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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에 해당되는 글 67건
- 2007.05.31 인생깨달음: 욕설을 너그럽게 대하다 1
- 2007.05.23 우물과 강물의 싸움
- 2007.05.22 열선소전 장삼풍(2)
- 2007.05.22 열선소전 안기생2편
- 2007.05.22 마명생-2편
- 2007.05.14 열선소전: 안기생(1)
- 2007.05.14 열선소전: 장삼풍(1)
- 2007.05.14 [열선소전] 마명생 편
- 2007.05.14 [고사성어] 화룡점정(畵龍點睛) 1
- 2007.05.14 [생각하는 삶] 아름다운 신의 1
- 2007.03.31 억울하게 사람을 죽이니...
- 2007.02.27 고구려 영토<펀글> 2
- 2007.02.05 여자에 관한 속담
- 2007.01.26 죽마지우
- 2007.01.21 윤봉길의사
- 2007.01.12 넓고 정직한 마음 1
- 2007.01.12 걱정도 팔자
- 2006.12.28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관용과 겸허
- 2006.12.28 명예를 위해 자신을 속이지 마라
- 2006.12.28 사나이로 세가지를 버리다
글
작가 : 관명(貫明)
매 사람마다 모두 같지 않은 사상경지가 있다. 인간세상의 걸출한 인물과 수련 과정 중의 사람은 자신의 수양과 수행을 강화하는 것을 통해 아주 높은 경지에 이를 수 있다. 현실 생활 중에서 생생세세(生生世世)의 인연관계 때문에 사람들은 악의적인 욕설, 공갈, 중상(中傷), 질투, 혹은 질책 등을 완전히 모면하기란 아주 어렵다. 욕설을 마주했을 때 어떠한 심리 상태와 방법으로 대응하는가는 그 사람의 사상 경지의 높고 낮음에 따라 완전히 달라진다.
역사서적의 기재에 따르면 송(宋)대의 명신인 부필(富弼)은 젊었을 때 도량이 아주 넓었다. 어떤 사람이 그를 욕할 때면 못 들은 척 했고 자기가 해야 할 일만 열심히 했는데 마치 아무것도 못 들은 것 같았다. 한번은 아주 흉악한 사람을 만났는데 아무런 이유도 없이 그에게 욕을 했다. 곁에 있던 누가 부필에게 말해 주었다. “저 사람이 지금 당신을 욕하고 있어요!” 부필은 도리어 “천하에는 동명이인이 많으니 부필이 꼭 나라고 할 수야 없지요.”라고 말했다. 욕설을 퍼붓던 그 사람은 부필이 거들떠보지도 않자 아주 부끄러운 생각이 들어 더 이상 욕하지 않았다.
만일 부필이 당시에 날카롭게 서로 맞서 한마디씩 욕을 했다면 반드시 모순이 격화되어 대판 싸움이 벌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평온하고 태연한 마음으로 참고 양보한다면 상대방의 노기도 얼음 녹듯 풀릴 것이고 나쁜 인연도 선해될 것이다. 참을 수 있고 양보할 수 있는 자는 그 덕이 반드시 클 것이요, 무릇 일에 부딪쳐 참지 못하는 자는 그 흉금이 아주 좁을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 세상에서 가장 하기 어려운 것이 바로 치욕을 참아내는 것이다.
석가모니 부처가 세상에 내려와 사람을 구도하고 있을 때 전해지던 말이다. 한 시기 늘 어떤 사람이 질투하면서 욕을 했다. 이에 대해 석가모니 부처는 편안히 침묵하면서 태연하게 대했으며 사람을 구도하는 일만을 열심히 했다. 어느 날 욕을 하다 지친 그 사람에게 석가모니 부처가 미소를 머금고 물었다. “친구여,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물건을 보냈으나 그 사람이 굳이 사양한다면 이 물건은 누구에게 속하는가?” 그 사람은 생각해 보지도 않고 대답했다. “당연히 물건을 보낸 사람의 것이지요.” 석가모니는 말씀하셨다. “맞습니다. 그렇다면 오늘까지도 당신이 줄곧 나를 욕했는데 내가 만일 당신의 욕설을 받아 주지 않는다면 이 욕은 누구에게 속하는 것이오?” 지혜와 자비로 충만한 석가모니의 오묘한 질문에 그 사람은 일시 할 말이 없게 되었고 그 후 더 이상은 감히 석가모니를 욕하지 못했다.
