바로 범죄”라는 유의 것들은 전혀 법률이 아니라 사이비법률이라고 했다. 이는 몽매한 시대의 희극이며 이런 것들은 중국에 아주 큰 해악을 끼쳤고 남겨진 영향이 아주 깊다.
바오퉁은 지금은 반드시 큰 힘으로 계몽을 추진해 거국적으로 모든 관민(官民)이 나서 이를 거울로 삼고 역사의 쓰레기통 속에 던져버려야 하며 더 이상은 이런 것으로 나라와 국민에 재앙을 일으키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6불가론’은 법률 효력이 없어
바오퉁은 마지막으로 지금 어떤 사람은 ‘6不론’으로 13억 중국인들의 미래 정치방향을 통제하려 하는데 사실 ‘6不론’은 중공이 1970년대에 추진한 ‘두개의 무릇’과 마찬가지로 모두 법률적인 효력이 없다고 했다. 이런 것들은 마땅히 금지구역에 되지 말아야 하며 마치 한 층의 창호지와 유사하다. 만약 이 창호지를 뚫을 수 있다면 중국인들은 선인(先人)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사업을 성취할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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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인 유럽위원회(EC)가 앞으로 40년 후 휘발유와 경유차를 모두 금지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3월 28일 발표된 이 계획에 따르면 EU는 2050년까지 유럽 도시에서 기존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모든 자동차를 없애고, 대신 도시 간 이동에 철도나 선박 등을 이용하도록 할 예정이다. 또 전기자동차와 같이 대체에너지를 사용하는 차량을 활성화할 예정이다. EU는 이 계획이 성공적으로 실행될 경우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60% 줄일 수 있다고 밝혔다.
시임 칼라스(Siim Kallas) EC부위원장은 “이동을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며 “효율성과 이동성을 희생하지 않고 석유에 의존적인 교통 체계를 고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칼라스 부위원장은 약 1조5000억 유로 예산이 필요하지만 “현실적”이라며 다만 이 목표치가 법률로 제정되지 않은 것이 걸림돌이라고 밝혔다. 영국의 EU 탈퇴를 주장하는 영국 독립당(UKIP)은 즉각 EU의 계획은 “판타지에 불과하다”며 일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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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과 쓰촨 대지진 발생일, ‘魔의 일치’? |
[SOH] 2011+3+11=2008+5+12’ 중국 인터넷에 게시된 이 수식에 많은 사람들이 경악하고 있습니다. ‘2011+3+11’은 일본 대지진 발생일 2011년 3월 11일의 연월일 숫자를 더한 것이고, ‘2008+5+12’는은 쓰촨 대지진이 일어난 2008년 5월 12일의 연월일 숫자를 더한 것입니다. 양쪽 모두의 합은 ’2025’가 되어 네티즌들은 ‘마(魔)의 일치’라고 입을 모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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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더 이상 開途國 행세 말라’ |
프랑스 주간지 렉스프레스(L’Express)는 최근 ‘중국은 언제 책임감있는 대국이 될 것인가’라는 제하의 기사에서 ‘중국에게 더 이상 개발도상국이 아니라고 분명히 말하고 이 사실을 받아 들이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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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단된 모택동 동상과 머리부분(오른쪽)
백옥으로 만들어진 ‘공산주의 영웅’ 마오쩌둥의조형물이 크게 훼손된 채발견돼 논란을 빚고 있다. 이번 사건은중국 내에서 예전만 못한 공산주의 위상과 땅에 떨어진 공산당의 권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으로 기록됐다.
마오쩌둥의 동상과 사진은 베이징시내 곳곳에 걸려 있다.
그런데 최근 중국 하이난(海南)성에서는 백옥으로 만들어진 마오쩌둥의 입상(立像)이 대여섯 조각으로 절단된 채 발견됐다.
전고 9.9m 이 입상은 지난 2008년 원창(文昌)시의 한 해변에 세워졌으며,당시 열린 기념 행사에는 많은 시민들이 모여들었다.현지 언론에 따르면, 훼손 날짜는 2월 19일경으로추정되며, 중국 온라인에는 “현지 개발업자가 마오의 조각상을 훼손했다”며 네티즌이 올린 사진이 떠돌고 있다.
현재 이번 사건이 보도된 사이트는폐쇄된 상태지만, 중국 네티즌들은“엄중한 정치사건이 발생했다”는 풍자와 함께 블로그와 포털 게시판을 통해 사진과 글을 퍼 나르고 있어 사회적으로 파장이 확산되고 있다.
마오 동상을 건립할 당시 신문 보도(인터넷 사진)
1976년 사망한 마오쩌둥은 중국 공산당이 마오의 기본 노선을 공식폐기한 후에도 여전히 ‘이념의 조종(祖宗)’으로 추앙받고 있으며,여러 설문조사에서중국 젊은층이 존경하는위대한 지도자 1순위를 차지하고 있다.
중국의 좌파사이트 ‘마오쩌둥깃발망(毛澤東旗幟網)’ ‘오유지향(烏有之鄉)’ 등에서는 이번 사건을 달라진 공산주의와 마오쩌둥의 위상을 상징하는 사건아니냐며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분위기다.
한 네티즌은 “수많은 위대한 수령들의 동상이 한 무리 우파분자들에 의해 훼손됐다. 스탈린, 사담 후세인, 차우셰스쿠 등이 그랬고 지금 남아 있는 것은 김일성 주석과 마오 주석뿐이다. 설마 우파분자들이 또 손을 썼단 말인가?”라고 탄식했다.
“(지금 사람들은) 돈만 된다면 무슨 짓이든 서슴지 않고 심지어 조상의 무덤까지도 함부로 파헤치는데 하물며 동상쯤이야?”라는 자조섞인 탄식도 등장했다.
또다른 네티즌은 “중요한 점은 요즘엔 이런 석재가 아주 구하기 어려운데다 (입상의) 덩치가 크기 때문에 분명 노리는 사람이 있었을 것”이라며 “지금 이런 백옥은 1척(25cm) 높이만 해도 10만위안(1700만원)을 받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처리 방식에 대한 논의도 분분했다. 한 네티즌은 “이미 망가졌으니 쓰레기일뿐”이라며 상관없다는 입장을 보였으나 다른
네티즌은 “하이난에서 파쇄한다면 마오쩌둥의 상을 어떻게 처리해야만 존중하는 의미를 표현할 수 있을까? 머리부터 부숴야 하는가? 아니면 엉덩이부터 부숴야 하는가!”라며 자못 심각한 고민을 제기했다.'생활속의 일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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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0일,난징 상공에 나타난 도넛 모양의 구름
중국에서 특이한 모양의 구름이 관측되고, 갑작스런 지반붕괴 등 괴이한 사고가 잇따르고 있어 일본 지진에 이어 또다른 자연재해를 예고하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다.
지난 10일 중국 난징(南京)시의 한 중심가에서 멀쩡하던 자동차도로가 갑작스럽게 붕괴되면서 너비 5m, 깊이 2m 가량의 구멍이 생겼다.
목격자들에 따르면 이날 12시 20분 경 훙우난루(洪武南路)의 중심가의 한 아스팔트 도로가 갑자기 꺼지면서 도로 한복판에 거대한 구덩이가 패이면서 주변 교통이 마비됐다. 다행히 사고지점에는 차량과 행인이 없어 인명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으나 최근 중국 여러 지역에서는 잇따라 지반붕괴 사고가 일어나고 있어 주민들의 불안감을 가중시켰다. 난징시에서는 지난해 6월 16일에도 창러루(長樂路)에 너비 2m, 깊이 3m가량의 구멍이 생겼었다.
3월 10일 난징시내에 중심가 도로에서 지반붕괴로구멍
한편, 이날 오전 난징시 상공에는 거대한 도넛 형태의 구름 2개가 출현해, 지진을 예고하는 현상 아닌가 하는 주민들의 문의가 난징시 기상청과 지진국에 잇따랐다.
한편, 중국에서는 최근의 계속되고 있는 자연재해가 오는 3월 19일 지구와 달의 거리가 1992년 이후 가장 가까워지는 현상과 관련이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인터넷에는 아마추어 천문가들을 중심으로 “달의 영향으로 지구에 이상기후 혹은 지진, 해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유발될 수 있다는 우려섞인 전망이 유포되고 있다.
난징시 지진국의 쉬쉬(徐徐) 부국장은 지구와 달의 인력으로 지진이 발생할 수 있다면서 “달의 인력이 지구표면에 영향을 끼쳐 조수간만의 차가 발생하게 하는데 지구와 달의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인력이 더욱 커진다. 지진의 발생여부는 지각(地殼)이 임계상태에 도달하는가 여부를 봐야 하는데 달의 인력이 지진을 유발하는 경우가 가장 많다”고 했다.
앞서 2010년 6월 16일에도 난징시 한복판에구멍이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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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임금을 세계와 비교한 자료(류즈룽 블로그에서 인용).
지난해 3월 중국 사회과학자 류즈룽(劉植榮)은 ‘국제임금연구보고서와 교훈’이란 보고서를 발표했다. 국제사회의 중국 임금의 실태를 비교한 이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 국가통계국의 매년통계에 나오는 임금이 전체 중국 근로자의 15%밖에 반영하지 못한다”라고 밝혔다. 따지웬에서는 이 보고서를 입수해 주요 내용을 정리했다.
중국의 최저임금은 1인당 GDP의 25%에 불과하지만 세계평균은 58%이고, 중국의 최저임금은 평균 임금의 21%에 불과하지만 세계 평균은 50%이다. 중국 공무원들의 임금은 최저임금의 6배에 달하지만 세계평균은 2배에 불과하다. 국영기업 관리직의 임금은 최저임금의 무려 98배에 달하는 반면 세계평균은 5배이다. 중국에서 업종간 임금격차는 3천%에 달하지만 세계평균은 70%이다.
이는 중국사회의 분배가 불공정해 세계에서 빈부격차가 가장 심각한 나라에 속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덧붙여 중국은 폭력, 절도와 약탈, 자살, 납치, 집단시위 등 수많은 사회문제들을 안고 있다.
