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다잡는 글 좋은 글 2013. 5. 29. 09:43

마음을 다잡는 글

일하기 싫어하며 편히 살려고만 하면, 점점 선한 마음이 없어져

나중에는 배터리 빠진 시계같은 사람이 됩니다.

 

자전거를 타고 가다 후진하기 쉽지않고,

오토바이를 소리나지 않게 타기 쉽지않습니다.

 

받는 기쁨은 짧고 주는 기쁨은 깁니다.

줄수있는 마음은 늘 기쁘게 사는 사람입니다.

 

재물의 갈망은 마음에 그림자를 만들고

애정에 몰두하면 마음에 상처를 안을 수 있습니다.

 

먹이가 있는 곳엔 반드시 적이 있으며

영광이 있는 곳엔 한편에 깊은 상처가 있습니다.

 

남편의 사랑이 클수록 아내의 바램은 작아지고

아내의 사랑이 클수록 남편의 고민은 작아집니다.

 

남자는 여자의 생일을 기억하되 나이는 잊어버리고

여자는 남자의 좋은점만 기억하되 실수는 눈감아주며 살아야 합니다.

 

최고는 하나라야 하는데 최고가 너무 많은 것은 허영 때문이고

최고가에 매입하고 최저가로 판다는 말은 거짓말입니다.

 

길거리에서 소음을 내며 미친 듯이 질주하는 차는

그 안에서 운전하는 사람이 불만이 많은 사람이라 생각하면 편합니다.

 

잘못도 늘 하게 되면 잘못인지 모르게 되며

남의 것이 더 좋아보이는 것은 맘속에 버려야 할 욕심이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늘 하던 일을 그만두기 쉽지않고, 잘 가는 시계가 멈추기 어려우며

새 것이 헌 것되는 것은 순식간입니다.

 

행복한 모습은 불행한 사람의 눈에만 보이고

죽음의 모습은 병든 사람의 눈에만 보입니다.

 

웃음소리는 행복을 불러오고

불평많은 사람에겐 불행이 온다고 합니다.

 

동물은 늘 놀아도 배고프면 바로 자연에서 먹이를 찾으면 되지만

사람만은 매일같이 돈벌지 않으면 먹는것조차도 어렵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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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감 지폐 좋은 글 2012. 7. 17. 17:21


장난감 지폐

아주 종교적인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는 가능하면 자기 아들을 가장 완전하게 키우고 싶었다.

평소 시간이 있으면 사람이란 착하게 살아야 한다고

종교적으로 많은 말을 해주었다.

어느날 두 부자(父子)는 함께 교회를 가게 되었는데,

아버지는 아들에게 천원짜리 지폐한장과 장난감 지폐를 같이 주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말하기를,

“교회에 가면 헌금을 내야한다. 네가 옳다고 생각되는 것을

헌금함에 넣거라.“

어린 아들은 진짜 지폐와 장난감 지폐 둘 가운데 아무 것이나

골라 넣을 수 있었다.

물론 아버지는 아들이 진짜 지폐를 넣으리라고 마음속으로

믿었고 또 바랬다. 왜냐하면 자신이 평소에 심혈을 기울여

완벽하게 교육시켰기 때문에 이젠 아들을 믿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예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궁금증이 난 아버지는

아들에게 물었다.

“헌금함에 무었을 넣었느냐?”

“예~ 아버지!, 장난감 지폐를 넣었어요.”

아들은 장난감 지폐를 헌금함에 넣고 진짜는 자신이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도저히 아버지는 믿을 수가 없었다.

“오! 왜, 왜 그랬느냐? 아빠는 늘 네가 옳은 일만 하라고

시켰었는데?“

“아빠, 왜 그렇게 물으세요? 이유를 말씀드리죠. 아까

교회에서 목사가 하느님은 기쁜마음으로 헌금하는 사람을

늘 사랑한다고 설교하셨잖아요. 난 장난감 지폐를 헌금하는 것이

더 기쁘거든요. 진짜 돈보다도 장난감 내는 게 더 좋아요. 그렇지만

진짜 돈을 넣으면 기쁘지 않거든요!“

기뻐하는 마음으로 선물하는 사람을 신은 사랑하신다.

무엇을 행하느냐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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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本의 有名한 飮食店 이야기입니다.


이 가게의 주 메뉴는 일본식 덮밥이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덮밥보다 主人이 직접 만든 양파 절임을 더 좋아했답니다. 어떤 손님들은 양파 절임을 먹기 위해 飮食店을 찾아 올 정도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손님이 시골에 계신 父母님께 양파 절임 맛을 보여드리고 싶어서 主人에게 付託해왔습니다.
“양파 절임을 좀 살 수 있을까요? 원하시는 만큼 돈을 드릴께요.”


“아닙니다. 돈은 필요 없어요. 양파 절임은 파는 것이 아니니 그냥 드리겠습니다.”


主人은 돈을 받지 않고 精誠껏 양파 절임을 包裝해 건넸습니다.


이 消息이 전해지자 이 후로 양파 절임을 付託하는 손님들이 많아졌습니다. 나중에는 양파 절임을 택배로 보내주기도 했답니다. 主人은 양파 절임 값을 받았을까요? 아닙니다. 主人은 오히려 돈을 보내오는 손님이 있으면 다시 돈을 돌려보냈습니다.


主人의 慾心 없는 마음에 감탄한 손님들은 더 자주 飮食店을 찾았습니다. 이제 有名 飮食店이 된 덮밥 집은 후에 飮食을 冷凍시켜 택배로 보내주는 事業을 始作했습니다. 主人은 자연스럽게 많은 돈을 벌게 되었고 다시 그 돈을 좋은 일에 썼다고 합니다.


孔子는 ‘君子는 德을 생각하고 小人은 땅을 생각하며, 君子는 형벌을 마땅한가를 생각하고, 小人은 利益이 충분한가를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이는 ‘君子는 自己 人格과 수양에 힘쓰고 小人은 편하게 살 수 있는 곳만을 찾으며, 君子는 혹시라도 法에 저촉되지 않을까 操心을 하는데, 小人은 누가 내게 특별한 好意를 주지 않나 하고 期待를 한다’는 뜻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늘 自身의 利益을 위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남을 위해 德을 베푸는 것은 損害 보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진정한 부자는 남에게 베푸는 삶을 살 줄 아는 사람입니다. 작은 利益을 쫓지 않고 넓은 德으로 많은 사람을 품어주면 幸福은 저절로 따라온답니다.

맞게 읽었나 확인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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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參考故事참고고사] 장점(長點)은 취하고 단점(短點)은 보지 않다

제(齊)나라 환공(桓公)이 임금이 되었을 때, 그는 패업(霸業)을 이루기 위해 널리 인재를 구하였다. 그는 영척(寧戚)이라는 사람의 재능과 인품을 알고 그를 아주 좋아했으며, 그에게 요직을 맡기려 하였다. 좌우군신들이 이 일을 알고는 앞 다투어 환공에게 진언(眞言)하였다. “영척은 원래 위(衛)나라 사람으로, 대왕께서 사람을 시켜 알아보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만약 정말로 재덕(才德)이 겸비된 사람이라면 그때에 다시 중용하더라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이에 환공(桓公)은 “과인이 생각하기에 이렇게 하는 것은 맞지 않다! 사람은 모두 이런 저런 작은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모두 다른 사람이 저지른 잘못만 기억하고, 다른 사람의 큰 재능과 미덕을 생각하지 못한다. 이것이 바로 많은 군왕들이 인재를 찾지 못하는 원인이다”라고 하였다. 그리고는 즉시 책봉의식을 거행하기로 하고 영척(寧戚)에게 재상이라는 중요한 벼슬을 수여했다.


후에 아니나 다를까 영척은 재능이 뛰어난 사람임을 증명하였으며, 영척의 도움으로 환공은 비로소 패업을 이룰 수 있었다. 이 일을 통해서 제나라 환공(桓公)의 큰 식견과 기개를 볼 수 있다. 그가 춘추전국시대에 패업을 성취할 수 있었던 것은 인물을 잘 알아보고 적재적소에 잘 기용(起用)하며, 사람을 씀에 있어서 그 사람의 장점만 취하고, 단점을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著者: 李毓秀 번역: 素 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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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 좋은 글 2012. 5. 17. 16:00


우리들의 일상은 모두 모르던 데로부터 알게 되며, 생소한 데로부터 익숙하게 된다. 보통 어떤 한 부분에서 잘하기 시작하면 모두 존중받을 수 있다. 하지만 점차 자신이 능력이 있다고 느낄 때 교만하기 시작한다. 비록 표면적으로 자랑하지 않지만 마음은 이미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기 시작하며, 이 사람은 되고 저 사람은 되지 않는다고 느끼기 시작한다. 시간이 길어지고 일하는 것이 갈수록 익숙해질 때 교만심이 또 팽창하기 시작해 다른 사람을 깔보는 것으로 변하여, 다른 사람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고 존중하지 않으며 다른 사람이 자신보다 조금 나은 것을 보아도 지려 하지 않는다. 오래되면 버리기 힘든 질투심이 형성된다.