인식공격성 욕설을 마주하여 부필(富弼)이나 석가모니처럼 그렇게 태연한 사람은 아주 적다. 그러나 냉정히 생각해보면 즉시 깨달을 수 있는바, 만약 침착하지 못하고 조급하여 이에는 이로 갚는 식으로 맞받아 욕을 한다면 사실 이는 무지한 행위이다. 만약 욕설에 마주하여 싱긋 웃어 주거나 평온한 말로 욕설을 가볍게 무시할 수 있다면 그것은 바로 지혜로운 사람의 풍격을 갖춘 것이다. 만약 욕설에 마주하여 마음이 평온하고 행동이 태연하게 대한다면 그것은 바로 각자(覺者)의 대(大) 지혜이다. 물론, 한 보통사람이 수련하지 않는다면 영원히 대각자가 지닌 그런 지혜란 있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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列仙小傳(22) 장삼풍(張三豊) (2) | |
촉 헌왕 주춘의 예물에 대한 답례로 장삼풍은 품속에서 한 손 가득 대추를 꺼냈다. 그 대추들은 반쪽이 붉고 반쪽은 푸른데 모두들 한 나무에서 자란 것들이었다. 그 자리에 참석한 손님들은 비록 뜻밖이라고 느꼈으나 장삼풍이 사전에 몸에 감추고 있었다고 여겼으므로 그리 신기한 것이 못된다고 생각했다. 이때 장삼풍은 연회석에서 황금 잔 하나를 들고는 다른 사람들에게 마당의 흙이 있는 곳으로 나가도록 하였다. 장삼풍은 입안에 손을 넣어 이 하나를 뽑아내어 흙속에 묻었다. 이를 흙속에 묻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이에서 푸른색 싹이 트더니 자라기 시작하여 연잎이 되었다. 그 연잎에서 꽃대가 하나 쑤욱 올라오더니 연꽃 한 송이가 피었다. 연꽃 송이는 큰 쟁반만 하였다. 연꽃의 꽃 판은 매 판마다 가지각색의 반점이 있으며 꽃 판이 점점 많아지더니 거의 천개에 육박하였다. 연꽃의 휘황찬란한 빛깔이 집안에 가득하며 맑은 향기가 퍼져 나왔다. 그 자리에 참석한 많은 손님들은 이때서야 비로소 충심으로 기뻐하면서 심복하였다. 촉 헌왕 주춘 또한, 몸소 붓을 들고 시를 지어 장삼풍 진인에게 선물하고 이 날의 성대한 광경을 기록했다. 죽은 장삼풍의 관속에는 시체가 온데 간데 없고 장삼풍이 사천성에서 이러한 도술을 펼치고 있다는 소문이 들려올 때 장삼풍은 이미 한 번 죽었다고 한다. 이 때가 명나라 홍무(洪武) 24년 (1391) 9월이었다. 장삼풍은 죽기 전에 제자들에게 게송까지 남겼다. 죽은 후, 제자 양궤산(楊軌算) 등이 염을 하고 입관했다고 한다. 사천에서 들려오는 장삼풍의 기이한 소문을 듣자 제자들은 감히 믿을 수 없었다. 그래서 마음을 크게 먹고 제자들은 사부 장삼풍의 관을 열어 보았다. 그런데 관속은 텅텅 비어 있었다. 이러한 소식이 경성에 전해지자 명태조 주원장은 사람을 시켜서 장삼풍을 찾았으나 이때부터 장삼풍의 행방이 묘연했다고 한다. 장삼풍 진인은 명나라 초기에 호북성 무당산(武當山)에서 도교 사업을 부흥시켰으며 그 곳에서 전국최대의 도관을 세웠다. 장삼풍이 일찍이 무당산을 방문했을 때 도관이 전쟁으로 피폐해져 잡초만 무성했다. 그러나 그는 제자들에게 “너희들은 이곳을 떠나지 말라, 이곳은 앞으로 크게 흥성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장삼풍 진인 기념관을 무당산에 짓다 명나라 영락제 때 사람을 보내 장삼풍 진인을 다시 찾았으나 종적이 묘연하여 무당산에 ‘태화궁관’(太和宮觀)을 지어 진인의 뜻을 받들었다. 이때부터 무당산은 도교활동의 중심 무대가 되었다. 명 영종 때에는 장삼풍 진인을 기리는 제사를 지냈으며 그리고 ‘통휘현화진인’(通徽顯化眞人)이라는 법호를 내렸다. 최근에 중국을 시작으로 하여 전 세계에 “법륜대법”(法輪大法: 파룬궁)을 전하고 있는 이홍지(李洪志) 선생은 장삼풍 진인의 태극권과 관련하여 의미심장한 시 한편을 지었는데 한 번 음미해 보시기 바란다. - 태극(太極) - 진인개세장삼풍(眞人蓋世張三豊) 진인 장삼풍의 명성, 세상을 뒤덮었는데 대도무적천지행(大道無敵天地行) 큰 도를 천하에 펼칠 때 적이 없었다 후세위명난권법(後世爲名亂拳法) 후세 사람들, 명예를 위해 권법을 어지럽히는데 개오태극괴오명(改吾太極壞吾名) 나의 태극권을 고치고 내 이름을 무너뜨리는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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列仙小傳(24) 안기생(安期生) (2) | |