유럽 및 아프리카의 비교연구
류즈룽은 중국 교과서에서 언급한 자본주의의 모습과 유럽의 사회 경제 체제는 다르다고 지적했다. 유럽대륙에서는 수입이 낮은 사람들도 수백 가지에 달하는 복지혜택을 누리고 있었다. 어떤 도시의 경우 교통비가 무료이며 정부에서 시민을 위해 무료로 자전거를 제공하며 국민들이 더는 생로병사로 걱정하지 않을 수 있게 됐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하다는 아프리카 대륙을 조사한 결과는 ‘원시’나 ‘야만’과 거리가 멀었다. 아프리카 32개 국가의 최저수입이 중국을 넘어섰으며 일부 국가들도 비록 가난하긴 하지만 국민들의 삶의 만족도는 비교적 높은 편이었다.
류즈룽은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IMF), 아시아은행, 아프리카은행, 국제노동기구, EU,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및 각국의 통계자료를 인용해 세계 183개 국가와 지역의 임금에 대해 연구했다. 여기서는 지면 관계상 모든 도표와 자료를 인용하는 대신 비교의 편리를 위해 몇가지 평균만을 이용하기로 한다. (대만, 홍콩, 마카오 3지역과 바티칸, 파키스탄, 지부티, 이집트, 적도 기니, 피지, 기니, 북한, 마케도니아, 모잠비크, 나우루, 카타르, 소말리아, 시킴, 리히텐슈타인 등 15개 국가를 포함)
中 임금통계는 전체 취업자의 15%에 불과
중국 국가통계국에서 발표하는 임금통계는 전체 취업자의 15%만을 대상으로 할 뿐이다. 매년 공직자들의 임금에 대해서만 통계를 내기 때문이다. 매년 발표되는 전국 평균임금에 대해 일반인들이 너무 높다고 여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전쟁 중인 국가를 제외하고 전 세계적으로 거의 모든 국가들의 경우 취업자들 임금이 통계에 잡힌다. 보모나 이발사, 식당 종업원, 서비스업 종사자 및 자유직업인, 농업노동자 등이 모두 포함한다. 이들이 모두 국부를 창조하는데 기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국에서는 국가통계국에서 나온 불완전한 임금자료만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
중국 연최저수입 6120위안으로 전체 158위에 해당
1인당 GDP에 대한 최저임금의 비율을 살펴 보면 세계평균은 58%이다. 반면 중국은 25%에 불과하다. 세계 158위에 해당하는 수치다. 세계 각국의 평균임금 자료가 완벽하지 않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자료에 의하면 OECD 24개국의 평균임금에 대한 최저임금의 비율은 평균 50%였다. 중국 국가통계국의 자료를 따른다면 중국은 겨우 21%였다.
중국의 연평균 최저수입은 6120위안(약 100만원)이며 이는 세계평균의 15%에 불과하다. 전체 순위로 따지면 158위로 뒤에서부터 26위에 해당한다. 최저수입이 중국보다 낮은 25개 나라는 아프리카가 14개, 아시아가 8개, 오세아니아와 아메리카 및 유럽이 각 1개국이다.
183개 국가의 연평균 최저수입은 4만 1535위안(약 706만원)이며 호주와 뉴질랜드, 캐나다, 미국을 제외하면 상위 20개 국가는 모두 유럽에 집중되어 있다. 가장 높은 나라는 노르웨이로 연평균 33만 9132위안(5765만원)이다.
공무원임금은 세계최고수준
국가통계국의 자료에 따르면 2008년 중국 공무원들의 연평균 임금은 3만 3869위안(약 576만원)이다. 최저임금의 약 6배에 해당한다. 다른 나라와 비교했을때 이는 세계최고수준이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공무원 평균임금이 최저임금의 2배가량에 불과한 것과 비교할 때 중국 공무원들의 임금수준은 지나치게 높은 편이다.
이번 조사에서는 국유기업 직원을 공무원 범주에 포함시켰다. 국유재산은 이론상 전 국민의 소유이며, 국민이 일부 경영자들을 고용해 기업을 경영하는 것으로 이는 정부기관의 공무원과 성격이 같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국유기업의 임금표준은 반드시 공무원임금을 참조해야 하며 임의로 임금을 정해 국민의 재산을 절취할 수 없게 한다.
업종간 임금격차 3천% 세계평균의 43배
또 중국정부가 투자한 기업들의 업종간 임금격차는 매우 커서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이다. 2009년 5월 5일 ‘중국청년보(中國青年報)’의 보도에 따르면 14개 시중은행 중 가장 임금이 높은 푸파(浦發)은행의 연봉은 45만 6200위안(한화 약 7750만원)인 반면 가장 낮은 공상(工商)은행은 13만 400위안(한화 약 2217만원)에 불과했다. 또 중국의 건축업, 요식업, 편직업 등의 연봉은 겨우 1만 위안(한화 170만원) 정도에 불과하다. 따라서 중국의 업종간 임금격차는 무려 3000%에 달해 세계평균의 43배나 된다.
심각한 중국의 빈부격차
사회적 부의 분배를 고찰할 때 주로 사용하는 방법은 수입이 많은 그룹과 수입이 낮은 그룹의 수입을 총 수입에 대한 백분율로 비교하는 것이다. 여기서는 2005년 자료를 근거로 134개국을 비교했다.
중국 재정부(財政部) 통계에 따르면 중국에서는 상위 10%가 전체 부의 45%를 차지하며 하위 10%는 겨우 1.4%에 불과하다. 여기서 주의할 것은 중국정부의 통계에는 민간기업이나 개인사업자, 농민공이나 농업노동자들이 상당수 제외된다는 것이다.
세계평균은 상위 10%가 전체 사회적 부의 31.7%를 차지하며 45%를 넘는 나라는 불과 4개 나라에 불과하다. 콜롬비아(45.9%), 아이티(47.8%), 보츠와나(51%), 나미비아(65%) 뿐이다.
반면 하위 10%가 전체 부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세계평균이 2.5%이며 이중 1.4%보다 낮은 나라는 불과 17개국에 불과하다. 나미비아(1.3%), 과테말라(1.3%), 남아공(1.3%), 보츠와나(1.3%), 아르헨티나(1.2%), 에콰도르(1.2%), 파라과이(1.1%), 브라질(1.1%), 엘살바도르(1%), 레소토(1%), 아이티(0.9%), 바하마(0.8%), 콜롬비아(0.8%), 온두라스(0.7%), 앙골라(0.6%), 볼리비아(0.5%) 등이다.
이상 여러 자료들로부터 알 수 있다시피 중국은 세계에서 빈부격차가 가장 심각한 나라에 속한다.
각국의 연평균 최저수입비교. (출처=류즈롱 블로그)
지니계수로 보는 중국사회의 불평등
빈부격차를 설명하는데 가장 널리 사용되는 수치는 지니계수이다. 보통 지니계수가 0.2이하면 아주 평등한 사회이며 0.2~0.4 사이면 약간 불평등한 사회이고 0.4가 넘으면 불평등이 상당히 심각한 사회다.
2005년 자료를 기준으로 할 때 세계 134개국의 지니계수는 평균 0.4였다. 중국의 지니계수는 0.42로 134개국 중 83위를 차지했다. 대부분의 선진국들은 중국보다 지니계수가 낮았으며 중국보다 지니계수가 높은 50여 개 나라는 대부분 아프리카와 남미국가들이었다. 주요국가의 지니계수를 예로 들면, 덴마크 0.25, 일본 0.25, 노르웨이 0.26, 독일 0.28, 한국 0.32, 캐나다 0.33, 프랑스 0.33, 스페인 0.35, 영국 0.36, 이탈리아 0.36 등이다.
이처럼 비정상적인 분배의 불평등 현상은 기득권을 가진 자들은 이익을 독차지해도 저지할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가령 최저임금을 올리자고 하면 중국 정부 인사와 학자들은 최저임금을 올리면 경제를 말살하고 기업을 죽이는 일이라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인다. 이상한 것은 최근 몇 년간 공무원 임금이 큰 폭으로 상승했음에도 그 어떤 관리나 학자도 나서서 반대하는 사람이 없다는 점이다.
또 중국은 사회주의 국가임에도 개혁개방 수십년 만에 수백년 역사의 자본주의 국가도 이루지 못한 심각한 빈부격차를 만들어 세계에서 가장 빈부격차가 심한 나라가 됐다는 점이다. 마치 영원히 평행선을 달리는 기차 레일처럼 한쪽은 중국의 기득권층이고 다른 한쪽은 서민이다. 중국이 만약 분배의 격차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중국이란 열차는 앞으로 전진할 수 없으며 소위 ‘조화사회’도 건설할 수 없다. 다만 사회혼란과 불안정이 갈수록 심해질 것이다.
중국은 빈곤국가에 속해
일반적으로 하루 지출이 1.25달러 미만이면 극빈층에 속하고 2달러 미만이면 빈곤층에 속한다. 2005년 중국에서는 극빈층 이하 인구가 전 인구의 20%를 차지했으며 빈곤층 이하의 인구가 전체 인구의 49%를 점했다. 이를 통해 보자면 중국은 세계적인 빈곤 대국이다.
중국정부에서 발표한 자료로도 상술한 세계은행의 보고를 입증할 수 있다. 중국 31개 성(省)급 행정단위 중 현재 최저임금은 월평균 608위안(약 10만 3천원)이다. 상하이가 가장 높아 960위안(16만 3천원)이며 안후이성이 가장 낮아 560위안에서 390위안까지 6개로 나뉘어져 있다. 2009년 말 기준으로 중국의 전체 취업자 수는 7억 7995만 명이며 이중 퇴직자가 5795만 명이다. 중국 전체 인구가 13억 3474만이니 취업자 한 사람 당 약 1.64명을 먹여 살려야 한다. 농촌에서는 이보다 비율이 더 높을 것이다. 하지만 최저임금을 받는 사람의 한 달 생활비는 겨우 371위안(6만 3천원)에 불과하다.
유엔에서 정한 빈곤층의 기준인 하루 지출 2달러를 위안화로 환산하면 월 415위안(한화 7만원)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중국의 최저임금 노동자의 생활수준은 유엔에서 정한 빈곤층보다 훨씬 낮은 셈이다.
해설: 류즈룽(劉植榮)은 중국의 사회과학자로 평론가로도 활동중이다. 세계은행 에피오피아 사무실 주임과 아프리카은행 카메룬 항목 협조원 등을 역임했다. 세계임금에 대한 그의 이번 비교연구는 ‘중국개혁보(中國改革報)'에 발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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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비아 정보요원 숨겨주고 폭격당한 사건
“1999년 5월 나토군이 세르비아를 폭격했을 때 중국대사관을 철수시키지 않고 대사관 안에 세르비아 정보요원을 숨겨준 것은 후회스러운 일이었다.”