인간의 습성의 변화를 되새겨보면 겸손한 데로부터 교만하고 다시 질투로 발전함을 발견하게 된다. 예수는 자신을 종으로 부르고 시시각각 하나님을 칭송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귀기울이고 있다고 했다. 우리 자신의 행동거지를 반추해보면 겸손을 몰랐고 조그마한 능력을 과시하고 남의 능력에 대해서는 공정하지 못하고 오히려 질투심으로 멸시하지 않았는가?

인간의 심리변화 과정을 들여다보면 아무것도 모를 때는 사람에 대해 온화하고 성실하며 심지어 비평도 겸손하게 접수한다. 하지만 일단 교만심이 일어난 후 표현해낸 선은 위선적으로 변하고 만다. 비록 표면적으로 누구를 깔보지 않지만 마음속으로는 오히려 비교하며 말과 본심이 다를 수 있는데 입은 선(善)하나 마음은 악(惡)하다. 다시 발전해 내려가면 질투심이 형성된 후 선은 이미 사라진다.

어떻게 해야 이 악순환을 뛰어 넘을까? 마땅히 시종 겸손을 유지해야 한다. 겸허(謙虛)해야 하며 그래야만 일을 잘할 수 있다. 우선 겸손은 자신을 마성(魔性)에서 벗어나 신성(神性)의 일면에 서게 한다. 순조로울 때나 역경일 때를 막론하고, 지위가 높거나 낮거나를 막론하며, 능력이 크거나 작거나를 막론하고 겸손은 우리들에게 ‘참음(忍耐)’을 이탈하지 못하게 한다. 사실 겸손은 자신에게 양호한 심태를 주고 쟁투를 피하게 한다.

쟁투심을 버리지 않으면 역시 질투심이 생기기 쉽다. 쟁투심은 인간의 원죄에 해당하는 명(名), 리(利), 정(情)의 집착으로 인한 것이 아닌가? 사람과 서로 다투면서 누구도 누구에게 지지 않으려 하는데 이것이 바로 악이다. 이것이 바로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을 주창한 공산당(共産黨) 문화유산의 잔재가 아닌가? 도덕과 상식(五常 : 仁·義·禮·智·信)을 무시하고 일체를 업신여기며 신성을 멸시하는 것이 공산철학의 핵심이다. 그 여파가 아직도 세계 도처에 만연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개인, 사회, 국가 간에 만약 겸손할 수만 있다면 모든 일을 성심으로 대하게 될 것이며 복잡다단한 일들도 자율과 자정작용을 통하여 원만히 수습되지 않겠나 싶다.


사랑의 신비 좋은 글 2012. 5. 17. 15:48

소설 ‘아버지와 아들’로 유명한 러시아 문호 이반 세르게비치 투루게네프는 어느 날 사냥을 나섰다가 평생 잊을 수 없는 광경을 만났다.


앞서가던 그의 사냥개가 갑자기 자세를 낮추고 살금살금 기어가는 것이었다. 그는 ‘뭔가 큰 놈을 발견한 것이겠구나!’하고 사냥개 뒤를 밟았다. 그런데 사냥개가 발견한 것은 강풍에 자작나무 숲이 몹시 흔들리는 와중에 둥지에서 떨어진 머리에 솜털이 보송보송한 어린 멧새 새끼였다. 사냥개는 킁킁거리며 새끼 멧새에게 다가갔다.


그때였다. 가슴팍이 까만 멧새 한 마리가 날아와 새끼 멧새 앞에 내려앉았다. 새끼 멧새의 어미가 분명했다. 어미 멧새는 깃털을 곤두세우고 청천벽력 같은 소리로 “노터치 노터치”라 절규 하듯이 지저댔다. 그리고는 두 번이나 팔짝 뛰어 사냥개 주둥이를 공격했다. 그리고 어미 멧새는 그 작은 몸을 쉴 새 없이 떨더니 그 자리에서 픽 쓰러졌다. 어미 멧새는 제 새끼를 구하려고 자기를 내던진 것이다.


어미 멧새에게 사냥개는 엄청나게 큰 괴물이다, 그러나 제 새끼가 위험에 처한 것을 본 어미 멧새는 높고 안전한 자작나무 위에 앉아 있을 수 없었다. 모성이라는 사랑의 힘이 어미 멧새로 하여금 안전한 나뭇가지에서 사지(死地)의 위험 속으로 몸을 던지게 한 것이다. 사냥개는 새끼 멧새에게로 나아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뒷걸음질 쳤다. 사냥개도 어미 새의 죽음을 무릅쓴 그 희생적인 새끼 사랑을 눈치 챘던 것이다. 투루게네프는 어리둥절하고 주춤거리는 사냥개를 급히 불렀다. 그리고는 경건한 마음으로 그 자리를 떠났다. 그리고 이런 기록을 남겼다.


“그렇다. 웃지 말아주시오! 나는 그처럼 작고 영웅적인 멧새의 열정적인 사랑, 희생적인 사랑, 두려움을 초월한 사랑 앞에 깊은 존경심을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랑은 죽음보다 강하다는 것을, 사랑은 죽음의 공포보다 더욱 강하고 굳세다는 것을, 그 작은 어미 멧새로부터 배웠다. 그와 같은 사랑만이 나의 삶을 지탱할 수 있으며 그런 사랑만이 나 자신을 향상시킬 수 있다고 굳게 믿는다.”


우리는 사랑이 절실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비록 사랑이 메말라 가고 있지만 사랑이 점화되면 모든 것이 회복(善解)된다. 삶 가운데 사랑으로 주변을 바라보고, 사랑으로 다가간다면 우리 사회는 희망과 기쁨이 가득한 사회가 되지 않을까!


흔히 오월을 계절의 여왕이라 한다. ‘아버지의 사랑(火)’과 ‘어머니의 사랑(水)’이 ‘큰 조화(水昇火降ㆍNatural Harmony)’를 이루어 황량했던 대지가 신록을 우거지게 하는 것이 아닐까!? 자연의 변화도 그 근본은 우주적인 사랑의 상호작용으로 운영되는 거대한 질서가 아닌가 싶다.


청현

지도자의 기본 덕목은 현인을 가까이 하고 소인배를 멀리하는 것이다. 현인과 소인의 구별은 무엇인가. 본래 현인의 면모라고 하면 요즘 말로는 ‘인재’의 모습이다.


소인의 전형적인 모습은 무엇보다 잔꾀는 많지만 ‘큰 지혜’는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작은 이익’에는 밝아 이(利)를 열심히 챙기지만, 그로 인해 ‘큰 이익’은 놓치게 된다. 단기적으로 보면 얄밉게도 이익을 많이 챙겨가는 듯하지만, 길게 보면 오히려 실속이 없다. 말과 행동이 다르고, 겉과 속도 다르다. 허풍이 심해 말로 사람을 현혹시키는 경우가 많다.


현인은 언행이 정확하고 사리에 밝으며 공명정대하고 사리사욕이 없다. 은혜를 베풀 줄 아나 보답을 바라지 않으며, 성정이 충직하고 온화하며 겉모습이 소박하고 점잖다. 이는 자애로운 사람이다. 일처리가 능숙하고 곤경 속에서 반드시 방안을 찾아내고, 반드시 자신이 계획한 대로 일을 해내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이다. 부귀하지만 근검하고 공경심이 있으며, 위엄이 있으면서 예의 바르고 교만하지 않다. 이는 덕행을 쌓는 사람이다. 속세에 있으면서 권세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안락한 생활을 하나 사치하지 않고, 공을 세우고도 교만하지 않으며 희로애락의 감정을 절제할 줄 안다. 이는 절조 있는 사람이다. 현인은 은혜를 베풀지만 보답을 바라지 않고, 성정이 충직, 온화하며 겉모습이 소박하고 점잖다. 계획을 반드시 지키고 어려움에 닥쳐도 이겨낸다. 부귀하지만 근검하고, 위엄이 있으면서 예의바르며, 희로애락의 감정을 절제한다.


‘이견대인(利見大人)’이란 말이 있다. 훌륭한 사람을 만나면 크게 이롭다는 뜻이다. 주역(周易)의 첫 번째 괘인 건(乾)괘를 해설하는 괘사에 나오는 글귀다. 괘사에는 이 문장이 두 번이나 쓰인다. 한 번은 청년기에 해당하는 시기에 나오고 또 한 번은 장년기에 나온다. 즉 젊었을 때 ‘좋은 스승’을 만나는 것과 나이 들어 ‘좋은 제자’를 만나는 것이 인생에서 매우 중요하다는 의미다.