진시황은 장생을 일심으로 추구하다가 불로장생술에 푹 빠졌다. 일찍이 각 지방의 많은 방사(方士)를 찾아가곤 하였다. 이제 다행히 신선 안기생의 허락을 받자 신선과 인연이 닿게 될 것이라 여겼다. 진시황은 뛸 듯이 기뻐하면서 한 무리의 선단(船團)을 동해로 파견하여 자신이 갈 길을 미리 개척하도록 했다. 그러나 먼저 간 한 무리의 사자들이 ‘봉래산을 보았으나 다만 배를 해안에 댈 수 없다.’고 보고하는가 하면 또 바다 가운데 큰 상어가 있어 부대를 더 많이 보내야 한다고 하는 등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심지어 어떤 무리의 사자들은 한번 가고는 종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진시황은 이때부터 꼬박 10년을 시도하였으나 죽을 때까지 봉래산을 찾기는커녕 안기생의 얼굴도 다시는 볼 수 없었다. 한무제도 삼신산을 찾았으나 세상에는 같은 일이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듯이 진시황이 죽고 백년 쯤 세월이 흐르고 난 후, 다시 안기생을 몹시 만나고 싶어 하는 군주가 있었는데 이 사람이 바로 신선도에 푹 빠진 한무제(漢武帝) 유철(劉徹)이다. 한무제는 방사 이소군(李少君)을 불러 신선들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이소군은 일찍이 동해상에서 ‘안기생을 우연히 만났는데, 안기생이 그에게 선조(仙棗: 신선들이 먹는 대추)를 주어 먹게 했다. 그러나 안기생은 봉래산 가운데 살고 있는데 성격이 괴상하여 뜻이 맞는 사람은 만나보고, 뜻이 맞지 않으면 숨는다’고 한다. 이 말은 곧 찾아내기가 어렵다는 말이다. 이 말에 한무제는 오히려 흥취가 일어나는 듯 몸소 목욕재계하여 제사를 지내고 방사들을 동해로 파견하였다. 수년이 흐르고 방사 이소군도 병들어 더 진척되지 않아 일단락된 사건이 있었다. 천세옹(千歲翁) 안기생의 내력 신선 안기생은 진시황이나 한무제가 몹시 만나기를 갈구하던 신선이다. 고서적 중에는 안기생을 또 ‘안기’(安期)선생이라고 한다. 사마천의 ‘사기, 악의전(樂毅傳)’에서는 악의 가족 중에는 악하공(樂瑕公), 악신공(樂臣公)이 있는데 전국시대 말기 제나라 황노지학(黃老之學: 도가)의 종사(宗師)라고 한다. 그 가르침의 연원도 기록돼 있다. 하상공(河上公)이 안기생을 가르치고, 안기생이 모흡공(毛翕公)을 가르치고, 모흡공이 악하공을, 악하공이 악신공을 가르쳤다고 한다. 여기서 하상공의 내력에 대해서는 사기의 저자 ‘사마천’조차 그 출신을 모른다고 하였다. 다만 갈홍(葛洪)이 쓴 포박자(抱朴子)에서는 안기생은 수련과 음식, 단약(丹藥) 등에 의지해 장생을 얻었으며 인간세상에서 일 천년 이상 살았다고 한다. 혼원성기(混元聖紀)라는 책에는 안기생의 도술이 마명생(馬鳴生)에게 전해져, 마명생, 음장생(陰長生), 갈홍으로 이어지는 일맥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전설에 따르면 안기생은 동해상에만 거주한 것이 아니다. 중국 남쪽, 북쪽을 망라한 많은 지방에 그의 종적이 남아있다. 예를 들면 하남지방의 어떤 사람은 안기생에게서 큰 대추를 얻었는데, 연이어 3일을 구워야 비로소 완전히 익었다고 한다. 그 향기가 10리를 갔으며 병자가 먹으면 낫는 것은 물론 죽은 자도 먹으면 환생하였고 건강한 사람이 먹으면 백일비승(白日飛昇)한다는 전설이 떠돌았다. 아무튼 안기생은 많은 서책에 등장하고 있는 높은 선비(高士)이면서 도를 닦아 자신을 깊이 감춘 선인이라 추측할 뿐이다. (다음 호에는 신선 정령위 편으로 이어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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列仙小傳(25) 마명생(馬明生) (2) | |
[대기원]젊은 여자가 마명생(馬明生)을 데리고 들어간 동굴(石室)은 지면에서 수백 미터 높이였고, 동굴 아래와 위 모두가 직립으로 솟아 있는 절벽이었다. 그 여자는 마명생의 손을 잡아 당기더니 몸을 날려 위로 올라가는데 마치 평지를 밟고 가는 것 같았다. 동굴 안에 들어가자 그 안에는 황금으로 된 침상과 옥으로 만들어진 기물 등 세상에서는 보기 드문 진기한 가구들이 놓여 있었다. 마명생은 자청해서 그 여자의 하인이 되었다. 하인이 된 이유는 우선 그 여자가 자신의 목숨을 구해 주었기 때문에 은혜를 갚기 위해서였으며, 두 번째는 그 여자가 자신의 외상을 치료하기 위해 펼쳐 보였던 신기하고 효험 있는 의술을 배우기 위해서였다. 마명생은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러한 사실을 보고 신선을 만난 것이 틀림없으며 자신도 신선이 될 희망이 있다고 느꼈다. 이에 마명생은 그 여자와 함께 동굴 속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아침, 저녁으로 물 뿌리고 청소하고 심부름 하는 등 하인으로서 맡은바 책임을 다하는 데 조금도 게으름이 없었다. 