또 “1999년 7월 파룬궁수련자들이 크게 늘어나자 주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파룬궁을 탄압하기로 결정한 것은 바보 같은 짓이었다.”
중국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이 평생 동안 한 일 중에서 가장 후회스러운 일로 이 두 가지를 꼽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내용은 장쩌민이 자식의 입장에서 작성한 미공개 회고록 ‘부친을 회고한다’ 라는 내용에 포함돼 있다고 홍콩 잡지 ‘첸싸오(前哨)’가 최근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1999년 나토군이 세르비아 주재 중국대사관을 폭격했을 당시 중국대사관은 세르비아군 정보요원들을 지하에 숨겨두고 있었다. 나토 공습에 의해 국방 · 정보 · 경찰본부가 모두 파괴된데 당혹한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전 세르비아 대통령으로부터 정보요원들의 은신처를 제공해 달라는 요청이 있자 중국정부가 이를 받아들인 것이다.
그러자 나토군은 중국대사관을 폭격했고 이 폭격으로 세르비아인 14명과 중국시민 3명이 사망하는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이 공습으로 당시 중국 내에서 반미 시위가 촉발됐고, 미국은 중앙정보국(CIA)의 타격 목표를 잘못 설정한데 따른 오폭이었다며 사과했지만 중국정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중공은 이 사건을 ‘파룬궁 수련생이 중난하이를 포위한 사건’이라고 대외적으로 선전하며 파룬궁을 탄압하기 시작했다. 당시 장쩌민은 파룬궁수련자들이 점점 증가해 수천만 명에 육박하자 질투심과 권력에 대한 위기감을 느껴 탄압을 결정하게 되는데 이 결정을 후회하고 있다는 것.
장쩌민의 파룬궁 탄압 결정은 시작부터 정치국 상무위원 내부의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일부 상무위원들은 기공수련인 일종인 파룬궁을 그렇게 전면적으로 탄압할 필요가 있느냐고 탄압 결정에 반대하는 입장을 취했다.
또한 장쩌민은 가족으로부터도 반대를 받았다고 하는데 장쩌민의 부인인 왕예핑(王野平)과 손자도 파룬궁을 수련했었다는 설이 있다. 그러나 장쩌민은 자신의 고집을 굽히지 않았고 탄압하는 결정을 정치국에서 강압적으로 통과시켰다.
장쩌민이 내세운 이유는, 공산당 통치 아래의 중국에서는 공산당의 통제를 받지 않는 한 개 조직이 큰 규모로 발전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현재 파룬궁은 중국 내외에서 중공의 죄상을 파헤치는 가장 유력한 단체가 됐다. 탄압에 관여한 중공 관료들은 외국에 나갈 때마다 파룬궁수련생들이 그림자처럼 다가와 박해반대와 항의활동을 펼치고 있는 모습을 목격한다.
뿐만 아니라 장쩌민을 추종해 적극적인 파룬궁 탄압을 진행해왔던 관리들은 해외 법원에 기소됐으며 이로 인해 해외에서 구속될 위기에 처해있다. 또 많은 관리들은 탄압에 연루되지 않으려고 몸을 사리고 있어 장쩌민은 이 일로 인해 매우 고립되는 상황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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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지방의 가정집들은 대체로 형광등보다는 100와트짜리 둥근 전등알을 켜고 산다. 물론 자주 정전이 되긴 하지만, 그래도 전구가 없이 살긴 힘들다.
전기가 와도 전압이 불안정해 수수떡같이 벌겋기만 한 전등이지만, 내가 자랄 때는 그것을 전구, 또는 전등알로 불렀다.
남한에 온 뒤 나에게 진지하게 “북한에선 정말 전등을 불알이라고 하냐”고 묻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북에서 전등을 불알이라고 한다는 말은 남한에 와서 처음 들었다. 훗날 어느 자료를 보니 북한에서 1960년대에 외래어를 북한말로 대대적으로 바꿀 때 불알로 하려고 했다가 어감이 좋지 않아 그만둔 일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 일이 정말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대다수 북한 주민들은 그런 일이 있어도 있은 줄 모르고 산다. 자유 언론이라는 것이 거의 없으니 말이다.
한국에 통용되는 북한말 남한말 비교를 누가 만들었는지 모르겠지만, 한번 그 비교표를 보다가 너무 엉터리가 많아 실소했다. 아마 한 80%는 엉터리다.
가령 경상도에서 대문을 사투리로 삽작이라고 한다고 해서, 경상도 출신으로 북에 간 사람이 ‘남조선에선 대문을 삽작이라고 합니다’고 말했고, 이를 북한 당국이 사전으로 출판해 ‘(북한말)대문=(남조선말)삽작’ 이런 식으로 만든 것과 마찬가지다.
이런 식으로 정리한다면 남북말이 같은 것은 당연히 사전에 실리지 않을 것이다. 다른 말이라고 골라서 실린 것은 결국 사투리가 마치 표준어인 것처럼 둔갑돼 실리는 것이다. 이런 것을 돈을 들여서 왜 만들었나 싶다.
몇 년 전부터 남북 언어학자들이 겨레말 큰 사전을 만들기로 하고 상당히 작업한 것으로 알고 있다. 정부 예산만 10여억 원이 들었다고 한다.
이 사진 한장이 사업의 현실을 잘 보여준다고 본다. 뒤에 있는 플래카드에 버젓이 '주체'라는 연호가 적혀 있다. 저런 연호는 통일이 되면 다 없애버려야 할 것이지만, 현재의 북한 체제에선 꿈도 못꿀 일이다. 주체97년에 남북공동언어사전을 만들기위해 한국 학자들이 개성에서 올라갔다. 출처: 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위원회 홈페이지.
나는 언어학자가 아니기 때문에 남북 언어를 합해서 정리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는 구체적으론 모르겠다.
하지만 단순한 생각으론 저것은 쓸모없이 헛돈 쓰는 일이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
남한 사람들이 북한말을 알아서 무엇을 할 것이며 북한 사람들이 남한말을 알아서 무엇을 할 것인가.
북한의 미래에 대해 여러 가지 가설을 세워 봐도 마찬가지 답이 나올 것 같다.
우선 김정일에게서 김정은으로 정권이 이어져서 북한 독제체제가 계속 이어진다고 하자.
그러면 어차피 남한 출판물이 북한에서 배포되는 일은 전혀 없을 것이니 북한 주민들이 남한말을 알 필요는 없다고 본다.
가능성이 아주 희박하지만 김정일이 망하고 독재정권이 아닌 새로운 민주 정권이 북한에 탄생한다고 하자. 그래서 남북한이 연방제를 한다고 하자.
이럴 경우 남북한 언어가 다 같이 존중을 받아야 할지 모르겠지만, 그렇더라도 벌써 남한 출판물이 북한 주민들에게 읽힐 정도가 되는 시절이 오면 우리가 분단돼 있을 이유조차도 없을 것이다.
가장 가능성이 높은 시나리오는 언젠가 우리는 통일이 된다는 것이다. 듣기론 남북한말 공동사전도 그때를 겨냥해서 만든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때를 생각하면 더구나 만들 필요가 없다고 본다. 남북의 언어가 분단 60여년을 내려오며 많이 차이 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통일 국가에는 단 하나의 언어가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그리고 단 하나의 언어가 존재한다면 서울말이 표준어가 돼야 하는 것이다.
2400만 명이 쓰는 언어보단 5000만 명이 쓰는 언어가 표준어가 돼야 한다는 것은 누가 봐도 상식이다. 전국을 상대로 하는 방송의 표준 억양도 마찬가지다.
북한사람들이 초기에 남한 말을 알아듣지 못해서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그건 그들이 통일을 맞아 극복해야 할 문제라고 본다. 통일로 어차피 감수해야 할 불편의 하나라는 뜻이다.
한국에 온 탈북자 2만 명 중에 무슨 사전을 펼쳐보면서 한국어를 깨친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남한말 북한말 비교사전이 없어서 애로가 있다는 사람도 내가 알기엔 없다.
통일 뒤 북한주민들에게도 마찬가지다. 북한 주민들은 한국의 신문을 보면서, 방송을 보면서 한국어를 접할 것이고, 그렇게 익혀야 한다.
이해 못할 단어가 있으면 이미 출판돼 나와 있는 한국어사전을 보면 된다. 겨레말 사전이라는 것을 만들어 굳이 한국말을 북한말로 풀어주지 않아도, 단어에 대한 한국어 해설만 봐도 뜻은 이해할 수 있다.
북한에서 통용되는 단어를 존중해주고 그것을 우리나라의 표준어로 포함시켜 인정해주면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
북한 사람들도 남한말을 익혀야 하지만 이번엔 남쪽 사람들이 북한말을 배워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남쪽에서 단어 하나면 설명되는 것을 북한단어 남한단어 두개를 익혀야 하는 것이다. 굳이 그런 수고를 할 이유가 왜 있을까. 남쪽 어린이들이 앞으로 학교에서 ‘괜찮습니다’와 ‘일없습니다’를 같이 배워야 하는가.
두 언어를 짬뽕 만들면 교육, 언론, 일상생활 할 것 없이 커다란 혼란이 조성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남북한 사전을 만드는 것은 순전히 북한 사람들의 편의를 위한 것이다.
겨레말사전을 만드는 측이 공지한 사전 제작의 목적. 출처: 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위원회 홈페이지.
이런 실례를 들어보자. 연변말도 남한말과 완전히 다른데, 누가 ‘연변사람들의 편의를 위해 한국 연변 공동사전 편찬하겠다’ 이러면 사람들이 ‘왜 그래야 하는데’하고 반문할 것이다.
또 가령 제주도와 본토말이 완전히 다르다고 해서 ‘전 국민이 쓸 수 있는 제주도와 표준어의 공동사전을 만들겠다’고 해도 ‘왜 그래야 하는데’라는 질문이 나올 것이다.
제주도에 가서 표준어로 말해도 뜻이 다 통하는데, 전 국민이 제주도 사투리 뜻을 알 필요는 없는 일이다.
이웃 중국도 마찬가지다. 실례로 광둥어를 들어보면 이는 수억 명이 쓰는 언어이지만 표준어와 완전히 다르다. 그렇다고 중국 정부에서 광둥 사람들의 편의를 위해 광둥어-표준어 공동사전을 만들었을까. 모르긴 해도 그러진 않았을 것이다.