대인의 범주에 좋은 친구 또한 빠질 수 없다. 스승과 친구는 원래 하나다. “친구라지만 사배(四拜)하고 수업을 배울 수 없다면 그런 자와는 절대 친구하면 안 되고, 스승이라지만 마음속의 비밀을 털어놓을 수 없다면 그를 스승으로 섬겨서도 안 된다.”(탁오·卓吾 ‘분서·焚書’) 지식과 삶의 능동적 교감을 우리는 지혜라고 부른다. 지혜는 자기에 대한 탐구다. 니체는 “모든 사람은 자기 자신에 대해 가장 먼 존재”라 말했다. 왜냐하면 단 한 번도 자기에 대한 탐구를 시도해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기에 대한 앎이란 온전히 자기에 대한 성찰로 이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자기에 대한 탐구가 우주적 비전으로 ‘통하는’ 것, 그것이 지혜이고 이러한 지혜가 곧 현인의 양식이다.


선민(先民) 연성(軟性)이라는 시대 조류에 역행하여 선군(先軍) 강성(强性)을 외치며 국민의 삶을 도탄에 빠트린 북한의 3대 세습이라는 정치적 조작극이 마치 소인배들의 불장난을 보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영 불편하다.


청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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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룬따파는 좋습니다” (法輪大法好)

박 지 극(이학박사)

(teacherpjk@hanmail.net)

저는 20102월부터 파룬궁을 수련하기 시작했으며 고등학교에서 생물을 가르치는 교사입니다. 예전에 저는, 인생은 한 번 가면 그만이니 즐기고 살아야 한다며, 주로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노는 것을 생활의 낙으로 삼았습니다. 그러면서도 인생이 허무하게 느껴지면 동양철학과 서양철학에 심취하거나, 종교관련 서적을 뒤적이며 무엇인가 붙잡으려 했습니다. 그러나 어느 것 하나 이것이구나 하는 느낌으로 다가온 것은 없었습니다.

저는 또, 수업 시간에 진화론을 가르치면서도, 진화론보다는 창조론이 더 진리일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다고 신의 존재를 믿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즉 어느 것 하나 명확한 인식 없이 무신론자이면서도 창조론을 신뢰하는 모순을 안고 살아왔습니다.

어느 날 동료 교사가 소개한 사람이 션윈(神韻) 공연을 홍보하기 위해 학교에 찾아왔습니다. 평소 공연에 별다른 관심이 없었지만, 이번에는 왠지 마음이 끌려 티켓 3장을 신청했더니, 나중에 티켓을 갖다 주면서 선물이라며 파룬궁 수련의 지침서인 전법륜(轉法輪)’을 건네며 꼭 읽어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파룬궁을 어떻게 수련하는지 자세히 설명한 뒤 연공 장소까지 알려주었습니다.

사실 예전부터 저에게 수차례 파룬궁 수련을 권유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심신 건강에 좋다며 아는 교사가 수차례 권한 적이 있었고, 10년째 파룬궁을 수련하는 친척 누님도 가끔씩 소개하며 권하기도 했지만, 관심 밖이었습니다. 그런데 또다시 수련을 권유받으니 파룬궁과 인연이 있었나 봅니다.

마침 연공장이 집 가까이 있는 공원이라 놀이 삼아 한 번 나가보았습니다. 수련생 한 분이 친절하게 동작을 가르쳐주면서 연공 동작 비디오까지 빌려주어 집에서 따라 연습을 했습니다. 그렇게 연공을 시작하고 며칠이 지난 후 2장 공법을 할 때 서 있을 수 없을 정도로 발바닥이 뜨거워졌습니다. 너무 신기하고 흥미도 생겨 계속 공원에 연공하러 가면서 전법륜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그렇게 수련에 입문하여 9일 학습까지 받은 뒤 연공을 계속했습니다. 이 모든 과정에 돈은 한 푼도 들지 않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파룬궁은 일절 비용을 받지 않는 무료 전수 원칙을 엄격하게 준수하고 있었습니다.

9일 학습을 하고 전법륜을 읽으면서 본격적으로 수련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평소 좋아하던 술을 마시고는 그만 배탈이 나 아무것도 못 먹고 이틀 동안 계속 설사를 하면서 고생했습니다. 체중이 3킬로그램이나 빠졌는데, 주변의 수련하는 분들은 신체가 청리되는 현상이라고 하면서 좋은 일이라고 했습니다. 또 한 번은 날것을 먹고 탈이 났습니다. 토하고 설사하고 정말 괴로웠습니다. 그러고 나서는 그렇게 좋아하던 술을 입에 댈 수 없게 되었고, 날 것도 내키지 않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항상 더부룩하던 속이 너무 편안해지고 몸도 가뿐해져 정말 신체가 청리되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처음 전법륜을 읽을 때는 좀 허황했고, 동화책을 읽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전법륜을 읽으면 읽을수록 더 읽고 싶어지는 신기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우주의 원리와 인류를 비롯한 모든 생명의 내원, 인간의 과거, 현재, 미래에 이르기까지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정확하게 설명한 것이 그저 놀라울 뿐입니다. 우리가 왜 수련해야 하는가에 대한 설명도 명확히 하고 있어 읽으면 읽을수록 전법륜에 담긴 깊은 내포를 느낄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전법륜을 읽으면 인생이 허무하지 않고 생명의 소중함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저는 수련하기 전에 술을 무지하게 먹었으며 무절제한 생활을 했습니다. 인생은 한 번 가면 그만인데 즐기고나 보자 생각하며 방탕하게 생활했고 당뇨병과 고혈압으로 고생하면서도 현대 의약에 의존한 채, 삶에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생활해 왔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파룬궁 수련자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것을 지키며 수련을 견지하고 있습니다. 수년 동안 복용하던 당뇨와 혈압 약을 전혀 복용하지 않는데도 정상적인 생활에 전혀 지장이 없으며 당뇨와 혈압에 따르는 병적 증세가 크게 완화 되었습니다.

세상에 태어난 어떠한 생명도 죽음은 피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누구나 죽으면 그 뿐인 인생이라며 삶을 허무하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파룬궁 수련인은 인생의 의미와 삶의 목적에 대해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으므로 인생이 허무하지도, 죽음이 두렵지도 않습니다. 병마에 시달리면서도 그날그날의 즐거움을 찾으며 목적 없이 살던 제가, 이렇게 늦은 나이지만 파룬궁을 수련할 수 있게 된 것은 너무나 큰 행운입니다. 요즈음 저는 매일 매일 행복하고 원기 넘치는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파룬궁에 대해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고, 수차례 수련을 권유받았지만, 눈앞의 보물을 알아보지 못하고 뒤늦게야 수련을 시작했습니다. 혹시 저처럼 망설이는 분이 계신다면 하루 빨리 수련하라고 진심으로 권해 드립니다.

德化政治의 표본- 唐太宗

唐太宗 6년에 당태종은 死刑囚 390명의 가족을 만난 일이 있다. 사형수의 형제자매들은 무두가 사형수의 사형선고를 측은하게 여기며 흐느꼈다. 당태종은 자신의 帝王像을 스스로 시험할 때임을 느꼈다.

당태종은 사형수 390명을 모두 歸家시키면서 사형집행 전일 까지는 꼭 돌아오라 했다. 모험 치고는 큰 모험이었다. 풀려난 390명의 사형수들은 휴가를 마치고 사형집행 전날까지 전원 歸獄 했다. 이는 故事成語처럼 전해져서 종수귀옥(縱囚歸獄)이라 한다.

그 때 당태종은 크게 놀랬다. 죽을 날을 하루 앞두고 사형수 전원이 감옥으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당태종은 사형수들이 지켜준 信義에 감동했다.

한편 사형수들도 罪質이 나쁜 자신들을 百姓이라 믿고 을 베풀었으니 군주(君主)의 은덕(恩德)을 배신할 수 없기에 죽음을 무릅쓰고 신의(信義)를 지켰던 것이다. 당태종의 덕을 펴는 정치와 백성인 사형수(死刑囚)들의 군주에 대한 신뢰성(信賴性)이 결합되어 형집행질서의 정연함을 입증했다.

군주를 신뢰하는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당태종은 그들의 死刑執行日에 즈음하여 전원 무죄석방(無罪釋放) 조치했다. 이것이 덕화정치의 진수(眞髓).

작자: 임령(林靈)

악인(惡人)이 관리가 되면 나라와 백성을 사랑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감히 제멋대로 하늘이 내린 백성을 경시하거나 괴롭힌다. 이것은 ‘하늘이 내린 백성을 경멸’한 대죄이다.

당태종이 말했다.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며 도덕은 사람의 근본이다. 한 사람의 도덕이 두텁게 쌓이면 영원히 사람으로 하여금 동경하게 하고 탄복하게 한다. 아울러 백성이 안락한 생활을 할 수 있다면 나라는 자연히 공고해지고 안전해진다.”