젊은 여자가 여인으로 또 요괴로 변해 고험하다 그 젊은 여자는 귀신이나 요괴, 호랑이, 여우 등으로 변신하여 마명생을 고험하였으나 정신을 안정시키고 기운을 고요히 하여 추호도 두려움이 없었다. 그녀는 마명생한테 밖으로 나가 일을 처리하도록 시키기도 하였다. 또 잠을 잘 때는 아름다운 여인으로 변하여 집적거리거나 희롱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마명생은 마음이 굳세고 뜻이 견정하여 조금도 흔들림이 없었다. 그들이 머물고 있는 동굴 속으로 자주 놀러오는 여자 신선들이 있었는데 그들이 올 때는 늘 용과 봉황을 수레로 삼아 타고 왔다. 손님을 접대하기 위해 그 여자가 순식간에 풍성한 잔칫상을 베풀었는데, 상위에는 이름도 모르는 가지가지 진기한 안주와 과일이 놓여 있었다. 도대체 그것들을 어디서 가져왔는지 알 수 없었다. 공중에서는 비파소리와 노랫소리가 들려오는데, 은근하면서도 감동적이었다. 때때로는 그 여자가 몸소 거문고를 타면서 술좌석의 분위기를 돋우었다. 거문고 소리는 그 소리가 아름답고 묘하여 더욱 분위기를 고조시켰으며 멀리 몇 리 밖까지 전해졌다. 그 소리에 새들이 사방에서 몰려와 동굴 밖에 구름처럼 모였다. 흰 용을 타고 외출을 하다 새들을 쫒았으나 새들은 흩어지지 않았다. 평상시에 그 여자는 마명생과 함께 동굴 속에 거주하였으며, 밤이 늦어 잠을 잘 때에는 같은 방이었으나 침대를 달리 하였을 뿐이다. 어떤 때 그 여자는 돌연 10일이나 반달씩 외출하였으나 마명생에게 어디 가는지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없었고, 늘 하얀 용(白龍) 한 마리가 동굴 문 앞에서 기다리다가 영접하는 것이 보였다. 그 여자가 구름무늬의 비단 장포를 입고 흰 용의 등위에 올라앉으면 용은 공중을 날아올라 사라진다. 돌아 올 때에도 흰 용을 타고 오는데, 그 여자가 용의 등에서 내려오면 흰 용은 비로소 어디론가 사라진다. 그리고 동굴 안의 옥으로 만든 상위에 있는 자주색 비단이불, 붉은 색 장막, 장막안의 의복이나 기물 등은 모두 이 세상에서 본 적이 없는 진기한 것들이었다. (다음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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列仙小傳(23) 안기생(安期生) (1) | |
독자 여러분도 일찍이 진시황이 서불(徐市), 노생(盧生) 을 파견하여 삼신산(三神山)을 찾게 했다는 옛날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을 것이다. 신선이 산다는 이 세 개의 산이 바로 봉래(蓬萊), 영주(瀛洲), 장(方丈) 등 3개의 섬이다. 동해 밖에 있는데 모두 술병처럼 생겼고 그 위에 수많은 신선들이 살고 있다고 한다. 전설에 따르면 원래 이 신비한 산은 다섯 개였다. 매산 하나마다 세 마리의 어마어마하게 큰 거북이가 등을 바치고 있었다. 총 열다섯 마리 거북이가 다섯 개 산을 받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용백국’(龍伯國)의 거인이 와서 거북이 여섯 마리를 낚시로 낚아갔다. 그 결과 산 두 개가 바다에 떠내려 가다가 가라앉았다고 한다. 그때 남아있던 봉래산 등 세 개의 산은 멀리서 바라보면 구름 속에 있는 것 같으나 배를 저어 가까이 다가가 다시 보면 오히려 바다 물밑에 있는 듯했다. 요즈음 사람의 눈으로는 이것을 신기루와 같은 환상이라고 추측할 것이나 옛날 사람들은 이것을 해석할 길이 없어 가지가지 전설을 낳았을 뿐이었다. 삼신산을 찾으려 하였으나 진시황은 왜 백성들이 혹사당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고 수만 금의 재물을 세금으로 걷어 한번에 천명 이상의 사람을 파견하여 삼신산을 찾게 하였는가? 이에 대한 대답은 서책마다 다르다. 혹자들은 서불이 진시황에게 감언이설로 권했기 때문이라고 하며, 혹자는 진시황이 귀곡자(鬼谷子)를 만났을 때 신선이 사는 그곳에 불사초(不死草)가 있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라 한다. 또 전국시대에 제나라, 연나라 등의 임금들이 신선들이 산다는 동해 가운데 있는 방장산 등을 찾기 시작했다 한다. 따라서 진시황은 단지 그들의 전례에 따라 했을 뿐이다. 다만 열선전(列仙傳)에는 다른 설명이 있다. 진시황이 삼신산을 찾으려 하는 이러한 배경에는 사전에 어떤 약속이 있었기 때문이라 한다. 그 약속의 상대가 바로 유명한 신선 ‘안기생’(安期生)이다. 약파는 신선, 천세옹(千歲翁) 안기생 신선 안기생은 산동성 낭야 부향(阜鄕)사람이다. 