가뜩이나 말을 통일하는 것이 급선무인데, 표준어 외의 광둥어 단어를 사전에 새로 포함시키면 중국의 언어통일에 역행할 뿐 아니라, 그럴 필요도 없고, 정작 그렇게 된다면 중국 전역에서 난리가 날 것이다.
북한도 마찬가지다. 북한에 지금 있는 언론이라고 해봤자 노동신문, 조선중앙방송과 같은 북한 노동당의 어용 기관들이 있을 뿐이다.
통일이 되면 당연히 이런 언론은 사라지고 새로운 언론환경이 형성될 것이고, 새 매체들이 창간될 것이다.
이 매체들은 굳이 북한말을 쓸 필요가 없이 한국말을 쓰면 된다. 북한 주민들은 처음엔 조금 어렵겠지만, 한국에 와 있는 탈북자들이 그러하듯이 곧 신문을 읽고 방송을 듣는데 어려움이 없게 될 것이다.
이것이 남북한 언어통일을 가장 빨리 앞당기는 길이다.
지금 작업이 어떻게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차피 남쪽 언어학자나 북쪽 언어학자나 분단 상황에서 마주 앉아봐야 자기 표준어가 제일이라면서 절대 양보하지 않으려 할 것이다.
저 위에 사업 추진 목적을 보면 차이나는 단어는 남북이 성실히 합의하여 단일화하겠다고 나와 있다. 아마 현실에선남한 단어와 북한 단어를 반반 정도씩 인정해 단일화해야 할 것이 뻔한데, 이것이 사실이 된다면 한국 학교에서 새롭게 단일화됐다는 무수한 북한 단어를 배워야 할 것이다.
그러면 당장 부모들과의 소통부터 문제가 될 것이다. 실례로 엄마가 "쥬스 먹어라"고 했는데 아이가 "그런말 몰라요. 혹시단물을 말하는거예요?"하고 반박할 수가 있는 것이다. 물론 나도 단물이 듣기 좋긴 하지만 그렇게 고쳐야 할 단어가 무수히 많다면 문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선나부터도 문제를 제기하고 싶다. "왜 그래야 합니까? 무엇을 위해서요?"
언어의 통일을 최대한 이뤄내야할 대신에 이런 식의 절충은 언어의 대혼란을 조성하게 할 것이 아닐가. 언어의 통일을 위해서는 합의보다는 국가가 목표를 갖고 추진하는 어느 정도의 강제성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남북한 언어이질감을 없애려는 취지에서 시작했지만 결국엔세대와 지방간의각종 언어이질감을 만들게 하는 목적과는 정반대의 결과를 초래하지 않을지 의문이다.
수십억 원을 들여(이중 북한에도 상당액이 올라갔다) 남북한 언어사전을 만드는 일이 진정 남북한 주민들을 위한 일인지, 아니면 언어학자들에게만 중요한 일인지 공론화돼서 한번쯤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죽어서도 남길 업적을 위해 만든다는 흑심이 있다면 그건 더욱 곤난하다.
북에서 교육받고 이를 기초로 남쪽에서 일하는 내 소견에는 남쪽 사람들에겐 한국어 사전만 있으면 됐지 겨레말 사전 같은 것은 필요 없으며, 그것은 통일 이후 북한 사람들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이런 반박도 있을 수 있다. 겨레말 사전은 표준어 사전이 아니고 수많은 사전 중의 하나다고. 그렇다면 그 수많은 사전 중의 하나를 그렇게 비싸게 만들 필요는 있을까. 당장 쓸모도 없는 것을.
그리고 이 사전이 통일을 위해 꼭 만들어야 할 중요한 것이라면 통일이 된 뒤시작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그때는 북한 학자 만나겠다고 지금처럼 어렵게 평양을 어쩌다 찾아가지 않고, 아예 평양에 눌러 앉아 만들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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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북한을 탈북해, 꿈에도 그리던 대한민국에 귀순한 이춘구이며, 나이는 35세, 고향은 황해북도 황주군이다.
귀순하기 전 내가 북한에서 겪었던 굶주림과 허덕임은 이제는 잊혀지는 듯하다. 하지만 잊혀지지 않는 것은 북한 황해북도 송림시에서 1998년 8월에 일어난 황해제철소(황해제철연합기업소) 노동자들의 폭동사건이다.
이 폭동을 진압하는 북한당국의 非인간적인 만행은, 세월이 흘러가도 역사의 갈피 속에 영원히 피로 얼룩져 있을 것이다.
-강냉이를 바꾸다가 총살당한 제철소 간부들
1998년 8월 초에 나는 혹심한 식량난을 이기기 힘이 들어 송림시에 살고 있는 이모네 집에 거처하게 되었다.
송림시는 북한에서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큰 제철소가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종업원은 거의 10만 명이나 되어 노동자 인구밀도도 높은 것만큼, 이모의 보따리 장사가 괜찮게 되어 우리 가족이 의지하게 된 것이다.
황주군에 있는 집을 버리고 처와 자식, 나 셋이서 이모의 물고기(생선) 장사도 도울 겸, 죽물이라도 얻어먹게 되니, 그때 이모와 이모부가 얼마나 고마운지 몰랐다. 이모부는 황해제철소 자동화 직장(공장내 생산라인)에 출근하고 있었다.
이 시기 북한 어디나 사정은 마찬가지였지만 노동자들이 꽉 들어차 생활하는 송림시에서도 한달치 배급 식량으로 하루 이틀치 정도에 불과한 옥수수 가루를 공급하여 먹거리 때문에 난리가 일어났었다.
이러한 실정에서 노동자들이 출근하지 못하니 각 직장들마다 생산을 제대로 할 수 없어 공장의 생산 실적은 말이 아니라고 했다.
이모네 집에도 일 나가지 못하는 이모부를 설복하려고 공장 간부들이 몇 번 다녀갔다. 직장 간부라 하는 사람들이 "어려움을 극복하고 장군님께 충성하자"는 말마디들을 늘어놓자 이모부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1998년 8월10일 쯤이라 생각한다. 온 송림시 안에 퍼지는 소문에 의하면 다음날 시 안에 설립한 공설운동장에서 8명의 황해제철소 간부들을 총살한다는 것이다.
내용인즉 제철소 지배인과 책임비서가 토의하고 후방담당 부지배인과 업무담당 부지배인을 비롯한 회사 간부들이 주동이 되어 노동자들을 먹여 살릴 대책을 토의하였다 한다.
회의에서 토의된 결론은 한 가지 방도로 중국에 압연 철판을 넘겨 강냉이로 바꾸자는 결론이 나왔다. 제철소 책임비서와 지배인은 북한 지도부에서 알아주는 당중앙위원회 후보위원들이고 고위 권력층에 속하는 인물이다.
이들은 모든 것을 黨 중앙에 보고하여, 처리하게 되어 있는 이 일을 제철소 간부들만 알고 외부가 모르게 처리하도록 대책을 세웠다.
위에 보고하면 군수용이요, 뭐요 하면서 승인이 내려지지 않는다는 점 때문에 이렇게 일처리를 하게 된 것이다.
회의에서 당 책임비서와 지배인은 "우리가 뭐 반동 노릇하는 것도 아니고, 노동자들을 먹여 그들이 생산에 참가함으로써 철 생산을 하자는 의미"라고 해설하였다.
그러면서도 이 사실을 비밀에 부치도록 간부들에게 오금을 박았다 한다.
그리하여 황해제철소 전용 어선으로 남포항에 나가 있는 배를 이용해 중국에 압연 철판을 싣고 가 강냉이로 바꾸게 되었다. 제철소 후방 부지배인을 위시하여 판매과장을 비롯한 간부들이 직접 배에 타고 가서 중국과 교섭하였다.
이 내막을 배에 타고 갔던 노동자들은 구체적으로 알 리 없었다. 싣고 갔던 압연 철판으로 바꾼 강냉이를 한 가득 싣고, 이들이 남포항 부두에 배를 정박하는 순간이었다.
-義人 8명의 총살 현장
뜻밖에도 권총을 꺼내 든 사복차림의 젊은 사나이들이 배에 뛰어 오르며 신분증을 보였다.
신분증에는 평양 보위사령부 검열대라고 찍혀 있었는데, 이들이 바로 북한 당국의 직접 지시를 받아 움직인다는 현대판 북한 암행어사들인 것이다.
이들은 배에 타고 있던 일행을 전원 체포하여 포승줄로 묶어 북한에서는 보기 드문 승용차에 싣고 어디론가 끌고 갔다.
비밀에 부쳐졌던 이 사실을 보위부가 어떻게 알았나 하고 의심을 품고 있었는데, 가서 알고 보니 누가 이 사실을 고발하여 일이 벌어진 것이라 하였다.
이 내용은 그 배에 탔던 영문을 모르는 노동자들이 풀려나와 증언한 것이었다. 누가 고발했냐 하는 노동자들의 격분에 찬 음성이 온 거리에 쉬쉬거렸다.
아울러 어느 거리 골목에서도 노동자들을 위한 제철소 책임간부들의 용단을 두고 주민들의 칭찬어린 목소리가 울려나왔다.
다음날 아침 9시 시 공설운동장은 처절한 마음을 안은 시 안의 노동자들과 주민들로 꽉 차 있었다.
이모부와 함께 운동장에 나간 나는 트럭에서 끌어내려지는 사형수 8명을 보았다. 고문을 당한 후유증인지 모두 걷지 못하여 옆에서 평양 보위사령부 검열대라는 사복 입은 청년들이 질질 끌고 말뚝을 세워놓은 곳으로 갔다.
사형수들을 말뚝에 묶는 순간에도, 제철소에서 일했다는 이모부는 누가 누가인지 분간하지 못했다. 여름철인데도 모두 두꺼운 솜동복을 입혀놓고 눈을 싸매 놓았기 때문이다. 이어서 무슨 중앙 재판소라는 곳의 사람들이 사형선고문을 읽었다.
당의 유일적 지도체제를 위반하고 국가물자를 외국에 팔아먹는 국가반역죄를 저질렀으므로 배에서 현장 체포된 후방 부지배인과 판매과장, 그리고 연루된 제철소 업무 부지배인과 생산과장을 비롯한 간부들 8명을 즉석에서 총살에 처한다는 것이다.
순간 노동자들과 주민들 속에서는 부정하다는 뜻의 수군거림이 웅성웅성 해졌다.
"제가 먹자고 한 일도 아닌데 총살까지 시키는 건 너무합니다"
하지만 사형수들 앞에 자동보총을 든 열댓 명의 사격수들이 줄을 지어 서더니 구령에 따라 자동보총(소총)을 난사하였다.