그러므로 군왕이 만일 인자하고 후덕한 도덕을 갖추면 백성은 그를 향하게 되며 마치 부모에게 기대는 것처럼 될 수 있다! 고금중외의 성왕을 살펴보면 모두 백성을 어여삐 생각했고 세상을 사랑하고 백성을 자녀처럼 여긴 사람이었다. 백성을 보살핌이 마치 자신의 자녀를 대하듯 했다. 군왕의 백성을 다스리는 관리라면 마땅히 더욱 이 이치를 터득해야 한다!

1. 송진종(宋眞宗)이 백성을 위하여 악한 관리를 제거하다

송나라 정청신(鄭清臣)은 성품이 각박하고 매정했다. 그가 괴리(槐裏)현의 현령으로 있을 때 현의 백성을 학대했다. 그가 임기가 차서 떠나려 할 때 괴리현의 백성들은 길을 가로막고 정청신에게 침을 뱉고 욕을 해댔다.

정청신은 곧 ‘관할 내 백성이 관리를 모욕했다’는 죄명으로 조정에 상주문을 올렸다. 송진종은 사실을 파악한 후 이렇게 말했다. “다스림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민심을 얻는 것이다. 백성의 마음이 네가 베푼 정치에 대하여 이렇듯 분개하고 반감을 가지고 있다면 괴리 현에서 베푼 정치는 묻지 않아도 알만하다! 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히 원망을 품고 백성이 너의 길을 막아 모욕했다는 일로 조정에 상주문을 올릴 수 있었단 말인가. 정말로 간이 배 밖으로 나온 놈이구나!” 정청신은 이로써 조정의 벌을 받고 관직을 박탈당했다.

2. 당나라 황제가 잔인한 현령을 징벌하다

당나라 대력(大曆) 2년 가을 서리로 농작물은 심한 냉해를 입었다. 황제는 재해 정황에 관심을 갖고 각 주와 현에 다음과 같이 하달했다. “관할지역내 농작물의 손실을 조사하여 조정에 보고하라.” 그러나 섬서 위남(渭南)현의 현령 류조(劉澡)는 다음과 같이 조정에 보고했다. “우리 현의 농작물은 조금도 피해를 보지 않았습니다!”

각 지역에서 농작물의 피해상황을 보고해 왔으나 위남현만 조금도 피해가 없다고 했다. 어진 황제는 매우 의심스러워 사람을 파견하여 조사하게 했다. 그 결과 위남현의 농작물dl 3천 경이나 손해를 보았음이 드러났다.

황제는 조사된 정황을 보고받고 탄식했다. “현령은 백성의 부모와 같은 관리이다. 관할 지역에 피해를 보지 않았어도 ‘다소 피해가 있었다’고 보고하여 돈과 양식을 받아 빈곤한 백성을 돌봐야 했었거늘. 현령 류조는 오히려 이다지도 인의롭지 못하구나!” 이로써 황제는 류조에게 죄를 물어 먼 곳에 유배를 보냈다.

(‘집복소재지도(集福消災之道)’에서 발췌)

주문왕(周文王) 희창(姬昌)이 서백후(西伯侯)를 맡고 있던 시기 어느 날 야외로 나갔다가 사람 유골이 백주에 산과 들에 나뒹구는 것을 보고는 수행관들에게 그 유골들을 잘 묻어주라 명했다.

그러자 관리가 말하기를 “이것은 모두 주인이 없는 유골들인데, 그것들을 관계할 필요가 있습니까?” 하자, 문왕이 말했다. “천하를 다스리는 군왕은 바로 온 천하의 주인이며, 한 지역을 다스리는 제후는 바로 그가 관할하는 구역의 주인이다. 이런 유골이 나의 영지에 있으므로 나는 당연히 바로 그들의 주인이다. 이런 유골을 묻어주는 사람이 없으니, 백주에 산과 들에 나뒹구는데 어찌 눈뜨고 볼 수 있는가?” 그리고는 관리들로 하여금 그 유골들을 파묻게 하였다.

사람들이 이 사실을 알고는 모두 “서백후의 은덕이 주인 없는 유골에 까지 미치는데, 하물며 살아있는 사람들에게는 어떠하겠는가?”라고 칭송했다.

이 이야기는 ‘자치통감외기(资治通鉴外纪)’와 명나라 재상 장거정(張居正)의 ‘제감도설(帝鑒圖説)’에 있는데, 이 글은 주문왕이 어질게 세상을 다스려 유골에게까지 그 은덕이 미치고 사람들이 모두 그를 따른 이야기를 기록했다.

주(周) 왕조의 창시자는 성이 희(姬)이고 이름은 창(昌)으로서, 상나라 주왕(纣王)에 의해 서백(西伯)으로 봉해졌었다. 이전에 서백창(西伯昌), 백창(伯昌), 주백창(周伯昌)으로 불렸으며, 죽은 후의 시호(諡號)는 주문왕이었다. 나라를 봉하고 건국을 하는 시기, '문왕(文王)'이라는 시호는 '천하를 다스리는' 공훈이 있는 통치자에게 부여한다. 문왕은 즉위하자 조상들의 우수한 전통을 계승하여 인의를 숭상하고 노인을 공경하였으며 어진 사람을 예의로 대하였다. 방문 온 사람을 접대하기 위해 그는 늘 점심까지 바쁘게 보냈고 아침밥을 먹을 겨를도 없었으며 식견이 있는 사람은 모두 그를 따르기를 원했다고 한다.

당시 우(虞) ·예(芮)라는 작은 두 나라의 군주가 국경 문제로 서로 싸우면서 오래도록 결판을 내지 못했다. 후에 그들은 함께 주나라로 가서 문왕에게 시비를 가려달라 청하기로 결정하였다. 두 사람은 주나라 경내로 들어선 후, “농사짓는 자는 밭 경계를 양보하고, 길을 갈 때는 서로 비켜준다.”, “선비는 대부에게 양보하고, 대부는 경에게 양보한다.” 등 여러 가지 겸손하게 사양하는 풍습을 보고, 감동을 받고는 스스로 부끄럽게 여겼다. 그들은 말했다. “우리가 서로 다투는 바는 바로 주나라 사람들이 수치로 여기는 것들이네. 우리는 소인(小人)이니 군자의 조정에 가서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주지 말자. 가면 수치스러워질 뿐이네!” 하여 그들 두 사람은 조용히 주나라 경내를 벗어나 돌아간 후 서로 땅을 양보했으며, 다시는 다투지 않았다고 한다.

주문왕의 은혜가 죽은 사람에게까지 미친 이야기가 전해진 후, 한남(漢南) 제후들은 모두 각별한 가르침을 얻고는 분분이 와서 문왕에게 귀속하였는데, 40여 개 국가에 달했다. 후에 문왕은 또 위수에서 사람을 기다리던 정치가 강태공(姜尚)을 방문하고, 그를 '사상부(師尚父)'라 불렀다. 이때부터 호랑이에게 날개가 달린 듯 했다. 주(紂)왕 19년, 문왕은 숭후호(崇侯虎)를 토벌하여 승리하였고, 도성을 풍읍(豊邑)에 옮겼다. 문왕은 풍읍에 영대(靈薹)를 건립하고 또 큰 인공호수인 '영소(靈沼)'를 팠다.

후에 또 30여 개의 나라가 그에게 귀속(歸附) 하였다. 이리하여 문왕은 당시 천하의 3분의 2를 얻었다. 이 이야기는 바로 전형적인 ‘위인군지우인(爲人君止于仁)’으로, 제왕이 어진 정치를 실행한 본보기 이기에, 역대의 역사학자들은 '주문왕은 나라를 다스리는 모든 군주들이 반드시 본받아야 할 모범'이라고 여겼다.

중화민족의 역사는 아주 다양하다. 역사의 기나긴 흐름 속에서 통치자가 나라를 다스리는 가장 중요한 신조는 바로 백성을 사랑하고, 어진 정치를 실행하는 것을 중시하여 백성의 인정을 받는 것이다. 그리고 어진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덕(德)으로, 이것은 통치자 개인의 인품과 덕성 수양에 대한 요구에서 가장 중요한 방면이다. 한 나라의 군주로서, 만약 자신의 백성들에게 널리 은덕(恩德)을 베풀 수 없고, 백성들에게 자기의 어짊과 관대함을 감수하게 할 수 없다면, 그는 성공한 군주라고 말할 수 없다. 때문에 역대의 유명한 군주들은 모두 자신의 인품과 덕성방면에서 수양을 쌓았다. 또 자신의 어진 덕을 진정하게 자기의 백성들에게 베풀어, 백성들이 생활 속에서 절실하게 감수하게 하였다.