바닷가 동해 일대에서 약(藥)을 팔았다. 안기생이 파는 약을 사서 먹은 사람은 매우 영험이 있어 당시 그 일대 사람들에게 안기생은 몹시도 숭배받는 대상이었다. 심지어 세간에서는 안기생은 이미 연세가 천세가 넘었다고 소문이 났다. 해서 존칭으로 ‘천세옹’(千歲翁)으로 불렸다. 당시 중원을 통일하고 천하를 순행하던 진시황도 동해에 도착했을 때 안기생의 고명한 이름을 이미 알고 있었다. 진시황은 안기생을 초청해서 3일 밤낮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한다. 진시황의 얼굴에는 커다란 기쁨의 미소가 넘쳤고, 안기생에게 수 천만전의 황금과 값진 구슬을 상으로 내렸다. 이에 안기생은 상으로 받은 값진 보물들을 모두 부향의 역참 내에 남겨두고 말없이 떠났다. 그리고 편지 한 장을 남기고, 보답으로 붉은 옥으로 만든 신발을 하나 남겨 놓은 채 종적도 없이 사라졌다. 진시황이 안기생이 남겨놓은 편지를 펼치니 그곳에는 “몇 년이 지난 후 봉래신산(蓬萊神山)으로 나를 찾아오라”고 쓰여 있었다. (다음 호에 계속) 김일륜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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列仙小傳(22) 장삼풍(張三豊) (1) | |
동한(東漢)때부터 교단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도교는 금나라, 원나라에 이르러 크게 정일교(正一敎)와 전진교(全眞敎), 양대 교파로 나누어진다. 지역적으로 대체로 양자강과 회수(淮水) 남북지역을 경계로 한다. 남쪽은 정일교 위주였고, 북쪽은 전진교 위주였다. 정일교는 주로 도가전적, 단약(丹藥)을 만들어 복용하거나 부적 등을 채용하였다. 전진교는 자신의 도덕수양이나 수련을 중요시하였다. 원나라 말기나 명나라 초기에는 이들 양대 교파가 교류하고 융합하는 추세가 일어났는데 그때 상당한 역할을 한 대표적 인물이 바로 장삼풍(張三豊) 진인이다. 태극권의 창시자 한편 몇 년 전 중국 영화배우 이연걸이 주연한 ‘태극권’이라는 영화가 전 세계에 인기리에 상영된 적이 있다. 이 태극권의 창시자가 장삼풍 도인이다. 무협지에는 중원 팔대문파 중, 무당파의 개파 조사로 그 이름이 무수히 등장하여 보통사람들 귀에 익숙할 것이다. 장삼풍의 이름은 ‘전일’(全一), 호는 ‘삼풍’(三豊)이다. 어떤 사람들은 그의 이름이 ‘군보(君寶)’이고 ‘전일(全一)’은 그의 자라고도 한다. 또 이름이 ‘통(通)’, ‘금(金)’, ‘현일(玄一)’이라고도 하는데 하나뿐 아니라 상당히 많다. 낡은 장삼과 풀로 만든 모자를 쓰고 민간에 전해져 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장삼풍은 외관을 꾸미지 않았으며 추위와 더위를 불문하고 늘 한 벌의 다 찢어져가는 장삼과 풀로 엮어서 만든 낡은 모자를 쓰고 다녔는데 시간이 오래되자 낀 때가 반들반들 하게 되어 광이 날 정도였다고 한다. 이 때문에 ‘장납탑’(ZHANG LA TA : 불결하다, 지저분하다는 의미)이라는 이름을 하나 얻었다고 한다. 장삼풍의 본적이 요주(遼州), 의주(懿州), 보계(寶鷄) 등이라는 주장이 있고 심지어 사천, 호북, 산서 등도 그의 고향이라는 주장이 있는데 정확히 고증하기는 어렵다. 장삼풍이 득도한 시기조차도 송나라, 금나라, 원나라 때라는 각기 다른 주장이 있다. 이러한 불명확한 주장들은 오히려 그의 신비한 면을 나타내기도 하면서 그가 천하를 널리 주유했다는 것을 반영한다. 종적도 또한 일정하지 않다. 한 번 먹으면 수 개월을 먹지 않다 흔히 신선들에 대해 이야기하다보면 기이한 행적과 술법들이 등장하는데 장삼풍도 자연히 예외가 아니다. 밥을 먹으면 한 자리에서 잠깐 동안 솥단지 채로 먹어치웠는데 몇 달 동안은 아무 것도 먹지 않았다고 한다. 하루에 천리를 갈 수 있었고, 각처에 분신(分身)이 동시에 나타났다. 무슨 약을 쓰던지 병을 낫게 할 수 있었고 늙음을 되돌릴 수 있는 회춘의 묘술이 있었다. 죽어가는 병자를 소생시켜 걸어갈 수 있게 하였는데 이러한 불가사의한 일화들이 많이 전해져 온다. 명나라가 세워지고 촉(蜀) 헌왕(獻王)으로 봉해진 주춘(朱椿)은 명태조 주원장의 열한 번째 아들인데 여러 왕자 중에서 비교적 취미가 고상하고 손님을 잘 대접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주원장은 헌왕(獻王) 주춘(朱椿)을 ‘독수재(獨秀才)’라는 별명으로 불렀다. 이 독수재 주춘이 촉땅 사천에 있을 때 장삼풍을 손님으로 초청해서 환영의 자리를 성대히 마련했다. 그 자리에 참석한 사람들은 진기한 물건들을 선물로 내놓았는데 모두 그 진귀함에 찬탄할 뿐이었다. 이에 대한 답례로 장삼풍이 자리에서 일어나 “빈도(貧道) 또한 변변치 못한 선물을 준비하였사온데 원컨대 전하께서는 웃음으로 받아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하였다. (다음 호에 계속) 글/김일륜 기자 삽화/박영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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列仙小傳(25) 마명생(馬明生) (1) | |