자지러진 수십 발의 총성은 좁은 운동장을 들었다 놓았고, 총에 맞은 사형수들은 하나같이 피를 뿜으며 앞으로 상반신을 수그리고 쓰러졌다. 어마어마한 살인 광경 앞에 주민들은 모두 넋이 나간 듯 조용해졌다.
하지만 폭풍이 지나가자 격노한 주민들의 부르짖음이 여기저기서 큰 소리로 터지며 운동장 안이 술렁거렸다. 나도, 이모부도 어느 사이에 흥분되어 주민들과 함께 목소리를 합치며 알지도 못할 욕을 해대기 시작했다.
이를 대변하듯 한 중년 여자가 어느 사이에 판결문을 읽어대던 마이크 앞으로 튀어나갔다.
옆의 주민들은 이구동성으로 그를 가리키며 "위대한 수령님(김일성)의 간호사를 하던 여자다"하고 말했다.
이모부는 중앙당에서 대단한 신임을 받고 생활하는 저 여자는 전에 평양 봉화진료소에서 김일성의 담당 간호사로 일하다가, 지금 고향인 송림시에 내려와 혜택을 받고 떵떵거리며 산다는 것이다.
이모부의 말을 들으며 나는 대뜸 저 여자가 사형을 정당화하는 궤변을 늘어놓을 것이라 생각되어 눈초리가 꼿꼿해짐을 느꼈다. 다른 주민들도 모두 마찬가지로 증오스러운 눈초리를 그 여자에게 보내는 느낌이 확연히 들었다.
그런데 마이크에서 울리는 그 여자의 음성은 전혀 뜻밖이었다.
"이렇게 무지막지하게 총살하는 법이 어디에 있습니까? 제철소 간부들이 위대한 장군님께 생산을 많이 하여 기쁨을 드리자는 일념으로 강냉이를 바꾸려 했는데, 방법이 틀렸으면 처벌을 주어야지 총살까지 하는 건 너무합니다. 총살당한 간부들이 노동자들을 먹여 일을 시켜보자고 했지, 제가 먹자고 한 일도 아닌데 이렇게 사형까지 하는 건 너무 무지막지 합…"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젊은 사복쟁이들이 달려들어 그 여자를 마이크 앞에서 끌어내며 구둣발로 차고 입에 재갈을 물렸다.
이어 넘어진 그 여자의 몸을 포승줄로 꽁꽁 묶어놓고 일으켜서는 한 사형수의 말뚝으로 끌고가 쓰러진 사형수를 발길질로 옆으로 밀어놓고 그가 섰던 말뚝에 그 여자를 묶어놓았다.
뒤이어 마이크 앞에서 판결문을 읽던 재판관도 아닌 한 중년 사복쟁이가 나섰다. 보위사령부 검열대 성원들을 지휘하던 사람이었다.
그는 대뜸 "우리 사회주의 독재체제에 불응하는 자는 즉시 사형에 처한다. 모두 똑똑히 알고 처신하라"는 서리낀 목소리를 던졌다.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어느 사이에 3명의 사격수들이 그 여자를 향해 아홉 발 가량 되는 총탄을 발사하였다.
금방까지 펄펄 뛰던 여자가 피를 뿜으며 눈앞에서 쓰러지자 주민들은 입이 얼어붙은 듯 굳어졌다. 모두 공포에 몸을 떨며 숨도 크게 쉬지 못해 수많은 사람들이 모인 운동장에 바스락 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나도, 이모부도 너무나 무서워 얼이 나간 듯 그 자리를 떠나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와서도 그 광경을 목격한 이모나 나의 처도 누구 하나 말 한 마디 하려 하지 않았다.
마치 말하면 금방 달려들어 또 총탄을 안길 것 같은 환각이 드는 것이다.
총살이 강행된 다음날 오후였다. 분노한 제철소 노동자들이 죽음을 각오하고 공장 구내에 몰려서 시위를 단행했다는 소식이 온 송림시 안에 퍼졌다.
-새벽녘에 탱크가 밀려오다
노동자들은 "더 이상 간부들을 숙청하지 말라" "우리를 먹여 살리고 제철소를 위한 간부들의 행동은 잘못이 아니다"는 구호를 외치며 공장 구내 길에서 몇천 명이 모여 앉아 버티기 투쟁을 한다고 하였다.
이 소식에 온 송림시 안의 주민들이 너무나도 통쾌해 격려어린 말들을 아끼지 않았다. "노동계급이 다르긴 다르다" "노동자들은 배짱이 있다" 하는 말들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북한에서 이와 같은 시위를 일으킨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지 못할 일이기 때문이다.
시위자들은 자기들의 요구를 당국을 대표하는 간부가 나서서 들어줄 때까지 앉아 버티기로 하였다. 밤이 되도록 자기들의 요구가 관철되지 않자 노동자들은 밤을 새우며 공장 구내에 앉아 버텼다. 이들의 시위소식을 들으며 우리는 혼곤히 잠들어 버렸다.
그런데 새벽 무렵 나는 아내가 흔들어대는 바람에 눈을 뜨는 순간 귀청이 찢어지는 듯한 소리에 깜짝 놀랐다. 둔탁한 무한궤도 소리에 창문이 드르릉 울리고 집안바닥이 흔들리는 게 분명 탱크 소리였다.
몇 대가 지나가는지 가늠할 수 없게 연속 거리를 지나고 있는 것이 분명하였다. 시계를 보니 때는 새벽 4시가 가까워 오고 있었다. 깨어난 이모와 이모부도 어리둥절한 눈빛으로 바깥소리를 응시하고 있었다.
"전쟁이 일어난 게 아니야"
"그런 것 같애" 하는 이모와 이모부의 말소리에 나도 아내도 마주보며 수긍하는 뜻으로 눈을 크게 떴다. 6·25 전쟁도 새벽에 일어났다더니 탱크 소리와 함께 날이 푸름푸름 밝아 오는 것이 전쟁 같은 것을 연상케 하는 느낌이었다.
"아유, 어쩌면 좋아. 빨리 가서 알아보고 피난해야 될 게 아니야?"
이모의 째는 듯한 소리에 나와 이모부는 엉거주춤 바지를 입었다.
밖에 나선 우리는 이미 지나간 탱크의 뒤를 쫓아 달리기 시작했다. 우리 앞뒤에서도 주민들이 달리고 있었는데, 제철소 방향이었다.
우리 집에서 제철소까지는 한 5리 가량 되었는데 제철소 방향에서는 탱크소리가 계속 들리고 거리는 그곳으로 향한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달리면서 나는 혹시 탱크가 시위자들에게로 가지 않는가 하는 의심어린 말을 이모부에게 던져보았다. 이모부는 "탱크가 거기 가서 뭘 한단 말이냐" 하며 가당치 않은 말을 한다는 듯 나를 흘겨보고 부정해 버렸다.
-탱크에 짓이겨진 시체들 즐비
순간 달리던 주민들은 모두 놀라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 서서 움직일 줄 모르고, 터지는 총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수백 발의 총성 속에 자지러지는 비명소리가 뒤섞여 들려왔다. 선뜩 가슴을 치는 것이 현실인것처럼 눈앞에 환상적으로 안겨오는 듯 했다.
한 10분간 들리던 총소리와 용을 쓰는 듯한 탱크소리가 들리지 않고 간간이 세워둔 듯한 탱크의 발동소리가 들려왔다.
이어 제철소 구내에서 어지러운 통곡소리가 들려왔다. 순간 주민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정신 없이 구내 안으로 달려 들어가다가 나타난 광경 앞에 모두 아연 실색하며 그 자리에 멈춰섰다.
제철소 구내 안의 아스팔트 길에는 걸쭉한 시커머스레한 죽은 피가 질질 흐르고 있었다. 둘러서서 통곡하는 사람들 가운 데마다 보기에도 끔찍한 짓이겨진 수십 구의 시체가 나뒹굴고, 그 옆에는 잘라져 나간 팔과 다리가 지저분하게 널려 있었다.
물씬 물씬 풍겨오는 피비린 냄새에 구역질이 올라왔다. 시위자들인 듯한 남자들의 무리를 둘러싸고 수백명의 군인들이 기고만장하게 서서 사람들에게 총을 겨누고 있었다.
시체를 보니 보나마나 탱크에 치이고 총에 맞은 듯한 광경이었다. 이어 달려온 사람들 속에서 가족들이 제각기 자기 식구의 시체를 둘러싸고 대성통곡을 했다.
주위는 언제 시위가 있었던가 싶게 모두 사망자들을 둘러싸고 울음바다로 변해 버렸다. 주민들은 그 자리에서 시위에 참가했던 사람들이 통곡하며 하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시위대열이 앉아 버티는 앞으로 열댓 대나 되는 탱크와 함께 트럭에 탄 수백 명의 군인들이 줄지어 달려들었다. 당장 흩어지라는 소리에 노동자들은 이대로 물러설 수 없다며 꿈쩍도 하지 않았다.
순간 무슨 구령소리가 나더니 요란한 총소리와 함께 시위자들이 쓰러지고, 탱크가 시위대열 속으로 굴러 들어왔다. 뜻밖의 기습에 앞에 앉아 버티던 노동자들 수십 명이 순식간에 탱크 무한궤도에 깔려 들어갔다. 너무나 놀란 시위자들은 비명소리를 지르며 사방으로 흩어져 피신해갔다.
-또 한 차례의 공개총살
다음날 거리에는 사회안전부(현 인민보안성) 명의로 된 포고문이 나 붙었다. 내용은 사회주의 체제를 위협하고 좀먹는 불온 선동으로 시위를 주도해온 주모자들을 인민의 이름으로 심판한다는 것이었다.
포고문이 나붙은 거리로는 총을 멘 살기 어린 군인들이, 거리 골목골목을 누비며 어슬렁거리는 게 계엄령을 선포한 상태 같았다.
이틀 후 공설운동장에서는 폭동 주모자라고 하는 3명의 노동자들과 함께 또 한 명의 중학교 선생과 어린 처녀를 총살하는 놀음이 벌어졌다.
중학교 선생과 처녀의 죄명은 한 재일 귀국동포의 집에 들어가 녹음기를 훔친 죄과였다. 그들은 재수 없게 계엄령 상태가 벌어진 그 시각에 총살감을 찾지 못해 헤매는 당국자들에게 걸려든 것이다.