반드시 분명히 해야 할 것은 현재 대륙을 통치하는 중공은 천리를 거스르고 도의를 배반하는 사당(邪黨)으로서, 중국 역사상의 군왕들과는 완전히 다르다. 중공이 절취한 정권은 국민의 선거에 의한 것이 아니고, 또 역사상의 군왕들처럼 하늘에서 군권을 수여 받은 것도 아니기에, 중공 사당의 통치는 합법성이 전혀 없다. 중공은 하늘에 대한 경외(敬畏)가 없고, 어진 정치를 실행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하늘과 싸우고, 땅과 싸우고, 사람과 싸운다며 소란을 피웠다. 과거 60여 년 간, 적어도 8천만 명의 중국인이 사당에 의하여 비정상적으로 사망했고, 또 과거 10여 년 동안 마음을 수련하고 선(善)을 향하는 파룬궁 수련생을 잔인하게 박해하였다. 중공 사당은 극악무도한 짓을 다 하였기에, 반드시 하늘의 징벌을 받을 것이다.


지혜와 덕을 겸비한 미인


반(班)씨 가문은 한(漢)나라 때 아주 명망 있는 가문이었다. 반표(班彪), 반고(班固), 반초(班超) 등은 모두 당대의 풍운인물이었다. 지혜와 덕을 겸비한 미인 반첩여(班婕妤 기원전 48-기원전 6)는 반표의 고모이자 반고와 반초의 고모할머니에 해당한다.


▲ 지혜와 덕을 겸비한 미인 반첩여./그림=유쯔(柚子)


반첩여는 어려서부터 남달리 총명하고 영리했다. 그녀는 한 성제(成帝 기원전 51-기원전 7년) 때 궁궐에 들어갔고 지혜와 미모를 겸비해 성제의 총애를 받으며 ‘첩여(婕妤)’에 책봉됐다. ‘첩여’란 비빈(妃嬪)에 해당하는 후궁의 직위다.


반첩여는 궁중에서 황제의 총애를 한 몸에 받았음에도 오히려 본분을 망각하지 않고 예의를 지키며 자중했다. 한 성제는 늘 그녀 곁에 머무르며 그림자처럼 떨어지지 않으려했다. 황제는 특별히 큰 수레를 제작해 반첩여와 함께 타고 외출하고자 했다. 하지만 황제의 이 제안은 좋아할 줄 알았던 반첩여의 반대로 성사되지 못했다.


그녀는 말하기를 “역사상 성스럽고 현명한 군주가 외출하실 때는 모두 명신(名臣)이 옆에 있었습니다. 황상께서 저와 함께 수레를 타고 외출하신다면 혹 폐하의 현명한 덕과 명성에 누를 끼치게 될까 두렵습니다. 바라옵건대 폐하의 말씀을 거두어 주시기 바랍니다.” 라고 간청했다.


그녀의 말에 이치가 있었기 때문에 황제는 그녀의 권고를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황태후가 이 소식을 들은 후 반첩여의 고상한 품행을 칭찬하며 주변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고대에 번희(樊姬)가 있었다면 지금은 반첩여가 있구나.” <번희는 춘추전국시대 초나라 장왕의 애첩으로 장왕이 주색에 빠져 정사를 돌보지 않자 장왕에게 정사에 매진할 것을 간언하며 육식을 끊었던 여인이다.>


또한 반첩여는 문학과 사학에 대한 교양이 높아, 시나 문장을 잘 지었을 뿐만 아니라, 경전에서 근거를 찾고 광범위한 자료를 인용할 줄 알았다. 글을 아는 여자가 귀했던 당시로선 실로 재녀(才女)였다.


그러나 좋은 시절은 오래가지 못한다고 나이가 들자 나중에 조비연(趙飛燕) 자매가 궁궐에 들어와 반첩여의 자리를 대신해 황제의 총애를 받았다. 성제는 하루 종일 비연 자매와 주색에 빠져 정사를 돌보지 않았다.


황후 허(許)씨는 조(趙)씨 자매를 원망해 대전에 신단(神壇)을 설치한 후 밤낮으로 경을 읽으며 황제가 하루 빨리 정신을 차리고 조 씨 자매에게 재난이 닥치도록 저주했다. 조비연자매가 이 사실을 알고는 반첩여와 허황후가 자신들을 음해한다고 성제에게 알렸다. 이 일로 허 황후는 폐위가 거론되고 반첩여 역시 사건에 연루돼 조사를 받았다.


성제는 과거 자신이 총애했던 반첩여였지만 직접 심문했다. 반첩여는 황제의 서슬 퍼런 심문에도 위축되지 않고 평소와 다름없는 태도로 황제를 대했다.


“신첩이 듣자하니 사람이 죽고 사는 것에는 운명이 있고 부귀는 하늘에 달렸다고 합니다. 몸을 바르게 닦아도 오히려 복을 얻지 못하거늘 어찌 삿된 욕심을 바라겠습니까? 만약 귀신이 안다하더라도 어찌 비방하는 말을 들을 것이며, 귀신이 모른다면 저주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신첩은 감히 그런 짓을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런 행동을 탐탁하게 여기지도 않습니다.”


비굴하지도 그렇다고 반항하지도 않는 그녀의 태도는 성제로 하여금 할 말을 잃게 했다. 성제는 더 이상 그녀의 죄를 추궁하지 않았고 상금으로 황금 백 근을 내렸다.


반첩여는 이처럼 아름다우면서도 총명하고 멀리 내다보는 안목을 지녔으며, 덕과 지조가 있는 현숙(賢淑)한 여인이었다. 대궐의 후궁들이 서로 다투고 모함하며 질투하고 배척하는 중에도 그녀는 자발적으로 장신궁(長信宮 태후궁)에 들어가 황태후를 모시는 길을 선택했다. 이때부터 다른 후궁이나 황제와 멀리 떨어지긴 했지만 적어도 자신을 보호할 수 있었고 조 씨 자매의 질투에서 벗어났다. 평범하지 않은 반첩여가 내린 평범하지 않은 선택이었다.


반첩여의 문학 작품은 아주 많은데 특히 장신궁에 들어온 후의 우울한 심사를 토로한 작품이 많았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중공의 문화대혁명으로 유실돼 지금 남아 있는 작품은 ‘자도부(自悼賦)’ ‘도소부(搗素賦)’ ‘원가행(怨歌行)’ 세편뿐이다. 이 중 ‘원가행’이란 시는 반첩여가 황제의 총애를 잃은 후의 안타까운 심정을 잘 표현한다.


新裂齊紈素(신열제환소) 제 땅에서 난 비단을 새로 잘라내니

皎潔如霜雪(교결여상설) 눈 같이 희고 깨끗하여라

裁爲合歡扇(재위합환선) 잘라서 합환선 부채를 만드니

團圓似明月(단원사명월) 보름달 같이 둥글어라

出入君懷袖(출입군회수) 임의 품속을 출입하며

動搖微風發(동요미풍발) 흔들림에 일어나는 바람이어라

常恐秋節至(상공추절지) 가을이 찾아와

凉飇奪炎熱(양표탈염열) 서늘한 바람이 더위를 몰아낼까 두렵다오

棄捐篋笥中(기연협사중) 대나무 상자 속에 버려지면

恩情中道絶(은정중도절) 임금의 사랑이 중도에서 끊어지고 만다오


반첩여는 무더운 여름날 주인의 사랑을 독차지하다 서늘한 가을이 되면 상자 속에 버림받는 부채를 통해 더 이상 황제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자신을 비유했다.


특히

常恐秋節至(상공추절지) 가을이 오면 두려워지네

凉飇奪炎熱(양표탈염열) 서늘한 바람은 더위를 앗아가고

棄捐篋笥中(기연협사중) 님의 마음에서 버려지니

恩情中道絶(은정중도절) 은혜로 사랑하는 마음도 끊어지누나


라는 4구절에서 반첩여는 절로 한숨이 나게 할 정도로 자신의 어려운 처지와 쓸쓸한 마음을 표현했다.


성제의 버림을 받은 몸임에도 성제가 죽은 후 반첩여는 적막한 망자의 묘지 옆에서 수도자처럼 살았다. 그녀는 아무런 원망도 없이 이미 영면한 성제 옆에서 쓸쓸하게 일생을 마쳤다.