[대기원]마명생(馬明生)은 동주(東州) 전국시대 제나라 임치(臨淄)사람이다. 본래 성은 '화'(和)씨이고, 이름은 '군실'(君實)이라고도 한다. 젊었을 때 '화군실'은 일찍이 현의 관리가 되었다. 한번은 도둑을 잡다가 도둑과 격투가 벌어졌다. 궁지에 몰린 도둑이 칼로 화군실의 가슴 부위를 찔렀다. 곧 화군실은 혼절하여 생사가 오락가락 하였다. 화군실이 혼미한 상태에 빠진 지 상당한 시간이 흘렀다. 그러던 어느 날 정신이 차츰 들었다. 눈을 뜨고 주위를 둘러보니 곁에는 16-7세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서 있었다. 몸에는 눈에 확 띄는 화려한 옷을 입고 있었고, 얼굴은 생기발랄하면서도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정신이 돌아온 화군실에게 그 여자아이가 물었다. "당신은 무슨 일을 하다가 몸에 큰 상처를 입었습니까?". 화군실은 여자아이에게 상처를 입게 된 경위를 설명했다. 여자아이가 건네주는 약을 먹고 그 여자 아이는 화군실의 상처를 가리키면서 “당신의 이 상처는 병장기로 폐부를 깊이 찔려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지금 이 상처에서 흘러나온 피가 이미 심장 주위를 굳게 만들었고, 폐부에서 새어 나오고 있는 기가 이미 복강(腹腔)을 뚫고 들어갔으니, 당신은 필시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고 하였다. 화군실이 이 말을 듣고 그녀를 다시 한번 쳐다보니 그녀의 기색과 자태가 성스러우면서 고귀한 풍도가 풍겼다.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자 화군실은 사력을 다해 일어나 몸을 굽혀 그녀에게 머리를 숙이면서 살려달라고 애원하였다. 이에 그 여자는 품속에서 콩알만한 둥근 약 한 알을 꺼내더니 화군실에 건네주면서 삼키도록 하였다. 화군실은 이 환약을 복용하자마자 한 줄기 따뜻한 기운이 단전에서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이 따뜻한 기운이 사지 백 맥을 따라 전신을 두루 돈다. 따뜻한 기운이 미치는 곳마다 고통스럽고 쇠약해진 느낌이 사라지며 힘이 생기고 상처부위 또한 출혈이 멈추고 새 살이 돋아났다. 더는 고통이 없으며 상처가 다 나은 듯하였다. 목숨의 은혜, 하인을 자청하다 화군실은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살아나자 기쁜 나머지 감사인사를 올렸다. “목숨을 구해주신 이 은혜, 돈과 재물로는 보답할 수 없을 만큼 중대합니다. 제가 낭자에게 힘을 다해 도와 드릴 곳이 있다면 낭자께서는 분부만 내리십시오. 제가 절대로 물러서지 않고 온 힘을 다해 분부대로 시행하겠습니다!” 그 여자가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당신이 반드시 나에게 보답하고자 하니, 당신의 성의가 참으로 아름답다. 그럼 당신은 나를 따라 함께 갑시다.” 화군실은 이때 비로소 자기 본래 이름인 ‘화군실’을 버리고 새로 거듭나기 위해 ‘마명생’(馬明生)으로 이름을 바꿨다. 관리로서 벼슬과 재물(家産)을 다 버리고 그녀의 하인이 되어 함께 길을 떠났다. 그 여자는 마명생을 데리고 태산(泰山)으로 갔다. 태산의 어느 한 곳, 높고 험한 절벽위로 올라가더니 한 석실 안으로 들어갔다. (다음 호에 계속) 김일륜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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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성어] 화룡점정(畵龍點睛)
장승요(張僧繇)는 남조 양무제(梁武帝, 502-549년 재위)의 우군장군이자 당대 유명한 화가로, 인물화에 특히 뛰어났다. 양무제가 각지에 떨어져있는 아들들이 보고 싶으면 장승요에게 가서 그려오도록 하였다. 그가 그린 초상화는 살아있는 듯 생생해 무제는 그 그림을 보고 안심할 수 있었다.