나의 아내는 그때 총살하는 자리의 맨 앞에 앉아 있었는데 끌려나온 사형수들 속에서 아련하게 생긴 그 처녀에게 눈길이 자꾸 가 유심히 살펴보았다 한다.
죄과라는 것을 읽고 총살에 처한다는 판결과 함께 두 명의 보위사령부 사복쟁이들이 나서서 그 처녀에게 다가갔다. 이들은 처녀에게 다가가더니 턱을 주먹으로 올려 쳐 턱뼈가 빠지게 한 뒤, 손바닥 안에 쥔 자그마한 용수철을 그 처녀의 입에 넣었다.
순간 그 처녀의 입에 들어간 자그마한 동그란 용수철이 쫙 퍼지더니 그의 입이 고통스럽게 불어나 처녀는 몸부림쳤다.
이어 말뚝에 묶여 연속 총탄을 맞고 쓰러지는 그 처녀의 모습을 보며 아내는 경악했다. 집에 돌아와서도 며칠 동안 부들부들 떨며 잠 못 자는 아내였다.
연속 일어나는 충격적인 이런 일들로 8월 한 달, 송림시 안의 모든 주민들은 숨도 크게 쉬지 못하고 지내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이 "송림시에 문제가 있다"는 북한당국자의 지시 아래 평양 보위사령부가 내려와 뿌리를 뽑았다는 사건들이다.
<2001년 7월 이춘구 , 출처 :탈북자동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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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벽에 시계가 걸린걸 보니 왠지 기분이 좋았습니다.
요즘에는 시계도 안차고 다닐뿐아니라 건물에 시계를 장치하는 것은 드무니까....
아직은 시즌이 아니라 주차장이 텅비었습니다.
새벽에 눈만드는 장면입니다.
세미나실에 책상이 놓였는데 녹색 카바를 덮어 눈이 피로하지 않게 하여 좋았습니다.
아침온도는 영하 5도~6도 였어요.
카메라가 없어 폰카로 찍었습니다. 이제부터는 왠만하면 디카를 들고 다녀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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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연구팀은 29일(현지시간) 사람의 키와 연관된 100개 이상의 유전자들을 추가로 밝혀냈다면서 그러나 이는 키와 연관된 모든 유전자 가운데 약 20%에 불과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네이처'지에 발표된 이 같은 연구 결과는 사람의 키를 결정하는 요인이 부모로부터 유전된다는 일반적인 생각과 달리 훨씬 복잡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보스턴 아동병원의 조엘 히르쉬호른 박사는 "키가 부모와 관련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키가 작은 부모는 작은 자녀를 낳고 키가 큰 부모들은 큰 자녀를 낳는다"면서도 그러나 사람의 키를 결정하는 것은 이보다 훨씬 복잡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연구가 사람의 키를 결정하는 요인이 무엇인지 이해하는데 있어 이제까지 가장 중요한 연구라고 자부한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에는 전세계 100여개의 연구기관에서 300명에 달하는 연구자들이 참여했다. 이들은 18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의 유전자와 키와의 상관관계를 분석했다.
이제까지 키와 연관된 유전자는 약 80개 정도로 알려져 왔지만 연구팀은 이번에 100여개의 유전자가 사람의 키와 연관돼 있음을 새로 밝혀냈다. 이에 따라 지금까지 밝혀진 키와 연관된 유전자는 모두 180여개로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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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학자들이 '골디록스 존'(Goldilocks zone)이라고 불리는 태양계 밖 구역에서 생명체가 존재하기에 완벽한 조건을 갖춘 '또다른 지구' '글리제 581g'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지구와 비슷한 크기의 '글리제 581g'는 항성에 너무 가깝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멀리 떨어지지도 않아 물이 너무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은 상태로 생명체가 존재하기에 적합하다. 천문학자들은 이 별이 지구와 거의 흡사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며 '새로운 지구'라고 부를 수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글리제 581g'에 물과 식물이 존재할 것으로 보고 있으며 인간이 이곳에 갈 수 있다면 인간이 거주할 수도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게다가 '글리제 581g'는 은하계와 바로 이웃해 있다. 이는 '글리제 581g' 말고도 지구와 비슷한 다른 별들이 존재할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으로 지구가 하나가 아닐 수 있음을 보여준다.
미 국립과학재단은 29일(현지시간) 미 캘리포니아 대학과 카네기 재단 소속 천문학자들이 '글리제 581g'를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글리제 581g'는 지구로부터 20광년의 거리인 약 193조㎞ 떨어진 항성 '글리제 581' 주위를 돌고 있는데 글리제 581은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항성이다. 그러나 이 별의 밀도는 지구의 약 3∼4배에 달하는 것으로 보이며 공전 주기는 37일이다.
캘리포니아 대학의 스티븐 보그트는 '글리제 581g'의 중력이 지구와 거의 비슷하거나 약간 높을 것으로 보인다면서 인간이 걸어다니기에 큰 불편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발견 결과는 우주물리학 저널(Astrophysical Journal)에 게재될 예정이며 이미 arXiv.org를 통해 온라인에 게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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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조로 치닫던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를 둘러싼 중국과 일본의 갈등이 한풀 꺾인 모양새다. 일본은 센카쿠 주변 영해를 침범했다는 이유로 체포했던 중국인 선장을 24일 석방했다. 이에 앞서 중국측은 후진타오 주석과 원자바오 총리의 잇따른 강경 발언과 희토류 수출 중단 선언으로 일본을 압박했다. 일본은 한발 물러섰지만 여전히 센카쿠 열도를 포기하지 않겠다고 밝혀 갈등은 현재진행형이다.
▲ 대만인들이 홍콩 주재 일본 영사관 앞에서 대만의 댜오위다오 영토권을 주장하고 있다. 일본과 중국의 댜오위다오 분쟁의 배후에는 대만이 있다. ⓒ MIKE CLARKE/AFP/Getty Images
표면적으로는 일본과 중국 두 강대국의 영토 분쟁으로 보이는 이번 사건의 배후는 사실 복잡하다. 중국 고위층 내부에서는 사태 발생 직후 해양무장경찰 창설 주장이 제기됐다. 강경론을 주창하는 세력의 발언이 강해진 것이며, 중국측의 발빠른 강경 대책에도 일정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사실 이번 갈등은 대만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던 중국 고위층에게 호재로 작용했다.
2008년 중공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2012년까지 대만문제를 해결하기로 결정한 후 중공은 한걸음 한걸음씩 이 핵심 정책을 실시해왔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두 가지 문제에 봉착했다. 하나는 대만의 마잉주 정부가 경제협력기본협정(ECFA) 체결은 서두르더니 정치적인 ‘통일’에서는 한걸음도 앞으로 나아가려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9월 12일 ECFA를 발효하는 동시에 마잉주는 다시 한 번 ‘일국양제(一國兩制)’를 거부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마침 유럽을 방문 중이던 대륙위원회 주임 라이싱위안(赖幸媛) 역시 다시 한 번 대륙의 미사일 철수를 호소했다. 이는 분명하게 대륙과 거리를 두려는 것으로 필경 ‘반공(反共)’ 및 ‘독자노선을 걷지 않고’, ‘통일하지 않으며’, ‘무력을 쓰지 않는다’는 신3불정책이 여전히 작용한 것이다.
더 이상 애국주의를 선동하기 위해 대만 카드를 쓸 수 없게 된 중국 지도부는 댜오위다오 사건은 통해 대만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이와 함께 국내 여론을 지도부 중심으로 단결하는 분위기로 몰고 가 집권력을 강화하려는 심산도 있었다.
일본 매체들이 보도하는 중국 선박의 간첩활동은 논외로 하더라도 중공은 적어도 몇 가지 점에서 대만과 댜오위다오의 관계를 이용했다.
첫째, 중공은 대만과 댜오위다오 영유권의 역사적 빈틈을 타고 대만을 끌어들였다. 댜오위다오는 아주 이른 시기부터 대만의 이란(宜蘭)현 관할에 속했고 중일 전쟁이후 일본이 강제 점령했다. 시모노세키 조약이 바로 이 점을 확립한 것이다. 미국은 1971년 오키나와를 반환하는 협정에서 이 섬의 행정관할을 일본 오키나와현에 넘겨주었다. 하지만 미국은 이로 인해 발생한 영유권분쟁에 대해선 당사국들 간에 협상을 통해 해결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중공은 1972년 ‘중일연합성명’과 1978년 ‘중일우호조약’에서 댜오위다오 영유권에 대해 단 한마디 언급조차 없었다. 중공은 주권을 방치했고 일본의 점령을 묵인해온 셈이다. 중공이 자주 동원한 것은 ‘항의’에 불과했고 군함이나 군대를 파견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다시 말해 만약 댜오위다오 영유권 귀속을 다투려 한다면 일본 정부와 중화민국(대만)정부 사이에 분쟁이 존재하며 중공은 줄곧 일본의 댜오위다오 영유권을 묵인해왔다. 그러나 중공은 최근 댜오위다오가 중국의 영토라고 크게 떠들어대며 댜오위다오를 수호하려는 대만의 활동에 반대하지 않는다고 했다. 중공은 이 문제를 이용해 대륙 내의 ‘애국주의(愛國主義)’를 선동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대만을 끌어당길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사실 중공은 댜오위다오 문제를 대만에 대한 통일전선을 위한 미끼로 삼았다.
둘째, 중공은 댜오위다오를 수호하려는 마잉주의 정서를 이용하고 있다. 마잉주는 일찍이 1970년대에 댜오위다오 수호활동에 참가한 적이 있고 나중에 미국 하버드 대학에 유학 갔을 때의 박사논문도 이 문제에 대한 연구였다. 또 댜오위다오에 대한 전문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중공 관방 사이트들이 “마잉주는 예전 그때처럼 여전히 열혈청년이다”, “댜오위다오를 수호하려는 마잉주의 피는 여전히 뜨겁다”는 등의 호평을 쏟아내는데, 분명한 것은 이것이 경제적인 매수와는 다른 정치적인 통일전선수법이자 중공이 국민당 고위층의 반대를 협조로 만들기 위한 책략의 일부라는 점이다.
셋째, 중공은 또 대만을 중일(中日)모순의 완충지대로 삼을 수 있다. 중공은 대일외교에서 극히 풍부한 임기응변식 책략을 갖고 있다. 즉, 은폐적인 방식으로 일본 우익들에게 일본과 대만을 통일하도록 조장해 중국인들의 분노를 유발시키고 ‘애국주의’를 격발한다. 중공은 이번 사건에서도 한걸음 한걸음씩 승격시켜 ‘애국주의’를 도발하고 이를 통해 일본과 교역하려 했다. 중공은 댜오위다오를 이미 되찾을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면서도 사건을 크게 만들어 대만측에 부담을 떠넘긴 후 한편으로는 일본과의 모순을 완화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대만에 인정을 베푸는 동시에 교활하게 매국의 모자를 벗으려는 것이다.