美조지아주 항만청 박선근 부이사장 연임


(서울=연합뉴스) 왕길환 기자 = 미국 조지아주의 항만청 부이사장인 박선근(65) 씨가 4년의 임기를 연임한다.
박 부이사장은 5일 "퍼듀 조지아 주지사가 지난 주 항만청 부이사장을 또 맡아달라고 부탁해 이를 수락했다"고 연합뉴스에 이메일로 알려왔다. 그는 2004년 7월 야구선수 출신 기업인인 행크 아론 씨로부터 이사직을 넘겨 받았으며 항만청 서기와 재무이사를 거처 부이사장직을 수행했다.
박 부이사장은 "지난 4년간 항만청의 물동량은 두 배로, 수입액도 1억4천만달러에서 2억3천만달러로 증가했다"며 "퍼듀 주지사는 한국과 중국을 포함한 세계 각국의 유수 해운회사들과의 교류를 통해 사바나항을 미국의 4대항으로, 부런스윅 코널스 아이랜드 항만을 미국 3위의 자동차 항만으로 발전시키는데 역할을 한 공로를 인정했다"고 밝혔다.
조지아주 항만청은 주 정부의 직영 기업으로, 주지사가 임명하는 조지아 기업인 13명이 4년 임기로, 960명의 직원을 운용하는 항만청 운영진을 관리한다. 항만청 사업은 조지아주에 29만5천 명의 고용을 창출하고 10억8천만 달러의 수익 효과를 내고 있다.
서울 성동구 왕십리 출신인 그는 최근 왕십리 광장에 시계탑을 기증했으며, 성동구가 미국 조지아주의 캅카운티와 자매결연을 하는데 다리 역할을 했다. 1974년 도미한 그는 청소 용역업에 뛰어 들어 불과 10여 년만에 여러 주에 걸쳐 3천200명의 직원을 가진 회사의 대표가 됐다.
미국에서 '좋은 이웃되기 운동(GNC)'을 펼치는 박 부이사장은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라는 구호로 미국 독립운동에 불을 댕긴 패트릭 헨리의 이름을 딴 상인 '패트릭 헨리상'을 받았다. 그는 10년간 GNC를 통해 미국 9개주에서 고등학교를 중퇴한 청년들의 갱생 프로그램(If Sunny Can, You Can)을 운영했다.

빛이 되는 소금을 만드는 사람

인산죽염촌 최은아 대표

[대기원]그녀의 이력서

그녀의 이력서는 재미있다. 독문과 3학년 때 순천향대 의예과 합격, 우연히 김일훈 선생의 우주와 신약을 읽고서 의대진학 포기, 김일훈 선생을 찾아 수학하다 김일훈 선생의 삼남 김윤수씨와 결혼, 현 인산한의원과 인산죽염촌 대표. 육남매의 엄마. 평범하지 않은 이력서, 그 사이에 숨겨진 최은아 대표(46)의 인생 이야기가 궁금하다.

▲ 안산선생의 듯을 이어가고 있는 인산죽염촌 최은아 대표
ⓒ 이미경 기자
운명을 바꾼 한 권의 책

“선과 악의 기준이 뭔지, 어떻게 사는 게 옳은 것인지 몰라서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녀의 남다른 고민은 꼬마 아이가 소녀가 될 무렵 시작되었다. 고3 시절, 그녀는 대학진학도 나 혼자 잘살자고 하는 이기적인 일 같았다. 언젠가 마음속 이기심이 다 사라지면 그때 대학을 가겠노라 부모님께 선언했다. 부모님의 반대에 대학생이 되긴 했지만, 그녀는 인간이 사는 이유를 알 수 없어 고통스러웠다.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는 마음이 절실했다. 평생 진리를 모른 채 살아야 한다면 사람의 고통을 덜어주는 일이 그나마 낫지 않을까? 대학 3년, 그녀는 의예과에 지원해 합격한다. 입학을 앞두고 우연히 읽은 인산 김일훈 선생의 ‘우주와 신학’. 이 한 권의 책이 그녀의 운명을 바꿨다. 그녀가 그동안 인생에 대해 가졌던 모든 의문이 다 풀렸다. 의대입학을 포기한 채, 그녀는 그 길로 김일훈 선생을 찾았다.

▲ 3-4년 이상 된 대나무 통에 천일염을 넣어 굽기를 9번 하면 죽염이 된다.
ⓒ 이미경 기자
인산의학

독립운동가로, 사상가로, 사람을 생각하는 따뜻한 의학자로 평생을 살다 간 인산 김일훈 선생. 선생은 허준, 이제마와 함께 한국 한의학의 3대 의성으로 꼽힌다.
1950년대부터 많은 사람이 암으로 고통받을 것을 예견한 인산 선생은 평생 암약 개발에 힘을 쏟았다. 그는 암약으로 홍화씨, 유황오리, 다슬기, 인산죽염을 개발하며 인산 암치료한의학을 완성했다.
1992년, 인산 선생은 ‘인업(人業)의 중시가 부국(富國)의 대도(大道)’라는 유언을 남기고 82세로 세상을 떠난다. 그가 남긴 활인구세의 뜻은 선생의 셋째 며느리, 최은아 대표가 이어가고 있다. 현재 그녀는 인산의학의 우수성을 알리는 일에 힘을 쏟고 있다.

못난이가 사업하는 법

인산 선생이 환자를 볼 땐, 사람들에게 인산의학이 좋다는 것을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인산 선생이 떠나고서 사정은 달라졌다. 인산의학의 우수성을 입증할 필요가 생겼고, 체계적으로 다듬는 과정도 필요했다. 그러나 사회생활을 한 적이 없었던 그녀에겐 쉬운 게 하나도 없었다. “나이 40에 인생을 배웠습니다.” 그동안의 어려움을 그녀는 이 한 마디에 담았다. 자신을 사업머리가 없는 못난이라고 표현하며 웃던 그녀. 질러가는 쉬운 길보다 둘러가는 바른길을 가는, 참 예쁜 못난이라는 생각이 든다.

▲ 구울 때 불의 온도를 높이면 보랏빛이 도는 자죽염이 된다.
ⓒ 이미경 기자
그녀가 사는 이유

마흔여섯의 그녀는 육남매의 엄마다. 몸이 약해 육남매밖에 낳지 못했다고 말하는 표정에서 아쉬움이 비쳤다. 그녀는 건강한 사람이 많아야 건강한 나라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늘 보이지 않는 덕을 주는 사람이 되라고 가르친다. “기름유출 사고를 보며 너무 안타까웠어요. 두 배의 선장 중 누구라도 조금만 위치를 옮겼더라면 막을 수 있는 일이었잖아요. 그래서 사고가 나지 않았다면 누구도 배를 옮긴 사람의 공을 알아주지 않겠죠. 하지만, 그가 남을 배려해 움직인 그 마음의 가치는 얼마나 귀합니까?” 억만금과도 바꿀수 없다는 여섯 아이는 그녀의 바람처럼 모두 건강하고 바르게 자랐다.

사람을 살리는 병원

꿈을 묻는 질문에 그녀는 한치의 주저함도 없다. 인산 선생의 뜻이기도 했던 양방한방 종합암센터. 양방의 좋은 의료장비와 한방의 지혜로운 의술을 합쳐 사람을 살리는 병원을 세우는 것이다. 그녀는 전 세계 암환자를 이 병원으로 몰려오게 하겠다고 결심했다. 평범한 주부에겐 너무 큰 꿈이 아닐까? 그녀에겐 아니다. 의지와 신념이 있다면 천하를 평정할 수도 있단다. 그녀는 자신이 여자라는 사실도, 여섯 아이의 엄마라는 사실도, 마흔여섯이라는 나이도 잊고 산다. 하지만, 그녀의 꿈은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

이미경 기자

나, 당신을 친구함에 있어 나, 당신을 친구로 함에 있어 입을 빌린 그런 화려함이기 보다는 가슴으로 넘치는 진실함이고 싶습니다 한마디 한마디에 서로가 가슴을 적시는 감동적인 말은 아니어도 그 한마디 한마디에 서로가 마음 상해하지 않을 그런 배려이고 싶습니다 그리고 나, 당신을 친구함에 있어 불꽃처럼 달아 오르는 꽃잎이기 보다는 계절 내내 변함없는 줄기이고 싶습니다 화사하게 달아 올랐다가 가장 가슴 아프게 지어버리고 마는 봄 한철 그 격정이기보다는 사계절 내내 가슴을 흔드는 그런 여운이고 싶습니다 나, 당신을 친구함에 있어 바람을 타고 흔들리는 물결이기보다는.. 그 물결을 타고 가라앉는 모래알이고 싶습니다 남의 말에 동하여 친구를 저버리고 떠나가는 그런 가벼움이기 보다는 당신의 말 전부를 다 믿을 수 있는 그런 묵직함이고 싶습니다 그리고 나, 당신을 친구함에 있어 남들이 부러워하는 그런 아름다움이기보다는 서로를 그리워하며 존중하고, 배려하고, 소중함이고 싶습니다 애써 꾸미고 치장하는 가식의 마음이기 보다는 맨 몸둥아리 그대로의 만남일지라도 뜨겁게 가슴 속에 회오리 치는 그런 친구가 되고 싶습니다. - 좋은글 중에서