그는 동물을 묘사하는 것도 즐겼는데, 예전에 집 동쪽 벽에는 매 한 마리를, 서쪽 벽에 도요새 한 마리를 그린 적이 있었다. 그러자, 원래 처마 밑에 살고 있던 새들이 두려워 다시 오지 못하였다고 하니, 그의 실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짐작할 수 있다.
그는 또 소주 화엄사 대웅전에 용 한 마리를 그렸다. 그림을 완성하자, 갑자기 광풍과 폭우가 몰아치며 벽의 용이 하늘로 날아오르려고 하여, 다시 쇠사슬을 그려 넣어 용을 붙들어 매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저 소문에 불과하다며 믿지 않았다.
당나라 장언원(張彦遠)이 지은 ‘당대명화기 – 권7’에 보면, 금릉 안락사의 스님이 장승요에게 용을 그려달라고 청하자, 많은 사람들이 그 모습을 보려고 앞다투어 안락사로 몰려들었다. 장승요가 말 한마디 없이 집중해 그림을 그리자, 오래지 않아 용 네 마리가 완성되었다. 하지만 용의 눈을 그리지 않자, 많은 사람들의 의견이 분분하였으나 이유를 알지 못하였다.
“여러분들이 보기에는 매우 이상할 것이다. 사실 눈은 용의 정신이 깃든 곳으로, 다른 부분을 완성하는 것은 단지 형체를 그리는 것이나 눈을 그리면 생명이 깃들게 되어 날아가 버린다.”
“눈을 그리는 것만으로 날아간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며 많은 사람들이 믿지 않자, 장승요는 고개를 저으며 조심스럽게 용 두 마리의 눈을 그려 넣었다. 갑자기 천둥이 치고 비가 내리면서, 두 마리 용이 벽을 부수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하지만, 눈을 그리지 않은 두 마리 용은 남아 있었다. 사람들은 너무 놀라 말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시간이 흐른 후, 사람들은 장승요의 뛰어난 솜씨를 찬탄하게 되었다.
예술작품의 생생함을 예찬할 때, ‘화룡점정’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여기에서 따온 것이다. 말을 하거나 문장을 쓸 때, 가장 결정적인 부분에서 한 두 마디 말로 주제를 명확히 하고, 내용을 깊이 있고 생생하게 만든다면, ‘화룡점정’에 비유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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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미생의 죽음을 가치없이 생각하는 사람들은 미생이 그렇게 허무하게 죽음으로써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남겼다는 것이다. 미생의 연인은 물론이고, 가족, 친지, 친구에게 고통을 남기게 되므로 결과적으로는 미생이 차라리 신의를 지키지 못한 것이 낫다는 것이다. 물론 현실적인 눈으로 보면 일면 틀린 말은 아니다. 당장 눈에 보이지도 않는 신의를 지키기 위해 목숨까지 잃는다는 것은 미련스럽다고까지 할 수 있다. 하지만 예전 사람들은 미생의 ‘정신’을 본 것이지 미생의 행위 결과를 두고 판단한 것이 아니다. 미생이 강물에 휩쓸려 죽을 때까지 다리 아래에 있었던 것은 자신의 믿음에 대한 확신만이 아니라 상대에 대한 신뢰 또한 변함이 없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상대가 오는지 안 오는지 두고보자는 오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 버틴 것이 아니라, 마지막 순간까지 약속이 지켜질 것이라 믿었기 때문에 기다린 것으로 볼 수 있다. 어떤 상황에서도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던 미생 정신의 가치는 물질적으로 환산할 수 없다. 이는 제나라 왕이었던 환공의 이야기에서도 알 수 있다. 환공이 노나라를 공격하여 대승을 거두자 노나라 왕은 자기 나라 수읍 땅을 내 놓으며 휴전을 청했고, 이를 수락하는 조약을 맺는 자리에서 노나라 장군 조말이 갑자기 뛰어들어 환공의 목에 비수를 들이댔다. 그리고는 그동안 빼앗은 땅을 내 놓으라 하면서 목숨을 위협했다. 환공은 급한 나머지 요구를 들어준다고 했지만 위협에서 벗어났을 때 화가 나서 견딜 수 없어 조말을 죽이려고 했다. 그때 관중이 정색을 하면서 “폐하께서 그자에게 협박당해 어쩔 수 없이 한 약속이었다 할지라도 약속은 약속이므로 지켜야 하옵니다. 만약 조말을 죽인다면 신의를 저버리는 것으로 화풀이에 불과할 따름입니다.”라고 했고, 환공 또한 관중의 말에 따랐다. 불공정한 상태에서 맺은 약속일지라도 ‘신의’를 지키려한 선인들의 아름다운 덕목이 재삼 그리워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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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그의 부친은 반평생 관리로 있었다. 나중에 퇴직하여 집으로 돌아왔는데 죽기 전에 그들 4형제를 불러놓고 울면서 자식들에게 말했다. “내 평생 양심에 꺼리는 일을 하지 않았었는데 한번은 현령으로 있을 때 다른 사람의 이천금(二千金) 뇌물을 받고 두 사람을 억울하게 죽였다. 어제 내가 명부(冥府)에 불려가 심판을 받았는데 본래 법에 따라 당장 참수형을 받아야 했다. 그나마 조상때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한 공덕이 있어 자손 중에 하나만 살아남을 수 있지만 5세대까지 빈천(貧賤)할 것이다. 나의 지옥에서의 고통은 피할 수 없다. 만약 자손들이 공명을 얻으려 한다면 나의 죄에 죄를 더하는 것과 같고 효도하는 것이 아니다! 너희 형제들이 착한 일을 많이 하기 바란다!”