하지만 중공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점이 있다. 바로 대만에서 댜오위다오 수호 운동이 일어나고 대만 정부가 이를 극력 지지할 때 대만의 주권의식이 오히려 더 강해지고 자신의 민주적 성과를 더욱 소중히 여기게 된다는 점이다. 이렇게 되면 중공의 2012년 통일전선 계획에 대한 저항이 더욱 거세져 결국 파국을 초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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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 이식 관련 의료인과 과학자들이 모이는 세계 최대 국제회의에서 중국의 양심수 장기적출 문제가 중대한 윤리적 문제로 지적됐다. 캐나다 인권변호사 데이비드 메이터스(David Matas)는 지난 8월 17일 캐나다 밴쿠버에서 열린 세계장기이식대회(ICTS)에서 구금 중에 있는 중국 파룬궁수련생이 이식수술용 장기 공급원이 되고 있다고 밝혔다.
메이터스 변호사는 지난 2006년 7월 처음, 캐나다 8선 의원이자 아ㆍ태 담당 국무장관을 역임한 데이비드 킬고어(David Kilgour)와 함께 중국 내 장기적출 실태를 폭로했다. 이들은 보고서에서 2000년~05년까지 중국대륙에서 최소 6만여 건의 장기이식 수술이 집도됐고 이 중 상당수는 구금 중인 파룬궁수련생으로부터 강제 적출한 생체 장기를 사용했다고 밝혔다. 두 저자는 이후 4년에 걸쳐 추가 증거를 확보하고 저서 ‘블러디 하비스트’(Bloody Harvest ㆍ피비린 내 나는 장기적출)를 출간했다.
메이터스 변호사는 이번 세계장기이식대회(8월15일~19일)에서 중국 내 만연한 강제적출 실태에 대해 장기이식 분야 전문가와 학자들의 주의를 촉구했다. 말레이시아 장기이식 전문의인 가잘리 아흐마드(Dr. Ghazali Ahmad) 박사는 메이터스의 발표 후 90년대 중반 이후 말레이시아인들도 중국으로 원정장기이식을 가고 있다며 “환자들이 짧게는 2~3일에서 몇 주나 몇 개월을 기다리면 이식을 받는다”고 말했다. 아흐마드 박사는 “이식 후 장기거부반응을 걱정하는 환자들에게 며칠 만 기다리면 새 장기를 제공받는다고 통지한 경우도 있었다”고 밝혔다.
캐나다 장기이식학회는 세계적으로 이식 관련 전문가 집단으로는 처음 원정장기이식 관련 지침서(가이드라인)를 제정했다. 지침은 해외에서 장기이식을 원하는 환자에게 원정장기이식이 갖고 있는 윤리적 문제와 의료적 위험성에 대해 경고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지침은 “전반 원정장기이식은 높은 이윤을 얻기 위한 목적으로 비밀리에 이뤄지고 있으므로 브로커가 제시하는 장기공급자 정보가 정확한지 보장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또 지침에 따르면 윤리적, 의료적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환자가 원정장기이식을 고집할 경우 담당 의사는 장기 이식에 필요한 의료기록을 제공하지 않아도 된다.
또 원정 이식한 환자의 경우 의사는 응급상황을 제외하고 치료를 거부할 권한도 갖는다.
지침은 “많은 증거가 입증하다시피 제대로 규제가 이뤄지지 않는 체제 내에서 불법 장기적출은 환자뿐 아니라 장기 제공자에게도 상당한 해를 끼치고 있다. 따라서 의사는 이 경우 의료기록을 제공하지 않아도 된다”고 규정했다.
캐나다 일간 ‘글로브 앤 메일(Globe and Mail)’ 보도에 따르면 밴쿠버 세인트 폴 병원은 이번 지침에 따라 신장 이식이 필요한 환자에게 해외에서 장기이식을 받은 후에는 치료를 중지하겠다고 경고했다. 결국 이 환자는 중국 원정장기이식을 포기했다.
인권단체인 국제앰네스티는 이번 대회 현장에서 파룬궁수련생을 대상으로 한 장기적출에 관심을 기울일 것을 호소하며 제약회사에 중국에서 이식 관련 신약의 임상실험을 중지할 것을 촉구했다.
메이터스에 따르면 다국적 제약회사 노바티스(Norvatis)사는 국제앰네스티의 제안을 받아 들여 중국에서 이식 후 면역 거부반응을 줄이기 위한 항(抗)거부 반응제의 임상실험을 중지하기로 했다.
“당장 살해할 사람들 확보한 것”
지난 10년 간 세계적으로 중국으로 장기이식을 떠나는 ‘원정장기이식’이 성행했다. 메이터스와 킬고어는 조사 당시 중국 주요 병원의 웹사이트에서 “간과 신장 기증자를 찾는데 1~2주 밖에 걸리지 않고 수술 받은 장기에 문제가 생기면 1주 내에 재수술이 가능하다”는 광고들을 확보했다. 장기기증문화가 정착된 캐나다에서조차 간이식 환자의 평균대기시간은 2년 6개월이 넘는다.
저자들은 중국 내 혈연간 기증이 전체 이식건수의 1% 미만으로 드물고 장기기증이 정착되지 않은 점을 들어 광고처럼 대기시간이 짧기 위해서는 이미 혈액형 검사가 끝난 대규모 ‘장기기증 예정자’들이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즉 “이식용 장기를 위해 당장 살해할 수 있는 사람들을 확보하고 있다는 것”이다.
메이터스, 세계장기이식대회서 중국 양심수 장기적출 실태 발표
메이터스는 이번 대회에서 “중국정권이 장기 적출을 위해 죄수를 살해하는 점은 인정하면서 파룬궁수련생이 그 대상이라는 것은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에서 장기이식 건수는 파룬궁 탄압이 시작된 1999년 이후 급증했다. 중국 내 파룬궁 탄압 증거를 수집하는 국제인권조직인 ‘파룬궁박해 국제추적조사기구’(WOIPFG)는 중국 병원이 파룬궁 수련생의 생체 장기를 사용하는 사실을 인정한 전화 녹취를 발표했다. 이들 병원에는 톈진 동방장기의식센터, 상하이 중산(中山)병원, 허난 정저우(鄭州) 의과대학제일부속병원, 후베이성 의과대학 제2부속병원, 광저우군구 우한총병원(廣州軍區武漢總醫院) 등이 포함돼 있었다.
또 WOIPFG는 강제노동소에 수감됐던 파룬궁수련생들이나 다른 일반인들의 증언을 토대로 강제수용소에서 파룬궁수련생만을 대상으로 혈액검사를 실시한다는 증언을 확보했다. 실제 WOIPFG가 발표한 녹취에서 헤이룽장성 미산시 구류소는 장기를 구하는 해외 중국인으로 가장한 전화통화자에게 파룬궁수련생 장기를 공급해 줄 수 있다고 답변했다.
WOIPFG는 신분을 밝히지 않은 파룬궁수련생이 대규모로 강제수용소 등에 감금되면서 이들이 손쉬운 장기적출의 희생자가 됐다고 분석한다. 베이징공안부 소식통에 따르면 1999년 탄압이 시작된 이후 2001년 4월까지 탄압에 항의해 베이징에서 상방(민원)을 제기하기 하다 체포된 파룬궁수련생만 83만 명에 이른다. 파룬궁수련생들 중에는 연좌제로 직장 동료나 가족이 피해를 당하는 것을 막기 위해 성명을 밝히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베이징공안은 신원을 밝히지 않은 파룬궁수련생을 원 호구소재지로 송환할 수 없었고, 중국정권은 이런 수련생들을 비밀 지하감옥이나 강제노동수용소 등 전국 300여 곳에 감금했다. 결국 이들이 소위 ‘장기공급원’으로 희생된 것이다.
탄압이 시작되기 직전인 1998년 중국당국의 통계에 따르면 파룬궁수련생 수는 7천 만~1억 명 정도로, 당시 약 6천 만 명이었던 공산당 당원수를 능가했다. 1999년 당시 공산당 총서기였던 장쩌민은 공산당에 위협이 된다는 이유로 파룬궁 탄압을 지시했고, 현재까지 탄압이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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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공 당국이 정권에 불리한 행동을 하는 주민들을 3개 등급으로 나누어 통제키로 한 내부 문서가 폭로돼 비난이 일고 있다. 미국의 자유아시아방송(RFA) 지난 1일 보도에 따르면, 저장성 닝보(寧波)시 춘샤오(春曉)진은 상하이 엑스포를 앞두고 공식사이트에 새로운 ‘안정유지’ 방침을 게재했다.
방침에 따르면 ‘위험’ 주민은 3개 등급으로 분류되며 그중 레벨A는 공안이 24시간 감시해야 할 대상이고, 레벨 B는 민간 정보원이 감시할 대상이다. 레벨C 이하는 문제를 일으키지 않겠다는 각서를 제출받고, 현지 이탈시 자진 신고해야 하는 대상이다.이 같은 방침에 대해 춘샤오진 관리는 RFA와 전화통화에서 사실 무근이라고 없다고 밝혔으나 통화한 지 30분 만에 관련 자료들은 공식 사이트에서 사라졌다. 이 자료들은 그러나 네티즌들에 의해 각 게시판에 전재되고 있다.
상하이의 유명 인권운동가 펑정후(馮正虎)는 춘샤오진 같은 지방당국은 문제의 심각성을 모르고 내부 문서를 웹사이트에 공개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말했다. 이번에 ‘우연히’ 공개된 춘샤오진 내부문서는 중공 정권이 주민들을 통제하는 수법이 갈수록 체계화 되고 있고 통제 수위도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실제 저장성의 유명 독립 평론가 궈웨이둥(郭衛東)은 기차역 검문소에서 공안이 자신의 신분증 번호를 컴퓨터에 입력하자 감시대상 레벨3 경고가 떴으며 감시 전담 경찰의 이름과 핸드폰 번호가 함께 찍혀 있는 것을 목격했다고 말했다. 이는 그가 전국 어떤 곳을 가더라도 지정된 경찰의 특별 감시를 받게 됨을 의미한다.