 행복한 가정에 꼭 있어야할 10가지   1. 용서가 있어야 합니다.  가정에서도 용서해 주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지구상에서 용서받을 곳이 없게 됩니다.   2. 이해가 있어야 합니다. 가정에서도 이해해 주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짐승들과 살 수밖에 없습니다.  3. 대화의 상대가 있어야 합니다.  가정에서 말동무를 찾지 못하면 전화방으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4. 골방이 있어야 합니다.   혼자만의 공간(수납장, 옷장, 공부방, 화장실 등)이 많을수록 인품이 유순해 집니다.  5. 안식이 있어야 합니다.  피곤에 지친 몸을 편히 쉬게 할 수 있는 환경이 가정에 없으면 밖으로 나갑니다.  6. 인정을 해주어야 합니다.   가정에서 인정받지 못한 사람은 바깥에서도 인정받지 못하게 됩니다.  7. 유머가 있어야 합니다.   유머는 가족 간의 정감을 넘치게 하는 윤활유 역할을 합니다.  8. 어른이 있어야 합니다.  연장자가 아니라 언행에 모범을 보이는 어른이 계셔야 합니다.  9.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잘못은 꾸짖고 잘한 것은 칭찬해 주는 양면성의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10. 희망이 있어야 합니다.  앞으로 더 잘될 것이라는 희망이 보이면 가정의 가치는 더욱 높아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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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숭고한 모정
  • 입양 네 자녀 건강 찾은데 감사… 생판 모르는 남에게 신장 기증
  • 부산=권경훈 기자 werther@chosun.com
    입력 : 2007.10.18 00:08

    건강이 좋지 못한 아기를 네 명이나 입양해 기른 어머니가 아이들이 모두 건강하게 자라자 “세상에 감사드린다”며 자신의 신장을 기증하기로 했다.

    윤정희(43·대전시 중구 용두동·사진)씨는 두 차례 유산 끝에 마음에 상처를 입고 입양을 결심, 2000년 5월부터 지난 4월까지 4명을 차례로 입양했다.
    하지만 첫째 하은(10)이는 사시(斜視)여서 3년 전에 수술을 받았고, 둘째 하선(8)이는 입양 당시 폐쇄성모세기관지염 때문에 산소마스크 없이 호흡도 힘들 정도였다. 셋째 하민(5)이는 구순구개열이어서 언어장애 치료를 받고 있으며, 넷째 사랑(3)이는 뇌수막염에 안짱다리로 입양됐다. 하지만 아이들은 지금 잘 자라고 있다.

    윤씨는 아이들이 잘 자란 게 고마워 어떻게 보답할까 궁리하다가, 사랑의장기기증운동 부울경지역본부를 통해 10년간 만성신부전으로 고생하고 있는 조모(50)씨를 알게 됐고, 자신의 신장을 기증하기로 했다.

  • 알아도 실천은 힘든 것이다.

    물은 생명의 근원이라고 합니다.

    지난 해 중동부전선 최전방지역인 북한강 상류 평화의댐에는 북한 금강산댐에

    대응하기 위한 댐 증축공사와 함께 인공폭포를 갖춘 물 공원이 조성됐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인공폭포수가 늘 시원하게 떨어지는 곳입니다.

    그런데 얼마전 국제수달총회가 열리던 날 이 곳을 찾은 어린이들이 깜짝 놀랐습

    니다.

    생명의 물이 인공 폭포로 떨어지는 곳에 쥐들이 5마리나 숨져 둥둥 떠다니고 있

    었던 것입니다.

    들쥐가 이동하다 함정과 다름없는 물속으로 떨어져 결국 탈출하지 못하고 최후

    를 마친 것입니다.

    환경에 대해 연구하는 분들께 물어봤습니다.

    "쥐들을 위한 생태통로라도 개설해야 하나요?"

    "허허..."

    `쥐뿔 같은 소리'로 들렸을 지도 모릅니다.

    다른 분은 이렇게 외칩니다.

    "수공(한국수자원공사) 직원을 불러 꺼내도록 해야겠어!"



    다들 물속에 숨진 채 떠다니는 쥐들을 두고 바라만 볼 때 외국인 여자 한 분이

    장했습니다.

    화장지를 꺼낸 이 분은 손으로 쥐를 건진 뒤 바로 손으로 흙을 파고 묻어 줍니다.

    익사한 쥐들로 인한 소동은 여기서 끝났습니다.

    숨진 쥐는 이 분에 의해 가을꽃 화사하게 피어있는 자연으로 돌아갔습니다.

    쥐는 다시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우리의 환경 문제는 늘 개발과 보전을 두고 고민하고 있습니다.

    환경보전론자는 인간의 삶 보다는 동물을 우선시하고, 개발 무풍지대에 있는 주민들은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기반시설은 이제라도 갖춰줘야 하지 않느냐고 호소합니다.

    다들 익사한 쥐를 두고 볼 때 손으로 건져 묻어준 이 분의 행동은 잊었던 `작은 실천'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그동안 물이 생명의 근원이라는 말은 수 많은 캠페인과 광고 등으로 귀가 닳도록 들었지만 정작 생명에 대한 예우나 작은 `실천'이 `구호'에 뒤졌던 것은 아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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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blog.yonhapnews.co.kr/dmzlife/post/108868/



    대학 꼴찌 졸업생의 노벨상 수상


    2002년 노벨 물리학상은 일본인 <코시바 마사토시>교수에게로 돌아갔다.

    그 해 3월 그는 도쿄 대학 졸업식에 초청을 받았다.


    그는 과거 이 대학의 물리학과를 꼴찌로 졸업한 학생이었다. 졸업식장의 대형 스크린에는

    그의 학창 시절 성적표가 공개되었는데, 16개 과목 중 우(優)는 '물리학 실험1, 2'의 2개 뿐이었다. 나머지는 양(良)이 10개, 가(可)는 4개였다. 그런 그가 노벨상을 받게 되었던 것이다.


    그의 비밀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플러스 사고>에 있었다. 그는 이것을 <능동적 인식>이라 표현하였다.

    그는 졸업식 축사에서 학교의 우등생이라고 해서 사회에서도 우등생이 된다는 법은 없다고

    지적하면서, <수동적 인식과 능동적 인식>에 대해서 말했다.


    "학업 성적이라는 것은 배운 것을 이해한다는, 말하자면 <수동적 인식>을 얼마나 잘했는가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성적이 좋은 사람이 관료가 되고 혹은 교수가 되기도 하지만, 해외로부터

    문헌이나 이론을 수입하는 일에만 골몰하는 경우가 자주 있습니다.

    <수동적 인식>의 폐해임에 틀림없고, 사실은 성적 우수자가 빠지기 쉬운 함정이기도 합니다."


    그는 오늘날 <수동적 인식>의 가치가 점점 떨어지고 있는 반면, 스스로 해결책을 찾아낼 수 있는

    <능동적 인식>이 더욱 가치를 드높이고 있다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수동적 인식>은 '남이 간 길을 착실히 따라가는 것'이다.

    이런 인식을 가진 사람은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 낼 수 없다.

    그렇기에 <능동적 인식>, 곧 '남이 가지 않은 길에서 스스로 길을 만들어간다는 생각'을 지니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코시바 마사토시>교수를 물리학 분야의 달인으로 만들어 준 것은 '안된다'는 생각보다

    '할 수 있다'는 신념으로 새로운 길을 도전하는 '힘' 곧 지성을 다하는 <플러스 사고>였던 것이다.


    출처 : 무지개 원리 (차동엽 저) - 아주 특별한 성공

    너무 달랐던 두 아이…의사, 발레리노로 키워

    한 뱃속에서 태어났지만 어쩜 이렇게 다를까. 두 아이를 기르고 있는 부모라면 한번쯤 생각해 보는 궁금증이다. 생김새도, 성격도, 취미도 달랐던 두 아이. 서로 다른 길을 선택한 연년생 형제. 하지만 각자의 분야에서 자신감과 열정으로 살아간다는 점이 닮았다. 지기 싫어하고 참을성 있던 첫째 정호(25)는 현재 의대를 졸업하고 인턴 과정에 있는 의사다. 호기심 많고 독창적인 성호(24)는 NYU(뉴욕대학)에서 석사과정을 밟고 있는 발레리노다. 의사와 발레리노로 키워낸 어머니 김윤자(49)씨의 평범하지만 특별했던 교육 비결을 들어봤다.

    네 식구, 생소한 미국으로 유학가다

    남편의 유학길을 따라 유치원에 다니던 정호와 5살난 성호를 데리고 김윤자씨는 미국으로 갔다. “영어요? 아이들은 알파벳도 모르는 상태였지만 가족은 함께 있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유학을 결정했지요.” 조기유학으로 많아진 기러기 아빠들에 대해서 그는 “아무리 자녀교육을 위한다지만 가족은 존재 자체에 큰 의미가 있다.”고 말한다. 작은 애 성호는 다 커서도 당시 힘들었던 심정을 털어놓곤 한다. 동양 사람이 거의 없는 낯선 이국땅에서 말도 통하지 않는 어려움이 너무 컸나 보다. 하지만, 2년 후 다시 한국을 찾았을 때 아이들은 다시 미국으로 가고 싶어했다. 결국 큰애 정호가 4학년, 둘째 성호가 3학년 때 다시 미국으로 갔다.