말을 마치자마자 부친은 눈을 감았다. 나중에 유생의 형제들이 과연 잇달아 사망하고 그 혼자만 지금까지 살아남았다. 그는 향시에 두 차례 응시했는데 매번 답안이 더러워졌다. 어제 삼경에 답안지에 정식 답안을 쓰려하니 갑자기 부친이 나타나 질책하기를 “네가 덕을 쌓아 하늘의 뜻에 순응하지 않고 나의 유언을 위반하여 나를 도처에서 고생하게 하고 죄를 더 가중되게 하는구나.”라고 하면서 수갑 찬 손으로 촛불을 떨어뜨려 답안지를 더럽혔다.
유생은 마지막으로 “내가 세 차례 낙방하긴 했지만 유감은 없습니다. 단지 가슴 아픈 것은 부친이 죄를 범해 지옥에서 고통을 당하는 것입니다! 나는 산속에 들어가 부처수련을 해서 부친의 망령(亡靈)을 구도하고자 합니다.”라고 말했다.
모두들 듣고선 다 혀를 내두르면서 인과응보는 정말이며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같이 수험을 치른 천푸칭(陳扶青)이 특별히 《산으로 돌아가다(歸山)》는 시를 한수 써서 그에게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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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기록상의 고구려 영토 퍼온글 원본 : 역사 기록상의 고구려 영토[liberum 작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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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와여자는매질을하지않으면살이오른다-일본격언-
이세상에서못된여자이상으로못된존재는없다.
그러나착한여자이상으로착한존재도없다-에우리피데스-
여자란돈을버는일은남자의일,
쓰는일은여자의일이라생각한다-쇼팬하우어-
여자의입은악담의소굴이다-몽고속담-
여자의말은잘들어도패가하고안들어도망신한다-한국속담-
암탉이울면집안이망한다-한국속담-
아내와자식을가진남자는자신의운명을저당잡힌것이다-베이컨-
여성에게남성의수면은자기만족을취한후의배신으로비치는것이다-보봐르-
남자의으뜸가는기쁨은여자의자존심을만족시키는것이지만
여자의으뜸가는기쁨은남자의자존심을해치는것이다-버나드쇼-
남자의눈물은상대방을괴롭혔다는데서나오는후회의눈물이지만
여자의눈물은충분히괴롭히지못했다는후회의눈물이다-니체-
여자셋이모이면접시가깨진다-한국-
한곳에두여자를놓으면날씨가차가워진다-세익스피어-
두여자를화해시키느니차라리전유럽을통합시키는데더쉽겠다-나폴레옹-
여자란아름다운옷을위해서라면어떠한짓도해낸다-레르몬토프-
여지이상으로정복하기어려운짐승도없다-아리스토파네스-
여자들이혼자있을때그녀들이어떻게시간을보내고있는지를남자들이보았다면
남자들은결코여자와결혼하지않을것이다-헨리-
남자는대리석같은마음을,여자는벌꿀같은마음을지니고있다-세익스피어-
이세상에서못된여자이상으로나쁜것은없다.
그리고착한여자에의해이루어진것만큼훌륭한것도없다-에우리피데스-
여자는자신의사랑을괴롭히기위해서는어떠한수단방법도가리지않는다-레르몬토프-
여자의결점을알자면그녀의여자친구앞에서그녀를칭찬해보라-프랭클린-
이세상에서가장빛나면서도망가지기쉬운것의하나는
여인의얼굴이며하나는도자기이다-스위프트-
길에서갑자기변을당할때남자는지갑을들여다보지만여자는거울을들여다본다-턴불-
제가남자로태어나지않았다는사실을기뻐합니다.
만약남자로태어났으면여자와결혼하게되었을거니깐-스타르부인-
원래아첨이란여자의몸에꼭맞는의상이다-키에르케고르-
여자는약한남자를지배하기보단강한남자에게지배받기를원하다.-히틀러-
맛있는수프를먹으려면아내를잘때려야한다-러시아-
----------네이버에서-----------------------
rharn//마른명태와여자는사흘마다때려야제철든다.
rharn//여자와접시는밖으로내돌리게되면깨진다.
kst8471//여자는남자의성배설구이다-김창식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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