궈웨이둥이 이 같은 사실을 트위터에 발표하자 네티즌들은 충격적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한 네티즌은 동독의 블랙리스트 제도를 연상케 한다며 중공 정권을 비난했다.
이 같은 보안 체계를 유지하는 데 중공 정권은 거액의 자금을 투입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지난 3월 중국인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작년 중국 국내의 치안 유지비용은 군비에 상당한 5천억 위안을 넘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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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渤 海 人
● 남북한 사돈 될 뻔한 이야기
2004년 4월 둘째주 토요일 아침. 러시아 블라디보스톡 소재 현대호텔에서 필자의 아들과 같이 아침식사를 한 후 혼자서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누가 어깨를 탁 치면서 “원장 선생, 여기서 또 만났소”라고 한다.
돌아보니 이틀전 하바로브스크 국립철도종합대학이 주최한 「동북아 물류시스템 세미나」에서 만난 북한 철도 고위관리(차관급) 李OO이다. 이 사람은 북측 대표로 철도뿐만 아니라 서방세계에 대하여 놀랄 정도로 박식하여, 필자가 대학총장인 레온티예브(Leontiev)에게 일부러 소개를 부탁하여 총장실에서 같이 30분 정도 환담을 하기도 했다.
“아니, 당신이 여기에 어떻게 왔어?”라는 질문에 그는 “오늘 이른 아침 기차로 도착했다”면서 같이 행동하는 일행 2명과 함께 남조선 기업이 운영하는 현대호텔에서 큰맘 먹고 부페식 아침식사를 마치고 일행 2명은 지하층에 쇼핑하러 가고 자기는 저쪽 구석에서 우리 부자가 식사하는 것을 진작부터 지켜보고 있었다고 했다.
“방금 나간 젊은이는 누구요?”라고 묻길래, 우리 아들인데, 왜?”라고 답하니, 자기는 외동딸이 하나 있는데, 과년하여 결혼할 때가 되니 언제부터인지 젊은 청년만 보면 사위감으로 가늠해 보는 몹쓸 버릇이 생겼다면서 계면쩍어 했다.
“그 녀석 진짜로 잘 생겼네. 아버지는 꼭 산적같이 임꺽정이 닮았는데, 아버지와는 전혀 다르네”라는 그의 말에, 필자는 “나를 닮지 않고 외탁을 했다”라면서 “딸은 지금 평양에 있는가?”라고 질문하였고, 그는 “중국 심양에서 외화벌이 일꾼으로 일하고 있다”고 답했다.
필자는 “그렇다면 칠보산 관광호텔 아니면, 서탑거리에 있는 북한식당인데.... 내가 그쪽 사정을 잘 아는데 이氏 성을 가진 사람은 칠보산에는 없고, 평양식당과 대성식당, 모란봉식당에 각 한 명씩 있는데, 이중에서 누구일까?”라고 말했고, 이에 그는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OO식당 지배인 이금빈(가명)을 아느냐?”라고 물었다.
필자는 “어.... 그 녀석은 작년에 수양딸 삼았는데, 그렇다면 당신이 금빈이 아버지....?”, 그를 다시 보니 부녀간에 닮았다.
금빈이는 평양 외국어대학 출신으로 영어와 중국어ㆍ러시아어에 능통하고 인물도 빼어나서 필자도 OO식당을 갈 때마다 남북이 통일되면 이 녀석을 내 며느리로 삼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금빈이에게 아들 자랑을 자주하여 식당 접대원들은 필자가 나타나면, “지배인님, 남조선 시아버님 오셨어요!”라고 놀리곤 했다.
그날 아침, 필자는 휴대폰으로 심양의 금빈이에게 “서울에 아버진데, 네 진짜 아버지 바꿔줄게!”라면서 李박사(그는 러시아에서 공부한 공학박사다)에게 전화를 건네니, 그는 “네가 어째 이 사람을 아느냐?”며 나를 보길래, 얼른 자리를 비켜주니 족히 20분 가량을 통화한 것 같았다.
그날 오후, 귀국길에 공항에서 아들에게 오늘 일어난 일을 설명하면서, 같이 심양에 한 번 놀러 가자고 했더니, 녀석이 두말 않고 여름방학때 가보자고 했다.
그해 8월 우리 부자는 신의주 건너편인 단동을 구경하고, 필자와 심양市가 공동으로 건설한 소가툰의 “한ㆍ중 농업연수원”에 들려 특강을 해주고 다음날 점심때 OO식당을 찾아 가니 금빈이는 얼굴이 홍당무가 되어 벽 뒤쪽에 숨어버렸다. 겨우 불러내서 처녀ㆍ총각 인사를 시켰고, 식당은 웃음바다가 되었다.
식당을 나오면서 가져간 화장품 세트를 금빈이 손에 쥐어주면서 “우리 아들 첫인상이 어떻냐?”는 질문에, 금빈이는 평양의 아버지로부터 전해 들었다면서 “참 잘생겼네요. 그런데 한가지 흠은 김정일 지도자처럼 허리가 굵지 않고 가는 것은 평양 처녀들이 좋아하지 않지만 남조선에서는 허리가 가늘어야 한다면서요”라고 했고, 아들은 금빈이를 보고 “미스코리아 뺨치겠네요”라고 했다.
세월이 흘러 2년이 지난 2006년 7월 핸드폰으로 번호가 확인되지 않는 전화가 왔다. 금빈이 아버지였다.
그는 지금 체코 프라하에 와 있다면서 “진짜로 우리 금빈이를 며느리 삼을 수 있는가?”라고 물었다. 필자는 “그때 우리들의 이야기는 통일된 이후의 희망사항으로 해본 소리가 아니냐”라고 답하면서 “만약 금빈이가 북한에 있지 않고, 당신이 좋다면 당장 며느리로 삼을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자기 부부는 딸이 우리 아들 찾아 떠나는 날, 딸의 행복을 위하여 먼 나라로 가겠다”고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이후 금빈이는 평양 고위층 자제와 강제결혼했고, 아버지는 딸의 혼사와 관계없이 얼마 후 행방불명 되었다.
또 다른 얘기 하나
● 당신은 조상님께 큰 죄를 지었소(?)
서울 노원구에 4성급 관광호텔을 운영하는 洪회장이라는 분이 있다.
이 사람은 한 때 정치에 꿈이 있어 꽤나 여의도에 투자를 한 모양이다. 근래들어 그 꿈을 포기하고 태릉쪽에 러브호텔을 몇 개 지어 소득이 짭잘하다고 부끄럼 없이 표현하고 있다.
또한 양평쪽에는 대규모 펜션을 한다고 하도 자랑을 하여 한번 찾아갔더니, 펜션 구역 한 편에 가족들 별장을 여러 개 지어 아들 3형제, 딸 3자매 등 6남매에게 각각 무상분양 했다고 했다. 보기에 자식농사는 제대로 지은 것 같았다.
그런데 황당하고 웃기는 것은 펜션 한가운데 규모가 상당한 거북이 모양의 2층 건물을 지어 머리와 양쪽발 4개와 꼬리부분에 큰방을 하나씩 6개와 거북이 배에 해당하는 중앙에는 대형 응접실을 만들었는데, 이곳에 전직 6자회담 대표(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남ㆍ북한)들을 불러 모아 허심탄회하게 부담 없이 남ㆍ북한 평화통일과 동북아 질서를 논하기 위한 목적으로 건설했다고 했다. 건물이름은 「三統」이라고 큰 간판을 달아 두었다.
당신께서는 남은 여생을 “渤海의 海東盛國”을 위하여 투자하겠다면서, 필자를 따라 극동러시아와 중국 동북3성 등을 제대로 둘러 볼 것이니 안내를 부탁한다고 했다. 또 압록강 중류에 있는 위화도에 「통일대학」을 건설한다고 이미 朝ㆍ中 양국으로부터 허가를 받았다고 서류를 보여주기도 하였다.
얼마후 자신의 관광호텔 직영 레스토랑 ‘연해주’에서 주변사람들과 같이 식사를 하면서 “내 팔자는 세계 각국에 씨앗을 뿌려 최소한 나라마다 한 명씩 만들어 100명의 자식을 둔 황제로 군림하는 것인데, 그만 정치에 미쳐 20여년을 허송하였다면서 지금부터 실천하겠다”고 했다.
그는 작년 이른봄 연해주에 출장가는 필자를 따라왔다. 씨앗사업의 첫 출정이란다.
도착 첫날 그는 극동러시아, 몽골, 중국 동북3성 등 요지마다 표시를 한 지도를 보여주었는데, 바로 표시 지점이 자신의 씨앗을 뿌릴 곳이라고 했다. 족히 100곳이 될 것 같았다. 그는 용모와 기혼, 연령과 관계없이 수태능력이 있는 여자면 되고, 가방줄이 짧더라도 머리(IQ)가 좋으면 된다고 했다. 아기를 낳으면 미화 1만달러를 준다는 계약서도 준비했다.
대화도중 불쑥 필자에게 “당신은 조상에게 큰 죄를 지었을 뿐만 아니라 인생을 헛살았소”라고 말했다. 그 이유는 “당신이 20여년 동안 러시아를 150여회 다닐 때 동네마다 씨앗을 뿌려두었으면, 최소한 2∼30명은 되었을 텐데, 지금쯤 그 얘들을 소집하여 블라디보스톡에 있는 아들한테 인계해주면 큰 조직이 될 것이고, 그 중에는 틀림없이 세상을 호령하는 인물이 나오지 않겠느냐”라는 논리였다. 그러면서 “향후 이 아이들을 앞세워 연해주 점령임무를 맡기면 될 것인데 아쉽다”라고 했다. 특히나 “러시아는 모계중심사회라서 돈만 주면 키우기도 쉬웠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부인이 알면 큰일 날일이지만, 조상님께서는 어느 쪽을 칭찬하겠느냐”고 물었다.
생뚱맞은 질문에 필자는 말문을 잊었다.
다음날 우수리 바쟐(흔히 중ㆍ소 국경시장이라고 함)에서 洪회장의 자식을 낳아주겠다는 참한 러시아 여인네를 찾아 그날밤 신방을 꾸미도록 조치해 주었다. 이후로는 혼자서 열심히 다니는 모양이다. 계산대로라면 洪회장이 90까지 살면 러시아의 큰 아들이 23세가 될 텐데, 세상사람들은 이처럼 황당하고 무모한 일에 욕을 할까, 칭찬을 할까 내 자신도 헷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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