    다양한 과외활동으로 익힌 재능

    공부는 기본, 다양한 과외활동은 선택이었다. 수영, 승마, 테니스. 바이올린, 첼로, 피아노……. 많은 것들을 만나게 해주고 싶었다. 아이가 하고 싶어 하고 잘할 수 있는 것을 찾기 위해서였다. “언제든지 아이가 그만하고 싶다고 하면 그만했어요. 조건은 한번 그만두면 두 번 다시 할 수 없다는 것이었기 때문에 어리지만 아주 신중하게 고민하며 결정하더군요.” 교육비는 둘이 합쳐 한 달에 1000달러 정도 들었다. 하지만 다양한 경험으로 더불어 사는 인성과, 인내, 자신감을 얻었다. 덕분에 다른 문화권의 많은 친구들과도 잘 어울릴 수 있었다. 두 아이는 자신이 하고 싶어 하는 과외활동을 하기 위해 학과 공부를 열심히 했다. 학교 공부를 위해 도서관에서 관련 책을 빌리고, 예체능 활동을 하고 다시 집으로 와서 숙제를 하고 나면 늦은 밤이었지만, 아이들은 하고 싶은 것을 하느라 피곤한 줄을 몰랐다. 바이올린으로 미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쥬니어 콩쿨 현악부문에서 전미 2위와 피아노부문 스테이트 2위를 차지했던 정호는 바이올린과 피아노에 재능을 보였다. 성호는 공부나 여타 예체능에서도 특출 나지는 못했지만 또래 아이들뿐 아니라 사람들과 어울리고 주목 받는 걸 좋아했다. 전혀 조바심이 나서 비교해 본 적은 없다. 단지, 할 수 있을 때 배워서 두 아이 모두 그들 삶에 보탬이 된다면 하는 바람뿐이었다. 가장 좋은 약은 ‘칭찬’이라고 그는 말한다. 아이가 어떤 하나를 ‘잘한다’해서 그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하는 그 자체를 ‘인정’하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 것이 재능을 길러내는 비결이라고 말했다.

    자신을 되돌아보게 했던 아이의 한마디

    “아이들에게 공부하라고 종용하거나 강제로 무엇을 하게 한 적은 없는데, 어느 날 큰아이 정호가 시험을 치른 후, 1개를 틀렸는데 아이들에게 ‘아! 나 이제 엄마한테 죽었다’라고 했다는 얘길 들었어요. 깜짝 놀랐죠. 내가 혹시 아이에게 너무 욕심을 부린 게 아닌가 하고 제 자신을 되돌아보게 됐어요.” 아이는 그냥 불쑥 한 말이었다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지만, 그냥 넘길 수 없었다. 자식이 잘되길 바라는 마음이야 매 한가지이지만 그렇다고 ‘채근하는’ 부모는 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공부보다 사물에 대한 호기심이 많고 너무나 활동적인 성호가 걱정돼 6살 무렵, “나중에 너랑 사과장사라도 하려고 운전면허는 1종을 땄다.”고 말했다. 중학교 2학년이 된 성호는 어느 날 아주 고민스런 표정으로 “엄마, 내가 커서 사과장사는 할 수 있을까?”라고 말했다. 김씨는 대수롭지 않게 내뱉은 말 한마디가 아들의 가슴에 깊은 상처로 남아있는 걸 보고 마음이 아파 여러 번 아이에게 용서를 구했다.

    중 3이었던 큰애 국어 실력은 초4년 수준

    5년 유학생활 끝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정호와 성호는 각각 중학교 3학년, 2학년으로 편입했다. 하지만, 학과 시간에 거의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했다. 학습지로 평가해 보니 큰애는 초등학교 4학년, 작은애는 3학년 수준이었다. 유학 갈 당시 국어 수준으로는 중학교 수업을 따라 갈 수 없어서 급히 국어 공부를 해야 했다. 다행히 2개월 후 두 아이는 거의 또래 수준으로 올라왔다. 공부뿐 아니라 많은 활동을 했던 정호는 계속 미국에서 공부하고 싶다고 다시 보내달라고 했다. 그때마다 아빠는 “한국 사람의 정체성을 잃어버리면 국제 미아일 수밖에 없다. 여기서 최선의 노력을 하고 완전한 정체성이 확립되었을 때 그때 다시 생각해 보자.”고 타일렀고, 아버지를 존경했던 아이는 정말 열심히 공부하며 한국 생활에 잘 적응해 갔다. 하지만 성호는 달랐다. 숙제가 많고 해야 할 활동도 많은 미국이 싫다며 한국이 좋다고 했다. 성호는 공부는 곧잘 따라갔지만 항상 창조적인 아이디어로 새로운 것을 찾고 있었다.

    “사실 전 의사가 되는 게 꿈이었어요”

    정호는 오래 전부터 의사가 ‘꿈’이었다고 말했다. 공대 출신의 집안이라 공대를 가거나 MBA 과정을 해 봄이 어떻겠냐고 제안하자 한 말이었다. “정말 음악을 하고 싶다면 전문적인 직업이 있어야 한다. 음악을 메인으로 삼지 말고 의사가 되라.” 아이는 남편이 의사였던 피아노 선생님 말씀을 기억하고 있었다. 아들이 잘 해 낼 거라 믿었다. 자신이 선택한 길은 후회도 없고 가장 열심히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이는 원하는 서울대 의과 대학에 갈 수 없었다. 귀국 후 완전히 회복하지 못한 고1 내신 성적 때문이었다. 자퇴 후 검정고시를 치르라는 권유도 있었지만, 그는 그럴 수 없다고 했다. 정호는 아쉽게도 내신점수가 부족해 비록 원하는 대학을 가지는 못했지만 자신이 원하던 의사의 길을 선택했다. 지금도 새우잠만 자는 바쁜 인턴과정이지만, 웃음을 잃지 않는다. 병원을 평생 한번 찾을 수 있는 환자일 수도 있기에 더욱더 최선을 다해 도우려 한다고 말한다.

    “무용을 하면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성호가 중 3때, 학교 축제에서 브레이크 댄스를 추는 걸 멀리서 지켜봤다. 자유자재로 몸을 놀리고 유연한 동작도 쉽게 해내는 아들에게 그는 정식으로 무용을 배워볼 것을 제안했다. 어렸을 때 태권도와 수영 등 남달리 스포츠를 잘 소화해 내던 성호에게 어울릴 것 같았다. 무용학원에 보낸 한 달 뒤, 학원 선생님에게 전화가 왔다. “이렇게 열심히 하는 아이는 처음 본다”며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이야기였다. 다음날 학원에 몰래 찾아가 멀리서 아이의 동작을 지켜봤다. 아이는 정말 쉴새 없이 노력하고 있었다. 안쓰러울 정도로……. “엄마, 내가 무용은 형보다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연년생이었던 형보다 잘하고 싶은 마음에 스스로 동기 유발이 된 셈이다. 그 해 성호는 대전예고에 합격했다. 세종대 재학 중 미국 유학을 결심한 성호는 포인트 파크 대학을 졸업, 현재 뉴욕대학에서 석사과정을 밟고 있다. 그리고, 지난 7월 뉴욕서 열린 제 1회 전세계 중국무 무용대회에서 한국인으로는 유일하게 참가해 시니어부 동상을 수상했다.

    우리를 인정해 준 어머니, 그리고 아버지

    아이들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다. 부모 욕심으로 아이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다만 아이가 자신의 길을 갈 수 있도록 지켜봐 준 것뿐이다. 늘 그들의 생각을 공유하고 미래를 설계하는 가족 간의 대화는 가족의 가장 큰 행복이자 희망이었다. 어느새 개구쟁이 아이들이 건장한 청년이 됐다. 남편 차종환(49)씨는 “늙어가는 것은 전혀 서러울 수 없다. 나와 똑 같은 2세가 더 나은 인류의 미래를 위한 입자로 커가기 때문이다. 낙엽이 떨어져야 새순이 나오듯, 나의 아들들이 이렇게 멋지게 크고 있어 기쁘다.”고 말한다고. 김윤자 씨는 언제나 애들에게 해주는 말이 있다고 한다. “너희 둘은 엄마, 아빠의 소유물이 아니다. 소나무 숲이 시원스럽고 아름다워 그 밑에서 휴식하고 싶은 것은 모두 자기 자리에서 자기의 위치를 지키고 서 있기 때문이야. 공부나 과외활동이 다른 아이들보다 뒤떨어져도 괜찮다. 모든 나무가 다 크면 재미없잖니. 하지만 너희들은 자신의 자리에 바로 서야 해.” 어느덧 자신의 자리를 굳게 지키고 선 차정호, 성호씨. 그들이 더 빛나 보이는 건 그들만의 욕심 없는 소박함 속에서 피어난 꽃이기 때문일까.